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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February, 2022

2022.02.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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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6 (토) 눅16:19-31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세상에서 부유해지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는 증거로 생각했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었다(14).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진정 무엇을 원하시는지 가르치셨다. 1 두 극단에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날마다 호화롭게 증기는 부자와, 그데 비해 헌데투성이인 거지가 그 대문 앞에 있다. 피부병은 그 자체로 부정했고, 상에서 떨어지는 것 또한 부정한 음식이며, 부정한 동물인 개들이 그 헌데를 핥았으니 경제적, 종교적으로 최악의 상태다. 그런데 부자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았는데, 거지의 이름이 나사로로 언급된다. 세상에서 사치하고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완전히 다르다. 2 두 사람이 죽은 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생전에 부자가 한 것은 그저 사치하며 자기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하셨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판단 기준이 된다. 하나님이 없이 아무리 성공하고 잘살아도 그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3 부자는 나사로를 다시 땅으로 보내 자기 형제들에게 증언해서 그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겐 성경이 있으며, 성경을 믿지 않으면 그 어떤 기적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세속적 번영과 같이 여겨선 안된다. 말씀의 가르침을 비웃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께서 허락하신 환경과 재물을 청지기인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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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5 (금) 눅16:1-18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아는 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악인이라도 이렇게 행동하거늘 의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행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가르침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신다. 1 제자들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비유에 불의한 청지기가 등장한다.  자신의 불의가 드러나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자 생계를 위해 머리를 쓴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줄여 줌으로써 이들에게 ‘은인’이 되는 방법을 쓴다 (5-7). 그의 이런 행동이 그의 생존을 위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데 비유의 초점이 있다. 돈 문에 있어 세속적인 사람들이 더 밝다. 불신자들도 자신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이 좋은지 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은 그 자체로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상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2 예수님은 재물을 바로 사용하는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이며, 이런 일에 충성해야 하나님 나라의 큰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재물을 ‘남의 것’이라고 부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재물을 맡은 청지기란 사실을 깨우쳐 주신다. 하나님을 섬길 때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기억해야 한다.  땅의 재물로 천국을 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롭고 신실한 청지기로서 재물의 유혹을 이기고 정직하고 바르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이 땅에 사는 기간이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임을 알아, 땅의 재물이 천국에 쌓일 보물이 되도록 재물의 유혹을 이기고 주의 뜻 안에서 합당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있게 하소서!

