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July, 2021

2021.7.30 NAZAZiM QT

Image
7월 30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30 (금) 시20:1-9 인류 역사에 전쟁은 없었던 적이 거의 없다. 특히 고대 근동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보 시편20은 다윗의 시로 전쟁을 앞둔 출정식 때 사용되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1 전반부에 ‘응답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기억하시고, 받으시고, 소망을 주시고, 이뤄 주시고’란 말은 사실상 같은 의미의 반복이다. 이스라엘은 전쟁 전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환난 날, 곧 전쟁의 때에 하나님이 왕을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하며 찬양했다(1-2). 제물을 잡아 제사드릴 준비를 하는 동안 회중이 하나님께 제사를 받으시기를 간구했다(3). 제물을 제단에 올리면 회중이 왕을 축복하며 하나님이 그의 모든 소원과 계획대로 이뤄 주실 것을 기원하고(4), 승리한 후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들고 개선할 것을 소망했다(5). 매일의 삶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루는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선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 백성의 찬양(1-5)이 끝나면 왕은 승리를 확신하는 노래로 화답한다(6-8).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며 그 이름의 능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갔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마지막으로 왕이 두 사람이 싸우다가 한 사람이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승리한 사람은 일어나 바로 서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이라고 선언하면(8), 온 회중은 하나님께 왕을 구원해 달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하면서 찬양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9). 우리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렸음을 고백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의 재물이나 능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주님의 군사들이 되자! 주님,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루의 출정식을 준비하듯,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케 하소서!

2021.7.29 NAZAZiM QT

Image
7월 29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9 (목) 시19:1-1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란 문제를 가장 확실히 답하는 시편 중에 하나가 바로 시편19편이다. 다윗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고, 어떻게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가르친다. 1 하늘과 궁창은 하나님을 나타낸다(1).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른다고 다윗은 노래한다(2-4).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창조주의 솜씨를 부인할 수가 없다. 해를 지으시고 해를 위해 하늘에 장막을 두시고(4) 찬란한 영광과 강력한 힘을 주셔서(5)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을 보게 하셨다. 우리는 세상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영의 눈을 떠서 주님의 그 찬란한 영광을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2 천지 만물보다 더 확실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말씀이라고 다윗은 말한다. 말씀은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하고 순결하여 인간의 영혼을 살리고 지혜를 주고(7-8), 금과 꿀보다 더 귀하게 사모해야 한다(9-10). 인간의 죄성과 어리석음 때문에 천지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우리의 언어와 문자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게 해 주셨다. 이 말씀을 우리는 생명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3창조물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도 귀하지만 성경의 계시를 통해 드러난 말씀이 더 중요하기에, 다윗은 말씀으로 경고를 받고, 말씀을 지킴으로 바을 상을 기대한다고 고백한다(11). 말씀은 이제껏 미처 깨닫지 못했던 허물과(12) 고의로 지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13). 그렇기에 다윗은 이 말씀을 가르치며 묵상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그 말과 묵상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14). 우리가 너무 쉽게 성경을 대하다 보니 말씀의 귀함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씀은 생명을 살리며, 육신의 음식보다 더 중요함을 알아, 말

2021.7.28 NAZAZiM QT

Image
7월 28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8 (수) 시18:32-50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과거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기억하고, 다윗처럼 주님을 높이는 예배자가 되자. 1 다윗은 지난 세월 수많은 환난 중에도 그때마다 하나님이 자신을 강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찬양을 돌린다. 능력으로 강하게 하셨고, 그의 길을 완전하게 하셨고(32), 높은 곳에 세우셨고(33), 싸움을 능하게 하셨다고 고백한다(34-35). “나를 크게 하시고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실족하지 않게 하셨다’(35-36)는 고백을 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적 능력도 높이셨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담금질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주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2 전쟁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끊임없이 전쟁을 겪게 하셨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 항상 원수들을 무찌르게 하셨기 때문이다.(37-41). 다윗의 소문이 온땅에 퍼져 이방들이 다윗에게 항복하고 다윗을 섬기게 하셨다(43-45). 계속되는 전쟁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다윗왕도 없었을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심은 그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임을 기억하자. 3 본 시편의 마지막 부분은 ‘여호와는 살아 계시다’(46)로 시작해서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인자가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 있으리라는 축복으로 끝난다(50b). 국력이 약해지면 쉽게 침략당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원수엥게 보복하시고, 이방을 복종하게 하시며, 악한 자들에게서 구원해주신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다윗은 확신했다(47-48). 고난이 오히려 복의 기회임을 아는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본 시편을 마친다(49-50).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

