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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ly, 2022

2022.7.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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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30 (토) 고후12:11-21 사탄의 세력은 언제나 거짓과 분열과 죄를 통해 교회를 파괴하려 한다. 사탄의 계략을 알아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거룩한 성령 공동체인 교회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1 바울은 악한 자들이 거짓말로 자신을 음해한 내용에 대해 스스로 변호한다. 바울이 간교한 속임수로 성도들의 재물을 갈취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렸다(16). 바울은 언제 본인과 디도가 성도들에게 이익을 취했느냐고 묻는다. 모두 같은 성령으로 한마음을 품고 사역을 감당해왔다. 오히려 다른 교회와 달리 고린도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부모가 아이를 위하듯 고린도교회를 위해 바울 자신이 사랑으로 재물을 사용하려 했음을 강조한다. 교회는 사탄에게 공격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2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다시 방문했을 때 사탄의 이간계에 넘어가 교회가 분열하고 당을 지어 서로 다투고 비방하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했다. 지금도 사탄은 교회 안에 다툼과 분열을 일으켜 성도들 간의 관계, 사역자와 성도들의 관계를 깨뜨리려 한다. 우리는 사탄의 악한 간계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엡4:3). 3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은 죄들이 남이 있을 것이 두렵다고 바울은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공동체로, 거룩함이 핵심 정체성이다. 물론 죄를 범하지만, 세상 사람과 다름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성도들이 회개함으로 유지된다 (마18:15-17). 그러므로 바울은 죄를 범한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 공동체에서 제외시킬 것을 명했다(고전5:11). 교회는 죄에 대한 적절한 치리를 통해 교회의 거룩을 지켜내야 한다. 주님, 사탄이 공동체에 틈타지 못하도록 믿음으로 대항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소

2022.7.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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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9 (금) 고후12:1-10 영적으로 탁월하거나 놀랄 만한 능력을 행하는 사역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 사역자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그 역시 주의 종이요 도구일 뿐, 사역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약함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만 자랑해야 한다. 1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간 신비로운 체험을 증언할 때 의도적으로 3인칭을 사용했다. 자신이 아는 어떤 사람의 체험처럼 묘사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을 염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선교여행 중에 수많은 기적과 신비한 일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을 과도하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절제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음으로 사람들에게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우리는 바울처럼 스스로 절제하며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주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일꾼의 신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커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그의 육체에 사탄의 가시(사자)를 주셨다고 고백한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것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가시를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저절하셨다. 이에 바울은 가시를 오히려 기뻐하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고백한다. 약함을 통해 은혜와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원하는 성도는 자신의 약점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주신 능력이 계속 머물러 지속적으로 섬길 수 있게 된다. 주님, 주께서도 자신을 낮추심으로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고, 바울사도 역시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듯이, 저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 사역을 감당할 대 주게 영광 돌리는 겸손한 일꾼 되게 하소서!   