2022.02.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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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큐티는 없습니다.  2022.2.24 (목) 눅15:11-32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1 아버지에게 자시 몫의 유산을 받아 허랑방탕한 생활로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는 타락한 죄인을 비유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다. 그를 다시 아들로 대우하고 잔치를 벌인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길 원하신다(벧후3:9). 2 돌아온 둘째 아들을 기쁨으로 맞이한 아버지와는 달리 첫째 아들은 불만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는데 자신은 아버지 곁에서 충성스럽게 일만하고 한번도 잔치를 열어 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잔치를 열어 준 것에 대해 분노했다.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만약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집 나간 동생을 찾아 나서야 했다. 전도와 영혼 구원에 큰 관심 없이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과 같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3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통해 잘 나타난다.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마28:19-20). 우리의 모든 봉사와 헌신 역시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바쁘게 수고한다해도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져 영혼 구원에 무관심하다면 하나님께 진정한 충성과 헌신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주님, 내 나름대로의 충성과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2022.02.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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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큐티은 없습니다.  2022.2.23 (수) 눅15:1-10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한다. 1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가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주님은 하셨다. 남은 99마리도 중요하지만 애정의 대상인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주님이 이 비유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 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회개한 세리와 죄인들이 스스로 의인이라고 주장하며 회개치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귀함을 교훈하신다. 2 여인이 열 드라크마 주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려 열심히 찾은 후 사람들을 불러 축하하며 즐긴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당시 드라크마 열 개는 줄에 꿰어 여인에게 결혼 지참금 형식으로 남자가 주는 것이기에 여인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쁨이 됨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주님, 저희도 그랬듯이 이제 잃어버림을 당한 또 다른 사람들을 찾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녀들로 매일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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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큐티는 없습니다.  2022.2.22 (화) 눅14:25-35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우선순위를 바로 세울 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미워하고 사랑할 것인지 깊이 헤아려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명하신다. 1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제일 소중히 여기는데, 이런 소중한 대상을 미워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감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를 언급하신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의미가 그렇듯이 야곱을 선택하셨음을 뜻하는 것과 동일하다 (말1:2-3). 주님과 가족, 주님과 자신의 목숨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을 때 주님을 선택하는 자만이 제자로서 합당하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 없음을 삶으로 증명하면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 2 건축을 하려면 먼저 전체 비용을 계산하고 계획을 세운 후 공사를 시작한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후회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테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잠깐 머무는 이 땅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혜로운 선택이다. 세상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제자의 삶을 매일 살아가자. 주님, 세상이 비록 우리를 비합리적으로 볼지라도 말씀의 진리에 바탕을 둔 우선순위로 영원한 것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2.02.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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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1 (월) 눅14:15-24 살면서 누구나 특별한 기회가 몇 번 찾아온다고들 말한다. 그 기회를 놓치느냐 잡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영원한 나라의 초대장이다. 초대에 응하면 영생을 얻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1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한 상황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현실 문제들 때문에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이 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눅9:59-60). 구원의 초대를 거부하면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 성도라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일이 최우선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초대받은 자들이 참여를 거부하자 주인은 종들에게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 아픈 자, 장애우들을 데려오라 명하신다. 그래도 빈자리가 있자, 산과 길과 울타리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고 명하셨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므로 이방 민족을 구원으로 초대하신 구속의 역사를 묘사한 것이다. 이 일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선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성취된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 없이 구원의 은혜에 동참하게 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며, 아직도 구원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해 그들도 천국 잔치에 참여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 우리가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이에 만족하지 말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자리를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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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9 (토) 눅13:22-35 누구든지 평탄하고 넓은 인생길로 가길 원한다.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은 어떤 것인지를 전한다. 입으로 분명 ‘믿습니다’를 되뇌는 것과 상관이 없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1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적으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다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다고 가르치신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단지 함께 먹고 마시며 길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자들의 무리 속에 끼여 있었다는 이유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들을 오히려 ‘불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아’라고 부르시며 이들을 아예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걸어갈 때에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2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유대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은 정치적 권세를 가진 자들과 연줄이 닿아 있었으니, 당연히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고고한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기득권자들과 내통하며 이익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헤롯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역을 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아신 주님이시지만, 오히려 예루살렘이 버림받을 것을 말씀하시며 탄식하신다. 오래전부터 예루살렘, 곧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부르셨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구원받은 유대+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통해 나타난다. 주님,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하나님 나라를 믿고, 이 세상 것에 붙잡혀 살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22.02.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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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8 (금) 눅13:10-21 율법의 정신은 무시하고 겉모습만 따라가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세우시는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다. 1 예수님은 안식일에 귀신 들여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쳐주셨다. 그런데 회당장은 화를 낸다. 안식일에는 오직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보고 교제하는, 과거로부터 늘 유지해 오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생각뿐이었다.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낸 표적을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과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오늘날도 얼마든지 율법적으로 빠질 수 있다. 2 정작 신앙은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신실한 척하는 자들을 주님은 ‘위선자들’이라고 꾸짖으셨다. 이들에게 말씀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지키고, 남들에게 일어나는 은혜는 못 참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에 나타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한 것을 보면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힘들어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죄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우리를 자유롭게 하길 기뻐하신다. 3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시 유대인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영토와 왕궁과 군대, 법과 제도를 가진 국가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작게 시작하는 한 알의 겨자씨 같고 자라 많은 새들에게 그늘이 되고, 밀가루를 부풀려서 누룩처럼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내재된 생명력이다. 우리도 껍데기 말고, 내재된 생명력에 집중해야 한다. 주님, 기존의 선입견으로 교회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자게 되게 하소서!

