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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pril, 2021

2021.4.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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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9 (목) 출10:21-29 어둠은 사망, 사탄의 권세를 상징한다. 반대로 빛은 생명,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빛이 비취면 어둠은 물러간다. 애굽에 임한 어둠의 재앙을 보면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야 할 성도의 사명을 다시금 깨닫는다. 1 애굽왕 바로는 태양의 신 ‘호루스’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태양을 하늘에서 지워 버리셨다. 조금 어두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빛이 아예 없어지는 완전한 흑암이었다(21). ‘밤’이 아니라 창세전 상태였던 ‘흑암’을 뜻한다(창1:2). 3일동안 지속되어, 자기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22-23).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재앙이며, 태양신의 화신이라는 바로의 정체성을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 태초에 빛을 만드신 분이 누구신지 분명히 드러내는 증거였다. 2 자신의 존재 자체에 치명타를 입었지만 바로는 완전히 항복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보내겠다고 하지만 양과 소는 두고 가라고 한다(24). 이스라엘에 대한 소유권을 놓치 않겠다는 마음이다.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을 오히려 바로가 주어야 한다고 모세는 말하면서(25), 이스라엘 가축은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26). 남은 선택지는 항복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바로의 모습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3 모세의 이런 말에 바로는 격분하며 모세를 쫓아내면서, 자기 얼굴을 다시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위협했다(28). 그런데 사실 애굽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흑암에 싸여 있다.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바로의 얼굴을 모세도 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실 그를 이 끝없는 흑암에서 구해 주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결국 바로는 하나님의 앞에 항복하기를 거부함으로 스스로를

2021.4.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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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8 (수) 출10:12-20 모든 생명체는 먹을 것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와 직결된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산다. 메뚜기 재앙을 통해 생명의 창조와 유지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1 우박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애굽에, 동풍을 타고 메뚜기 떼가 온 땅을 덮어 남은 작물들을 모두 다 먹어 치우는 재앙이 임했다. 순식간에 애굽의 모든 양식이 사라졌다. 먹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시는 장면이다.  메뚜기 떼로부터 곡식과 채소 나무를 지키는 신 ‘민’을 섬기던 애굽이 메뚜기 재앙을 당하고 나서 바로는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면서 죽음 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모세의 기도로 애굽에 메뚜기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은 메뚜기 재앙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하나님의 재앙인 것이다. 다시 완악하게 되어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기 않으려는 바로를 보면서, 완악함은 심판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임을 깨닫는다.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지혜가 우리를 살린다. 2 부족한 것 없이 누렸던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먹고 사는 문제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백성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니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6:3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로 그들을 먹이시고 생명을 지키셨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생존에 대한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된다(마13:22).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재물을 좇지 말고, 재물을 주기도, 취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케 하소서!

2021.4.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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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7 (화) 출10:1-11 모세가 처음 바로를 만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스라엘을 보내라 요구했을 때 바로는 ‘나는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라고 했다(5:2). 이제 바로는 여호와를 뼛속 깊이 알게 되었고, 여호와를 조롱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본문은 이야기 하고 있다. 1 바로와 신하들의 완강한 반대에 출애굽에 계속 미뤄지지만, 결코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재앙과 용서를 통해 확실한 하나님의 표징을 보여주고(1), 이스라엘 후세대들에게도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2). 모든 것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은 완성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2 다시 모세를 보내셔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명령을 전한 후, 만약 거절하면 모든 지면을 덮는 메뚜기 떼를 보내겠다고 경고하신다(4-6). 한 번 지나가면 푸른 것이 하나도 남지 않는 메뚜기 떼의 두려움을 애굽인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하들은 즉시 이스라엘을 보내 주라고 요구하면서 애굽이 이미 망했다고 한탄한다(7). 이제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다. 아직도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 저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3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타협안을 내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해 남녀노소와 양과 소, 즉 모든 재산까지 데리고 나가겠다고 선언한다(9). 가족을 볼모로 잡아두고 장정만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은 애굽을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 후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임을 말씀하신다(10-11).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들 중에 하나님을

