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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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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2 (토) 눅6:27-38 성도는 자기감정을 초월해 말씀에 순종함으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흔히들 ‘황금률’이라고 부른다. 사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19:19)는 말씀을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행위를 그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먼저 타인의 처지와 마음을 공감하는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주님은 죄인인 우리의 처지를 공감하시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다. 그 주님이 우리더러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요13:34). 주님의 심장으로 타인에게 공감하고 뜨겁게 사랑하자. 2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그런데 주님은 원수를 갚지 않는 수준을 넘어(롬12:19),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저주하는 수준을 넘어,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심판날이 오기 전까지 사랑으로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벧후3:9). 그러므로 성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롬12:20-21). 십자가에서도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신 모습이나(눅23:34), 스데반이 자신을 처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행7:60)을 본받아 원수까지 사랑하여 승리하자. 주님, 원수를 사랑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원수를 향한 성도의 도리임을 알아 삶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1.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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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1 (금) 눅6:12-26 기복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복 받으라’는 말을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왜곡된 신앙이다. 제자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과연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어떻게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 1 창조주로서 하늘 보좌에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먼저 고난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시자 악한 세상의 권세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박해했다. 그 결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셨다. 이처럼 고난 당하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려는 성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주님은 고난의 길을 함께 걸을 것을 명하신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엔 복된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2 세상의 기준과 달리 주님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주님으로 밖에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을 말씀하신 것이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훗날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 거의 다 순교당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려는 자들이다.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려면 바로 주님이 가신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 땅에서 잠깐 누리는 행복을 위해 영원한 불행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형재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자 (롬8:18). 주님,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이겨 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진리의 길로 행하여 훗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로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22.01.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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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0 (목) 눅6:1-11 성도는 안식일 규례의 정신과 의미를 따라 살아갈 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문제를 많이 삼은 것이 안식일 법이었다. 본질이 아닌 형식만을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을 정죄한 것이다. 1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 안식하셨던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사건(신5:15; 출20:11)에 근거한 것이 안식일이다.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 쉼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기념해야 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노동했다고 비난했다.  또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도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라고 정죄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당연히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신약의 성도에게는 안식일이 특정한 날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아 이미 안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영적 예배요, 산 제사가 되었다 (롬12:1-2). 안식일 정신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참 안식과 평안의 메시지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 무의미한 종교 행위를 경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2022.01.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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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9 (수) 눅5:27-39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취해 이방인들을 멸시했지만, 그 교만으로 복음을 거부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 영적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김으로 불신 영혼을 구해야 한다. 1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 벌인 큰 잔치에 세리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볼 때 상대하지 말아야 할 부정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권세를 이용해 동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두어 착복하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한다. 자신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아의식에 그 뿌리를 둔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구원 역사의 대상에서 제외됨을 선언하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며 타인을 멸시하는 교만한 자세를 벗어 버리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해야 한다. 2 종교인들은 세리를 창기처럼 죄인의 대명사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다른 관점으로 그들을 대하셨다. 치유해 주어야 하고,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신 것이다. 주님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 부요하신 자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한 죄인을 부요하게 하신 것이다 (고후8:9). 이것이 세상을 향한 성도의 바른 자세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고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시켜 하나님 백성 삼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스스로 낮추고 사랑으로 섬김의 도를 다하게 하소서.

2022.01.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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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8 (화) 눅5:12-26 불치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표적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1 나병 환자가 와서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신의 병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고백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주님은 이 사람의 믿음을 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언제나 ‘주님이 원하시면’이란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주의 뜻이라면’이란 전제로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고 야고보 사도도 동일하게 교훈한다 (약4:15). 2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메고 온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많아 할 수 없게 되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환자를 달아 내렸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0)고 선포하신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리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치유 사역은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현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적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를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엡1:6).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께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2022.01.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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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7 (월) 눅5:1-11 기적을 보면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의 현장에서 주님은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믿고 행할 때 주님이 역사하심을 잊지 말자. 1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입은 현장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물고기 기적 직후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8)라고 고백한 이유는 물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 때문이 아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던졌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전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었고, 기적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확신한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됨을 바울은 말한다(롬10:17). 2 베드로가 자신에게서 떠나시기를 구했지만, 예수님은 우히려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셨다. 사람을 낚는 복음 전도자로 그를 부르신 것이다. 베드로와 그의 일행이 어부의 생계 수단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조건과 상황도 따지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으신다. 부자 청년은 재산을 포기하고 주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막10:22). 우리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믿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2:26). 성도는 순종의 열매를 맺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자들이다. 주님, 말씀을 듣고 행하고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특권이자 사명임을 깨닫고 주를 높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 1. 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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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5 (토) 눅4:16-30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바로 인간적 판단과 세속적 기대는 신앙에 큰 장애물이 된다. 1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사61:1-2)을 읽으신 것은 메시아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선언에 그들은 가장 큰 기쁨으로 반응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이 아는 요셉의 아들로만 인식했기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인간적 사고의 틀 속게 갇혀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했다.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저 좋은 말씀을 가르치신 선생이나, 종교의 창시자 정도로 인식해선 안된다. 예수님을 구원자요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하고 합당한 태도다. 2 이들은 잘못된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만을 찾고 있었다. 믿음으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경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저들의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살해하려 했다.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 메시아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현주소도 동일하다. 내가 하고픈 대로 동의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쫓아가는 신앙은 비극이다. 우리 삶의 왕이신 예수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 내가 아닌 그분이 기대하시는 바를 기대하며 따르는 바른 성도가 되어야 한다. 주님, 성령이 조명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달아 그 어떤 선입견이나 인간적 기대감이 내 삶의 기준이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