2022.02.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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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7 (목) 눅13:1-9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심판을 받게 되는데,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 바로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어도 회개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회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1 몇몇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죽임 당하고 그 피를 빌라도가 제물에 섞은 사건이 그들이 죄가 많아서인지 궁금해서 예수님께 물었다. 당시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진노의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죄를 회개치 않는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을 경고하신다. 누구나 당하는 육체의 죽음 보다 영원한 징벌을 받는 둘째 사망이 더 중요하다 (계20:14). 그래서 누구든지 회개치 않는 자는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2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주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3년을 기다려도 열매가 없는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주인은 말한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3:9)는 말씀과 동일하다. 우리는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하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회개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겠다. 주님, 내가 회개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며 회개의 복음을 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2022.02.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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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6 (수) 눅12:49-59 우리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이 곧 올 것을 믿지만, 주님의 재림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재림이나 종말이 멀리 있다고 여기며 안일하게 살아선 안 됨을 강하게 경고한다. 1 예수님은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시기가 임박했음을 ‘불’과 ‘세례’에 비유하신다. 복음이 선포되고 심판이 선포되면 세상은 복음을 따르는 자와 거부하는 자로 나뉘어 분쟁이 일어난다(미7:6 성취). 싸움이 없을 때는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누구든 자신이 맡은 임무를 감당해야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영적 전투 중에 있다. 주의 때가 가까웠으므로 매 순간 긴박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무가치하게 보내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2 사람들은 일기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예측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시대를 분별하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 주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갖지 않도록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미7:1-6). 재판장 앞에 가서 선고를 받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에 사람들이 그 전에 최선을 다해 화해하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빚진) 문제를 빨리 회개하고 해결하라고 권면하신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날마다 우리도 자신을 살피고 정결한 주의 자녀로 살며 하나님 나라를 구애햐 한다. 주님,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그냥 지나가다가 너무 지체되어 나의 삶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나를 돌아보고 영적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소서!

2022.02.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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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2022.2.15 (화) 눅12:35-48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런 제자의 섬김과 헌신이 매일의 삶에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시는 본문이다. 1 제자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맡겨진 직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된다. 언제든지 주인이 올 때를 준비한 종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성도는 어쩌다 한 번 그렇게 순종하거나 나중에 순종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 주의 때를 모르기에 언제든지 성실하게 순종해야 한다. 2 예수님은 재림을 도둑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신다. 하나님의 심판도 언제 임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다(마24:36). 때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그때에 맞춰 준비하면 된다는 나쁜 생각이다. 우리는 매일을 마지막 때처럼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항상 준비되어 있는 모습이다. 3 주인의 다른 일꾼들을 돌봐야 할 중요한 임무를 받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주인은 그를 신뢰해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예상치 못한 때 돌아온 주인에게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불순종하면 더 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늘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주님,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마 오늘’이란 생각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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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4 (월) 눅12:22-34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것을 가르치셨다. 1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대부분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런데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공급만 믿고 가만이 있는다는 말은 아니다. 새들도 열심히 먹이를 구한다. 그렇지만 먹이가 없을까 걱정하고 염려하진 않는다. 우리의 염려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염려 대신 하나님이 공급하시리라는 약속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공급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을 선택하자. 2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아간다. 즉 남라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힘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갖고 다르 사람들을 돌보며 선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행위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이라 하신다. 이웃 사랑은 말로만 하지 말고 나눔을 통한 진실한 행위로 해야 한다(요일3:18).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녀들을 하나님은 돌보시고 필요한 것들을 풍성히 채워 주신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을 회피하지 않으면 나눔을 통해 얻는 기쁨을 축복으로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주님, 우리의 공급자 되신 주를 신뢰함으로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오병이어의 인생이 되게 하소서!

