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April, 2023

2023.4.22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22 (토) 삼하7:1-17 12지파의 왕으로 세움을 받고, 예루살렘성을 차지하고, 언약궤를 옮겨 와 예루살렘에 안치한 일련의 과정은 다윗 일생 중 가장 찬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받았다.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다. 1 하나님은 다윗 주변 국가들까지 평정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위협이 될만한 세력이 없게 하셨다. 그런데 다윗에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언약궤는 여전히 천막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선지자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지은 건물이 하나님의 거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2 다윗의 진실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한 복과 은혜를 약속하셨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 그와 함께하셔서 그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며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어떤 원수도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을 흔들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세우고 싶다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그를 위해 집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다윗 왕조를 세워 주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기뻐하신다. 3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즉 다윗 왕조는 범죄로 인해 위기를 겪거나 약해질 수는 있지만 끊어지는 일은 없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까지 그 나라를 확장시켜 오셨다. 우린 다윗처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언약 안에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언약에 동참한 자로 진실되게 주를 섬기게 하소서!

2023.4.21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21 (금) 삼하6:16-23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는 이야기는 하나님은 화려하고 웅장한 예식과 행렬보다 말씀을 따르고 진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기뻐하심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이 대조를 이루는 본문이다. 1 다윗은 언약궤가 안치되고 먼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화목제는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교제를 나누고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를 마친 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고, 모든 백성에게 빵, 고기, 건포도 빵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백성과 함께 소박한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서 인간적 지위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의 평가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정작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2 다윗은 미갈과 결혼함으로써 사울의 사위가 되었지만,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미갈을 빼앗겼다가 후에 다시 찾았다(삼상25:44). 미갈은 다윗이 백성들 앞에서 ‘체통 없이’ 행동한 것을 비난했다. ‘이스라엘 왕의 명예로움’에 관심을 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란 말을 두 번 반복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음을 선언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든지 낮아지고 천하게 보이기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21-22).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외형을 추구하는 사람의 결말은 이처럼 비참할 수밖에 없다. 주님,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고 그들보다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을 추구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소망하고 하나남이 사랑하시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길 원하는 자에게 무한한 은혜와 복을 주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3.4.20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20 (목) 삼하6:1-15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치면 안 된다’는 말은 선한 목적을 위해 잘못된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다윗이 경험한 실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어떤 행위도 합당치 않음을 인식하여 모든 삶의 과정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이 거하는 예루살렘성으로 옮기려 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의 표현이다. 이런 다윗의 선한 의도는 성전을 건축하여 그곳에 법궤를 안치하고 싶어 한 그의 마음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은 궁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의지였다(7:2).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며 그런 열정 없이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다. 삶에서 하나님과 가까이하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를 갖고 모든 일에 힘쓰고 노력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2 목적과 의도는 선하나, 과정에서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서 일 전체를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시려는 다윗의 의도와 목적은 선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옮길 때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옮겨는 것이 하나닙의 법이다(수3:6). 그러나 다윗은 소가 끄는 새 수레로 법궤를 옮겼다. 마치 블레셋 사람들처럼(삼상6:12). 결국 법궤가 흔들렸고,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모든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결코 세상의 방법들을 사용한다면 결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일이 될 수 없다. 세상의 것을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바른길을 찾아 행하게 하소서!

