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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anuary, 2025

2025.1.14 (화) 요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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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4 (화) 요4:43-54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그 기적을 본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을 보인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왕의 신하를 통해 믿음의 핵심을 배운다. 1 갈릴리로 예수님이 돌아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다. 대부분 기적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왕의 신하에게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을 발견한다. 예수님은 그에게 ‘아들이 살았으니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신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보고 나서 그 분을 믿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기 전,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믿음을 고백했다. 기적에 의존하는 믿음은 마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실망과 불평으로 이어지게 되다. 오직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2 아들이 살았으니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왕의 신하는 집으로 돌아갔다. 자기의 판단과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가던 길에서 하인들을 만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점에 아들이 나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 기적으로 그는 더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순종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내가 본 대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생각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다. 왕의 신하는 우리에게 믿음이 성장하는 지름길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우리는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 주님, 말씀을 의심 없이 받고 순종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소서!

2025.1.13 (월) 요4: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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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3 (월) 요4:27-42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이 전도인지를 친히 가르쳐 주시는 기회로 삼으셨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전도의 원리는 뭘까? 1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이상히 여겼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돌아가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에 대해 크게 외쳤다(28-29). 이 말에는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이 부적절한 죄악이었음을 인정하는 자백,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다. 확신에 찬 그녀의 증언을 듣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왔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증언이다. 주저함 없이, 들어야 할 사람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언합시다. 2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신 목적은 한 여인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 여인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었다. 도한 ‘먹을 양식’을 갖고 제자들과 대화를 시작하셨다. 배를 채울 양식보다 진짜 더 중요한 양식을 소개하셨다. 바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즉 하나님이 뿌리시고 기르신 것을 추수하는 것을 말씀하신다(34-38). 밭에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한다. 3 비록 부도덕한 행실, 퉁명스런 말투, 사람들과 단절된 관계 등 단점만 많았지만,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했다’는 단순한 증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 고백은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또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서 그분을 참 구세주로 믿게 되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 그분을 구주로 믿을 수 밖에 없다. 또 주님을 만난 이는 주님을 다시 전할 수밖에 없기에 복음은 세상 끝까지 전해질 것이다. 주님, 진정 예수님을 만났으니, 진정한 전도자로 합당하게 살아가며 복음 증거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2025.1.11 (토) 요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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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 (토) 요4:1-14 4장에서 우리는 목마른 자를 찾아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를 본다. 3장에 등장했던 니고데모와 완전히 대조적인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이 땅의 문제,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에 대한 영원하고도 완전한 해결책으로 주님이 소개된다. 1 예수님의 관심은 늘 ‘잃어버린 자’였다. 유대 지역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실 때 일반적인 경로(요단강을 따라 올라가는) 우회로 대신 사마리아를 관통하는 길을 택하신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3-4). 이 여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만나신 장소는 수가라는 동네로,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은 여인을 기다리신다(6). 그 시각은 낮12시였다. 가장 뜨거운 시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으러 나온 사연 많은 여인을 예수님은 일부러 찾아가 만나 주신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갈급한 자, 절망에 싸인 자, 예수님이 절실한 자를 찾고 찾으신다. 2 물 길으러 나온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좀 달라’고 청하신다.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접점이 ‘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인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9). 예수님은 여인의 경계심을 허물 만한 말씀을 던지시는데, ‘하나님의 선물’, ‘누구’, ‘생수’이다(10).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를 누가 줄 것인가?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깊은 우물에서 그릇도 없이 어떻게 물을 줄 수 있냐고, 자신들은 조상 야곱이 준 우물물을 마시는데 당신은 야곱보다 크냐고 받아 친다. 남자들의 헛된 약속을 믿었다가 무너진 경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는 우물물의 한계를 말씀하시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는 무한한 약속을 말씀하신다. 목마른 자를 영원히 채우시는 예수님의 은혜는 샘물처럼 솟구쳐 온 땅은 적실 것이다. 주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우리 주변의...

