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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December, 2021

2021.12.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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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5 (토) 요1:9-1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은 심판자시며 또한 구원자로 서로 상반된 속성을 한꺼번에 가지신 분의 출현을 의미한다. 왜 주님이 이런 역설적인 모습으로 오셨는가?  1 예수님은 빛이며, 세상 조차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는데, 세상은 그 빛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백성은 그 빛을 영접하지 않았다. 모순이다. 하지만 이런 신비를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다. 이는 유대 혈통도 아니고 권세나 종교적 노력으로도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세상이 예수님을 깨닫지 못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이 기적이다. 오늘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자.  2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다. 그 신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은혜와 진리, 곧 하나님의 온전하신 속성을 세상에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 말씀이라 불리시는 성자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랑 없는 세상에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자.  3 유대인들은 율법이란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여겨 열심히 연구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이 은혜와 진리를 베푸시는 분임을 증언할 뿐, 은혜와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은혜와 진리를 가지신 분이며, 아버지 품에 계셨던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것이 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계속해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는 특권을 온전히 누리자.  ‘임마누엘’이 되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의 은혜와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하소서!

2021.12.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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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4 (금) 사11:1-9  이사야 11장은 남 왕국 유다의 악한 왕 아하스의 통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아하스는 당시 적대관계였던 북쪽 이스라엘을 앗수르가 공격하도록 조공까지 바쳤다. 이는 결국 유다까지 앗수르의 위협 앞에 놓이게 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이런 악한 왕의 통치 아래에서 백성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유다에 선한 왕을 보내시고, 그 나라를 새롭게 하실 것을 예언했다.  1  이사야는 이새(다위의 아버지)의 줄기, 곧 다윗의 후손 가운데 선한 왕이 세워져 하나님의 영으로 그 땅을 통치하고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을 경외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일차적으로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와 다르게 하나님 앞에 선한 왕으로 유다를 다스렸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통치할 완전한 왕으로 메시아가 도래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고, 믿음으로 그 나라의 백성 된 사람들을 참된 풍요와 기쁨의 나라로 인도하실 분이다.  2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왕은 주변 나라들을 힘으로 정복해서 평화와 풍요를 얻으려 한다. 참된 평화의 왕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참된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산,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실 천년왕국 이미, 이미 교회를 통해 주님의 통치를 맛보게 되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참된 평화의 나라가 세워지길 기대하는 성도들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복음 증거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영원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기념하면서,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는 자들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12.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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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3 (목) 욥38:39-39:4  이제 하나님은 욥에게 들짐승들의 생태에 대해 질문하신다. 욥은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탄식했다(10장). 이에 하나님은 들짐승들을 예로 드시면서 당신이 어떤 분인가를 알리신다.  1 사자, 까마귀, 산염소, 암사슴, 들나귀, 들소, 타조, 야생마, 매와 독수리는 대부분 고대 근동,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왕이 사냥하던 동물들이다. 이들은 사람의 통제와 영향력 범위를 벗어나 있다. 그래서 혼돈을 상징하는 동물들로 여겨졌고, 이런 동물들을 사냥해서 혼돈을 쫓아내려 했다. 특히 까마귀는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는데(레11:15; 신14:14). 욥의 부르짖음에 침묵하시고 대답하지 않으신다는 주장에 하나님은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이는, 심지어 부정한 동물들 까지도 먹이고 돌보시는 자비로운 분이심을 보여준다.  2 욥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어찌 산양이 언제 새끼를 낳는지, 암사슴의 임신 시기를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신다. 생명의 탄생까지 모두 설계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다. 모든 생명체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결코 나의 지혜로 세상의 이치를 파악했다고 자만할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하나님이 나의 길을 지도하시도록 해야 한다 (잠3:5-7).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소서!