2021.4.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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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6 (월) 출9:27-35 우박 재앙은 이전의 여섯 재앙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재앙이었고, 재산 피해뿐 아니라 인명 피해까지 무수히 발생시킨 재앙이었다. 이렇게 두려운 재앙 앞에서 바로와 그 신하들의 반응과 하나님의 반응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1 지금까지 고압적 자세를 유지했던 바로가 우박 재앙 후에는 모세와 아론 앞에서 자기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자신과 애굽은 악하다고 인정하며(27), 이스라엘을 내보내겠다고 약속한다(28). 그러나 모세는 파리 재앙을 끝낼 때 자기가 제시한 타협안조차 지키지 않았던 바로가 우박이 그친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미리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절대로 자기 인생의 왕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악함을 아시면서도 자비로우시기에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2 당시 보리와 삼은 우박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밀과 귀리는 자라지 않아 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한다(31-32). 이는 하나님이 애굽을 치셨지만 아주 멸하지는 않으셨으며, 애굽에 양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면서도 그들에 대한 자비를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박이 그침과 동시에 바로와 신하들이 같은 마음으로 약속을 어긴 것은, 그들 가운데 의로운 자가 없었다는 뜻이다(34). 하나님이 악인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지만, 그 잠깐의 자비에 안도하여 계속 하나님을 멀리하다가는 결국 영원한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주님, 하나님께 죄 용서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죄를 멀리하는 거룩을 유지하게 하소서!

2021.4.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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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4 (토) 출9:1-12 1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바로에게 하나님은 애굽 백성에게 속한 가축들이 죽게 되는 5번째 재앙을 예고하신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이 소유한 가축이 전염병에 걸려 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소유의 가축은 구별하셔서 무사하게 하셨다. 전염병도 얼마든지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가 된다. 당시 가축은 재산이다. 가축이 모두 죽는다는 것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짐을 의미한다. 부유함을 자랑하던 애굽의 소유를 치신 것이다. 여전히 강퍅한 바로에게 6번째 재앙이 예고되었다. 악성 종기가 애굽 사람들과 모든 짐승에게 생겨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10-11). 2 하나님은 재물을 주기도 하시고 취하기도 하시는 세상 만물의 진정한 주인이시다. 애굽은 재물을 섬기고 숭배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탐하는 것은 우상 숭배의 죄다 (골3:5).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 내보내기를 거절한 이유도 재물에 대한 욕심이다. 노동력은 애굽의 큰 자산이었다. 어떻게 보면 재물을 의지하는 탐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죄에 대해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잠11:28). 애굽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동일한 교훈이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그들의 소유에 복을 내리시지만,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면 그 재물까지 빼앗기게 된다는 교훈이다(잠8:21). 재물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섬기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 주님, 영원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잠시 허락된 이 땅의 재물을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사용하는 지혜와 믿음과 담대함을 주소서!

2021.4.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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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3 (금) 출8:25-32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는 파리가 들끓는 더러운 땅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는 모세에게 타협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타협을 통해서도 거룩한 목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1 애굽이 파리 떼로 초토화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동력으로 붙잡아 두려는 바로는 모세에게 애굽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타협안을 제시한다(25). 하지만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려면 바로를 비롯한 애굽 신들을 향한 숭배를 철저히 거부해야만 가능하다(26). 성도가 신앙을 지키며 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렇듯 교묘한 타협안이 끊임없이 우리를 흔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내가 편한 방법으로 섬겨도 된다는 타협이다. 신앙도 적당히, 그러나 세상에서도 손해보지 않고자 적당히 양쪽을 다 붙잡으려는 시도다. 이런 타협은 어느새 우리를 신앙의 길에서 반드시 멀어지게 한다. 2 바로는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오라고 요구하면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28).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도 섬기고 바로도 섬기는 혼합신앙을 가지라는 암시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 혼합신앙을 추구하는 바로 같은 자는 절대로 우리 크리스천들의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3 모세는 아마도 바로의 말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파리를 완전히 물러가게 해 주셨다(30-31). 하지만 바로는 즉시 자기가 제시한 타협안마저 지키지 않았다(32).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타협안을 받아들이거나 우리도 세상이 하는 대로 한다는 식으로 대처해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주의 백성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진실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주님,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일이 없도록, 확고한 믿