2025.1.10 (금) 요3: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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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 (금) 요3:22-36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춤으로 신랑되신 예수님의 들러리 역할에 충실했다. 예수님만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며, 영생은 그로 말미암는다. 1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례를 베푸시는 쪽으로 가는 것을 목격한 요한의 제자들은 경쟁심을 느꼈던 것 같다(26). 이에 요한은 그리스도는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없는 관계임을 설명한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길을 트는 자이며, 신랑의 들러리 역할을 기쁘게 소행하고 있다고 진술한다(27-29). ‘자신은 쇠하고 그분은 흥하여야 한다’는 분명한 자기 인식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겸손하고 충성되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놀라운 믿음을 보였다. 예수님이 이런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 수 있다(마11:11). 우리도 요한처럼 사명을 맡기신 분이 누구신지 알고,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 보냄 받은 곳에서 겸손과 신실로 왕의 대로를 닦는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2 세례 요한은 위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증언과 설명을 더함으로 예수님은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을 수 없는 최고의 통치자임을 고백한다. 자신은 땅에 속한 자일 뿐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하늘의 통치자시므로(31), 그의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말한다(32-33). 하늘의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니 그분의 말씀이야말로 참된 진리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33-34).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요한은 최종적으로 경고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한다. 주님, 자신은 쇠할지언정 예수님이 흥하기를 진심으로 원했던 세례 요한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삶과 태도에서 반복되기를 하소서!

2025.1.9 (목) 요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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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9 (목) 요3:10-21 하나님의 나라는 육적, 물리적, 세상적 열심이 아닌 위로부터 오는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즉 영생을 주시기 위해 위로부터 오신 이가 바로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1 예수님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10)라며 그의 의식 전체를 환기시키신 후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않는다’(11)라는 말씀으로 당신의 증언을 거절하는 이들 모두가 지닌 문제를 지적하신다. 육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율법 체제로 인해 굳어진 심령으로 ‘하늘의 일’에 대한 메시아의 전언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속히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믿겠느냐’는 주님의 질문 앞에 우리 역시 진실하게 반응해야 한다. 2 예수님은 이제 위로부터 오는 구원이 바로 당신임을 전하신다(13).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닌 ‘인자’는 위로부터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의 유대적 표현이다 (단7:13-14). 모세 때 장대 위에 달려 들린 놋뱀(민21:4-7)처럼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심으로, 십자가 수난과 영광을 모두 예언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가 멸망치 않고 위로부터 오는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신다(15-16).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거듭난다는 메시아의 말씀은 불변의 진리다. 3 메시아로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한 구원의 초청을 거절하면 그 결과는 심판 곧 정죄다(18). 믿지 않는 것은 자신의 악한 행위를 부정하거나 덮기 위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이를 거부하고 미워한,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어둠의 행위라고 규정한다(19-20). 마치 광야에서 장대에 높이 달아 올린 놋뱀을 보기만 하면 살 수 있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길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거절한 자들의 최후와도 같다. 진리를 따른다고 말은 하면서도 빛으로 오신 메시아를 거절하는 것은 어두운 세상의 특징이다(21). 믿음과 순종은 같이 간다. 믿음 없는 순종은 종교적 행위 이상이 될 수 없다. ...