2022.02.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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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2 (토) 눅12:1-1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진짜로 있으면 위선적인 신앙을 혐오할 수 밖에 없다. 겉과 속이 다른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의 욕심대로 행했던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이었다. 이에 주님은 그런 위선을 통렬히 비판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위선적 종교인이 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하셨다. 왜 외식하는 죄를 특별히 경계시키셨을까? 1 위선적인 신앙은 언젠가 낱낱이 다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창조주시며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그 어던 행위도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감춰진 모든 것이 드러날 심판의 날을 기뻐할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서는 비록 초라하고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참된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에 숨겨진 나의 동기를 살피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우리가 바리새인같이 외식적인 신앙을 주의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선적인 신앙에 빠지는 이유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외식과 탐욕을 지적하시자 예수님을 향해 적의를 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과 탐욕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목숨 뿐 아니라 영혼도 지옥에 던지신다. 성도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역외해야 할 유일한 분은 모든 것을 아시며 공의로 판단하실 하나님뿐이시다. 언젠가 하나님이 당신만을 의식하며 선한 삶을 살아 온 우리를 인정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살아가자. 신실하게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끝까지 지키고 돌봐 주실 것이다!  주여, 언젠가 숨겨진 죄악들을 들추시고 벌하실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복음 전도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게

2022.02.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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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1 (금) 눅11:37-54 예수님 당신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선입관과 잘못된 마음으로 예수님의 행동을 판단하고 공격했다.  예수님은 이들의 잘못된 행위와 부정적 태도를 책망하셨다. 1  식사에서 예수님이 율법의 방식대로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종교지도자들은 비난했다. 이에 예수님은 이들의 종교적 예민함을 보시고 오히려 마음의 참된 정결함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을 책망하셨다.  그들 속에 있는 탐욕과 악함과 위선을 보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탐욕을 채운 것이다.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를 자랑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의 화려함을 보면 어느새 세속적 탐욕이 우리 마음을 훔쳐갈 것이다. 세상 욕심이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 사랑이 나보다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삶도 같이 가야 한다. 2 예수님은 계속 종교 지도자들의 다른 죄를 지적하신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종교적 규율들을 엄하게 요구함으로 커다란 부담을 주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많은 규정만 만들 뿐, 지켜야 할 의무감을 전혀 가지지 않은 것을 주님이 책망하신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고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예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지킴’으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 세상의 욕심으로 채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겉모습에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고, 이웃을 향한 진정한 사랑으로 우리의 내면이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2022.02.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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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0 (목) 눅11:29-36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의심과 적대감으로 반응했다.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는 회개와 순종이다. 1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표적을 요구했다. 주님은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지적하셨다.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마12:40)밖에 없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9:22)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요나의 표적에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고, 솔로몬의 지혜에 남방 여왕이 여호와를 송축했다(왕상10:9). 최후심판날에 이들이 회개치 않은 유대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성령께서 일깨우셔서 우리가 믿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자. 2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과 사역이 등불처럼 모든 사람 앞에 밝히 드러났다고 말씀하신다. 빛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빛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여전히 어둠 가운데  거하며,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도 복음의 빛은 누구에게나 밝히 비치고 있다. 건강한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삶이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 주님, 믿음 주심을 감사하며, 나의 믿음이 깨달음에서 그치지 않고 삶에서 구체적 순종으로 나타나도록 노력하게 하소서

2022.02.0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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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9 (수) 눅11:14-28 귀신 들려 말못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치유해주시자 주변에서 이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어떤 사람은 사탄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켰다고 비난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할 목적으로 다른 표적을 더 보이라고 요구한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1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악의를 품고 사탄의 힘으로 귀신들을 쫓아냈다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에 예수님은 사탄이 귀신을 내어 쫓는다면 스스로 멸망하는 일이 아니겠냐고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또 다른 가능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선포하신다. 즉 주님의 이 기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택을 촉구하신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다.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소망하며 매순간을 살아야겠다. 2 예수님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통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욕망과 이기심이라는 죄 가운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 단순히 말씀에 수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내 삶의 구체적 영역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힘을 다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복이 있다고 인정하셨다. 내 삶에 구체적인 순종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성도는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 아직도 주변에 주님을 믿지 못하여 여전히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많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게 하소서!