2023.4.19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9 (수) 삼하5:13-25 영적 싸움은 율과 혈의 싸움과 전혀 다르다. 사람은 스스로 절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바울 역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울 것을 명령했다. 다윗이 수행한 불레셋과의 싸움에서도 영적 전쟁의 원리를 발견한다. 1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군대는 다윗을 대적하려고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다. 다윗은 이들을 치러 나가기 전 먼저 하나님께 전투의 승패를 묻는다. 하나님의 응답의 확신 가운데 전투를 치른 것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아 확신 가운데 무슨 일이든지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머리에만 있는 관념적 신앙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함이 승리의 비결이다. 2 다윗에게 한 번 패한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 다윗을 대적한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뒤로 돌아 기습공격 할 것을 명하시면서 ‘여호와가 네 앞에 나아가 블레셋 군대를 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24). 전쟁의 승패 결정 뿐 아니라 전략까지 주시고 직접 블레셋 군대를 치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대적을 치는 것은 ‘거룩한 전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출23:28; 신7:20; 수6:20; 24:12; 삿7:22;). 성도는 우리의 대장이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명령에 순종할 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주님, 십자가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영적 싸움이 있음을 알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십자가 군병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2023.4.18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8 (화) 삼하5:1-12 사람의 눈에 비효율적이고 오래 걸리더라도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과연 이런 다윗을 어떤 방식으로 왕으로 세우셨을까?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나아와 ‘우리는 왕과 친척이다’, ‘사울왕 때에도 이스라엘 군대를 당신이 통솔했다’, ‘하나님이 당신을 목자와 통치자로 세우셨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왕이 되어 주길 간청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다윗은 헤브론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가장 적절한 시기까지 필요한 훈련을 하나님은 받게 하셨다. 이처럼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법도를 따르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시지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영광스런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 2 하나님은 다윗을 위한 새로운 왕도를 준비해 주셨다. 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 사람들이 거하던 요새였다(6). 그러나 다윗은 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침투해 그 성을 점령했다. 이 역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셧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 왕궁을 지은 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그 뜻을 따르는 자는 이처럼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영광스런 곳에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주님, 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선택했던 다윗처럼, 주 앞에 정직하며,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3.4.17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7 (월) 삼사4:1-12 세상에서는 정직한 길로 행하는 자보다 거짓과 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더 유리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진다. 우리는 멸망으로 가는 악인의 꾀를 버리고, 진리를 따라 복된 길로 행해야 한다. 1 이스보셋의 군 지휘관인 바아나와 레갑은 아브넬이 죽임을 당하자 곧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을 찾아간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인 자신들에게 상을 베풀 것이라 착각했다. 일반 사람들의 소견에서 보면 그들은 다윗에게 큰 도움을 준 자들이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상식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들의 어리석음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같이 악한 자의 꾀는 언뜻 합리적인 것 같으나 반드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결과를 낳는다. 2 다윗이 이스보셋을 죽인 레갑과 바아나를 정죄하여 죽인 것은 명분으로나 실제로나 지혜로운 행위였다. 이들을 우대했더라면 사울 편의 사람들은 다윗에 대해 반감을 가졌을 것이고, 민심은 다윗왕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윗은 아브넬 장군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울 왕가에 적대감이 없음을 보여 줌으로 백성의 민심을 자신에게 돌리 수 있었다. 세상의 지혜와 계산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따라 행하는 경건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사로운 꾀로 스스로 앞길을 열어 가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지혜의 길로 행해야 한다. 주님, 사사로움을 포기하고 항상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주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형통함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2023.4.15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5 (토) 삼하3:12-21 이스보셋 앞에서 다윗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이용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곧장 다윗에게 붙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신의도, 책임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1 아브넬은 자기 권세를 이용해 반역을 일으켜 나라를 넘길 속셈이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압의 손에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손에 의해 세워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긴다. 다윗은 아브넬과 언약을 맺기 전 그의 진정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자신의 첫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2 아브넬은 미갈을 다윗에게 보낸 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만나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을 종용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반역을 꾀하면서도, 그 명분을 하나님 뜻에서 찾고자 하는 거짓됨을 본다(18). 권력욕, 물욕을 채우기 위해 일을 벌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처럼 가면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갈6:7). 하나님을 경외하고 늘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3 다윗에게 미갈을 보냈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까지 설득했으니 이제 다윗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얻었을 것으로 아브넬은 생각했을 것이다. 부하 20명을 데리고 다윗을 찾아가서는, 다시 한 번 다윗에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지극히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이다. 이런 자와 손을 잡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주님, 아무리 유익해 보여도 악인과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거룩한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게 하소서.

2023.4.14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4 (금) 삼하3:1-11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울왕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세워졌어도 그의 시작은 미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 갈 수록 다윗을 강성하게 하셨고, 이스보셋의 세력은 점차 약화시키셨다. 강성함과 형통함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누리는 은혜다. 1 다윗 집안과 사울 집안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다윗이 이기게 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아내와 아들들을 소개함으로써 다윗이 점점 강성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다윗이 경험한 강성하고 형통한 삶을 소망한다. 하나님도 우리가 소망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이 강성해지길 원하신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과 영적 부요함을 얻는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비춰보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속히 회복해야 한다. 2 이스보셋과 아브넬 사이에 예상치 못한 갈등이 생겼다. 사울의 첩과 아브넬이 도침한 것이 문제가 되어 두 사람 사이가 갈라지게 된 것이다.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넘겨주겠다고 협박하는 아브넬을 보면, 쇠락해지고 있던 사울 집안의 현실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변화 역시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갈등을 사용하셔서 다윗이 오랫동안 바라던 일들이 이뤄지게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고 우리 삶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주여,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가까이 따르며 순종하게 하소서!