2021.12.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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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2 (수) 욥38:22-38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어떤 원리로 하늘을 유지, 운영하시는지를 욥에게 질문하신 본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어떤 원리로 운영하시는지 살펴보자.   1 창조 둘째 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신 하나님은(창1:7), ‘궁창 아래의 물’(8-11)에 이어 궁창 위의 물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설명하신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대적을 치실 때 우박을 사용하셨다(22-23; 출9:18; 수10:11). 또한 하나님은 비를 위한 물길과, 우레와 번개를 위해 길을 낸 것도, 토지에 비를 내려 생명이 돋아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현대인들은 기상학의 도구로 비와 얼음과 서리의 현상들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자연 현상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을 기억하고 매일의 일상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께 감사드리자.  2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31-33). 사람은 나름대로 시와 때를 분별하지만, 그 지혜마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영역에서 하나님은 일일이 역사하고 계신다. 과거에 누렸던 일상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전에 당연시 했던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은혜를 인정할 때 감사하는 삶은 축복으로 이어진다.  주님, 기적같은 은혜로 한 해 동안 도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12.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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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1 (화) 욥38:1-21  오늘 본문은 인간이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가르친다.  1 욥은 지금까지 하나님께 해명을 요구했지만, 이젠 하나님이 먼저 질문하시고 그 질문에 답해 보라고 요구하신다. 욥은 하나님께 자기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다뤄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세계 가운데 인간의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대해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깨우쳐주기 위해 창조의 위대함을 제시하신다.  2 욥에게 창조의 신비를 설명하시면서, 땅과 바다를 만드실 때의 과정을 보고 새벽별들(천사)이 기뻐 노래할 정도로 영광스런 과정이었음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왜 내게 재앙이 닥쳤느냐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그것을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먼저 물으신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섭리를 이해할 능력이 없음 인정하고 믿음으로 순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빛을 관장하시며 악인들을 떨쳐 버리시는 분, 빛은 의인에게 어둠은 악인에게 주시며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 사망의 문으로 그들을 이끄신다 (15-17). 그러나 정작 인간은 그 땅에 살면서도 어느 길이 광명으로 가는 길이며 어느 길이 악인이 처할 길인지 알지 못한다(18-20). 욥에게 약간 비꼬듯 “네가 그때 태어난 몸이니 한번 말해 보라(21)고 하신다. 하나님의 크신 지혜를 인간의 안목으로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데서 인간의 지식이 시작된다 (잠1:7; 9:10).  주님, 2021년 마지막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나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의 크심을 고백하는 참된 지혜가 넘치게 하소서!

2021.12.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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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0 (월) 욥37:14-24  엘리후는 겨울 날씨를 소재로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여름 날씨를 소재로 가르침을 이어간다. 한껏 자신의 지혜를 앞세워 교만한 말을 앞세웠던 그는 결국 자신을 비판의 대상이 되게 한다.  1 엘리후는 자신의 특별한 지혜를 보여 주겠다고 말을 이어갔지만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다. 세상 만물을 보고도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데(14), 이미 욥은 지혜와 능력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언급했었다(9:4-10). 또 여름날의 번개와 빽빽한 구름, 뜨거운 남풍,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설명하면서 욥에게도 회복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엘리후는 정작 욥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리나,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을 자신이 처음 발견한 것처럼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2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입을 막고 자기 말만 계속 해온 엘리후는 ‘우리는 모두 캄캄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19),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갖춘 듯 행동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은 전능자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권능이 크신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정의와 공의를 발휘하신다’고 말한다(23-24). 하나님을 자신이 잘 아는 것처럼 말을 시작해서는, 결국 ‘인간은 전능자께 나아갈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 ‘그분은 스스로 지혜롭다는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는 자기모순적인 말로 끝을 맺는다. 결국 하나님이 자기를 무시하신다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자는 곧 그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주님,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가르치기 보다는 배우기를 먼저 하고자 하는 지혜가 있게 하소서!