2025.1.8 (수) 요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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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8 (수) 요3:1-9 유대 산헤드린 공회원 중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율법에 능통했지만 당시 지위도, 명예도 없는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할 정도로 그는 영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그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주셨다. 1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속한 집단이 예수님을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밤에라도 예수님을 찾아와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거듭남의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적이고 육체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성경에 능통해도 거듭나는 체험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중생의 체험이 없어도 얼마든지 신앙 연륜과 직분을 자랑하며 만족스런 종교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에 의해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변화가 거듭남이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살던 살마들이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그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인식하게 되고,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깨닫고 그분께 순종하며 사는 새로운 의지와 결심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이런 거듭남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신앙 공동체는 거듭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한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거듭남을 위해 중보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정직히 돌아보자. 아울러 사람들에게 복음이 바로 전달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살아가자! 주님, 매일매일 거듭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드러내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5.1.7 (화) 요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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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7 (화) 요2:13-25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사건이다. 우리는 진정한 성전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세우시는 예수님을 주인 삼아야 한다. 1.요한복음에서 유월절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다(1:29, 36). 유월절 제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오기에 흠 없는 짐승을 무사히 데리고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따라서 순례객의 편의를 위해 무흠한 제물을 성전에서 거래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성전 안에서 속여서 짐승을 고가로 판매하는 일이 관습이 되었고, 인간의 형상이 새겨진 로마 화폐를 성전 세겔로 높은 수수료를 주고 환전까지 해야 했다. 이에 예수님은 짐승들을 내쫓고 환전상을 뒤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이 성전으로 회복되어야 함을 외치셨다(15-16).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무너진 성전의 기능을 다시 세우기 위해 열심을 다하신 주의 마음을 살피고 본받아야 한다. 2 성전에서 가판대를 뒤엎으신 예수님의 행위는 성전의 상행위를 주관하던 종교 지도자들을 자극했다. 무슨 권위로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는지 따지면서 설명이 아닌 표적을 구했다(18). 가시적이며 초자연적인 이적을 구하는 것은 그들의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방증한다(마12:38-39). 이에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3일만에 일으키리라는 답변을 주심으로 당신이 성전이신 것과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다(19-21). 영적으로 죽어 있던 무리들이 예수님의 대답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야 그 뜻을 깨달았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3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다(25). 예수님이 표적을 보이자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의지하지 않으셨다. 사람의 속을 다 아셨기 때문이다(24-25). 우리는 사람을 의지해선 안 된다. 예수님은 사람의 증언, 추천, 지지와 응원이 필요 없으신...

2025.1.6 (월) 요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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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6 (월) 요2:1-12 2장부터 갈릴리에서 시작해 예루살렘에 이르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7가지 표적이 기록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 수 있다. 1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번째 기적의 장소는 가나에서 있었던 혼인 잔치 자리였다. 예수님과 어머니, 제자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셨다. 잔치에는 만족과 기쁨을 부족함 없이 채우고 누리는 때다. 그런데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두주의 ‘부족함’이 발생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100리터 용량의 돌항아리가 6개나 있었지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613개나 되는 유대인의 율법 조항이 천국 자치와 같은 구원의 기쁨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율법의 제의와 제사는 구원을 가리킬 뿐이지 구원의 완성,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진정한 잔치, 구원의 잔치, 부족함이 없는 영원한 만족의 시대가 도래했다. 근원적 갈망을 채워 주실 신랑 예수님을 바라자. 주님이 잔치의 주인공이시다. 2 예수님께서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하시자 하인들은 충실히 아귀까지 가득 채운다(7). 100리터 들이 6 통을 채우는 일은 당시 상황으로 매우 힘든 노동이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그러나 순종은 이내 기쁨으로 바뀐다.그 물이 연회장에게 전달되자 최상급 포도주로 바뀐 것이 드러나도(8-10), 종들은 기적의 근원을 맨 먼저 알게 되는 보상을 누린다(9). 율법의 제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 진정한 구원을 얻는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손과 발을 예식 차원에 씻는 데 쓰이는 허드렛물이 최상급 포도주로 바뀐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의 인생에 본질적 변화를 일으키시는 구세주시다. 조금 더 나은 물이 아니라 죽을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 주시는 구세주시다. 주님은 새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진정한 변화를 일으시키는 주님을 더 소망하자. 지금도 본질적 변화로 동일하게 초청하시는 주님, 갈급한 모든 심령들 위에...