2022.7.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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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8 (목) 고후11:16-33 거짓 사도들에 대항해 자신을 변호하면서 바울이 말하는 지혜와 어리석음, 자랑과 수치, 그리고 강함과 약함의 역설 사이에서 성도들이 가져야 할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본문이다. 1 바울은 자기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면서도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는 역설적인 부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자처럼 자기를 자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16-18).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른 교인들의 잘못을 깨우치기 위해 어리석고 욕된 행동, 곧 자랑을 해 보겠다고 한 것이다. 오직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전략을 취한 것이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 보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행동했다. 참된 성도와 사역자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유익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2 자신의 가문과 대단한 사역 경험을 떠벌리는 사람을 참된 사역자로 보기가 쉽지 않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많은 고난과 희생을 당한 상태였다. 이제까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성도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려 하자 그들을 위해 겪은 자신의 고난을 열거한 것이다. 즉, 성도들과 교회가 거짓된 길로 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배운다면 주의 교회를 더 굳건하게 세울 수 있다. 3 바울은 자기 업적을 길게 이야기하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교회를 위해 염려하고 애태웠으며,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교인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을 품는 ‘약함’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바울은 원래 대제사장의 위임을 받아 교회를 잔멸하려 했던 ‘강한’자였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세상적으로는 약한 자가 되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강한 자임을 잊지 말고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주님,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예수님을 더욱 닮아감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22.7.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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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7 (수) 고후11:1-15 공동체를 깨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간계를 써서 내부 갈등으로 자멸시키는 것이다. 사탄이 교회 공동체를 깨뜨리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교회의 하나 됨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1 바울은 자신이 성도들을 정결한 신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자로 소개한다. 거짓 교훈에 이끌려 타락한 자는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될 수 없기에 그는 거짓 교사들의 악한 이간질에 대해 단호히 경계시키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재정후원도 거절하고 값없이 사역을 감당할 정도로 그들을 위했다. 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조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갖고 거짓 사도들은 바울을 비난했고 성도들을 선동했다. 오늘날도 이단들은 교회에 침투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부추겨 성도들을 미혹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거짓된 가르침으로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있다. 우린 오로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2 성도들을 미혹해 바울을 오해하게 만들고,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려 하는 자은 사탄의 졸개들이다. 바울과 반대로 이들은 성도들을 속여 진리에서 떠나 그리스도와 원수 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 마치 사탄이 광명의 천사처럼 가장하는 것같이 오늘도 거짓 선생들이 복음 사역자로 가장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들의 친절과 감언이설에 속아선 안된다. 영들 분별하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사탄의 미혹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는 삶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의의 일꾼이 되어야 하며, 성령의 지혜로 거짓된 자들을 잘 구별해야 한다. 주님, 마지막 때가 되어 사탄의 세력이 우릴 끊임없이 공격하지만 교회가 최후 승리할 것을 믿으며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의의 일꾼 되게 하소서!   

2022.7.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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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6 (화) 고후10:12-18  많은 사람이 재산, 지위, 학력, 성공을 자랑한다. 그러나 성도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자랑해야 한다. 오직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의 인정을 기다리는 자라야 세상의 헛된 자랑을 버릴 수 있다. 1 자기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랑하는 자들은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들임을 바울은 선언한다. 자랑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역 안에서만 자랑해야 함을 가르친다. 이방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 세움을 받은 바울은 그 한계 안에서 감당했다. 그러나 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는 방해꾼들은 어디나 있다. 복음 사역이든 다른 섬김이든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신 한계를 지키는 지혜로운 일꾼이 되어야 한다. 2 어리석은 자들은 남의 수고를 갖고 분수 이상으로 자랑한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주의 뜻에 따라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을 전한 것을 자랑한다. 이는 자신의 유익을 목적으로 삼는 어리석은 자들과 복음을 목적으로 삼아 아름답게 섬기는 바울의 차이점이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을 더 자랑하는 순간 우리는 은혜에서 멀어진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교훈대로 살지 않는 것은 주님이 받으실 영광을 도둑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성도는 자신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자랑해야 한다. 3  사람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평하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는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오직 주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절대 가치로 삼고 살아야 한다. 온 세상이 인정하고 칭찬해도 주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헛된 인생일 뿐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자. 오직 하나님 앞에서 행하자. 그래야 진짜 중요한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이 있을 것이다 (마25:21). 주님, 세상 것을 자랑하여 사람의 인정 받는 것이 헛되고 무익함을 깨닫고, 오직 주의 영광과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2022.7.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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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5 (월) 고후10:1-11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사탄과 치르는 영적 싸움이다(엡6:12). 섬기는 리더십으로 서로 섬기며 교회를 공격하는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한다. 1 바울은 성도들을 대할 때는 사랑과 유순함으로, 말씀을 가르칠 때는 단호하고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따끔하게 경고하는 회개를 촉구했다. 세상에서는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는 리더십이 강력해 보이지만 성도의 삶에는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섬기는 리더십이 진정한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그리스도의 은혜와 관용으로 대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야 한다. 2 성도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바울은 선언한다. 이 능력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교만한 세력을 다 무너뜨리고 그리스도께 복종시킨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해 거짓으로 만든 가르침을 통해 교회를 공격한다. 교회는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분별해서 바르게 치리해야 한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3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역자에게 주신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 권세를 갖고 복음과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할 것을 경고했다. 바울을 공격하고 험담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은 편지에 쓴 말과 같이 동일하게 행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오직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대로 행함으로 이 진리 위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한다. 주님,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달아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복음과 하나님 나라 위해 싸워 승리하게 하소서!   