2021.12.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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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8 (토) 욥36:16-33 엘리후는 계속해서 욥이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 친구들이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욥이 마치 자기에게 배워야 할 사람인 것처럼 오만하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 엘리후는 욥이 ‘악이니 받을 벌’을 받으며 ‘심판과 공의’가 욥을 붙잡았다고 말한다(17). 그리고 욥이 악을 택했기 때문에 지금의 환난을 경험한다고 말한다(21).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과 풍요를 회복하려면,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분노하지 말고, 속전으로 고난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하지도, 어둠에 이끌리지도, 악한 일을 택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모든 것은 세 친구들이 했던 내용들이다. 세 친구들의 말에 욥이 항변한 내용들을 분명히 귀담아 듣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참된 지혜는, 듣고 공감해 주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주는 것이다.  2 엘리후는 인간이 이해하기엔 하나님이 너무 높으시다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또한 하나님의 신비를 묘사하면서 특히 번개와 천둥을 강조하며, 이것으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먹을 것을 넉넉히 공급해 주신다’고 말하다. 이는 천둥과 번개를 주관하며 비를 내려 땅을 비옥하게 한다고 여겨지는 바알신에 대한 묘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이방 우상의 모습을 하나님께 대입하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도, 성경도 잘 알지 못하면서 아츤 척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태도를 배척해야 한다.  주님, 주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입각하여,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거하며, 겸손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도록 힘쓰게 하소서!

2021.12.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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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7 (금) 욥36:1-15  엘리후는 다른 세 친구들과 다른 차원의 지혜를 드러낼 것처럼 말을 시작했으나,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세우러이 흐르고 새루운 세대가 나타나더라도 인간이 가진 지혜는 새로울 수 없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1 엘리후는 다른 사람이 자기 말에 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계속 가지 말만 이어간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 자체가 엘리후에게 지혜가 없음을 드러낸다. 게다가 자신을 가리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라고까지 지칭한다(3-4). 어쩌면 욥과 세 친구들은 엘리후의 이 말을 들으며 어이없어 쓴웃음을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태도는 그 자체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2 세 친구들과 다른, 특별한 지혜를 가르치겠다고 말을 시작했지만, 전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만 엘리후는 늘어놓았다. 그 안에는 이전 자신의 주장과 모순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의롭든 악하든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는데(35:12-13), 여기선 하나님은 악인들을 벌하시고 고난 받는 의인들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높이신다고 주장한다(6-7).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고난을 주심은 스스로 악행과 교만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은 앞에서 세 친구들이 한 말과 다를 바가 없다(8-10). 엘리바스가 한 말처럼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고 그러지 않으면 지식 없이 죽을 것이란 말도 똑같이 한다(11-12; 15:34). 엘리후는 욥이 회개하여 곤고함과 학대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하지만, 이것 역시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늘어놓는 진부한 주장에 불과한다. 내가 온 세상을 구원할 무슨 새로운 지식을 가진 듯 착각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주님, 세상이 빠르게 변모하여도,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늘 말씀 앞에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세상에 하나

2021.12.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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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6 (목) 욥35:1-16  고난 중에 있는 친구에게는 진리에 맞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 줘야 한다.  1 엘리후는 하나님이 인간이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관심이 없고, 인간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으시다. 개인의 소소한 하루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관심이 많으시고, 들으신다. 우리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분이시다.  2 고통 당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엘리후는 주장한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구원을 청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욥이 교만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니 고난 받는 것이니 더 큰 재앙이 오리 전에(15) 빨리 회개하라고 말한다. 때로 회개하란 말이 정죄와 비난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고난 중에 있는 지체를 위로할 때 어떤 말을 피할지 조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 사려 깊고 지혜로운 친구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주님, 고난 중 힘들어 하는 지체에게 위로자의 역할을 지혜롭게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1.12.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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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5 (수) 욥34:21-27  엘리후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 앞에서 욥의 불의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1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세상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숨을 수도 무엇을 감출 수도 없다.  비록 침묵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분의 뜻이라면 침묵조차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에 항변했던 욥에게 엘리후는 욥이 어떤 권리도 갖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어떤 권리도 없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2 엘리후가 보기에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또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했음을 지적받고도 겸손히 인정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아 결백하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욥은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까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죄를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죄인입니다.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모른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이 은혜로 우리의 죄를 발견하고 우리가 죄인임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아니면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공의과 선하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 또한 놓치지 않게 하소서!

