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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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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5 (화) 출26ㅣ1-14 성막은 네 겹으로 되어 있다. 성막의 구조에서 어떤 영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1 성막 가장 안쪽에 있는 휘장에는 가늘게 꼰 베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천사)을 수놓았다. 이 휘장은 모두 10폭인데, 5폭을 연결해 큰 휘장 두 개를 만들고 그 둘을 연결해 한 개의 완성된 휘장을 제작한다. 크기가 가로 18미터, 세로 12.7미터나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막과 같으신 분이다. 천상을 상징하는 ‘청색’, 고귀함을 상징하는 ‘자색’, ‘홍색’은 피를 상징한다. 가늘게 꼰 베실은 ‘흰색’으로 성결을 상징한다. 성육신(청색)하신 하나님은 누구보다 고귀하신 분(자색)이시지만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 피를 흘리셨고(홍색), 이를 믿는 자들을 흰 눈처럼 양털처럼 깨끗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사1:18). 2 성막의 두 번째로 덮는 휘장은 염소 털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만든 휘장을 덮어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로 성막을 덮는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해달의 가죽으로 광야의 모래 바람, 비, 추위와 더위를 막게 했다. 속은 아름다운 실로 가장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위로 갈수록 성막의 덮개는 강하고 단단하다. 그 어떤 세력도 침범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성막 안에 거하는 성도는 예수님이 친히, 돕는 방패가 되어 주신다 (신33:29).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성막처럼, 주께서 우리에게 성막이 되어주시고, 그 안에 있는 자를 보호해 주시는 주님, 가장 안전한 성막 안에서 사는 것처럼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2021.6.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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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6 (수) 출26:15-37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았던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성막의 휘장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경계선이었기에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 주시어 그 길을 여셨다. 오늘 본문에서 성막 휘장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1 성막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다. 하나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성막의 바깥문으로 사용된 휘장이다. 휘장은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 없고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는 경계를 의미한다. 지성소에는 증거궤를 두고, 그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제물의 피를 갖고 들어갈 수 있다(히9:7). 죄인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오직 중보자를 통해 나아갈 수 있다. 성막 바깥문으로 사용된 휘장(26-37)은 오직 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휘장은, 완전한 속죄를 위해서는 성막의 그림자가 예시하는 실체인 메시아가 오시어 속죄의 완성을 이루어야 함을 가르친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완성되어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하나님께 항상 감사해야 한다. 2 성막 휘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보여 주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마27:51).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이다 (히10:19-20). 예수님은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알려 주셨다(요14:6).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과 진리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또한 주와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함으로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이 은혜로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구원의

2021.6.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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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4 (월) 시25:23-40 성막 문은 동쪽을 향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면 물두멍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성소가 나온다. 성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북쪽에 진설병 상, 남쪽에 등잔대가 보인다. 진설병과 등잔대를 통해, 하나님이 성도에게 어떻게 영의 양식을 주시는지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싯딤나무(아카시아)로 상을 만들라고 하신다. 가볍고 잘 부식되지 않기에 상을 만들기 적합하다. 이 진설병 상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다. 증거궤와 진설병 상은 이동할 때 세가지 덮개로 덮는다(해달 가중, 홍색 보자기, 청색 보자기; 민4장). 증거궤처럼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설병 주위에 턱이 있어 진설병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상에는 고리를 채에 꿰어 운반할 수 있데 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양식이 된다.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진설병을 교체하는데, 이는 마치 주일마다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과 같다. 주일 예배는 의무감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일주일을 살아내고자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갈급한 마음으로 나오는 성도에게 말씀을 부어 주신다. 2 또 하나님은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라 명하셨다.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 비추게 하셨다(37). 성소 안 북쪽에는 진설병, 남쪽에는 등잔대가 있어 진설병(영의 양식)을 비춘다.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말씀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성령께서 빛을 비춰 주셔야 말씀이 이해되고,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곱은 완전수다. 완전하고 충만한 빛이 성소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친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요8:12)이 계신 곳에는 어둠이 발을 붙일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마5:14). 그러므로 성령님이 비춰 주시는 생명의