2022.7.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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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3 (토) 고후9:1-9 교회에서 헌금 문제는 모두에게 시험거리도 될 수 있는 문제다. 성경이 주는 헌금의 원칙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서로 덕을 세우는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다. 1 바울은 마게도냐 성도들에게 고린도 성도들은 1년 전부터 헌금을 준비했다고 자랑했다. 반대로 고린도 성도에는 마게도냐 성도들이 가난한 가운에서도 풍성한 헌금을 한 것을 자랑했다(8:1-2). 좋은 신앙의 모습을 서로 본받기를 바울은 원했다. 미리 준비함은 억지가 아닌 참된 연보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드리는 참된 헌금을 기쁘게 받으시기에 바울은 성도들이 미리 준비하기를 요청했다. 헌금이 절대로 누구 눈치를 보면서 체면치레가 되어선 안된다. 2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에게 충만하게 임한 것같이 성도들 역시 인색함 없이 넉넉히 헌금을 드려야 함을 가르친다. 각자 형편과 사정에 따라 인색함 없이 풍성한 헌금을 드린다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액수의 크기는 의미가 없다.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이 부자가 풍족한 상황에서 헌금한 금액보다 더 크다고 하셨다(막12:42-44). 마음의 크기를 하나님이 보신 것이다. 하나님은 헌금 자체보다 헌금을 드린 자가 하나님을 향해 품은 사랑의 크기를 보신다. 우리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색함 없이 풍성히 드린 헌금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기억하자. 3 바울은 ‘그가 흩어 가난한 사람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도다’(시112:9)을 인용하면서 헌금에 대해 교훈을 주고 있다. 헌금은 영원토록 의가 되는 드림이 되어야 한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땅에서는 다 사라지는 보물이기 때문이다(마6:19-20).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의로 남음을 가르친다(막10:21). 성도는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두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영원한 천국에 보물을 쌓아 두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주

2022.7.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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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2 (금) 고후8:16-24 복음 사역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다. 복음의 열정으로 무장하고 서로 협력할 때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동역자들을 소개하는 본문을 통해 복음 사역자로서 바람직한 자격을 배우고, 우리 또한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1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이방교회들로부터 거둬 전달하는 사역을 위해 디도를 고린도교회에 보낸다. 자신과 동일한 열정을 가진 디도가 그 일에 자원함으로 기꺼이 고린도교회로 향했음을 강조한다. 이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디도와 그의 일행을 자신과 같이 대하고 그들에게 적극 협력해 줄 것을 촉구한 것이다. 사역자는 뜨거운 열정과 자원하는 마음이 필수다. 수동적인 자세는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없다. 2 복음에 대한 열정과 자원하는 마음이 교회 사역을 위한 주관적인 조건이라면 교회의 신뢰와 칭찬을 받는 것은 객관적인 조건이다. 바울은 디도를 비롯하여 다른 두 형제들 역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라고 소개한다. 바울은 장로의 조건 중 하나로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여야 함을 강조했다(딤전3:7).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실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 역시 강조했다(약2:18). 복음 사역자는 언행에 있어 덕을 세우고,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 3 바울은 디도와 함께 보낸 또 다른 형제를 은혜의 일로 자신들과 동행하는 자라고 소개했다. 오늘날 같이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여러 교회들로부터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름도 없이 섬겼던 여러 동역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복음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섬김에 있어 동역자들의 협력은 필수다. 한마음과 한 뜻으로 협력할 때 복음 사역은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심으로 본을 보이셨듯이, 우리 모두 동일한 비전과 열정으로 협력하여 주의 나라 위한 동역이 잘 이뤄지게 은혜를 주옵소서!

2022.7.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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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1 (목) 고후8:1-15 초대교회 공동체가 보여 준 재물의 나눔은 인간 소유욕이란 본능을 뛰어넘는, 성령 충만한 역사의 결과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는 분명한 영적 원리와 의미가 있다. 원리대로 헌금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마게도냐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에 참여할 때,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5). 환난과 많은 시련으로 극한 재정적 어려움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으로 헌금을 했다고 바울은 전한다. 이것이 바로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증거다.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형편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은혜(1,4, 7)에 참여했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재물 이전에 마음과 뜻과 정성으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을 기뻐하시고, 형식으로 드리는 제물은 거부하신다(사1:13; 시51:16-17). 2 예수님은 죄로 인애 죽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부요하신 자로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다. 하늘 영광 버리고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는 자리까지 낮아지셨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이런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깨닫고 그리스도의 헌신을 본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헌금 드림이다. 주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거두었다. 그때 많이 거둔 자도 만나가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다(출16:18).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야 함을 가르친다. 성도 서로 간에 넉넉한 것을 나눔으로 서로 균등하게 되는 원리에 따라 구제에 동참해야 함을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는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주께서 베푸신 것을 서로 나눔으로 함께 말씀 순종의 길을 가야 한다.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가난한 이웃을 부요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자. 주님, 먼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또