2021.12.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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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4 (화) 욥34:1-20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정의와 절대 주권을 깨닫고 그분 앞에서 자신의 불의와 무력함을 인정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1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억울하다고 토로하는 것을 악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악하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 앞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일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엘리후의 말이 참되고 하나님의 의를 잘 드러내고 있지만, 그의 가르침이 불편한 것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그 어떤 인간의 감정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조차 환난 중에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숨어 계시는 것 같다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거침없이 쏟아 낸 적이 있다(시13).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며 위로해 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동시에 언제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아뢰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2 엘리후는 하나님이 의 로 온 세상을 통치하시기에 그분이 무엇을 결정하시든 유한한 인간은 그분의 통치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우리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을 제멋대로 평가하는 것을 엘리후는 불쾌하게 여겼던 것이다.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욥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움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선을 이뤄 가신다. 언제나 정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절저히 신뢰하고 시련을 통해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의로 다스리고 계신다.  주님, 힘든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도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숨김없이 내놓을 때 언제나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선함과 정의로 다스리시고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1.12.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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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3 (월) 욥33:14-33  자신의 불평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고 토로했던 욥에게 엘리후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반드시 말씀하시는 분임을 강조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엘리후는 말한다.  때로 말씀을 주셔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때로 질병이나 고통으로 말씀하시기도 한다. 욥의 상황에 대해 이미 고통을 통해 말씀하고 계실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 계시’로는 사실 어렴풋이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제쳐두고 꿈이나 환상을 통해 뜻을 깨달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2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고난과 재난을 통해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다고 해석한다. 고난과 재난을 벗어날 방법을 엘리후는 두 가지 조건으로 말한다. 즉 중보자 역할을 하는 천사와 고난 받는 이의 정당함이다. 고난 당하는 이가 하나님 보실 때 정당하고, 천사가 그를 위해 중보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고난으로 완전히 파멸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사가 중보자가 된다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남는 것은, 죄인이 스스로 자신의 정당함을 하나님 앞에 내 보일 수 가 없다. 죄 때문에.  그러나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이시고 (히1:4),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고난도 얼마든지 축복의 도구가 된다.  주님, 고난 속에서도 주의 뜻을 발견하며, 그 뜻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게 역사하소서!

2021.12.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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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1 (토) 욥32:11-22  욥의 다른 친구들과 상대적으로 연소하지만 연장자들의 어리석음을 더는 견딜 수 없어 부득불 할 말을 해야겠다고 엘리후는 선언한다.  1 나이 많은 친구들이 욥에게 지혜로운 말을 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욥의 질문과 대답에 타당한 답변을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엘리후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들의 지혜 없음은 탓하진 않고, 욥이 설득 당하지 않으니 그를 굴복시킬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핑계한다고 비난한다. 욥의 친구들의 주장에 대한 엘리후의 평가는 정확하다. 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그들의 주장은 현실적 모순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2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 힘들어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른 것 때문에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게는 자랑할 거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꼭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전9;16). 우리는 복음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 죽어가는 자에게 생명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답답해 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이다.  3 엘리후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욥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잘못인, 욥의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거나 그를 위로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욥을 위로하고 격려의 말이 아닐까?  주님,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언제나 사랑으로 말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21.12.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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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0 (금) 욥32:1-10 욥과 그의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적었던 엘리후는 지금까지 논쟁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데 엘리후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만족할 수 없어 그만 침묵을 깨고 지혜가 어디서 오는지 강조한다.  1 엘리후는 자기보다 연장자인 이들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삶의 경륜에서 비롯된 지혜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고 자동적으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사실 지혜가 많았음에도 노년에 이방인 아내들과 함께 우상숭배의 죄에 빠진 솔로몬이 좋은 예다. 자기 경험을 근거로 쌓은 지식에 머물면 편협하고 왜곡된 사고에 빠지기 쉽다. 나이가 들 수록 듣고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갖고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지혜를 선물로 주실 것이다.  2 참지혜는 나이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는 세상에서 배운 것으로 결코 참지혜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와 달리 세상 지혜는 ‘정욕적이며 마귀적’이며 그 속에 시기와 다툼, 혼란과 악힌 일이 있다고 야고보는 말했다(약3:13-18). 참지혜는 잠10:8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길 줄 알고 그 교훈을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러지 못해 망한다고 교훈한다. 내 생각과 세상 지식을 내려놓고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할 때 삶은 지혜로워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된다.  주님, ‘나’라는 것을 제발 내려놓고 지혜의 하나님의 말씀을 내 편한 대로 이해하고 받지 않고, 말씀의 교훈대로 벗어나지 않는 참지혜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1.1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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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9 (목) 딤후4:9-22 인생의 마지막에 있던 바울이 자신이 현재 놓인 상황과 어려움, 고난이 어떤지를 나열한 이유는 동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충성된 태도를 가르치려는 의도 때문이다.  1 지금 바울 곁에 아무도 없어서 디모데에게 속히 올 것을 부탁한다. 사역지로 떠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데마는 한때 바울의 동역자였지만(골4:14; 몬1:24) 세상을 사랑하여 신앙을 버렸다. 지금 바울 곁에는 누가만 남았다. 또 마가를 데리고 올 것을 부탁했다. 1차 선교 여행 이후 관계가 좋지 않게 되었떤 마가였지만, 그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함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골4:10; 몬24). 디모데가 에베소를 떠날 때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두기고를 에베소로 파송했다. 모두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지만, 각기 그 과정과 결말은 달랐다.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 역시 중도에 포기하거나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교제 안에서 신앙을 붙들어야 한다. 2 바울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에 대해 경고한 것을 통해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운다. 그 원수가 행한 대로 주께서 갚아 주실 것을 믿고 내가 직접 원수를  갚아선 안된다.  또한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떠날지라도 예수님이 자기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시고 힘 주심을 바울처럼 믿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람에게서 기쁨과 위로 혹은 낙심과 실망을 경험하지만, 우리가 진정 경험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다. 3 편지의 마지막에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의 집에 인사를 전한다. 또 에라스도, 드로비모의 근황도 언급한다. 로마에서 안부를 전하는 이들의 인사와 함께, 특별히 바울은 주님이 디모데의 심령에 함께해 주실 것을 축복한다. 아무리 외롭고 어려운 사역의 길이라도 주님이 그 마음에 함께 하심이 모든 근심의 해답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어떤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