2021.7.27 NAZAZiM QT

Image
7월 27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7 (화) 시18:20-31 다윗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었지만, 분명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의로운 왕의 모델로, 더 나아가 메시아를 예표하는 인물로 세워질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어떤 점을 보시고 그를 기뻐하시고, 이렇게 큰 영광을 허락하셨을까? 1 시인은 앞선 구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셔서 구원을 베푸셨다고 노래했다(19).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신 이유가 그의 의로움 때문이었다(20a, 24a). 즉 하나님의 도, 규례, 율례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21-22). ‘의’의 반대말인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비록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가증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고(삼하11장), 인구조사를 강행해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삼하24장).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 앞에 겸손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했을 뿐 아니라 징계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을 하나님은 의로움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알고 순종해야 한다. 2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태도를 가졌다. 악인이 번영을 누리는 것 같고,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 것 같아도,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보응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25-27).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도망자로 살아갈 때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다(28).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자신보다 강한 적들과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29-30).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반석이 되어 주신다(31). 나 혼자 말씀대로 살다가 손해 보지는 않을까 두려워 결단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이 반드시 주를 믿고 신뢰하는 자들을 지키신다는 믿음을 잊지 말자. 주님, 진정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의 비결이 말씀대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임을 깨닫고, 주를 신뢰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2021.7.26 NAZAZiM QT

Image
7월 26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6 (월) 시18:1-19 시인 다윗은 지난날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했기에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사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했던 다윗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를 살펴보자. 1 다윗은 사망의 올무가 자신에게 이르렀다고 말하면서 죽음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누구든지 죽음의 상황 앞에서 살기 위해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구원을 호소하느냐가 중요하다. 헛된 우상에게 구원을 호소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이 있었기에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구원을 받았다. 바벨론에게 멸망한 유다 백성 중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집트를 의지하며 그리로 피했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렘42:16-17). 우리는 환난 중에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을 경험해야 한다. 2 다윗이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임재하셨음을 고백한다. 천지가 진동하고, 우박과 불이 떨어지고, 번개로 대적들을 흩으셨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다고 묘사한다. 창조주의 영광과 능력을 묘사한 것이다. 우리가 사망 권세의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라고 고백한다. 이는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들로, 하나님만이 자신을 지키시고 구원하실 수 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해보자. 3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사망 권세 아래 잡혀 영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생명의 길이 되셨다.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은 스스로 죄의 사슬을 끊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주님이 구원의 길이 되신 것이

2021.7.24 NAZAZiM QT

Image
7월 24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4 (토) 시16:1-11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도 어려운 일을 겪는다. 사실 어려울 때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성도와 불신자가 구별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고난을 훌륭하게 극복하는 시인 다윗을 만나보자. 1 고난 속에서도 다윗은 자신을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주께 피한다고 고백한다(1). 주님만이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은(2), 세상에서 문제 해결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 집중했다는 뜻이다. 성도에게는 성도들과의 긴밀한 교제에서 즐거움을 얻지만,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괴로움이 있다(3-4).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우리는 기도의 자리를 찾아야 하고, 믿음의 지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영적 위로를 얻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2 우리가 경험하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사실 세상의 헛된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산업, 분깃이므로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며(5),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고백한다(6). 아마 밤마다 말씀을 묵상했고, 심령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것 같다(7). 밤마다 QT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할 수 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면 마음이 흔들리지않고 평안을 누리게 된다(8). 이미 우리에게 하늘의 복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주어졌음을 말씀을 통해 늘 확인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더 임할 것이다(빌4:7). 3 시인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생명까지도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10).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도를 부탁하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기쁨과 확신의 찬양을 올려 드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9-10). 하나님을 찾을 때 생명의 길을 발견하고, 하늘에 속한 충만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을 누린다(11). 기도할 수 있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고, 성령으로 연합된 지체들이 있다. 이 놀라운 권능과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지혜다.