2022.7.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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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0 (수) 고후7:8-16 우리는 살면서 언제나 근심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울은 성도에게 유익한 근심과 해로운 근심이 있음을 교훈한다. 성도는 불신앙으로 인한 ‘세상적 근심’은 버리고, 회개에 이르는 ‘믿음의 근심’을 해야 한다. 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회개에 이르게 된 것을 기뻐한다. 먼저 보낸 편지(고린도전서)에서 고린도교회가 잘못 행한 것을 책망한 바 있다. 이에 성도들은 근심하며 회개함으로 잘못된 것을 고쳤다. 말씀을 듣고 나의 잘못을 깨달을 때 마음에 근심이 생긴다. 양심에 찔림 때문에 아프지만, 한편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할 변명거리를 찾기도 한다. 회개는 근심을 기쁨으로 변하게 한다. 말씀 사역자는 말씀을 근거로 성도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되고, 성도는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 구원에 이르는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2 세상 근심은 진리에 의한, 진리를 위한 근심이 아니라, 욕심과 거짓을 좇아서 발생하는 근심이다. 결국 멸망이다(10, 약1:15). 세상 근심을 세상의 헛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로 말미암는 것으로, 그 자체가 죄다. 우리는 마귀가 우리를 멸망케 하려고 우리 마음에 불어넣은 정욕을 좇는 세상 근심과 염려를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좇아 거룩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님, 나쁜 근심은 기도로 배출해 버리고 좋은 근심은 마음에 담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7.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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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9 (화) 고후7:2-7 우리는 때때로 위로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다. 바울도 사역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성도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로하는 법을 배워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바울이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 모든 면에서 위로가 필요한 상태였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위로하며 치유하는 사역자였지만, 그 또한 위로가 필요한 인간이다. 그래서 사역자들 역시 성도들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성도는 사역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할 뿐 아니라 따뜻한 사랑의 위로를 베풀 수 있었야 한다. 2 낙심하여 위로가 필요했던 바울과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은 디도를 통해 위로를 베푸셨다. 디도가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던 이유는 디도가 바울에게 왔을 뿐 아니라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편지(고린도전서)를 받고 회개하고 순종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바울의 질책이 담긴 편지를 받고 내심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염려하던 바울에게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음을 디도가 전해준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의 열매를 맺을 때 사역자는 진정한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역자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 3  성도가 환난을 당하는 곳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그 위로가 또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며 환난을 이기는 힘이 된다 (1:4-6).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환난 중에도 천국의 소망 가운데 서로 위로하라고 명령했다(살전4:13-18). 성도는 믿음 안에서 당하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위로 받으며,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의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셨던 주님(마5:4), 말씀으로 위로 받고 또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2.7.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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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8 (월) 고후6:14-7:1 친구는 삶의 동행자이기에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그 사람의 친구들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진리와 생명의 길을 걷는 믿음의 동지들이 서로에게 되어야 한다. 1 바울은 성도들에게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말한다. 삶의 방향이 같지 않기에 성도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함을 명령하신 것은 우상 숭배와 죄로 오염된 문화로부터 벗어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롬12:1-2) 하나님 백성이란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죄의 길을 철저히 배격하여 의의 길로 행해야 한다. 2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말은 모든 교제를 금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전도와 선교를 어떻게 하겠는가?  교인끼리 살거나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전5:10). 그들이 행하는 악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자기를 죄로부터 지켜야 함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불신자들과 교제는 하되 그들의 삶의 방식을 멀리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11:29). 성도가 걸아가야 할 방향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방향과 동일하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자만이 제자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주와 함께 멍에를 멜 때 하나님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1:12). 주와 함께 멍에를 메고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만이 주의 부활과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진리와 생명의 길로 행할 때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주님, 주와 같은 방향의 인생길을 향해 날마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7.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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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6 (토)  고후5:11-21 예수님을 믿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에 동참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되는데, 과연 복음을 따라 살고, 복음 따라 사역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1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자기가 전한 복음이 바른 것임을 밝힌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인 반면, 자신은 교회가 자랑하도록 사역해 왔고,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해 사역해 왔다고 공언한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 것이 그 동기임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결국 복음 자체다. 자신의 죗값을 대시 치르신 예수님 앞에 더 이상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추구할 수 없다(15).  이처럼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 인간적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복음을 위해 사역하고 섬기는 성도요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바울은 복음 사역을 ‘화목하게 함’으로 정의한다.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과 세상이, 사람과 사람이 화목하게 된다(18-19). 복음은 사람 간에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16).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에 있음을 뜻한다. 화목의 사역을 자신 역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감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성도 간에 판단하는 행위는 복음을 대적하는 행위요, 구원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심각한 죄다. 모든 사람을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매개체로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자. 주님, 오직 주의 사랑에 붙잡혀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되는 교회요 성도가 되게 하소서!   