2025.1.4 (토) 요1: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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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4 (토) 요1:29-42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했다. 그의 제자 둘은 예수님과 깆겁 교제 후, 그분을 따랐다. 초기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제자됨의 원리와 은혜를 깨달을 수 있다. 1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며 증언한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결말을 반영한 것이다. 물로 세례를 베풀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32-33). 믿음은 성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일하신 결과이자 역사하시는 통로이다. 이제 사도 요한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언한다(34).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 그가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사실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다. 2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다’라는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신다. 바로 ‘제자 됨’에 대한 깊은 질문이다. 본회퍼(Bonhoeffer)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는 와서 죽으라고 초대하시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스데반(행7:59-60)도, 야고보 사도(행12:1-2)도 모두 순교했다. 우리 모두 이들처럼 죽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순교자’다. 순교자를 의미하는 헬라 원어(마르튀스)는 원래 ‘증인’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순교의 핵심 의미는 죽음이 아니라 증언이다. 죽기까지 증언하는 순교자가 있고, 살면서 증언하는 순교자가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는 지금도 이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왜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는가? 주님, 삶이 바쁘고 분주할수록 말씀과 기도로 부지런히 주님을 만나고 동행하며 제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5.1.3 (금) 요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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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3 (금) 요1:19-28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보냄 받은 자에 불과하며, 뒤에 오실 그리스도는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참된 메시아임을 분명히 전한다. 1 세례 요한의 정체(6-8)에 대해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이 관심을 갖고 질문을 쏟아부었다(19, 21-22, 25).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메시아도 아니고, 다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답했다 (19-23). 이 모든 말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증언’이었다. 무리의 질문 의도를 알았던 그는 확신을 갖고 증언한 것이다. 그의 증언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사40:3)을 기반으로 한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는 역할에 관한 내용이다. 자기를 보내신 이를 알고 자기가 보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세상의 질문 앞에 주저 없이 담대하게 답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신분과 역할에 대해 우리도 세상 앞에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 율법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는 권위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를 물었다. 이에 요한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계신데, 그는 놀라운 권세로 완전히 새로운 일을 행하실 분으로 소개한다(26-27). 예수님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 베푸심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마3:11; 막1:8; 눅3:16). 이는 오직 메시아만이 베풀 수 있는 세례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준비하며, 자신은 감당치도 못할 벅찬 일, 다른 차원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큰일을 행하고 계신다. 우리 역시 왕의 재림을 준비하러 세상에 보냄 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담대히 외치자. 주님, 나의 신앙에 대해 세상의 그 어떤 질문에도 흔들리거나 당황하지 않고 나의 믿는 바를 담대히 증언하게 하소서!

2025.1.2 (수) 요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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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수) 요1:9-18 존재 이전의 존재요,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소개한 요한은 계속해 세상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 성육신 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소개한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믿음이 주어지며 은혜와 진리를 경험하게 된다. 1 4-5절에서 이미 소개했던 빛이시 예수님에 대한 안내가 9절에 다시 ‘참빛’으로 소개하며, 예수님이 이 땅에 빛이 되라고 불러 모으신 성도들 (엡5:8; 살5:5)을 온전케 하시는 진정한 빛으로서 권세를 가지셨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도 있었다(10). 어둠에 잠긴 세상은 창조주이신 분, 자기 백성에게 오신 분을 몰라보고 거역하고 반역하며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창조주를 알아보고 영접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받은 ‘믿는 자’들이다(12). 믿음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말미암는다(13).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기적보다 놀라운 일이고, 어느 자리보다 영광스런 지위를 얻은 일이다. 2 요한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의 개념으로 영광스런 하늘의 하나님이 타락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거하신 ‘임마누엘’의 궁극적 현현임을 소개한다(14). 육신을 악한 것으로 여겼던 당시 세계관에서 이 고백은 충격적이고 대담한 것이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고백을 덧붙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현현이시며 그가 은혜와 진리의 세상, 즉 율법을 넘어선 세상을 열어 가셨음을 소개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스스로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려는 낮아지신 모습이다. 바울 역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했다고 고백했다(고전9;19). 우리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이 낮아짐으로 나타나야 한다.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주님, 주를 믿고 영접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빛으로 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성육...