2021.4.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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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2 (목) 출8:16-24 이제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을 재앙으로 변화시키신다. 이제부터는 애굽의 마술사들이 재앙을 모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하신다. 1 바로가 약속한 것(15)을 지키지 않자, 3번째 ‘이’ 재앙은 경고도 없이 바로 임했다. 애굽 사람들은 땅을 ‘게브’라는 신의 몸으로 생각했고, “밀과 보리는 ‘게브 신’의 등에서 자란다’”는 고대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땅의 먼지가 이로 변해 애굽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상황이 벌어졌다. 마술사들도 이 재앙을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한다(18-19).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마음을 바꾸지 않고 더 큰 재앙을 향해 달려가고 만다. 생명에 필요한 양식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진리를 거부하면 결국 그것을 다 빼앗기게 된다. 2 바로가 하나님의 경고를 듣기를 거부하면 파리 떼가 애굽 온 땅을 덮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20-21). 애굽 신들 가운데 ‘딱정벌레’ 모양의 ‘케프리’를 하나님이 조롱하신 것이거나, 파리들의 신 ‘바알세붑’을 하나님이 치시는 장면이다. 파리 재앙으로 당이 황폐해진 만큼 그 피해는 극심했을 것이다(24). 그런데 하나님은 이때부터 애굽 온 땅과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을 구분하시고 고센에는 재앙이 없게 하심으로 주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셨다 (22-23).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바로와 애굽 모든 사람들로 알게 하신 것이다. 바로가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수록 그는 스스로 애굽을 보호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낼 뿐이다. 이같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결국 패배한다. 주께서 우리를 풍요케 하셨는데, 혹시 우리도 애굽사람들처럼 돈과, 학벌과 직장의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잊지 말게 하소서!

2021.4.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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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1 (수) 출8:1-15 나일강은 애굽인들에게 생명과 번영을 상징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일강을 피로 만드시고, 또 여기서 올라온 개구리 떼를 통해 생명과 번영의 상징인 나일강이 오히려 저주와 재앙이 됨을 보여 주신다. 1 나일강의 수호신 ‘크눔’의 아내 ‘헤케트’ 여신도 애굽사람들은 신으로 섬겼는데, 헤케트의 얼굴이 왕성한 번식력으로 알을 많이 낳는 개구리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런 바로와 애굽사람들에게 그들이 섬겼던 개구리가 끔찍한 것이 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5-6).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세속적 번영이 오히려 저주와 멸망의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주셔야 번영도 진정한 복이 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적절한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2 바로의 마술사들도 개구리들이 올라오게 했지만, 정작 개구리를 나일강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했다. 결국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7-8). 하나님은 온 땅을 개구리로 뒤덮으실 수도 있고, 나일강에만 머물게 하실 수도 있는 주권자심을 기억한다면, 다산과 풍요의 상징 개구리가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날 때, 즉 끝없이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다 보면 결국 재앙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 재앙을 통해 사람들이 다산과 풍요를 갈망해 개구리 여신을 섬긴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주신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다. 3 모세가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개구리를 집, 마당, 밭에서 나와 죽게 하신다(12-13). 무더기로 쌓였으니 얼마나 많은 개구리가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14). 풍요의 여신이 그 땅에 다산과 번영이 아니라 땅을 더렵혀 악취를 풍기게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또다시 번복하고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으려는 애굽 앞에 마술사들도 따라할 수 없는 강력한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2021.4.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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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0 (화) 출7:14-25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 중 첫 번째 재앙, 곧 나일 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은 이 재앙을 통해 바로와 모세에게, 또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일까? 1.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라고 명령하시지만, 그에 앞서 이 첫 번째 재앙을 경험하더라도 바로는 마음이 강퍅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을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14). 사실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처음 부르셨을 때부터 예견된 바로의 행동이었다 (3:18-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 똑같은 말을 열 번이나 반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보게 하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했고, 이전에도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과 (4:1-5; 7:1-13)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는 사건을 경험했었다 (4:9).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가지고 (15) 다시 한 번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바로 앞에 담대하게 서게 하신 것이다. 우리도 때로는 무모해보이고 어차피 안될 것 같은 일을 하라는 말씀의 명령을 받는다. 우리는 그 일이 쉽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전에도 이미 경험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기억하며 세상 앞에 하나님을 전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은 이 재앙을 통해 애굽 사람들이 의지하던 나일 강과 그들을 부유하게 한다고 믿었던 이방 신의 허상을 폭로하신다. 나일 강과 온 땅의 주인은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여호와 한 분이심을 이 기적을 통해 천명하신 것이다 (16-17). 이 사건을 통해 바로와 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배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바로는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22-23).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온 열방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2021.4.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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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 9 (월) 출7:1-13 바로에게도 거절당하고 동족들로부터 원망까지 들으며 낙심했던 모세를 하나님은 힘과 용기를 주셔서 새롭게 일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을 묵상해보자. 1 하나님은 모세가 바로 앞에서 신적 존재가 되게 하시고, 아론은 그 신의 대언자가 되게 했다고 선언하신다 (1-2; 4:15-16). 즉, 바로가 왕이라면, 모세는 신인 셈이다. 제 아무리 최고 강대국의 왕이라 해도 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듯, 바로는 모세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구원해 내실 것이다(3-4).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쉽게 풀려나지 않는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애굽을 심판하시고,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리려 하심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여러 어려움을 당하고, 일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주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됨을 믿으면 마음에 평강이 임한다. 2 모세와 바로의 첫 번째 대결이 이뤄졌다. 하나님은 바로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라고 하셨다(8-9; 4:2-4). 하지만 애굽의 마술사들도 같은 일을 했다 (10-12a; 딤후3:8). 불신자들 가운데도 꽤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지식, 능력보다 훨씬 강하다. 아론의 지팡이가 변한 뱀이 마술사들의 뱀들을 삼켰다(12).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때로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당장 무시당하는 것 같고, 의도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주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언젠가 하나님이 뜻하시는 열매가 반드시 맺힌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순종이다.  끝까지 순종으로 결단하며 나아가자! 주님, 주어진 상황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께 오직 순