2021.1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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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8 (수) 딤후4:1-8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는 바울의 편지에서 그 어떤 갈등이나 마음의 어려움과 두려움은 없고 오히려 확신에 찬 권면과 영광을 바라는 놀라운 평안을 발견한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바른 자세는 뭘까? 1 최후의 권면에 앞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는 선언과 함께 ‘엄숙히 명한다’는 표현을 통해 본문의 권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말씀을 전파하라, 항상 힘써라, 책망하라, 경계하라, 권면하라’의 5가지 명령(2)과, ‘정신을 차리라’, ‘고난을 받으라’, ‘일을 하라’ ‘다하라’(5)의 4가지 명령을 통해 바울은 디모데를 권면했다. 성도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환경이나 사람들 때문에 휘둘려선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한다. 2 자신의 최후가 다가옴을 알고 있는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단순하게 ‘죽는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부어드리는 제물과 같이 드려졌다’고 말한다(6; 참. 민15:1-10).  희생제사의 과정에서 드려지는 포도주처럼 완전히 바쳐지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가 가진 마지막 목숨까지도 바치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바울의 놀라운 확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모두 마쳤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 길을 디모데가 본받기를 바랬다. 우리 역시 맡은 사명에 충실해야 하며 주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사모해야 한다. 믿음으로 끝까지 달려온 삶이기에 죽음이 오히려 소망인 것을 알아, 나의 선한 싸움과, 달려가야 할 길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생명을 다하게 하소서!

2021.1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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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7 (화) 딤후3:10-17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본으로 제시한다.  거짓 믿음과 달리 진실한 믿음은 고난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다. 성경에 관한 위대한 정의도 고난 받는 삶을 강당해야 한다는 당위를 제시하고 있다. 1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자랑이 아니라 디모데가 지금의 상황을 잘 이겨 내도록 돕고자 하는 권면이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증명한다. 따라서 말세에 진짜 믿음을 가진 성도는 복음 안에서 당연히 고난을 받아도, 믿음의 삶을 통해 서로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이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가 믿음의 거룩한 세대가 되는 데 방해만 될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 주고 가르쳤듯이 우리도 다음 세대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2 진실한 믿음의 삶을 살며 고난을 기꺼이 받는 참 신앙인과 달리 거짓 믿음을 가진 이와 악한 자, 속이는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속고 속이는 삶을 살아간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성경에서 온 것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디모데 역시 어려서 배운 성경이 삶의 능력이 됨을 확인시켜 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근거가 여기에 있다. 주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하소서!