2021.7.23 NAZAZiM QT

Image
7월 23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3 (금) 시15:1-5 연장자나 지위가 놓거나 존경받을 만한 사람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기 마련이다. 온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인 하나님을 뵈올 때에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1 시인은 주의 ‘장막’과 ‘거룩한 산’에 예배하러 올 자격이 있는 자가 누구냐는 질문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그 자격에 대해 정직, 공의 진실을 제시한다(2). 하나님은 제물이나 화려한 의식이 아니라 정결하고 죄가 없는 마음과 영혼을 요구하신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종교적 의식을 원치 않으셨다. 우린 무엇보다 먼저 우리 내면을 정직과 공의와 진실로 가득 채워야 한다. 2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한 마디로 경건한 자인데, 이 경건은 개인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포함한다. 이웃에 대해 바른 마음이 없으면 정결한 영혼을 가질 수 없다(3).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들까지 존중하는 경건은 아니다(4a). 또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웃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마5:24). 믿음의 지체들과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과 본을 끼쳐야 한다. 3 하나님 앞에 정결한 자는 이기적인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을 강조한다(4b-5a).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가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포한다(5b). 세상이 비록 정반대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자는 오히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바로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주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변화된 삶인 것을 깨닫고 정결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축복하소서!  

2021.7.22 NAZAZiM QT

Image
7월 22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2 (목) 시14:1-7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시인은 고발하지만, 사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신이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일상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하나님이 자기 행위를 보고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1 시편이 기록되던 시대는 공적으로 무신론을 이야기했다가는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때도 많았다.  시인은 그런 자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칭한다(1a). 사람이 부패하고 가증한 행위를 하고,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한가지,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1b).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오면 경건해 보여도 정작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지 의심가는 사람들이 왜 없을까.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이 어떻게 평가하실지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2 다윗은 권력자들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떡 먹듯 내 백성을 먹는다’고 탄식하는데, 이는 미가 선지자도 사용했던 비유로(미3:3), 백성의 어려움을 보면서도 수탈하며 자기 배를 불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짓밟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6). 이런 행위가 무지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두렵움에 떨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5).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크든 작든,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 주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7.21 NAZAZiM QT

Image
7월 21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1 (수) 시13:1-6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또 기도 응답의 확신이 없어 쩔쩔 매기도 한다. 다윗의 이 시편을 통해 기도에 대해 좀 더 알아가 보자. 1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 때론 불평을 해도 부모는 들어주고 이해해 줄 것을 알듯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서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 다윗은 왜 자기를 영원히 잊으시냐며, 얼굴을 언제까지 숨기실 것이냐고 직설적으로 여쭈었다(1). 또 자기 마음이 번민하고 대적들 때문에 힘든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2).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모든 경험을 통해 받게 되는 고통들을 하나님 앞에 부담 없이 토로해도 된다. 2 우리는 아버지께 무엇이든 요청할 수 있다(요15:7). 다윗은 우선 자기를 생각해 주시고, 응답해 달라고 요청한다(3a). 그리고 지혜를 주셔서 자기 문제를 파악하고 사망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3b). 또 원수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기뻐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4).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 3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고백하고 찬양하겠다고 서약한다(5-6a). 주님께서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다(막11:24). 기도하는 사이 다윗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나 상황의 호전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미 은혜를 베푸셨다고 고백한다(6b). 이는 그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증거다. 우리가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 앞에서 물러날 때는 응답하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찬송하고 감사할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를 응답받을 수 있다. 주님, 무슨 문제든 그대로 기도를 통해 아뢰고, 주께서 주시는 지혜를 기다림을 통해 기도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

2021.7.20 NAZAZiM QT

Image
7월 20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0 (화) 시12:1-8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우리는 각종 정보와 지식과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간다. 수많은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더 필요한 시대다. 시12편을 노래한 다윗의 목소리를 통해, 우선적으로 관심을 둬야할 정보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시편에 자주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은 ‘인자(헤쎄드)’와 ‘진리(에메트)’다. 12편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경건한 자(하씨드)’와 ‘신실한 자(에무님)’이 사라지고 있음에 대한 탁식으로 본 시편의 시작과 끝이 구성되어있다(1, 8).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증거는 언어생활에서 나타난다. 거짓말, 아첨, 가식, 과장 등이야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2). 이런 자들이 잠깐 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3). 하지만 악인들은 지극히 어리석어 거짓이 이길 것으로 생각하며 산다(4). 우리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말씀을 기준하여 거짓을 걸러내고 바른 가르침에 집중해야 한다. 2 경건하게 살아갈 때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거짓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경건한 자들을 두시겠다고 선포하신다(5). 악인들이 아무리 날뀌어도(8), 하나님 말씀의 순결함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은 보호하신다(6-7). ‘흙’으로 상징된 더러운 세상에서 한 번도 아닌 완전수의 일곱 번 정결한 ‘은’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세상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에 흔들리지 않는다. 매일 우리가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세상의 거짓에 후둘리지 않기 위함이다. 주여,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의 처세술이 아닌,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2021.7.19 NAZAZiM QT