2022.07.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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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5 (금) 고후5:1-10 인생을 나그네의 여정으로 성경은 종종 묘사한다. 나그네의 여정은 잠시 머무는 곳의 연속이다. 아무리 좋은 숙소도 곧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할 곳에 불과하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은 이 세상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바울은 권면한다. 1우리 몸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다. 결국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듭한 성도는 영원한 집을 덧입게 된다(3). 성도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영원한 것으로 덧입게 될 자들이기에 이 세상의 삶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장차 부활의 몸을 덧입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영광스런 삶을 사모하며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 2 부활의 몸을 사모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 우리가 누릴 영원한 집을 이 땅에서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다. 즉 성령을 통해 영원한 집을 사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때(7), 영원을 누리며 사는 은혜를 맛볼 수 있다. 3.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더 소망한다(8). 그러나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어떤 상태에 있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길 힘쓰는 것 밖에 없다 (롬14:8). 장차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하늘의 영원한 집을 덧입기를 소망하지 않고, 장막 집(육신)을 위해 살았던 자들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는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고(롬8:1) 상급을 받게 된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영원한 주의 나라를 현실에서도 풍성히 누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2022.07.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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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4 (목) 고후4:13-18 주를 닮아가는 자에게는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소망과 기쁨이 있다. 바울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음을 설명한다. 1 고난과 역경이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충분히 견뎌 낼 수 있다. 그 믿음은 바로 부활신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기시고 죽음도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부활신앙을 얻었기 때문이다(골2:15; 요16:33). 사탄은 고난을 통해 성도들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참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저를 붙드셔서 더욱 견고하게 하시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세우실 것이다(15). 이 믿음으로 우리는 담대히 서 있어야 한다. 2 결말을 알면 어떤 고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16). 비록 육신이 날이 갈수록 낡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날마다 새로움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새로워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또 우리가 훗날 얻게 될 영광을 주목하고 살아야 한다(롬8:18). 잠깐의 만족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이 땅에서 만족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주목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자! 주님이 주시는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갈 때 현재의 고난에 연연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07.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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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3 (수) 고후4:1-12 보잘것없는 그릇이라도 그 안에 귀한 것이 담겨 있으면 조심히 다루는 법이다. 1 거짓 사도들이 나타나 혼란스럽게 하는 상황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일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꾼은 인간이 방법이 아닌  오직 진리만을 나타낸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거짓 교훈을 가르치고 교활하고 간교하게 행하는 거짓 일꾼들과 구별됨을 밝힌다.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했음을 다시 강조한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오직 복음’이란 태도로 우리는 사는 것이 마땅하다. 2 질그릇은 평범하지만 그 안에 그 무엇보다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면 얼마든지 놀라운 능력으로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음을 바울은 고백한다. 우리 모두 연약한 그릇이다. 그러나 영광스런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주의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복을 받았고 온갖 어려움과 고난과 박해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하고 죽음의 위험을 겪게 되는 것도 결국 복음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이 된다. 우리 안에 복음이 분명해야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다. 우리는 놀라운 보배 되시는 그리스도를 담은 그릇임을 기억하고 살아가자. 주님, 나의 연약함을 주의 강함으로 덮으시고 아무리 연약해도 내 안에 계신 보배 되신 주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나의 연약함을 통해 드러나게 하소서!   