2022.02.0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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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8 (화) 눅11:1-13 예수님이 주신 기도에 관한 교훈은 하나님과 긴밀하게 대화하길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간절히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돌보시는 아버지란 사실을 믿는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신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개인의 삶과 열방에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남의 용서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모든 나라에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며,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안위나 형통함을 구하지 말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해야 한다. 2 한밤중에 찾아온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예로 드시면서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야 함을 가르치신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에서 간절함과 절박함을 본다. 우리가 너무나 간절하면 요청을 들어줄 때까지 간청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기도가 이러한 절박한 마음과 태도에서 출발하기를 예수님은 원하신다. 응답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기도할 때 우리는 어떤 방해에도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런 간절함으로 채워진다면 더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님, 나의 기도가 단지 필요한 것을 구하는 수준을 넘어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의 지경이 넓어지게 하소서!

2022.02.0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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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7 (월)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법에 대해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 대한 의미를 더욱 확실히 말씀해 주신다. 1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질문을 받고, 주님은 율법학자가 붙들고 있는 율법이 어떻게 말하는지 되물으신다. 그는 신6:5;레19:18로 대답했다. 그는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는 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이웃에게 도무지 사랑을 베풀 능력이 없는 우리 인간에게 이는 너무나 공허하고 의미 없는 답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이웃이 되셔서 영생을 얻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2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율법학자에게 직접 답을 주지 않고 비유로 말씀하신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당한 자를 불쌍히 여겨 선을 베풀었다.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이웃이 된다는 사실을 율법학자는 인정한다. 율법의 기준에 따라 이웃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을 베풀 때 그 대상은 우리의 이웃이 됨을 말씀하신다. 십자가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참된 이웃이 되어 주시는 길이다. 우리 역시 주님의 뒤를 따라 많은 사람에게 이웃이 도어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예수님 일행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머물 때 마르다는 예수님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동생 마리아는 그냥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앉아만 있었다. 동생이 못마땅한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기를 도우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청했다. 여기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저 당신의 일을 맡아 할 일꾼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주의 말씀을 듣고 주와 동행할 사람들로 부르셨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택한 사람은 가장 좋은 것을 택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과 교제하며 주의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베푸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2022.02.0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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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2.5 (토) 눅10:1-16 더 많은 지역에 주님은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신다. 9장에서 12명의 사도들을 파송할 때보다 더 시급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십자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주님은 지금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은 상황임을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마치 이리 떼 가운데 나아가는 어린양과 같이 연약한 모습으로 파송되고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의지하며 사역을 감당하도록 명령하신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연합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맡겨진 사역을 함께 이뤄 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의지한다면 능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 2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닐 때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경우 인간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발에 먼지를 떨고 그냥 떠나면 되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갈릴리 인근의 고라신, 벳새다를 책망하시면서, 복음을 듣고 돌아올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가버나움 역시 예수님의 권능을 직접 체험하고도 교만함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을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다가 거부당해도 위축되거나 주저할지 말고 담대히 맡기신 사명만 감당하면 된다.  주님, 세상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귀한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잘 감당케 하소서!

2022.02.0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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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2.4 . (금) 눅9:51-62 제자로 헌신한 자에게는 새로운 결심과 각오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삶의 가치관과 태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기대와 달리 과거에 보였던 옛 습관과 삶의 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본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버려야 할 옛 습관들은 무엇일까? 1 북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야 했다. 숙소를 준비하기 위해 제자들을 먼저 보내시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들을 반가지 않는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있는 적대감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를 접하고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마을을 심판하자고 예수님께 말했다. 이들을 꾸지람하신 것은 사마리아에 대한 이들의 요청은 섬김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반대하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사랑으로 전해야 했던 제자도를 잊었기 때문이다. 우리이 성품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2 제자로 살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한다. 여행 중 어떤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는데,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에 앞서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신다. 이 말씀은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늦추는 어떤 변명도 허락지 않으신 것이다. 제자로서의 사명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임을 기억하자.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으니 복음 저파의 사명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며 살아야겠다. 주님, 과거로부터 익혀 온 옛 성품과 삶의 모습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제대로 반영하며, 삶의 우선순위가 바른 제자의 삶을 이어가게 하소서!