2024.12.31 (화) 계2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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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1 (화) 계22:6-21 신앙 때문에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가운데 살아가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주는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입을 통해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바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말씀과 믿음을 사수하라’는 명령이다 1 믿음을 세우는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과 천사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신실하고 참된 것이기에 기록되어 보존되어야 하고,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한다(6; 19:9).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고자 했던 자들은 돈과 명예에 경배하지 않고, 사람을 높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했음을 알 수 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철저히 그 안에 머물러야 한다. 2 요한계시록의 에필로그(10-21)은 다니엘서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간수하고 봉함하라고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제는 때가 가까우니 봉인하지 말라고 한다(10; 담12:4, 9). 여전히 세상에는 악한 자와 지혜로운 자가 여전히 있으며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11; 단12:10),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 행위에 따라 심판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말씀을 인봉할 필요가 없다(12-13). 성도는 오직 새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이기에 선한 행실을 의미하는 의복을 늘 희게 유지해야 한다(14;6:11; 7:9). 3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지만, 그 내용과 권위는 모든 예언의 완성이시고, 다윗의 뿌리요, 광명한 새벽별로서 온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16; 5:5; 민24:17; 사60:3). 이 책은 하나님과 교회가 복음을 듣는 자, 목마른 자, 곧 생명수가 필요한 자들을 초청하기 위함이다.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이기에 그 내용을 더하거니 뺄 수 없다. 그런 행위를 한 자에게는 저주가 임한다(18-19). 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며 교회를 ...

20234.12.30 (월) 계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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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12.30 (월) 계22:1-5 본문은 회복과 치유가 넘치고 예배의 기쁨이 가득한 천국의 모습을 통해 성도에게 성령 충만을 사모하게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주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1 요한이 본 천국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영생을 허락하시는 생명수의 강물이 흘러나왔다(1; 겔47;1). 강 좌우편에는 생명나무가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 그 잎사귀로 만국을 치료한다는 것은 질병도, 고통도 없는 완전한 삶을 의미한다(2; 겔47:12). 에스겔이 보았던 환성(겔47:1-21)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말씀하신다. 타락한 교회를 회복시키고 실족한 성도들을 치유하는 일은 성령충만을 갈망하며 성령님의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통해 이뤄진다 2 이 땅에서와 달리 천국에서 성도는 오직 하나님께 초점 맞춰 변함없는 예배자로 살아간다(3). 하나님을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처럼, 또 하나님이 성도를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복을 누릴 것이다(고전13:12). 또 구원의 완성에 도달한 성도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여(4), 다스리는 권세까지 약속 받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쉬지 않고 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 천성에서 주님과 온전한 하나됨을 이룰 때까지 모든 성도들이 매일매일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전진하게 하소서!

2024.12.28 (토) 계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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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8 (토) 계21:9-21 이제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영광을 노래하며 대단원을 향해 나아가면서, 교회가 어린양의 신부로서 이 세상이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을 소유한 거룩한 공동체라는 사실이 선포된다. 1 일곱 대접의 재앙을 세상에 부었던 일곱 천사 중 하나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거처이자 영화롭게 된 교회가 ‘어린양의 신부’임을 요한에게 소개한다. 마치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 어린양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곧 교회와 결혼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10). 교회는 세상의 영광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지닌 예수님의 신부다. 2 예수님을 믿는 교회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성곽에 동서남북으로 세 개씩 있는 12문에는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12-13). 12지파가 성막의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배치되었던 것을 연상시킨다. 성곽의 12 기초석에는 12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렇듯 교회는 이스라엘 12 지파와 예수님의 12 사도의 전통을 함께 이어 가는 공동체다. 그 성의 모양은 정육면체로(15-17), 한 변이 12,000 스다디온(약2,500km)이고 성곽의 두께가 144규빗(약70m)인 정육면체의 성이다. 이처럼 교회는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며, 참 이스라엘이다. 3 성곽은 벽옥과 맑은 유리와 같이 아름답고, 그 기초석들이 12가지 보석으로 꾸며졌다(18-20). 이는 대제사장의 흉패에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들이 있던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12문은 진주로 되어 있고, 그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지혜롭고 영광스런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하는 존재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이처럼 놀라운 영광을 소유한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 교회가 창조주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인 것과, 거룩한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기억할 때,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떠함과 상관없이 우리 영이 항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