2021.1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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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6 (월) 딤후3:1-9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말세를 극복하는 비결이 바로 참된 복음을 갖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악한 자들의 부패한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까? 1 말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만을 사랑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데, 자기 자신과,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남을 비방한다.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 않으며 거룩하지 않다. 또 무정한 마음으로 앙심을 품고 살아간다. 선한 것을 미워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남을 배신하고, 자기 사랑에 도취해서 극도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쾌락을 최고로 사랑한다. 이런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이 시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님께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와 믿음을 구해야 한다. 2 연이어 바울은 이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단들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고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경건의 모양만 갖췄을 뿐 능력은 부인한다. 경건의 능력이란 고난을 이기며 영적 열매를 맺는 삶을 말한다. 이들의 관심은 성도들을 속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그들을 잘못된 길로 끌고 들어간다. 모세를 대적했던 애굽의 두 마술사처럼,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이 시대가 위험하고 고통스러움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이 세상에 취해 믿음의 삶을 저버리지 말고, 교회 안에서도 늘 깨어 바르게 신앙생활하게 하소서!

2021.12.0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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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4 (토) 딤후2:14-19 이어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현실적 문제들에 디모데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권면해준다. 1 바울은 교회 안에서 말다툼을 엄히 금했다. 헛된 감정적 다툼은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해를 끼친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자들은 선한 일에 힘쓰며, 그 결과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끼친다(딛3:8). 말다툼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분별해야 한다. 말씀을 멀리하면 무조건 사탄에 속아 경건함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2 교회를 어지럽히고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망령되고 헛된 말을 내뱉는 무리들로부터 떠나라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이런 것들은 경건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바울이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실명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부활을 부인하면, 예수님을 부인하고, 복음을 훼손하는 사탄의 계략이다. 우리는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논쟁과 변론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누는 생명력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 3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이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든든히 서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누군지 분명히 아시고(민16:5), 주를 부르는 자는 불의에서 떠나기에(사26:13), 하나님이 확실히 교회를 보증하신다. 힘든 싸움을 싸워나가는 디모데와 교회를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바울에게 있어 디모데를 격려했다. 이 확신을 마음에 품어야 바울처럼 디모데 역시 수많은 사탄의 공격 앞에 담대히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주께서 이미 승리하신 싸움을 싸우는 성도와 교회의 지체로서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고수하게 하소서! 

2021.12.0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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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3 (금) 딤후2:1-13 본문에서 바울이 주는 교훈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실천해야 할 권면이다. 1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으로 인해 찾아오는 고난에 참여하라고 권면한다. 이를 위해 은혜 안에서 강해지라고 말하고 있다. 은혜를 경험한 성도는 연약하지 않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는 분명히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복음의 은혜는 또 다른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세워 훈련시키고 함께 복음의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제자양육을 강권하고 있다. 사역의 비밀은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고, 이 은혜를 경험한 많은 동역자와 함께 할 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의 비유로 군인,운동선수, 농부를 든 것은 이들 삶의 공통점이 바로 고난 끝에 오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군인으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고, 승리의 관을 얻고, 고난을 통해 첫 수확물을 얻는다. 복음의 사명은 고난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서도 충성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승리의 면류관을 얻으며, 열매는 얻는다. 3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능히 감당해야 할 것으로 확신한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난 받음으로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면 능히 그 고난을 감당했다. 이 확신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며 다스릴 것이란 믿음에 있다. 우리도 고난 때문에 움츠러들지 말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 하나님 앞에서의 영광을 기억하며 이 땅에서 복음 때문에 얼마든지 손해와 고난을 기뻐하는 참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12.0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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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 (목) 딤후1:8-18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복음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구체적으로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다(롬1:16).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삶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고난의 자리까지 기쁨으로 나아갔다. 2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는 권면의 구체적 기준으로 복음에 대한 바른 가르침에 임하도록 당부했다. 이단의 거짓 복음이 아니라 바른 복음과 사도적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복음에 관한 바른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역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신 주님께 아름다운 일이다. 3 고난 가운데 있던 바울을 도왔던 오네시보로란 인물을 언급한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로마에 있는 감옥에 투옥되자 그를 버리고 떠나갔다. 복음으로 인해 고난 받는 바울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격려하고, 복으으로 인해 사슬에 매인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네시보로와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출발선이 같았지만, 결승점은 완전히 달랐다. 복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고난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감내해야 한다. 주여, 그 어떤 고난이 따른다 해도 복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달라갈 길을 마치게 하소서!