Image
7월 19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9 (월) 출40:34-38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 한가운데 계셨듯이,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동일한 언약 백성임을 보여준다. 1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구름이 시내산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성막이 세워지자 자리를 이동하여 회막에 덮이고, 그 가운데 충만히 임했다. 모세가 회막 안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하나님은 온 땅에 충만히 거하시는 분이지만,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기 위해 시내산에 임하셨다. 언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모세가 이스라엘과 시내산에 계신 하나님 사이를 오가야 했다. 언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성막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언약을 통해 성령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산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의 모든 영역에 임재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2 이제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시대가 열렸다. 성막 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을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면 되었다(36-37). 성막이 완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날이 출애굽 둘째 해 1월1일이었는데, 구름이 떠오른 때는 2월20일이었다(민10:11). 약 50일을 더 시내산 기슭에서 보낸 셈이다. 낮에는 구름의 형태로, 밤에는 구름 속에 불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였다(38). 이스라엘처럼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언약이 있다. 모든 어려움에서 지키시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십자가를 통해 확신하면서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주님, 성막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얻던 시절보다 교회 공동체로 더 가깝게 주님을 만나고 섬길 수 있게 하셨으니, 늘 주님과 하나로 연합하여 섬기고 그 복과 은혜를 누리는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7.17 NAZAZiM QT

Image
7월 17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7 (토) 욱40:1-16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첫째달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12:18). 그들은 3개월이 지나 시내산에 도착했고(19:1), 모세사 시내산에서 40일을 두 번 보냈다(24:18; 34:28). 대략 성막 제작하는데 약 6개월이 소요되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듯이, 이스라엘은 6개월 동안 성막의 각 부분을 만들고, 이제 완성의 기쁨을 눈앞에 두고 있다. 1 성막이 세워지는 시점은 첫째 달 초하루로 정해졌다(2). 천지장초에서 하나님께서 ‘혼돈’을 제거하시듯, 아무것도 없는 광야 들판에 공간을 정하고 질서를 세움는 것으로 시작된다. 장막과 뜰의 위치를 잡는 널판과 기둥을 먼저 세워 공간을 구획한 후 덮개를 덮는다. 이후 증거궤를 들이고, 휘장을 가려 지성소를 만들고(3), 상, 등잔대, 금향단을 들여놓고 휘장을 가려 성소를 만들었다(4-5). 번제단과 대야를 설치하고, 뜰의 세마포 장과 휘장을 친다(6-8). 성막의 구조를 통해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의 질서가 이뤄져 있음을 본다.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성막을 두심으로 저들이 창조주께서 함께 계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내가 작고 초라하고, 내 인생이 광야와 같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 인생을 채우시고 의미를 부여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작으나 위대하고, 초라하나 영광스러운 것을 기억하자. 2 성막을 공간적으로 위치시킨 후 성막 안에 들어갈 기물들과 거기서 봉사할 자들이 거룩하게 되어 내부가 채워지는 순서가 진행된다. 금으로 된 기구들에 모세는 먼저 기름을 바르고(9), 뜰에 있는 번제단과 기구들(10), 그리고 대야와 받침대에 바른다(11). 마지막으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제사장으로 세웠다(12-15). 거룩한 자로 구별된 제사장들은 온 세상을 상징하는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로 세워졌듯이, 우리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는 사명을 받았

2021.7.16 NAZAZiM QT

Image
7월 16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6 (금) 출39:32-43 하나님이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막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완성되었다. 1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성막 제작을 마치고(32), 제작한 모든 것을 모세에게 가져왔다(33).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는 없고, 모세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전달하여 율법과 말씀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사람이다. 모세가 기록한 말씀을 통해 모세가 죽은 후에도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는 말씀을 알고 그 말씀에 따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말씀에서 멀어지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2 성막 제작자들은 지금까지 제작한 성막을 이루는 각 부분을 열거하여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33-41). 아마도 이 목록은 이후 레위인들이 성막을 이동할 때에 각 물품을 점검하기 위해서도 편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며, 이 목록이 채워지면 ‘준비 완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천지창조를 다 끝마치신 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안식하셨던 것처럼(창2:1), 이제 이스라엘은 성막을 완공함으로써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3 성막을 제작하면서 ‘여호와께 명령하신 대로”란 말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34:4; 36:1; 38:22; 39:1, 5, 7, 21, 26, 29, 31, 32, 42, 43).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예배 장소를 만들기 위해 이처럼 순종했듯이, 우리도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기 위해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삶이 되도록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살아가게 하소서.  