2021.4.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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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7 (토) 출6:2-13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더 혹독한 상황으로 내몰린 듯하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내부, 그 믿음을 바로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1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고 여호와라는 이름은 알리지 않으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주시고, 이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3-4, 7-8). 조상들과 맺은 연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완성될 것이며(4, 7). 백성의 신음을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들을 건져 내실 것이다(5, 6). 여호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언약을 주셨다. 바로 성경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겠다는 엄숙한 약속을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이 주신 이 약속들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 2 이스라엘은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9). 가혹한 노역 때문에 하나님의 이런 맹세마저도 달갑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이 자기 말을 안 들었는데 어찌 바로가 듣겠느냐며 탄식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정작 아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게 하셨다(13).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다. 누가 믿지 않는다 해서 그 일을 진행하지 못할 하나님이 아니시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역을 계속 진행하셨고, 결국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이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며,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조건과 환경을 먼저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순종으로 그 길을 따르게 하소서!

2021.4.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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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6 (금) 출5:15-6:1 아무리 좋은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해도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걸까 불평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강권으로 순종하고 있는 모세에게도 어려운 일은 있었다. 1 외적인 공격: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이스라엘은 오히려 더 심한 노역을 감당해야 했다. 이스라엘 대표들이 바로에게 가서 항의했다(15-16). 바로는 이들을 게으름의 증거라고 무시하면서 가서 벽돌을 만들라고 명했다(17-18). 바로의 말은 전형적인 세속의 사고방식이다 - ‘교회 가서 예배할 시간이면 차라리 일을 더 하라’.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태도는 분명한 죄다. 이 일로 바로는 하나님께 유죄판결을 확실히 받았다. 세속적 가치관에 담대히 맞설 수 있는 믿음을 길러야 한다. 2 내적인 낙담: 이스라엘 반장들은 바올의 몰상식한 억지 요구를 듣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바로에게 맞설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 때문에 자신들이 바로의 미움을 받아 죽게 되었다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는 미성숙한 모습을 보인다(21). 우리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어려움이 닥치면 불평을 늘어놓으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도 하나님의 비전 때문에 당연히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우린 알아야 한다. 남을 비난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 되어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3 안팎으로 어려울 때, 우리는 심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모세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기도가 바로 극복의 묘수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학대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 주의 이름으로 바로에게 말씀을 전하게 했기 때문이라며(5:22-23),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솔직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이