2021.12.0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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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1 (수) 딤후1:1-7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계승하여 사람들을 복음으로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디모데의 믿음을 격려해주기 위해 본 서신을 로마 감옥에서 써서 보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기대했던 대로 디모데가 영적으로 성숙한 수준에 이렀던 비결은 무얼까? 1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어머니와 외조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린 시적부터 가정 안에서 배운 말씀의 교훈이 디모데가 영적 지도자로 성장하는 기반이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이 속한 가정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세속화되지 않은 가치관과 신앙을 물려받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유니게와 로이스는 그 책임을 다했고 디모데를 통해 열매를 보았다. 우리 자녀들도 말씀의 씨를 계속 뿌릴 때 하나님은 풍성한 영적 열매를 자녀들에게 반드시 허락하실 것이다. 2 바울은 디모데를 복음으로 인도한 후에도 계속 그를 말씀으로 양육하고 돌봄으로써 영적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했다. 현교 현장마다 디모데를 동반해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복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다. 디모데와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그를 위해 밤낮으로 간구하고 서신을 통해 격려하고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신앙 성장을 위해선 믿음의 스승과 동역자 들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의 기도와 영적 돌봄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이 있는지 돌아보고, 그들에게 우리가 이미 경험한 사랑을 나눠 주기를 소망한다. 주님, 혼자만의 힘으로 세워질 수 없는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바른 믿음 안에서 성숙한 자들과 교제할 기회를 많이 허락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애정을 갖고 힘을 다해 서로의 성숙을 위해 돕게 하소서!

2021.11.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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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1.30 (화) 합3:1-19 하박국 3장은 하박국서의 일부였을 뿐 아리나 별도로 불리기도 했다. 이 노래를 통해 우리는 위협과 고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1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 곧 두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하나님께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속이 이뤄지고 다시 수년 내에 부흥하길 기도했다. 다만 긍휼을 잊지 마시라고 간구할 뿐이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영광과 찬송, 찬란함이 가득하지만, 땅에서는 사람들이 두려워할 만한 재앙이 일어남을 본다. 하나님의 심판은 고통스러워도, 그 과정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음을 알기에, 속히 맞고 죄값을 치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함을 알았다.  2 유다의 죄를 벌하신 후, 주변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기대한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약탈하던 나라들은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하고, 하나님의 권세가 온 세상에 마침내 미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이 오히려 안전을 보장해 주는 큰 힘이 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는다.  3 하나님의 진노의 때는 두려운 환난의 때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선지자는 오히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고 다짐한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능히 극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은 곳에 이르게 하시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리라는 결단을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1.11.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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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1.29 (월) 합2:9-20  앞 단락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유다 백성은 무조건 구원하시고 이방인은 무조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죄악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본문은 하나님이 바벨론과 열방을 심판하실 것인데, 그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자들만 남게 될 것을 선포한다.  1 하나님은 유다냐, 이방인이냐를 따지지 않고 심판하신다. 특히 왕권을 동원해 주변 민족들을 멸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약탈자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신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14).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다른 이들을 수탈하는 행위를 결코 묵과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은 또한 방탕한 자를 내버려주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 성공과 노력의 댓가로 방탕하게 사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 수치이며 더러운 욕으로 그 영광이 가려질 것이라 선언하신다. 바벨론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결코 악인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으시고, 죄에 대해 확실하게 보응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3 사람들은 자기 번영과 안전을 위해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비웃으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고, 그 앞에 만물이 머리를 조아리며 잠잠하게 될 것이다. 모든 제국들을 통해 모든 우상 숭배자들을 멸하시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참 성전을 세우시고, 그 몸된 교회가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 결국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악의 세력이 날뛰고 있지만, 하나님의 권능 앞에 결국 모두 잠잠해질 것이다.  주님,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확신하고 그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