2021.7.15 NAZAZiM QT

Image
7월 15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5 (목) 출39:22-31 제사장의 에봇 안에 받쳐 입는 겉옷, 속옷, 속바지, 두건, 관, 거룩한 패를 만드는 것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제사장의 의복 제작이 모두 완성되었다. 각 요소들에 담긴 영적 의미가 뭘까? 1 에봇 안에 입는 겉옷은 청색으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는 석류를 수놓았다. 석류(‘림모네’)란 말은 ‘높이다, 올리다’란 뜻의 ‘라맘’이란 어근에서 만들어졌다. 석류를 수놓은 것은 하나님을 높이며 영광을 올린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석류 장식 사이사이에 방울을 다는 것은 성도에 드나들 때 제사장이 죽음을 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28:35). 제사장도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아무리 거룩한 옷을 입고 나가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결코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다 (히7:26). 2 세마포로 속옷과 속바지를 만들어 하체를 가리게 했고, 머리에 쓸 두건과 빛난 관을 만들어 머리를 가리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했다. 특히 관은 제사장 직분의 영화롭고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사53:2)분으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 인간으로 성육신하시고, 또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그 고초를 당하셨다.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만, 주의 영광과 아름다운 제사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3 순금으로 만든 패에 ‘여호와께 거룩’이란 문구를 새겨 관 앞에 고정시켰다. 제사장의 모든 복장의 본질적 의미는 여호와께 거룩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4:15-16). 우리가 비록 연약하여 넘어지지만 우리를 너무나 잘 이해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언제든

2021.7.14 NAZAZiM QT

Image
7월 14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4 (수) 출39:1-21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할 때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했다. 제사장 직분의 거룩함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 직무가 특별함을 나타낸다. 1 매우 세세한 지침까지 하나님은 알려주셨고, 그 말씀에 따라 옷을 만들었다. 이 옷이 계속 ‘거룩한 옷’으로 불리는 이유는 제사장이 거룩한 성소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때 입기 때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이 거룩한 옷을 입고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 역시 날마다 거룩함으로 옷 입어야 한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거룩함의 옷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주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우리의 모든 더루움을 덮어주기 때문이다. 2 제사장이 입는 옷 가운데 에봇은 제일 겉에 입는 옷이다. 금색, 청색, 자색, 홍색실, 고운 베실로 만들었고, 앞판과 뒷판을 어깨끈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띠를 허리에 둘렀다. 어깨끈에는 이스라엘 자손 모두를 상징하는 12지파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를 달았다. 그런데 훗날 종종 이 에봇이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삿8:27; 17:3-5; 18:14, 17-20). 에봇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용될 때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에봇도 그저 물건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해야 한다. 우리 신앙의 모든 외형적 행뒤도 마찬가지다. 행위 가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만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깨어지면 어떤 것도 거룩한 것이 될 수 없다. 3 흉배는 에봇과 같은 재질의 정사각형 모양 천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12개의 보석을 고정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의 관계에 있음을 뜻한다 (28:29).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 혈통적으로 12지파가 아니지만 예수 안에서 언약 백성이 되었고, 그분 안에서 우리의 이름이 새겨졌다

2021.7.13 NAZAZiM QT

Image
7월 13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3 (화) 출38:21-31 성막을 건축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하지만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미 많은 것을 공급해 주셨다. 성막 건축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셨다. 백성 또한 즐거운 마음과 자원함으로 아낌없이 헌납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뭘까? 1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 많은 재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속히 내보내기 위해 귀금속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성막 건축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애굽 사람들을 통해 준비시키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단지 그것들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의 생명도, 재능도, 소중한 관계도, 약속의 땅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성도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청지기임을 인식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헌금할 때도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 주인님께 책망받지 않으려면 우리 소유를 어떻게 주를 위해 사용해야 할지 늘 조심해야 한다. 2 성막 건축에 든 비용을 오늘날의 갑어치로 환산해 보면, 천문학적 금액이 될 것이다. 당시에도 값비싼 것들이다. 그런데 백성은 이 많은 물품을 넘치도록 헌납했다. 너무 많이 가져오는 바람에 제지시켜야 할 정도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도 남김 없이 하나님뻬 바쳤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여전히 자신들이 사용할 재물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넉넉히 주신다. 심지어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이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절대로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인색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복을 넘치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작은 헌신을 기뻐 받으시는 주께

