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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March, 2024

2024.3.20 (수) 시5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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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3.20 (수) 시57:1-11 표제에 의하면, 이 시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래 아둘람 굴에 머물 때(삼상22), 혹은 엔게디 굴로 도망했을 때를 배경으로 한다(삼상24). 삶의 위기에서 다윗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1 다윗은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말을 반복하며 절박한 상황을 표현한다. 그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날개는 지성소 언약궤 위에 있는 그룹들의 날개를 지칭한다(1).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거룩하고 안전한 지성소 같은 장소로 자신이 숨기를 소망한다. 비록 그가 적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지의 인자와 진리로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2-3). 그는 지금 겪고 있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그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드러나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흘리는 땀과 눈물을 통해 주님을 섬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고통과 서러움을 감당하겠다는 자세야 말로 바로 거룩한 자들의 자세일 것이다. 2 사울의 위협으로부터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상24:16-21). 그는 자기 영광, 비파와 수금, 새벽을 ‘깨운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찬양도 멈춘 어두운 밤이 계속되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을 깨워서 모든 나라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선포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가? 이 터널이 계속될 것만 같은가? 하나님이 우릴 돌보시고, 그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억한다면, 우린 잠자고 있는 기쁨과 찬송과 새벽을 깨워야 한다. 주님, 내 문제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봄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적 성숙의 모습을 갖게 하소서!

2024.3.19 (화) 시2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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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3.19 (화) 시26:1-13 고통과 두려움의 한복판에서 시인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다. 하나님을 바라볼 대, 두려웠던 모든 상황은 새롭게 인식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그 말씀을 의지하는 자가 두려움을 이긴다. 1 시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한다고 토로한다 (5, 6). 그런데 이런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에서 시인의 심령은 두려움으로 함몰되지 않았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육체를 가진 자들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한다(3-4). 자신과 함께 계신 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4, 11).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산다. 사람은 혈육을 가진 존재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요, 구원자시요, 진정한 보호자시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인은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한다(4, 10).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특징이 무엇일까? 상황이 그를 지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다스리는 것이다. 보이는 여건대로 행하지 않고, 말씀에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행함을 뜻한다(고후5:7).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릴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임한다. 주님, 두려움을 맞닥뜨릴 때 일수록 더욱 주의 신실하신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게 하소서!

2024.3.18 (월) 시5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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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3.18 (월) 시55:16-23 세상에서 사람이 의지할 대상이 없으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원수들로부터 자신을 건지시고, 그들의 악에 보응하실 것을 시편기자는 확신하며 노래한다. 1 다윗은 두려움과 배신으로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온종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마음의 고통을 쏟아 놓는다. 기도는 절규나 한풀이가 아니다. 그의 기도를 분명히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전짐으로 기도하는 것이다(16).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과 행하심을 신뢰할 때 부르짖는 기도가 가능하다.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의지하여 다윗도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심을 알아 가야 한다. 2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짐을 맡겨 놓아야 한다(22).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여전히 그 짐을 지고 있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지신다. 주님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고 권면했다. 하나님을 경회하지 않고(19), 자기와 친목한 자를 오히려 배반하고(20), 겉과 속이 다른 (21) 대적들을을 상대할 대 곤란한 지경에 놓이기 쉽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갚아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백성을 친히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지 않으신다(22). 주님, 어떤 고통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구를 통해 가장 온전하고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소서!