2023.4.13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3 (목) 삼하2:12-32 갈등은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스보셋의 사령관 아브넬과 다윗의 사령관 요압이 기브온에서 맞섰다.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1 아브넬은 많은 군사를 거르리고 있었고, 요압은 다윗을 따라다니던 얼마 되지 않은 용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동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경쟁상대로 생각해 자신드이 가진 지도력과 군사력이 상대에 비해 월등하다고 생각했다 . 이런 경쟁의식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불러온다. 아무런 명분없는 싸움에 군인들이 내몰렸다. 교회는 서로 경쟁하며 갈등하는 사횔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우뚝 세워져야 한다. 2 12명의 젊은이들로 승부가 가려지지 않고 모두 죽자, 양측 군대는 전면전을 벌였고, 아브넬의 군사들이 요압 군대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요압과 아브넬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망치던 아브넬을 추격하던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요압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고, 더 맹렬한 기세로 아브넬을 쫓아갔다. 두 사람의 싸움은 후에 복수심에 사로잡힌 요압의 칼에 아브넬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복수심으로 발생하는 다툼을 피하는 방법은 옳고 그런 것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복수심을 극복할 수 있고,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을 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까지 허락해 주실 것이다. 주님이 가르치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며, 지나친 경쟁심이나 복수심을 버리고 상대를 높여 주고 인정하여 평화를 심게 하소서!

2023.4.12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2 (수) 삼하2:1-11 사울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왕권은 두 갈래로 나뉜다. 유다 지파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된 다윗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다. 본문은 이 두 사람이 각각 왕이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왕의 특징은? 1 사울 가문 사람들은 사울로 시작된 왕권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넬 장군은 권력욕이 강했고 나라가 불안정한 시기를 틈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고 그를 내세워 이스라엘을 좌우하는 권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스보셋의 왕권은 오직 인간적인 탐욕의 결과였다. 성경은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세속적인 욕심 대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사울 대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록 결정하셨다.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에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여쭈었고, 즉시 말씀하신 대로 헤브론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유다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옹립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지도자들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떠나 버린 영혼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 나라를 세우시고 확장해 나가실 것이다. 주님,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따르는 성도의 길을 가게 하소서!

2023.4.11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1 (화) 삼하1:17-27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두 사람을 애도하며 지은 노래가 본문에 기록된 ‘활의 노래’다(17-18). 다윗의 애도는 개인을 넘어 이스라엘 공공체의 인간다움을 함양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는 역할을 했다. 1 자신이 좋아했던 요나단의 의 죽음을 슬퍼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자기를 죽이려 쫓아다녔던 사울의 죽음을 애도한 다윗을 보면, 정말 진지한 경의와 위엄으로 깊은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사랑과 신뢰 가운데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끝까지 싸웠음을 노래한다. 혼자 슬퍼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느껴서, 온 이스라엘을 향해 그 두사람을 위해 함께 슬퍼하자고 권한다. 공동체는 슬픔도, 기쁨도 깊이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온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되었다. 2 다윗이 지은 이 애가에는 사울을 깎아내리거나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다만 애가 가운데 나타난 가장 큰 비통함은 요나단을 향하고 있다(25). 요나단이 다윗을 향해 보인 사랑은 여느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깊은 우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신앙 안에서의 그런 사랑은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영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고전13). 다윗의 애가를 통해 그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지녔는지 잘 드러난다. 주님, 믿음의 사람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넘어 큰 그림을 볼 줄 알게 하소서!

2023.4.10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10 (월) 삼하1:1-16 오늘 본문은 사울의 죽음을 놓고 완전히 상반된 두 사람의 반응을 보여준다. 사울의 죽음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아말렉 사람과 그것을 슬퍼한 다윗이다. 모든 상황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을 본문에서 발견한다. 1 사울과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한편 다윗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그때 한 아말렉 청년이 머리에 흙을 뒤집어쓰고 다윗 앞에 나타나 자신이 사울이 죽는 과정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사무엘상31장 내용과는 사뭇 다른다. 이 청년은 사울이 고통 가운데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해서, 자신이 그를 죽였고, 그의 왕관과 팔찌를 벗겨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이 아말렉 청년은 다윗의 원수인 사울을 자기가 죽였다고 하면 다윗에게 큰 상을 받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이 소식에 애통해했다. 그리스도인의 판단 기준이 자신의 유익, 안위, 안정이어선 안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어야 한다. 2 비록 다윗이 시기와 질투로 집요하게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여기거나 그와 맞서 싸우지 않았다. 얼마든지 사울을 해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자신이 대적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네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느냐”란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얄팍한 속임수가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고 전심으로 그것을 행하는 태도가 우리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삶이다. 주여, 당장 내 눈앞의 이익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뻐하실 만한 일인기’를 늘 세심히 살피게 하소서.