2021. 6.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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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2 (토) 시11:1-7 시인은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을 듣지만, 그 조언을 거부한다. 현실적인 조언이 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가 참된 복을 받을까? 1 사울왕에게 쫓기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다윗에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새’같이 도망가라고 권면한다. 사울왕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가 아무리 빨라도 순식간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피하지 않고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피했다(1). 다윗은 용사였지만, 인간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여호와께 피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2:12).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먼저 찾는 것은 도망가는 것에 불과하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싸울 수 있다해도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 2 여호와는 성전에 계신다. 다윗 당시엔, 하나님께서 법궤가 있는 성막에 계셨다. 이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의미한다. 고난 중에 있던 다윗과 함께 하셨다. 또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초월성’을 뜻한다. 다윗의 모든 상황을 통치하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란 뜻이다. 이런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 의인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시기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7).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을 받는다. 주여, 역경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의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큰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6.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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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1 (금) 시10:1-18 시편 기자는 악인들의 행위를 관찰하고, 그들의 악행을 보복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이 모든 죄의 근원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나? 1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악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가득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주와 거짓을 쏟아내고, 무죄한 자를 죽이고 가련한 자를 잡고 넘어뜨린다. 시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고발하는데 더 주력한다.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에서 온갖 악행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악행보다 무신론적 마음에 그 뿌리가 있다. 2 시인은 하나님께 ‘일어나소서, 손을 높이 드소서’라고 간정한다. 거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12) 악인의 팔을 꺾으실 것을 간청한다(15).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악행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악한 자의 악을 모두 찾아내시고 심판하신다(18). 성도는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간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세상이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돌아올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드리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사 악을 심판하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저희를 그 통로로 사용하소서!

2021.6.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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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0 (목) 시9:11-20 삶에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악인이 득세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거나 의인이 억울한 고통을 당한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과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붙잡아야 할 진리와 그에 따른 올바른 태도가 무엇이라고 본문을 말씀하시는가? 1 세상의 혼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의 주관자이시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악인이 득세하여 무죄한 자를 억압하고 의인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 해도 하나님이 결국 악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행위를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저들을 징계하실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고통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억울한 상황에서 건지시며 보상해 주신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실 것을 믿고, 이 땅의 불의, 인권, 압박, 폭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과 열방을 향해 하나님을 알려야 할 사명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하고 빛 된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을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임을 알고 더욱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우리의 소유를 나눌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는 선포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깎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어두운 세상에서 당신의 빛을 드러낼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영광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 땅 살아가는 동안 거룩하고 구별되이 살아가게 하소서!

2021.06.0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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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9 (수) 시9:1-10 시편9편과 10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시를 기록해 나가는 답관체(acrostic) 형식을 따라 쓰여졌다. 시인이 이 형식을 통해 노래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1 다윗을 힘들게 하던 원수는 도망가며 하나님 앞에서 넘어졌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재판하셔서 다윗의 억울함을 풀어 주신 것이다. 또 이방을 책망하시고 악인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다. 감사의 이유를 들여다 보면, 다윗이 한 일은 없고,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다. 1절의 ‘감사하오며’는 미완료형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감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도들의 마지막 원수는 사망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롬8:2). 이런 감사의 이유가 있기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신 재판장이시다. 그분은 재판하시기 위해 영원한 보좌에 앉아 계시며, 심판 기준은 공의와 정직이다(8). 세상의 모든 재판관과는 다르게 하나님만 공의롭고 정직하신 재판관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억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이 성도들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을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절대로 당신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자기 양들을 보해해 주신다(요10:11). 성도는 공의와 정직으로 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와 간구로 주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 다윗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전심으로 지속적인 감사가 찬양을 올려드리는 신앙을 영적 성숙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