2024.3.5 (화) 시4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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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3.5 (화) 시45:1-27 시편45편은 왕의 결혼식을 경축하는 노래이다. 결혼 예식은 하나의 영적 사건으로,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의 신부인 교회의 모습을 묘사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1왕은 백성을 정의롭게 다스리며 모든 존경과 경배를 받는 존재로, 그의 아름다움은 외면 보다, 그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은혜의 말씀에 있다(2). 또한 왕의 능력과 진리와 온유, 공의로 대적을 진멸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능력과 최후 승리, 영원한 공의의 통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존재 자체이기에 신부인 교회는 그분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2 신부는 왕후로서 지켜야 할 법도를 주의 깊게 듣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을 조언한다(10). 신부는 지금까지 개인의 신분으로 살아온 삶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왕의 사랑과 존중을 받을 수 있다(11). 이는 영적 정결함을 뜻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신분이 바뀐 존재다.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파악하고 인정함이 마땅하며, 하나님 안에서 존귀한 자의 정체성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3 신랑과 신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선조의 뒤를 이어 통치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16). 이는 교회를 통해 자라난 하나님의 영적 자녀인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되리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모든 주님의 교회는 주의 영원한 나라와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며, 차세대를 세워 가며, 하나님 나라를 이들 역시 소망하며 성장하도록 바르게 양육해야 한다. 주님, 바른 성경적 종말론적 신앙을 회복하여, 신부인 교회를 천국 혼인잔치로 이끄시기 위해 다시 오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4.3.4 (월) 시4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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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3.4 (월) 시44:9-26 시44편의 후반부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시인은 원망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믿음으로 이길 것만 같다가도 계속된 하나님의 침묵에 좌절하고 하나님께 원망의 화살을 쏘아 대기 때문이다. 침묵하시는 것같은 하나님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1 전쟁에 패배해 약탈당하고, 노예로 끌려가 조롱당하는 현실 앞에 하나님께 간구한다(9-13). ‘주께서 ~하셨습니다’란 표현으로 하나님께 따지듯 원망한다. 주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 주시는 분이다 (15-16).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이시다. 나의 좁은 믿음에서 넓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2주님을 떠나지도, 말씀을 어긴 적도 없었는데, 현실은 너무나 참혹한 고난일 때도 있다.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며 답을 찾으려 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만 들여다 봐서는 우리가 당한 고난밖에 보이지 않지만, 눈을 들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가 보인다. 넓게 펼쳐진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3 시인은 고난의 상황을 조금도 꾸미지 않고 원망을 쏟아 낸다.하나님이 주무시고 일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생각한다(23-24, 26).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원망도 잠잠히 들으신다. 아이가 부모에게 얼마든지 투정하듯, 우리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솔직히 아뢰고 원망과 분노를 비워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조변석개하는 인간이 바로 저임을 아시는 하나님, 주님의 침묵 속에도 내가 주 안에서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소서!

2024.3.2 (토) 시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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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3.2 (토) 시43:1-5 살면서 탄식하는 날들이 왜 없을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슬픔과 탄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다. 불의한 자들의 거짓으로 무고하게 화를 당하고 있던 시인은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을까? 1 시인은 불의한 자들로부터 당한 공격을 통해 하나님께 버려진 느낌을 받았음을 가감 없이 기도로 아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실 정도로 모든 사정을 잘 아신다.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나눠 주기를 기대하시고,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기도로 나아갈 때 기뻐하신다. 고통스럽고 억울한 마음을 날것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자.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과 탄식을 받아 주시고 우리의 문제에 개입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2 때로 상황이 기도했다고 바로 바뀌지 않을 때고 많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에 여전한 낙심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5). 그럼에도 하나님께 쉼 없이 기도한 결과 얻은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시인을 인도하신다는 ‘소망’이다.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면 낙심과 불안이 일어난다. 그러나 마음을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소망에 두면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주시리라는 기대가 용솟음친다. 현실을 이기지 못해 좌절감이 들 때, 기억할 것이 있다. 파도가 계속 몰아친다 해도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라는 것이다. 주께 소망을 둔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주님, 멈춤 없는 기도로 하나님과 바르게 교제함으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하고 더 바라게 하옵소서!

2024.3.1 (금) 시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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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3.1 (금) 시42:1-11 시편 2권의 첫 시편인 본문은 고라 자손의 마스길, 즉 교훈의 시다. 그들의 조상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다가 땅이 갈라져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후손들은 다윗 시대에 용사, 문지기, 성전 음악가로 귀한 사명을 감당했다. 그들이 캄캄한 밤과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삶을 역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1인간은 저마다 목마름을 갖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돈에, 어떤 이는 사랑에 목말라 한다. 이런 목마름을 채우려 평생을 노력하지만 채우지 못한다. 시인도 타는 목마름을 느꼈다. 그는 지금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2). 우리가 갈망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 하나님을 얼마나 갈망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질문이다. 주는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시다. 2 시인의 주위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는 너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 너를 버렸다’라고 조롱하는 자들이 많았다. 시인은 지금까지 절기마다 사람들을 이끌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생명이 소멸되는 듯한 고통 가운데 있다. 이때 하늘의 음성을 듣는다. ‘어찌하여 낙심하고 불안해 하느냐?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비난의 소리에서 영혼 깊은 곳에서 우릴 깨우시는 주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주의 음성에 아멘으로 화답할 때 그것은 찬양이 되고, 찬양은 힘이 된다. 3 고난의 순간에(7, 9-10) 시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했다(6).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계속 이어갔다. 기도를 내 삶의 반경에서만 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 우리는 기도의 지경을 하나님의 은혜의 반경으로 넓혀야 한다.그럴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넘치는 감사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주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주를 더욱 갈망하며,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지금 이 고난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모습으로 연단의 기간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2024.2.29 (목) 욜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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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2.29 (목) 욜3:14-21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마지막 날의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소망의 복음이다. 요엘의 예언을 통해 마지막 날의 의미를 바로 알고 말세를 바르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들이 많고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는 예언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묘사한다(14-15). 이는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용이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계12:17).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모임을 단번에 모조리 쓸어버릴 기회로 삼으신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는 것은 성경에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심판의 징조를 의미한다(마24:28). 유다자손에게 포악을 행하고 무고한 피를 흘린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면서,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한 종말의 심판도 예언하고 있다. 우리는 사탄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승리의 확신을 갖고 담대히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의 구가 되어야 한다. 2 요엘은 하나님이 대적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때 당신의 백성에게는 피난처, 산성이 되어 주실 것을 예언한다(16).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은혜의 비가 내려 당신의 백성이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실 것을 약속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대대로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영원하고 주의 백성 또한 영생을 누리게 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약속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통해 성취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 주님, 주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악한 세력에 담대히 맞서며 주의 승리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소서!