2023.4.8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8 (토) 사53:4-1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라는 이름을 알기도 전에 메시아의 탄생과 공생애 사역, 수난과 부활을 매우 구체적으로 예언했다. 주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으로 계획되어 하나씩 성취된 일이다. 1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실 때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했다. 종교 지도자들의 고발을 곧이곧대로 믿고 조롱에 동참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이 고난 당하신 이유는 그것을 감수할 이가 세상에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무 죄와 허물이 없어야 대속할 자격이 되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은 윌를 위한 오직 하나뿐인 구속자이신 당신의 아들에게 우리의 죄악을 모두 담당시키셨다. 2 제자의 배신과 도망가버린 모든 제자들, 그중 하나의 부인.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던 성부 하나님과의 일시시적이나마 단절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잠잠히 그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면 당장에라도 불평하고 원망을 쏟아 낸다. 우리가 진정 예수를 주로 믿고 따른다면, 우리 또한 그분의 성품을 따라 주님의 뜻 안에서 묵묵히 참고 인내해야 할 것이다. 3 전혀 죄가 없으심에도 십자가 형벌을 주님은 당하셨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께 다 쏟아졌다.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해 주심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열방의 백성은 큰무리를 이루고 예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계7:10).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라고 찬양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주님, 주께서 부르신 소명 붙들고 살아가는 길에 고난과 괴로움이 많아도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하늘의 신령한 것들로 우리에게 채우소서!

2023.4.7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7 (금) 마27:35-53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9am부터 약 3시간에 걸쳐 참기 힘든 조롱과 모욕을 당하셨다. 이 시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은 가장 고귀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인류에게 가장 큰 소망의 시간이었다. 1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하셨다. 폭력과 조롱.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알아보고 조롱할 목적으로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로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패를 머리 위에 붙였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스스로 기록하고 알린 셈이 되었다. 가장 비극적이고 저주스런 장면처럼 보이는 이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가장 크고 세심한 계획인 것은 하나님의 아이러니다. 2 십자가 밑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조롱했다.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짓는 자’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당신의 육체를 가리킨 말이었기에 본의 아니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을 정확하게 설명한 셈이다. ‘남을 구원하면서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구나’라는 말은 예수님의 희생을 정확히 묘사한 말이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신다면 당장 구원하시겠지’란 조롱의 말도 실제로 사흘 만에 성취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조롱과 조소를 모두 뒤집어엎어 반전의 승리를 이루셨다. 3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의 절규는 일시적이지만 죄 짐을 대신 지고 죽음을 맞으심으로써 아버지 하나님과 단절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영원 전부터 완전한 조화와 하나를 이루어 오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너무나도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은 아들의 절규 가운데서도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시며 아들의 고통스런 죽음을 지켜만 보셨다. 또한 아들과 단절되는 아픔을 견디셨다. 주님, 우리를 사랑하사 죽음에 이르신 성자 그리스도의 은혜와 귀한 아들을 내어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도 우리와

