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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March, 2022

2022.3.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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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7 (목) 눅22:1-13 사탄의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켜 메시아를 죽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방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사탄의 어떠한 도전도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막을 수 없다. 1 유월절을 맞아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유월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재앙에서 보호되었다(출12:6-8). 바로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한 대속물인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것이다(마20:28). 비록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에 빠져 사탄의 도구로 변질되어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같은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게 하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셨다(딤전2:6). 우리는 사탄의 어떤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믿고 담대하게 영적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2 이제 가룟유다가 사탄의 도구로 종교지도자들과 협력한다. 그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돈궤를 관리하면서 돈을 훔쳐 가기도 했다(요12:6).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따른 것이다. 아마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되면 자신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기의 기대와 다르자 돈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준다. 사탄이 가룟 유다를 이용해 주님을 죽이는 일을 주도하지만, 이 모든 일은 이미 성경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였다(행1:6). 하나님께서 주권과 섭리로 다스리심을 믿을 때,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 주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세워지기 위한 주권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매순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3.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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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0.3 18 (금) 눅22:14- 성만찬의 교훈은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성만찬이 주는 교훈을 바로 알아야, 그 교훈을 따라 행할 수 있고 우릴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다. 1 유월절은 출애굽의 결정적인 계기가 딘 10번째 재앙을 기리는 절기다. 그때 죽임을 당했던 어린 양은 인류의 대속을 위해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심으로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 대신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제정해 주신 것이다. 주께서도 성찬식을 행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듯이, 성도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독생자의 생명을 내어 주셔서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주와 떡을 나눠주셨다. 원래 큰 떡을 나눠 먹고, 큰 병에 든 포도주를 돌아가면서 마셨다. 이는 한 몸, 한 피를 마시는 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성만찬과 관련해 성도들이 하 되지 못하고 분열함으로 모임일 도리어 해롭다고 책망한 것이다(고전11:17).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하나 되지 못하면 온전한 성찬의 의미를 구현할 수 없다. 모든 성도는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어 세상에 그 사랑의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한다. 주님, 성만찬에 담긴 주의 사랑과 복음의 의미를 온전히 되새기며 성찬에 참여하게 하소서!

2022.3.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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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6 (수) 눅21:25-38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는 것은 성도의 삶의 특징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교훈해 주셨다. 1 왜 예수님은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가 방탐함과 술 취함과 생황의 염려를 금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 먼저 방탕함과 술 취함은 서로 연관이 있다. 바울은 성령충만과 대조되는 행동이 바로 이것임을 강조했다 (엡5:18). 또한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다. 생활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매우 치명적이 요소다 (마13:22). 바로 사탄이 두려움과 염려의 씨를 우리 마음 밭에 뿌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 가운데 휩싸이게 되면 사탄이 그 마음에 틈타 불신앙의 길로 끌고 간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고 세상 염려를 물리치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2 주님은 우리가 모든 미혹과 재앙을 피하고 주님의 재림 앞에 담대히 서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신다. 사도 바울 역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함으로 구하라고 권면했다(빌4:6).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까지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기억하자(마26:41). 현실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영적으로 깨어 죄와 시험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삶이 어려울 때 반짝하는 기도 말고 재림이 더 가까울수록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마지막 때에 절제와 말씀 순종의 열매를 맺으며, 항상 깨어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가가 하소서!

2022.3.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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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5 (화) 눅21:10-24 종말의 때에 요구되는 참된 신앙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가르쳐 주신 이유가 바로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마지막 때를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1 종말의 사회 분위기는 한마디로 혼란스럽다.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우고 지진과 기근, 전염병과 하늘의 징도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난과 박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그런 일들 때문에 놀라지 말고 믿음 때문에 얼마든지 고난 받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또한 주께서 맡기신 영혼 구원과 이웃 사랑의 사명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순종해야 할 중대한 사명이다. 2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 해도 그것이 결코 실패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혼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 우리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힘을 주실 것이다. 그러기에 고난 중에서 인내하며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전적으로 순종할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며 고난이 오히려 우리 믿음을 훈련하고 영적 성숙을 이뤄 갈 기회임을 알아 감사하자. 주님,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시고 경건의 훈련 또한 게을리 하지 말게 하소서!