2021.7.12 NAZAZiM QT

Image
7월 12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2 (월) 출38:1-20 회막문을 지나면 맨 먼저 보이는 것이 번제단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대야(물두멍)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린 제사장은 반드시 이 대야에서 손발을 깨끗하게 씻어야 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번제단과 대야의 영적 의미는 뭘까? 1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제사장은 가장 먼저 번제단을 거쳐야 했다. 번제단의 중요한 특징은 피와 불과 뿔이다.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의롭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죄인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면 그것을 번제단 옆에서 잡고, 그 피를 번제단에 뿌려 죄 사함을 받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친히 준비하신 제물이시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덮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사 과정을 거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죽음을 피할 길이 있다. 어떤 죄인이라도 그 번제단의 뿔을 붙잡으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뿔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누구든지 혜수님께 나아와 그분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 2 대야는 제사장이 물로 손발을 씻는 곳이다. 손발을 여기서 씻지 않고 성소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했다. 제사장이라도 성결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다. 죄인인 우리는 누구든지 죄 씻음의 과정이 필요하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나 죄 씻음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의 죄씻음으로 온전해질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다. 매일의 일상에서 크고 작은 죄들을 지어 더럽혀지는 존재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정결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요일1:9). 우리가 거룩함을 잃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죄에 대해 단호하고 분명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길 소망하며 기도하자.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2021.7.10 NAZAZiM QT

Image
7월 10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0 (토) 출37:1-16 브살렐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성막 안에 증거궤와 진설병 상을 만들었다.  증거궤와 진설병 상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1 싯딤나무에 금을 싸서 궤를 만들었다. 이 궤는 십계명 두 돌판을 담고 있기에(25:16) ‘증거궤’라고 불렀다(26:33). 이 증거궤를 ‘속죄소’라고도 불렀는데, 문자적으로 ‘가리다, 덮다’란 의미를 갖는다. 증거궤를 덮개로 덮는 다는 것은 ‘죄를 덮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덮어서 보이지 않게 하심으로 용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인 이 속죄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25:22). 이처럼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실 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특권이다 2 브살렐은 동일한 방법으로 싯딤나무와 순금을 사용해서 상을 만든다.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떡을 진열해 놓는 상(25:23-30) 위에 제사장은 안식일에 (레24:8) 열두 개의 떡을 두 줄로 상위에 놓아 두여야 했다(레24:5-6). 상을 운반할 수 있도록 ‘고리’와 ‘장대’도 만들었다. 접시와 숟가락, 덮개와 붓는 대접도 만들었다.  진설병(떡)이 갖는 의미는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 70여명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신 것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진설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누리는 놀라운 은혜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임재하셔서 친밀하게 교제하시는 모습이 바로 진설병 상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고 사하셨으며,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는 모습을 통해 임마누엘의 놀라운 은혜를 나태내 주셨으니,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2021.7.9 NAZAZiM QT

Image
7월 9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9 (금) 출36:8-38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헌납을 통해 성막 건설이 시작됩니다. 회막 제작은 열 폭 휘장과, 성막의 골조, 그리고 성막 문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모든 구조와 도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뤄졌으며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성막을 덮었던 덮개와 싯딤나무로 만든 널판의 의미를 살펴보자. 1 성막 덮개는 네 종류로, 가장 안쪽에는 청색 자색 홍색 베실로 그룹을 아름답게 수놓은 덮개를 씌웠고, 그 위로 염소 털, 붉게 물들은 숫양 가죽, 해달 가죽으로 만든 덮개들을 차례로 덮었다. 외부 덮개로 사용된 해달 가죽은 외부에서 볼 때 성막을 일반 장막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평범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안쪽에는 화려하고 조화로운 그림으로 천상의 아름다움이 표현되었다. 교회 역시 겉으로 보기엔 보잘것없고 연약해 보인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그러나 그 모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교회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이 넘친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각자 맡은 소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겉모습만 화려하고 정작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개개인이 더욱 깨어 기도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자.  2 널판은 싯딤나무를 재료로 모두 48개가 제작되었다. 널판마다 두 개의 은 받침을 만들어 그것으로 널판을 고정했다. 또 모든 널판을 말씀대로 금으로 씌웠다. 널판에 사용된 싯딤나무(아카시아 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는 휘어지고 구부러져 자란다. 한마디로 볼품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싯딤나무를 잘 깎고 금까지 씌워 성막을 만드는 귀한 재로료 사용하라 하신다. 이 싯딤나무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는 죄인으로 초라하고 소망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택하시고