2021.4.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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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5 (목) 출5:1-14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한다. 하나님 백성의 가장 큰 권리요 의무가 예배다. 사탄은 이것을 막는다. 사탄은 어떤 전략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나? 1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 강도를 더 높여 더 힘들게 하라고 명령한다. 애굽 관리들은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벽돌을 굽는 데 필요한 짚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제 이스라엘은 직접 짚을 구해 벽돌을 만들어야 했다. 과중한 업무와 삶의 고단함에 얽매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마음을 둘 수 없다. 이처럼 우리를 인생의 문제들과 분주한 일상에 매이도록 사탄은 몰아간다. 바빠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계속 분주한 삶에 끌려 다닌다면 우리 영혼의 상태는 어떻게 될까? 결국 영혼은 쇠약해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서 이탈하고 은혜에서 미끄러져 살아갈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를 분주하게 만드는 상황과 요동하는 마음을 말씀에 비춰 봐야 한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방해를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2 바로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겠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들, 거짓말과 허튼 소리나 하는 사람들로 몰아세운다. 애굽의 감독관들은 바로의 판단에 따라 가혹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때리며 다그쳤다. 사탄은 ‘이간질하는 자’며 ‘참소하는 자’다. 사탄은 이처럼 불신자들이나 믿음이 약한 자들을 이용해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에 빠뜨린다. 사람들 사이에 오해와 억울함을 불러일으키고 분노와 증오를 품게 한다. 우리 마음에 억울함과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차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원망만 늘어놓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상황을 어렵게 만든 모세를 원망한다(4.16 본문).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려 나

2021.4.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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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4 (수) 출4:24-31 애굽으로 향하던 모세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모세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겼나? 1 애굽으로 향하다가 야영지에서 머물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난데없이 모세를 죽이려 하신다(24). 모세가 미처 행하지 않은 일이 있었기에 그 일을 당장 행하도록 위협하신 것이다.  상황을 감지한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속히 돌칼을 가져다 아들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한다. 40년 미디안에 살면서, 자녀에게 할례 하는 것을 잊고 산 것이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피는 생명이다. 십보라가 아들을 할례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회복되었다. 2 하나님은 모세의 형 아론에게 광야에 가서 동생 모세를 맞이하라고 명하신다. 아론이 호렙산에서 모세와 상봉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모세에게 들은 모든 말씀을 아론이 전했고, 모세는 하나님의 표적을 보여주었다. 과거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동족이 이제는 모세의 말을 신뢰했고, 모세의 말씀을 믿은(31) 백성은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했다. 공동체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에 죽음에서 구원받고(12장) 홍해에서 구원받은 (14장) 후에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다. 구원의 말씀과 성취 앞에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한다. 주님, 인생길에서 수많은 고난과 난관을 만나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동역자들과 공동체의 위로를 힘입어 지체들과 이웃을 잘 섬기게 하소서!

2021.4.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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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3 (화) 출4:18-23 드디어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애굽으로 떠나는 모세는 빈손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의 지팡이와 말씀을 주셨다. 이 두가지가 모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 1 모세가 오랜 세월 양을 치면서 사용 해 오던 지팡이가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변한 순간부터 그것은 하나님이 지팡이가 된 것이다. 모세가 소유하던 너무도 평범한 것을 특별히 구별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작은 물질이나 하찮게 여겨지는 재능을 가지고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은 애굽으로 떠나는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에게 전할 말씀을 주신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 말씀을 받은 바로는 모세에게 불같이 화를 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의 마음에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죄인들의 죄를 들추고 그들에게 임할 심판의 경고는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권세가 있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전도’라는 미련한 것으로 영혼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시기로 계획하셨으니, 우리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 보잘것없는 저의 능력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 내는 그릇으로 사용하시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채우사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구원하는데 나의 인생을 사용하소서!