2022.02.0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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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2.3 . (목) 눅9:37-50 십자가의 길을 위해 모든 가르침을 십자가에 집중하시는 주님과 여전히 이적을 베풀어 주시길 바라는 사람들과, 십자가의 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 1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한 사람이 외아들이 귀신에 붙들려 있다고 호소하면서 구해 주시길 궁했다. 제자들에게 요청했지만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라고 책망하신 것도 제자들이 속히 믿음 안에 든든히 서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기적 후 다시금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우리 앞에 주어진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야 한다. 2 주님은 계속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크냐는 주제를 두고 서로 다투고 있다. 어린아이를 통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가 큰 자가 되는 진리를 가르치셨다. 주를 뒤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은 가장 작은 자의 삶이다. 세상은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성도는 천국에서 가장 큰 자다. 이 세상에서 누가 큰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3 제자들은 특권의식과 우월감에 가득 차 있었다. 예수님을 이용해 세상에서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허락 없이 사용해 귀신을 내쫓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금하지 말라고 하신다. 복음은 단순히 특권을 가진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든 믿는 자가 가지게 되는 능력이다. 예수님을 통한 모든 사역이 함께 모여 결국 그리스도의 사역이 됨을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는 남들보다 높아지려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특권의 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주여,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기 보단, 주께서 앞서 보이신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지신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게 하소서!

2022.02.0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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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2.2 (수) 눅9:18-36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제자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그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을 통해 주께서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이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말하는지 물으셨다. 이에 제자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정확히 알지 못한 대답들을 했다. 이때 베드로는 ‘주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했다. 즉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고백이다. 성도와 교회는 이 신앙의 고백 위에 세워졌다. 2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주님은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실지 밝히 드러내신다.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사흘째 살아나실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처음으로 주의 길을 밝히 말씀하셨다. 또한 제자의 삶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삶임을 밝히셨다. 주를 따라 십자가 앞에 생명을 내어놓으면 목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3 예수님의 메시아되심을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드러내신다. 이 놀라운 모습을 제자들은 졸다가 목격하게 된 영광에 놀라 그곳에 초막을 짓고 머무르자고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의 성취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영광 이전에 십자가의 길이 우리 앞에 있음을 기억하고 인내해야한다. 주님, 제자로서 사는 것이 각장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의 영광을 기다리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2022.02.0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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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2.1 . (화) 눅9:1-17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을 맡기셨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1 주님은 세우신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과 권세도 주셨다. 이는 주님이 가지신 능력과 권세였다. 이로써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죄의 결과로 신음하는 이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된다.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자기 욕심이 아닌 말씀에 순종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이다. 성도는 돈이나 사람이나 다른 것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능력만이 우리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 2제자들이 돌아와 주님이 주신 능력과 권위로 어떤 일을 했는지 보고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가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 처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했다. 그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주님은 그 양식으로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고 나서도 우리의 믿음은 온전치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매 순간 주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님, 삶 속에서 주의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도 주를 향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로 늘 나아가게 하소서!

2022.01.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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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31 (월) 눅8:40-56 오늘날도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신다. 믿는 자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성도들 역시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1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을 때 병이 즉시 떠나갔다.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자신에게 손을 댄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자,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고 병이 나았음을 고백했다. 이 여인은 마음 속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대로 행동했다. 우린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믿음이 없기에 아무런 실천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더 큰 믿음을 구해야 한다. 2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의 병을 치유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슴하셨다. 육신의 병을 치유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야이로의 딸이 거의 죽게 되어서 예수님을 모셔 왔을 때 야이로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리심으로 주님은 죽은 자가 믿음으로 살아나는 역사를 보여 주신다.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는 담대한 믿음은 날마다 구하며 주의 능력을 덧입어 천국에서 누릴 행복과 평강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자. 주님,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전파하며 죽은 영혼을 살리는 기적과 역사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자들로 계속 쓰임 받게 하소서!