2022.3.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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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4 (월) 눅21:1-9 참된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최선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 과부의 헌금을 주의 깊게 보신 주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헌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주기 원하셨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된 헌금은 과연 어떤 것일까? 1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헌금함에 예물을 넣었다. 예수님은 그들 중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의 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그 여인을 칭찬하셨다. 전 재산을 헌금했다고 말씀하신다. 많은 부자들이 이 여인보다 더 많이 헌금했음에도 주님은 보잘것 없는 여인의 동전 2개를 더 칭찬하셨다. 당시 과부는 생계 수단이 없었기에 자신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모든 필요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보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신다. 우리는 모든 헌신과 헌금의 행위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2 부자의 풍성한 헌금과 달리,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동전을 모두 하나님께 드린 이 여인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형편에 따라 섬기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재정이 넉넉할 때는 좀 더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에서는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하지만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최선으로 드릴 때 기쁘게 받아 주시고 칭찬하신다. 어려운 시간을 지날 때 우리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위축되곤 한다. 그러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인정해 주심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자. 주님, 내가 드리는 헌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며 나의 드림이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의 최선의 표현이 되게 하소서.

2022.3.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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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0.3.12 (토) 눅20:27-39 사두개파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을 찾아와 부활에 관해 질문을 했다. 부활을 믿지 않은 이들이기에 부활이라는 개념의 허점을 밝히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잘못된 주장은 예수님의 논증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다.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줄까? 1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부활이 확실히 있음을 가르쳐 주신다. 율법대로 (신25장) 살던 사람들이 부활 후에 큰 혼란에 빠질 것으로 생각하고는 부활 자체가 잘못된 개념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주님은 모세 오경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신 사실을 언급했다. 하나님이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기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사실임을 입증하신 것이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2 사두개파 사람들은 현재의 삶과 부활 후의 삶을 동일하게 보는 오류에 빠졌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부활 후에는 더 이상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더 이상 질병과 죽음이 없는 영생의 몸으로 변화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현재의 모습과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부활 수에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그 어떤 위협 가운데서도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용기 있게 하나님에 순종하면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부활 가운데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발걸음을 평가하시고 그에 합당한 위로를 주실 것이다. 주님, 부활의 약속이 현재의 고난도 얼마든지 이기게 하는 힘이 됨을 알아 더욱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3.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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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1 (금) 눅20:20-26 재물을 우리에게 주심은 우리의 탐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물었다. 이 질문에 숨겨진 위선적인 죄를 들추신 예수님의 대답의 핵심이 뭘까? 1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세금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세금을 반대한다면 로마법에 걸리게 되고, 반대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예수님을 영적 지도자로 따르는 무리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 있었다. 이런 곤란한 질문 앞에 주님은 먼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말씀하신다. 이 질문은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들춰내게 되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여기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만들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자신을 우상화하는 가이사의 동전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라고 하신다. 일상에서 가이사를 신격화한 돈을 몸에 지니면서도 전혀 거부감 없이 사는 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것이다. 2 또 예수님은 다른 도전의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데 사용해야 할 재물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는 너무나도 인색한 모습을 지적하신 것이다. 당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천국 백성은 주께 받은 것을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둑질이기 때문이다(말3:8). 말라기 선지자는 온전한 십일조를 내어 하나님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가진 시간, 재물, 건강,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주님, 세상이 유혹하는 물질에 대한 욕심과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돈을 지배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2022.3.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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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0 (목) 눅20:9-19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드러내시면서, 이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이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며,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1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소작으로 일하도록 하고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 수확기가 되어 농부들에게 종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중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자기 외아들을 보냈다. 농부들이 종중하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해버렸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제시하신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하나님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지 알려 주신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에 합당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2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한 악한 자들을 몰살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죽이기까지 한 이스라엘 백성, 특히 그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제자들과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어 포도원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회개의 기회가 아직 주어졌을 때, 죄와 불순종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영접하는 자들은 죄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주님, 주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3.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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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9 (수) 눅20:1-8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권위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질문한다.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단지 함정에 빠뜨리려는 악의적 질문에 불과했다. 1 예수님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말씀을 가르치는지를 종교지도자들이 묻는다. 자신들이 인정할 만한 어떤 훈련 과정도 거치지 않은 무자격자라는 편견이 깔려 있는 질문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부여하신 능력과 권위가 있었다. 영적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보았다. 하지만 교만한 자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인간적 판단 기준이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 것이다.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에 군중들의 눈치를 보느라 종교지도자들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주변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다. 2 신적 권위를 갖고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반면 백성들을 섬기도록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데 사용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세례 요한이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떠올리도록 도전하셨다. 이들은 회개를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음에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예수님을 없애려는 음모를 꾸몄다. 완악한 자들에게 남은 것은 엄한 징계와 심판뿐이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우린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권해야 한다. 주님, 주님의 권위를 보여주는 길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인 것을 깨닫고 입술이 아닌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3.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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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8 (화) 눅19:41-48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그 성과 성전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고 놀랄 만한 행동을 보이신다.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1 예수님은 ‘평화의 도성’이란 뜻을 가진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다. 평화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에 슬퍼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예수님을 통해 여셨는데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이다. 43-44절은 일차적으로 예루살ㄹ메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는 사건을 예언하신 것이다(A.D.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게 예루살렘이 단 사흘 만에 점령당하고 파괴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예루살렘은 이름뿐인 평화의 마을이 된 것이다. 2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시자, 그곳에는 장사하는 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성전은 거룩한 장소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서 평화를 회복하는 장소다. 그래서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장사치들을 내 쫓으신 것이다. 교회는 예배와 섬김과 나눔보다 세속적인 욕망으로 혼탁해 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께 집중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면 교회 안의 평화는 깨어질 수밖에 없다. 3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제사장들의 세력인 세두개파 사람들과 결탁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장사사치들을 내쫓으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예수님이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옳은 말씀만 하시니 대놓고 거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했다면, 말씀 따라 정직하게 행했다면, 예수님께서 이들을 몰아내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분노와 증오심만으로 가득하면 평강에서 더더욱 멀러질 수 밖에 없다. 주여, 내 욕심과 교만 때문에 참된 샬롬이 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하소서!