2021.4.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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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2 (월) 출4:10-17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에 ‘입’, ‘혀, ‘말’이란 단어가 무려 14번 나온다. 신앙생활에서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의 입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어야 한다. 1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이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라고 말한다. 사명을 주셨다면 당연히 부족한 언변도 채워 주셔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능력을 갑자기 주시기 보단, 대부분 그 사람이 본래 갖고 있는 능력을 사용해 일하신다. 사명 받은 자의 능력아 아니라 보내신 이의 능력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생각과 언변을 의지하기 보다, 먼저 우리의 입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어야 하고, 할 말을 주실 때, 우리 입을 통해 거룩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2 이 정도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확신 주셨다면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라고 모세도 순종했어야 한다. 결국 아론과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론의 입에 함께하신다는 것은 인간의 말에 능력이 없음을 방증한다. 청산유수처럼 말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아니란 뜻이다. 반대로 혀다 둔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말을 통해 하나님이 능력을 행하신다는 뜻이다.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입과 함께하시고, 나에게 할 말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 알아야 한다. 주여, 오늘 하루도 나의 ‘입’에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소서!

2021.4.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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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0 (토) 출3:13-22 하나님을 만남 가운데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자 하나님이 대답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 이름을 아는 자의 미래는 어떠한가? 1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내실 분이 누구인지 설명이 필요하여 모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 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란 물음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답변하신다.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도, 속하지도 않는 분, 모든 것에 초월하신 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임을 설명해 주셨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다(15).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냄으로 조상 때부터 이어진 이스라엘 백성과 연합하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연합하길 원하시는 분이시다. 2 이스라엘의 억압을 보신 하나님은 이들을 탈출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놀라운 역사를 이제 시작하려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가 장로들과 함께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을 소개하며, 백성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할 때, 하나님을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소개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 참 주인이심을 강조하신 것이다. 아무리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나님과 연합할 때 능히 해낼 수 있다. 하나님이 주권으로 자유케 하시고, 이적으로 애굽을 초토화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각종 전리품을 자기고 나갈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구원의 청사진을 미리 보여주신다.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심으로 이미 우리 인생 속으로 들어오신 주님,  내 인생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며 하나님의 축복된 미래로 인도하소서!

2021.4.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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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9 . (금) 출3:1-12 때가 되자 하나님은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사명을 맡기신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준비된 태도는 무엇일까? 1 불이 붙었음에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현현하셨다. 가까이 온 모세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으라 하신다. 모세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세상의 방식, 가치관, 삶의 목적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데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룩하지 않은 것들은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삶에 그리고 우리 내면에 버리지 못한 죄와 세속적인 욕심이 없는지를 말씀 앞에서 살펴야 한다. 2 지금까지 모세는 자기 인생의 주인 노릇 했었다. 불쌍한 동족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자기 방법대로 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곳으로 다시 가라 명하신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꺾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해야 했다. 하나님은 모세의 그런 순종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그를 사용하셨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의 기준과 유혹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명령(말씀) 순종을 통해 영혼을 구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1.4.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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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8 (목) 출2:11-25 하나님은 실패와 고난을 통해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모세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동족을 도울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훈련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고 이끄시는 지도자로 세우길 원하셨다. 1 비록 동족을 사랑하고 그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지만, 분을 참지 못하는 모세는 어느 날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살해하고 유기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 일이 그만 탄로 나고 말았다. 그것도 동종에 의해 드러나고 그 사람은 모세의 행위를 비난했다. 모세는 자신의 열정과 힘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무리 동족을 위해 위대한 비전을 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성공을 위한 훈련과정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2 애굽 사람을 죽인 일이 발각이 되자,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아야 했다.  척박한 땅을 다니며 힘들게 노동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어려운 삶이 40년 동안이나 계속된다. 그 기간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가 참고 견디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하셨다. 이후 모세는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했다. 그때 그는 온 땅에 그와 같이 온유한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민12:3).  하나님의 광야라는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지도자로 모세를 변화시키셨다.  우리 앞에 놓인 고난도 우리를 인내와 온유의 사람으로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기억하자. 주님, 실패와 고난이란 시련의 장을 통해 나를 빚어 가시는 중이라 생각하고 늘 감사하며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알고 늘 겸손하게 하소서!