2021.7.8 NAZAZiM QT

Image
7월 8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8 (목) 출35:30-36:7 자원하는 마음으로 많은 예물을 드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장소인 성막을 세우는 일을 구체적으로 행하도록 지시하신다. 이 성막을 완성하려면 기수로가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헌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일에 헌신할 사람을 찾으신다. 우리가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배울 교훈은 뭘까? 1 성막 건축에 필요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부르셨다. 그중에는 브살렐, 오홀리압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성령으로 채우시고,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나님의 일이 이뤄진다. 하나님의 일은 단순히 사람의 노력과 수고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주시는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사역의 결과에 있어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부르시고 당신의 능력을 부어 주셨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자원하는 심령과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 2 성막을 만드는 일은 수많은 작업과 정교한 솜씨가 동원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시고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기술과 지혜를 나눠 주셨고, 그들이 모두 협력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 연합하고 하나 되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도 창조 사역과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사역에서 항상 협력하셨듯이, 당신의 백성에게도 그와 같은 온전한 연합과 협력을 기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할 때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사탄은 연합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게 방해한다. 공동체의 연합 가운데 사탄이 틈타지 못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협동이 필요하다.

2021.7.7 NAZAZiM QT

Image
7월 7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7. (수) 출35:20-29 성막에 관한 말씀을 전달받은 백성들은 곧 자신들의 헌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다. 1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백성들은 자신의 장막으로 물러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말씀을 듣고 물러간 후,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따라 실천할 때 비로소 순종이 이뤄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을 듣고, 삶의 모든 자리에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과 직장 등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2 하나님은 예물과 헌신을 준비시키시면서 마음에 원하는 자 곧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예물을 바치게끔 하셨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자원하는 자들이 성막과 제사장 예복의 재료로 쓰일 예물을 가지고 나왔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데는 남녀 구분이 없다. 각기 가진 형편과 상황에 따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일에 참여했다. 하나님의 일은 몇몇 부유하고, 힘있는 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능력 안에서 함께 참여함으로 세워져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찮은 일도 없고, 하찮은 사람도 없다. 모두가 존귀한 사역자들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임을 알고 기쁘게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뤄지는 것을 경험하게 하소서!

2021.7.6 NAZAZiM QT

Image
7월 6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6 (화) 출35:1-1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번째로 두 돌판을 주셨고, 그들과 언약을 새롭게 맺으셨다. 또 모세를 통해 당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막을 세울 것을 준비시키신다. 1 모세는 장막을 세우는 일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안식일 명령(31:12-17)을 다시 선포하고 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세상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정체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특별한 삶의 규례다. 어쩌면 매우 불편하고 지키기 힘든 규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례였다. 일은 인간이 생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하나님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해서 얻은 대가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규례다. 2 모세는 안식일 규례를 선포한 후, 성막을 짓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바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했다. 이 명령은 강제로 부담시키지 않으셨음을 발견한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예물을 바치라고 하셨다. 앞서 25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으라’고 하셨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아시기에, 우리가 기쁨과 진실함을 담아 드릴 때,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신다. 3. 모세는 성막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 사람들을 구했다. 이 일에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필요했다. 이런 재능을, 성경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만을 이야기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재능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인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 각자 달라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공동체 안에서 쓰인다

2021.7.5 NAZAZiM QT

Image
7월 5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5 (월) 출34:27-35 금송아지 사건으로 깨어진 언약이 회복 국면을 맞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겠다는 저주는 은혜로 함께하시겠다는 축복으로 바뀌고 있다. 1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들을 기록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언약을 세우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모세가 깨뜨려 버린 십계명을 다시 기록해서 주신다. 40일 동안 금식하며 감당한 것은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했던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2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를 본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다. 모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백성은 자신들의 범죄와 죄악의 가책을 느껴 두려워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자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사람들이 우리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알아보길 소망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후에는 모세는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3:13에서 “모세가 없어질 것의 결과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수건을 썼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모세의 광채가 한시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그 광채의 영광을 자신에게 돌릴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구속의 은혜를 통해 모두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해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을 축복을 허락하셨다 (고후3:18). 매순간 그리스도의 해처럼 빛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