2022.3.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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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7 (월) 눅19:28-40 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화려하고 장엄한 행렬도 없이 예수님은 작은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왕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무리들과, 또한 순종으로 주를 섬겼던 자들의 모습이 본문에 등장한다.     1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길거리에 매여 있던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하셨다. 말씀에 순종하여 나귀 새끼를 발견하고 풀어 끌고 가려고 할 때, 나귀 주인들이 어째서 남의 나귀를 끌고 가려 하는지 물었다. 주님이 일러주신 대로 ‘주께서 필요로 하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주인들이 허락했다. 이런 일을 시키신 주님이나 주님의 말씀이나,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한 제자들과 나귀 주인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묵묵히 순종한 귀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순종과 많이 달라 보인다. 순종은 이처럼 아름답다. 예수님을 이들 모두 주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심을 행동으로 고백한 것이다. 사실 순종은 참 어렵다. 나를 죽이고,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 어찌 쉬울까? 그래서 순종의 은혜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은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신 말씀에 그 어떤 ‘토’도 달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고 있는가? 2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 역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모습이기도 하다(슥9:9).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지만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그 길을 가셨다. 많은 군중들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께 고백하며 찬양한다. 하지만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우리의 찬양이 얼마나 쉽게 원망과 불평으로 쉽게 변하던가? 고난이야말로 예수님을 찬양하는 우리 마음 속 깊은 동기를 드러내는 시금석이 됨을 명심하자.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의 왕으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알아,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고백하며 매 순간을 살아가

2022.3.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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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5 (토) 눅19:1-10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표현한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예수님께 인정받은 삭개오의 믿음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1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삭개오는 커다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자신의 신분도 무시하고 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보려고 했다. 예수님이 그를 발견하고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바로 순종하고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다. 예수님의  놀라운 자비를 경험한 삭개오는 예수님을 극진히 영접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1:12). 2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된 삭개오는 자신의 죄를 바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돌이키는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예수님께 보여드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사람들에게 빼앗은 것을 네 배로 보상하겠다고 약속한다. 자신의 믿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그가 구원받은 자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다면 삶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절대로 입술의 고백에 그쳐선 안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기 때문이다(약2:17). 삶이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하자. 그리고 그 결단을 곧바로 실천하자. 주님,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가려는 부단한 성화의 노력을 통해 나를 이미 구원해 주심을 날마다 믿음으로 증거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3.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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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4 (금) 눅18:31-43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은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은 맹인은 예수님께 간청하여 눈을 뜨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  맹인의 어떤 태도를 보시고 은혜를 베푸셨을까? 1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지나가실 때 길가에서 구걸하던 소경이 큰 소리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다. 이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고 간청한 것이다. 이 분을 만나면 자신의 비참한 상황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맹인의 믿음의 고백을 보시고 그의 눈을 고쳐주셨다. 이 사람은 단순하지만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것을 알아보셨다. 많은 사람의 무시와 협박(?)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예수님이 이러한 맹인의 믿음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당신의 세상의 빛을 주기 위해 오신 구세주이심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이렇게 담대하고 고백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2 맹인이 예수님을 부를 때 사람들은 불쾌해하며 그를 꾸짖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찾으실 때까지 오히려 더 크게 외쳤다. 맹인에게는 눈을 뜨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였기에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린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외침을 들이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더 크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믿은 수많은 반대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다. 그 어떤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도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고 집요하게 간구할 때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를 만난다. 끈질기게 기도하자.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자.  들어주실 때까지!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셔서 조금만 더 기도로 버티게 하소서!