2021.4.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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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7 (수) 출2:1-10 모세가 태어난 지 석 달이 되자, 더 이상 집에서 숨기고 모세를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의 이후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자녀 양육에 대해 묵상해보자. 1 모세가 태어나자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을 숨겼다. ‘잘생겼다’(2)란 말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하신 ‘좋았더라’(창1:4)와 같은 단어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셨기에 양육한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자녀이기 때문이다. 석 달이 지나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방주)를 만들어 그 안에 모세를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고 모세의 누나가 멀리서 지켜본다. 마침 나일강에 목욕하러 온 공주가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모세의 어머니는 자녀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겼다. 성도는 자녀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세상 위에 띄워야 한다. 하나님은 자녀의 인생을 인도하신다. 2 애굽의 공주가 상자 안에서 우는 아기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겼다. 이때 아기의 누나가 바로의 딸에게 유모를 추천했다. 바로 모세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모세를 공주로부터 댓가를 받아가며 키우다가, 젖을 뗀 후 공주에게 데려가, 그녀가 아이를 자기 아들로 삼는다. 자녀를 키우고 장성하면 그를 독립시킬 때가 찾아온다. 바로의 딸에게 아들을 보내는 것처럼 힘든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독립은 하나님의 뜻이다. 자녀는 ‘부모를 떠나’(창2:24) 영적, 육적, 재정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주님, 자녀를 키울 때,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귀하게 여기며, 많은 기도와 함께 저들을 하나님께 맡기게 하소서!

2021.4.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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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6 (화) 출1:15-22 고된 노역으로 히브리 민족의 인구증가 억제정책이 실패하자, 바로왕은 이제 히브리인 유아에게 직접 해를 가하려 한다. 세상이 그렇다. 갈수록 무섭고 더 잔인해진다. 성도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1 바로(투스모세I, BC 1526-1512 )는 히브리 산파를 불러 ‘남아’를 죽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산파들은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살렸다. 히브리 여인들이 건장하여 산파가 도작하기도 전에 해산한다고 변명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십브라와 부아는 바로의 명을 거역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8)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 반면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여 생명을 죽이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력이 커지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했다(10).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창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2 히브리 산파들의 변명에 얼마든지 이들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20). 하나님을 경외하고 창조의 순리대로 사는 자는 은혜를 받는다. 생명이 보호받고, 집안이 번성하는 복이 있다(21). 나일강은 고대 애굽인들이 섬기던 신(Hapi)이었는데, 히브리 남아가 태어나면 일종의 인신제사처럼 강에 던지라고 명한다. 갈수록 바로는 잔인하고 난폭해진다. 그러나 히브리 인구는 더 늘어만 간다. 이런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종 모세가 태어나게 하시고, 출애굽 사건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신다.  주님, 세상의 강한 자들을 두려워말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2021.4.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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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5 (월) 출1:1-14 출애굽기는 영어로 ‘Exodus’로 ‘벗어나다’의 ‘ex’와 ‘길’이란 ‘hodos’의 합성어다. 즉, ‘길에서 벗어나다’란 뜻이다. 애굽기는 애굽 탈출과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을 다룬 성경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출12:41)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탈출하려 한다. 탈출하려면 새로운 길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새 길을 만들어 주실까? 1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 총리로 있을 때 그의 가족들이 애굽 고센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야곱의 위골된 허리(환도뻐, 넓적다리)에서 나온 사람이 70명이다. 고센에서 생육하게 되어 매우 강한 민족이 되었다. 70명 남짓한 사람들이 430년만에 거의 200만명이나 되는 대민족을 이뤘다. 연약한 한 사람의 위골된 환도 뼈에서 이렇게 큰 민족이 나왔다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임을 말해준다 (창12:2). 실수도 많던 아브라함, 소심했던 이삭, 협잡군 야곱, 버림받았던 요셉을 통해 언약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을 대민족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을 통해 역사하신다. 2 요셉을 인정하지 않는 왕조가 애굽에 들어서고, 새 바로 왕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건축에 이들을 동원시킨다(10). 이는 창세기 11장의 바벨 건축을 연상시킨다. 하나님이 바벨탑을 쌓던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흩으셨듯이, 애굽도 똑같이 무산시키시는 사건이 출애굽이다. 국고성은 국가에 필요한 무기와 식량, 기름, 포도주, 금은 등을 저장하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고 있던 고센에 국고성이 건축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강제노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번성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당하는 괴로운 일도 구원 사역에 사용하신다. 우리가 당하는 괴로운 일도 하나님의 손에만 있다면 놀라운 새 길로 이어질 것이다. 주님,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가