2021.7.3 NAZAZiM QT

Image
7월 3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3 (토) 출34:1-9 하나님은 깨진 계명을 다시 주시려고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신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다. 언약을 갱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우리는 그분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당신의 성품을 모세 앞에 선포하신다. 백성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약속에 근거하여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다. 그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때로 우리는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우릴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백성이 계명을 지킴으로 참된 생명과 자유를 얻기 원하신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쁘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인자하셔서 죄악을 용서하시지만 끝까지 자기 죄를 돌이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보응하신다. 죄의 영향력은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삼사 대까지’란 표현으로 강조하신다.  우리 행실의 결과가 나타나도록 선악의 원리를 하나님이 세우셨다. 이 원리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봐야 한다. 우리를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에 비춰 보고 다시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주님, 주께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주신 계명 속에서 인자히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나며, 날마다 동행하며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소서!  

2021. 7.2 NAZAZiM QT

Image
7월 2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2 (금) 출33:12-23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는 중보자의 위치에서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 다시 간구했다. 1모세는 하나님이 과거에 자신을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령하실 때 모세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던 말씀(3:12)을 붙들고 하나님께 담대히 요구했다. 하나님은 큰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끝까지 붙잡아 주시길 요청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채로 가나안 입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모세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신실함으로 응답하시고, 친히 이스라엘과 함께 갈 것과 모세에게 쉼을 주실 것으로 위로해 주셨다. 2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앞으로도 계속 동행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하나님의 동행 없이는 차라리 그곳에 올라가지 않게 해 달라고도 간청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는 유일한 이유가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있다는 사실을 모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됨은 오직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있다. 도덕적 자질이나 종교적 의식 혹은 외적 행실만이 사람을 그리스도인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만민 중에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3 모세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간구였다. 이에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다. 그의 간구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증거로,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온전하신 영광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당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다움을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목숨 걸고 간구했던 모세처럼,

2021.7.1 NAZAZiM QT

Image
7월 1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1 (목) 출33:1-11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가나안을 향해 다시 행군이 시작되지만,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은 이스라엘과 동행하기를 거부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엄중한 선포 앞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회개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 준 모습을 통해 참된 회개에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살펴보자. 1 이스라엘은 그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했다. 자아 속에 있던 세속적 욕심과 자기중심적 사고의 발로였다. 애굽에서 자신들이 가져온 물질에 의지하여 여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삶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단호한 결정(3)을 듣고서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회개의 표현으로 모든 장신구를 벗어 버렸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붙들고 있었던 세속적 가치관과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 버리고자 결단한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에 놓여 있던 우상을 제거하는 행위를 동반한다. 참된 회개는 세상에서 익힌 옛 습관과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다. 2 참된 회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회막으로 갈 때 모두 일어나 자신들의 장막 문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회막에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으로 임하자 그 영광스러움을 보고 경배했다. 회개는 이처럼 죄악에 물든 삶의 자리를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포함한다.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 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의 모습인 것이다 (살전1:9). 하나님은 위가 당신의 거룩하심을 닮아갈 대 그 모습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참된 회개는 단지 죄에 대해 슬퍼하는 감정에만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변화된 삶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결심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2021.6.30 NAZAZiM QT

Image
6월 30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30 (수) 출32:25-35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다 죽을 때 회개하고 천국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또한 그 대가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혹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아론의 변명(22-24)에서 알 수 있듯이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지 못했다. 죄가 드러나도 말도 완 되는 핑계를 대며 모세 앞에서 통제 불능 상태였다. 결국 원수들 앞에 조롱거리 밖에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25). 이에 백성의 죄를 인지하고 하나님 편에 설 자를 찾았는데, 레위 자손들이 모두 모세 편에 섰다(26). 우상숭배와 관련된 자들 3,000명이 그날 죽임을 당했다(27-28). 형제 동족을 죽이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이처럼 철저하게 죗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29).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방자히 행하는 것이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란 말씀을 되새기며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2범죄자들이 색출되고 죽임을 당했지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속죄’가 될까 하여 산에 올라가,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의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는 필사적인 기도를 드리며 용서를 구했다(31-32). 하나님은 이들의 죄를 사해 주시겠다고 즉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세에게 돌아가 이스라엘을 이끌라고 하신다(33-34). 아무리 모세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중재한다 해도 죄로 인해 깨어진 언약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았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복음 앞에 ‘다시는 죄 짓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죄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