2023.4.6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6 (목) 마27:15-26 스포츠에서 심판은 공정한 판정을 내려야 한다. 팬들의 함성과 야유에 압도당해 바른 판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1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란 죄목으로 고소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26:65). 사형을 결정할 권리가 식민지 백성이 아닌 로마 총독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침묵을 지키셨다(27:12-14).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것을 알았고, 심지가 빌라도 아내도 그 의로운 자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며 남편 빌라도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때 빌라도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렸어야 했다. 많은 생각과 계산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알량한 안위를 계산했던 것을 회개하며 우리의 연약함과 악함을 고쳐주시길 기도하자. 2 유월절 명절에 총독의 권한으로 죄수를 사면해 주는 전례가 있어, 얼마든지 빌라도는 예수님께 사용해도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민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계속 의식했다. 죄수 바라바를 석방해 줄 것을 요구하는 군중 앞에 예수님의 무고함을 알렸으나,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요구했다. 우리의 이런 탐욕과 무지까지 사용하셔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할 뿐이다. 3 빌라도는 정의와 진실 보다 군중의 요구에 휩쓸렸고, 군중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신들과 자손들에게 돌리라며 저주를 자처했다(25). 군중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석방하고, 비겁하게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이 이 일에 무죄하다고 선언했다. 그런 상징적인 행동으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셨음을 지난 2천년 동안 고백한다. 정의가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다. 주님, 정의보다 정치를, 진리보다 거짓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늘날, 빌라도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하나님 앞에서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3.4.5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5 (수) 마26:35-50 구속 사역 성취를 위해 반드시 져야 하는 십자가의 고난은 예수님께도 너무나 괴롭고 무거운 짐이었다. 인간적 고통과 번민을 물론이거니와 일시적이나마 성삼위 하나님과의 단절되는 상상을 초월할 큰 고통을 성자는 견디셔야 했다. 1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주님은 사람이 느끼는 모든 괴로움과 두려움, 고통과 번민을 몸소 겪으셨다. 십자가의 형벌과 죽음을 앞두고 괴로움 가운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괴로운 심정을 진솔하게 밝히시며 함께 깨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셨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완전한 순종을 발견한다.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순종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우릴 향한 가장 선한 길이기 때문이다. 2 주께서 사력을 다해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기도 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주님의 고난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자고 있던 제자들을 보시면서 크게 실망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들이 최선을 다해 기도하길 원했겠지만, 그들의 육신은 너무나 지쳐 있었기에 쏟아지는 잠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는가? 외롭고 힘든 시간을 묵묵히 기도로 견뎌 내신 주님을 따라 기도 자리에서 아버지의 뜻을 간구하자. 3 예수님은 기도를 다 마치신 후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가가 가까이 왔음을 인지하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으시고 순순히 붙잡힐 각오를 하셨다. 결국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하여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뜻을 정하셨던 것이다. 아들의 순종과 아버지의 침묵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높고 위대한 사랑이었다. 한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우리는 늘 배반하고 실망을 안겨 드린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겠다. 기도로 고난을 이기신 주님을 본받아 고난을 이겨 낸 다음 하나님의 선

2023.4.4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4 (화) 마26:26-35 본문에 등장하는 세 부류의 인물들. 사리사욕을 위해 수년 동안 함께한 스승을 배반하고 팔아넘기는 사람, 의리와 충성을 다짐하시만 그 다짐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도 여전히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유월절 만찬 자리에는 은30을 받고 예수님을 대제사장 무리에게 팔아 넘길 가룟 유다도 있었다. 다른 모든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여전히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과 희생을 다짐하신다. 당신의 희생을 떡과 포도주에 비유하시며 저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그날에 새 포도주로 성도들과 함께 마실 것을 약속하시는 예수님. 2 하나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함께 마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기뻐하며 함께 찬양하며 감람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란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슥13:7)을 인용하시면서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이때 성질 급한 베드로가 가장 먼저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신앙은 자신의 다짐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릴 위해 기도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3 베드로의 호기로운 충성고백에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먼 훗날도 아니고 바로 그 밤이 다 지나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다. 우리의 결심과 다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 내지 못하는 연약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어떻게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우리 힘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주님의 말씀을 붙드록 기도로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게 하시고, 말씀과 성령을 힘입

2023.4.3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3.4.3 (월) 마26:6-16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웠을 때,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린 한 여인을 소개한다. 그녀의 행동을 통해 성도들이 예수님께 보여야 하는 가장 합당한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틀 후,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당신이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도, 그것을 준비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것이다. 가장 귀한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께 왔다. 제자들은 이런 행동을 낭비라고 화를 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를 준비했다고 칭찬하셨다. 제자들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주님의 죽음을 준비했던 것이다. 평소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린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이다. 2 향유는 당시에도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자기에게 있는 가장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제자들은 꾸짖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떤 사명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헌신하는 일보다 우선일 수 없다. 그녀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신 주님은 그녀를 사람들 앞에서 높여 주셨다. 우리가 가진 재물, 시간, 재능을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드리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일,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당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그분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린다 해도 그것은 절대로 낭비일 수 없다. 주님, 주를 향한 사랑을 입술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말씀에 구체적으로 순종하며 우리의 물질과 시간을 드림으로 표현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