2021.4.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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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3 (토) 마27:57-66 예수님이 죽고 난 뒤, 유대 지도자들이 바빠졌다.  예수님이 진짜로 부활을 하거나, 누가 그의 시신을 훔쳐가면 어쩌나, 온갖 두려움 걱정이 앞섰다. 1 안식일에는 죄수들의 시신을 처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은 해가 지기 전에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면서 부유한 자였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자기 소유의 새 무덤에 안치하고는 큰 돌로 무덤 문을 막았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가에 앉아 이 모든 일을 목격했다. 새 무덤과 여자들의 목격을 자세히 기록함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거짓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성도는 자신이 믿는 바를 사람들에게 증거로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 2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이 생전에 부활을 언급하신 사실을 말하며, 무덤을 굳게 지켜 달라고 부탁한다. 빌라도의 허락 하에 예수님의 무덤을 인봉하고, 경비병들을 세웠다(66). ‘굳게 지키다’란 말이 세번이나 기록될 만큼(64-66), 종교지도자들이 무덤을 굳게 지켰다는 사실을 마태는 강조한다. 그런데 이 일은 역으로 부활의 강한 증가가 된다. 경비병들은 무덤의 돌을 굴리는 천사를 보고 무서워 떨었다 (28;4). 그리고 종교 지도자에게 가서 부활을 증언한다(28:11). 어리석은 인간이 제아무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으려 해도,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얼마든지 역사하신다. 주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들을 통해 더욱 굳센 믿음을 갖고 살아가게 하소서!

2021.4.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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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2 (금) 마27:45-56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치와 고통 이상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휘장이 찢어지고 지진이 일어나 바위가 터지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사건들의 의미를 통해 십자가 사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시간이 지난 정오부터 어둠이 온 땅에 임해서 운명하시는 오후3시까지 계속 되었다. 주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을 비추신 분이다 (요1:9). 그래서 주님이 죽어 가실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이다. 빛이 꺼지면 어둠 밖에 남지 않는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아픔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것이다. 2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가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던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졌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려 죽어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살아났다. 장차 있을 영광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현상이 벌어졌다. 3 예수님의 사형 과정을 집행하면서 모든 것을 보았던 백부장은 ‘이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로마의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이렇게 고백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의 고백과 유사하다(16:16). 진실로 십자가를 경험한 자만이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주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가로놓였던 휘장을 주님이 제거하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복된 소식을 만나는 모두에게 전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1.4.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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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4.1 . (목) 27:27-44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본격적으로 예수님께 폭행과 조롱이 가해진다. 어떻게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하셨을까?  무엇을 이루기 위함이었나? 1 예수님이 총독의 관정 안에 들어가시자, 많은 군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는,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게 했다. 유대인의 왕처럼 만들어 조롱했다. 또 그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었다.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때리고, 에워싸 조롱하고 폭행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주님은 고통을 당하셨다(사53:5).  예수님의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본다. 2 심한 구타와 채찍질, 굶주림 때문에 십자가 가름대를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기가 불가능했다. 이때 로마 군인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을 대신해 억지로 가로대를 지고 형장까지 가게 했다. 형장에서 예수님은 마취제의 일종인 ‘쓸개 탄 포도주’를 받으셨지만, 맛을 보시고 거절하셨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내신 것이다. 우리의 죄가 이 정도로 중하다. 예수님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실 정도로 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3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란 패가 붙었다. 지나가는 자들 모두 예수님을 조롱했다. ‘그가 남은 구원했는데 왜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가’라고 조롱했다.  그들의 말대로 예수님은 죄를 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신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려면 인간이 아닌 신이셨던 예수님이 죽어야만 했다.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우리의 유일한 왕이시며 참 구원자이신 예수만 높이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