2024.2.28 (수) 욜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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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2.28 (수) 욜3:1-13 성경은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스스로 원수 갚으려 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라고 교훈한다(롬12:19). 1 요엘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복수하실 것을 예언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짓밟으며 그 땅을 나누고 노예로 삼아 팔고 사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일은 비참하고 치욕스런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하며 타락했을 때 남 유다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함으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 성전 보물들을 자신들의 우상 신전으로 옮겼다. 하나님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 대해 반드시 보복하신다. 마치 벨사살왕이 당했듯이. 하나님은 공의를 세우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구해야 한다. 2 이방 민족들이 아무리 강하게 무장하고 준비하여도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며 멸하신다(11-12).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모이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의미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는 영적 싸움을 위해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열매로 마귀의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 성령 충만함으로 영적 싸움을 담대하게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주여, 마지막 때에 원수들을 멸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사탄의 세력을 대적해 물리치게 하소서!

2024.2.27 (화) 욜2: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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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2.27 (화) 욜2:18-3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기뻐하신다(딤전2:4). 그러나 그 구원의 복은 회개하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 1 요엘 선지자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여호와께 돌아오면 모든 재앙과 징벌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적으로부터 당한 수치와 재앙을 피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아 유다는 요엘 선지자의 경고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그대로 당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칼을 가시고 그의 활을 이미 당겨 예비하셨다’고 다윗도 경고했다(시7:12). 회개해야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다(마3:2; 4:17).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영벌이 아니라 영생의 복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2 요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을 예언한다. 왕이나 선지자 같이 특별히 택함 받은 자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셨던 것이, 이제 회개한 모든 자들에게 부어 주실 것을 선언한 것이다. 구원의 대상은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세상 모든 민족이 될 것이다. 성령의 부음을 받은 자녀들이 예언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란 약속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승천 이후에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 구약의 세 직분인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고, 주를 믿는 모든 성도에게 왕 같은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주신 것이다. 지금도 복음을 받고 회개할 때 성령께서 임하시는 역사는 진행중이다. 이 영광스런 복음전파의 직분을 능력 있게 감당하자. 주님, 성령을 통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영광스런 직분을 수행하게 된 성도로 나의 삶을 하나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산 제물로 매 순간 드리게 하소서!

2024.2.26 (월) 욜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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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4.2.26 (월) 욜2:1-17 진정한 회개와 금식은 의식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방향을 돌이키는 실천이어야 한다. 절대로 속과 겉이 다른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수 없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길로 우리가 되자. 1 오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에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메뚜기 떼의 침략에 비유하며 경고한다. 바벨론 군대가 올라와 유다를 침범해 철저하게 짓밟을 것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요엘은 아직까지는 회개할 기회가 남아있음을 교훈하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는 표현이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자신들의 죄로 인해 상한 심열을 하나님께 내어 놓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본질은 없고 형식만 남을 때 유다 백성들은 그 예배를 통해 죄를 용서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받으신다(시51:17). 우리는 주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을 마음으로 느끼는 진정한 회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2 요엘 선지자는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할 것을 명한다.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나아와 금식으로 애통함으로 하나님께 진노를 거둬 달라고 간구하라는 것이다. 금식에는 사람의 본능인 식욕을 억제함으로 모든 욕심을 제어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담겨 있어야 한다 (사58:6-7; 슥7:10). 그러나 유다 백성은 정기적으로 금식일을 정해 놓고 금식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악한 일을 금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던 것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그 모든 행위에 담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삶 속에서 구현해 내는 진정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진정한 회개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을 누리자. 주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