2022.01.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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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9 (토) 눅8:19-25 신앙의 성숙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예수님을 가까이하고 그분과 동행해야 한다. 1 세상에서 가족보다 가까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대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을 때 가족들이 찾아왔다(19-20). 이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곧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데 혈통과 같은 조건은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몇 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집안에 목사가 몇 명이고 장로가 몇 명이다 등은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2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났다. 제자들은 풍랑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웠는데,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잠잠케 하시고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질책하신다. 예수님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데도 믿음이 없다는 질책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과 가까이 있다고 해서, 한 배를 탔다고 해서 합당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예배당에 오간다는 이유로 주님을 가짜이 모시고 있고, 참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자긍해선 안 된다. 주님이 베푸신 구원과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영적 교만이라 할 수 있다. 내 안에 진정한 믿음이 있는지를 늘 점검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구원의 확신’과 ‘영적 교만’을 구분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어떤 상황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2022.01.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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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8 (금) 눅8:1-18 복음은 사탄으로부터 강한 핍박을 통해 말살 당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복음은 핍박받을 수록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 왔다. 말씀 속에서 복음의 생명력과 힘을 깨닫고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1 누가는 당시의 사회적 장벽, 인종적인 장벽, 사회 제도적인 장벽까지 복음에 의해 무너진 사실을 기록한다(1-3). 사탄은 복음이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한다. 길가, 바위 위,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의 씨앗에 대해 거부하는 경우를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것이다. 사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말씀의 씨앗이 열매 맺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성도는 말씀을 받을 때  어떤 방법으로든 그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도록 사탄이 방해하는 영적 싸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을 결실하려면 인내가 필요함을 알아, 사탄의 방해와 세상의 도전에 넘어지지 말고 말씀을 지켜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살아가야 한다. 2 말씀을 끝까지 지켜 결실을 맺을 때 성도의 선한 행실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도 세상 사람들은 말씀에 순종하고 행하는 성도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래서 주님은 성도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마5:16). 말씀의 열매를 맺어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의 도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굴하지 말고 승리의 확신 가운데 계속해서 복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주님, 가진 줄로 생각했다고 있는 것조차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말씀으로 바로 서있도록 마음을 도와주소서!

2022.01.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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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7 (목) 눅7:36-50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셨던 것이 외식적인 신앙이었다. 상한 심렴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용서받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배운다. 1 저녁 식사 시간에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여인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회개의 표시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시51:17). 예수님은 시몬에게 빚을 탕감 받을 때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적게 탕감 받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은혜를 입은 원리를 예수님은 설명하신다. 이 원리는 여인의 죄가 다른 사람보다 많다기 보다는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여기고 회개하는 마음이 크다는 뜻이다. 2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고 선언하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속으로 ‘이 사람이 뭐라고 죄 사함을 선언하는가’라는 적대감을 품었다.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통해 예수님께 사죄의 은혜를 구했던 것이다. 성도는 오직 예수님만이 사죄의 권세가 있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처럼 주님 앞에 나와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주님, 나의 죄를 깊이 깨달아 더 많이 회개하고, 더 많이 감사하고 주를 사랑하게 하소서!

2022.01.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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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6 (수) 눅7:18-35 누가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누가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이 새 이스라엘의 왕이시란 사실이다. 1 세례 요한이 제자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당신이 오실 그분인지’를 물었다. 아마도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모습이 자신 생각했던 메시아상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시면서 동시에 많은 표적을 통해 증명하셨다(사35:5; 61:1). 2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자,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가치, 곧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역사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신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세례요한도 거부하고 예수님도 배척했다. 요한이 선민의식을 버리고 절제와 회개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도, 치유를 베푸시며 이방인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배척했다(29-30, 33-35). 자신들의 선인견과 고정관념을 기준으로 요한도 예수님도 거부한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자기중심성이다.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경향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남을 비판하다 보면 그 비판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일이 발생해도 자신의 판단 기준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기대와 맞지 않는다고 말씀을 거부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주님, 자기들의 기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배척했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고 겸손히 구원의 손길을 붙들 때 구원이 임하듯 교만한 맘을 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