2022.3.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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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3 (목) 눅18:18-30 한 사람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이 부자의 질문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관심을 갖고 살펴보아야 할 중대한 주제다. 주님은 영생을 받는 자와 그러지 못한 자를 대조해 답해 주셨다. 1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지도급의 사람이다. 영생을 얻을 방법을 질문했다. 율법에 기초해 답을 주셨더니 그는 자부심을 갖고 어렸을 때부터 계명들을 지켜 왔다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가 가진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그 다음 당신을 따르라고 명하셨다. 그는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소유를 포기하지 영원히 누릴 그런 영생을 얻기를 원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며 가난한 이웃을 돌보라는 말씀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영생은 도덕적 행위의 수준을 뛰어 넘는다. 영원을 소망한다면 이 땅의 모든 것을 영원을 위해 모두 낭비하듯 쓸 수 있어야 한다. 2 부자 지도자와 예수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자들은 궁금증이 생겼다. ‘부자도 들어가기 어렵다면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유대에선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따르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다.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는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영생에 맞춰 사는 것을 뜻한다. 돈과 윤리 도덕을 의지하며 살았던 삶의 수준을 넘어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야 한다. 주님, 어떤 도적적 선행이 아닌 전적인 은혜로 영생을 선물로 얻음을 삶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영생을 소유한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3.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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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2 (수) 눅18:9-17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지’를 살펴보자. 1 바리새인은 기도를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에 대한 감사나 찬양이 아니었다. 자신이 행한 기도와 금식 그리고 십일조 같은 행위들을 자랑하고 스스로를 타인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종교적으로 엄격하고 경건하게 사록 있다는 자만심에 가득 찬 모습만 보였다. 우리 안에서도 바리새인적인 교만함은 쉽게 발견될 수 있다. 다른 지체들과 비교하면서 우월의식에 빠지기 쉽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다. 우리가 스스로 높일 때 결국 하나님께 거절당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2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대조되는 세리의 기도를 들려주신다. 그는 자신의 불결한 상황을 인식하며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자신이 없어 가심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도 비교하지 않았다. 이런 겸손한 기도를 하나님은 인정해 주셨다.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마음이다(잠28;13).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거나 변명하지 않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조차 겸손히 낮아지기를 싫어하 교만이 우리 모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태도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태도다. 주님,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며 늘 겸손히 살아가게 하소서!

2022.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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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3.1 (화) 눅18:1-8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사람의 특징은 믿음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이다. 재림의 시기를  그 기다림 속에서 기도로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도해야 하나? 1 의지할 곳 없는 한 과부 이야기를 통해 지속적, 끈질긴 기도의 필요성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거듭되는 재판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과부는 계속 그를 찾아감으로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차가운 세상에서 성도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에 실현되길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2 계속되는 거절에 여인은 마음으로 재판관을 심히 원망했을 것이다. 우리가 계속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거나 거절당하는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공의도 더디고 세상도 변하지 않는 것 같고, 계속해서 기도하지만 어려움은 가중된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관과 전혀 다른 분이심을 믿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주님이 기대하시는 단단한 믿음으로 무장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날마다 주 앞에 나아가는 끈질김을 허락하소서!

2022.2.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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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8 (월) 눅17:20-37 사람들은 종말을 두려워하고 말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성도는 종말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이 어떻게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1 종말은 노아의 홍수 때나 소돔이 멸망할 때처럼 사람들이 그 일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 역시 그러할 것이다. 십자가 사건으로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25).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결코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2 주님은 종말의 때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치신다. 우리는 세상 것에 미련을 가져선 안 된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된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지 세상 것을 챙기려 하다가는 버림받게 된다(31-32).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라도 내 재산, 또는 내 생명까지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3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롭게 임할 하나님 나라는 과거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종말과는 다르게 임할 것이다(34-35). 종말의 시간과 형태를 예상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재림의 장소라도 알려 달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주님은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속담으로 독수리가 모이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 장소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인지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충실하고, 지금에 자족하며,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곳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 나가며 살아야 한다. 주님, 매순간 주님의 재림과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임을 잊지 말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