2022.07.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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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2 (화) 고후3:12-18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영광이 모세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공언한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두고 제한적 가치를 지닌 것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 모세가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할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고, 백성이 없어질 광채에 주목하지 않도록 모세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출34:29-35). 반면 바울은 영의 직분의 영광을 감추지 않고 담대히 말한다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영원한 영광이기에 감출 필요가 없고 담대히 선언해야 하는 것이다. 2 모세 얼굴에서 광채가 없어진 것처럼 율법도 그리스도로 완성되어 더 이상 그 역할을 감당할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에 매인 자들이 있다(15). 사라지지 않을 그리스도의 영광은 복음을 통해 드러나며 율법의 수건을 벗긴다.  잠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이기에 수건으로 가릴 필요도 없다. 3 율법은 우리를 얽어매고, 죄에 가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한다. 더 시상 죄가 우리를 가둘 수가 없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고, 주의 영광이 우리에게 스며들어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을 삶을 통해 전해야 한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이 영원한 영광을 온전히 전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소서!   

2022.07.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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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1 (월) 고후3:1-11 바울이 거짓 일꾼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들은 바울의 사도직을 부인하며 공격했다. 자신들은 유대주의자들이 써 준 추천서를 내밀며, 추천서가 없는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공격한 것이다. 이에 바울은 무엇으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했을까? 1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중에 세워졌다. 바울의 사역으로 세워진 교회에 바울이 굳이 추천서를 보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세워진 고린도교회가 바로 사도권을 증명할 살아 있는 편지인 것이다(2). 또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세워진 교회로 곧 그리스도의 편지이기도 하다(3).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읽힌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일꾼의 일꾼 됨은 영혼의 열매로 드러난다. 2 거짓 사도들이 종이로 된 추천서를 자랑했지만, 바울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께 사도로 인정받았음을 강조했다(6, 행9:1-22). 사람의 인정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우선으로 여길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로 부르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예루살렘 사도들에 의해 안디옥으로 파송받았지만 (행15:22-29),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불러 사역을 맡기셨다는 분명한 소명 의식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게 했다. 3 율법 조문에 의한 직분은 정죄의 직분이고, 성령에 의한 직분은 의의 직분이다. 율법의 직분도 영광스럽지만, 영의 직분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함을 바울은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를 의롭게 하고 영원히 살리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가 율법보다 더 귀하다. 영생을 주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잘 감당해야 한다. 주님, 전통과 형식만 남은 섬김이 아니라 부르심에 따라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본질로 알고, 주의 부르심을 결코 놓치지 말게 하소서!   

2022.07.0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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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9 (토) 고후1:23-2:11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나의 말이나 행동이 주는지 잘 살피는 자가 사실은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자다.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려고 계획할 때 자신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를 먼저 생각했다. 1 원래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가졌던 바울은 그 계획을 취소하게 되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 안에 남아 있었던 소수의 무리들 때문에 고린도를 방문하는 것이 교회 안의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셈이 되고 결국 상처 받는 이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고린도교회 방문을 하지 않은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가 되려 했다(24). 주관하는 것은 자신에게 맞춰진 표현이지만, 돕는 것은 상대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역은 오직 주님과 지체들에 초점을 두고 돕는 것이다. 2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근심을 끼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1). 기쁨의 방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으로 방문 계획을 취소했고(4), 자신을 대적하는 성도들을 대면할 경우 혼란이 발생할 것을 예상했고, 또 고린도교회가 그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믿음에 굳게 섰음을 알았다. 무엇이 교회 공동체에 더 유익이 되는가를 세심히 살피고 배려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3 바울은 공동체 안에서 잘못한 자들을 용서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을 대적하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려 성도들을 근심하게 만든 이들을 고린도 교회는 치리하고 징계했다(6). 바울은 이제 징계 받은 이들을 용서하고 위로할 것을 부탁한다. 용서와 위로는 공동체를 평안하게 하고 견고히 세우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 있는 죄는 반드시 치리해야 한다. 그리고 돌이키는 자들을 관용과 용서로 덮어줘야 한다. 교회는 공의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8). 주님, 우리의 섬김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공동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주님과 교회에 기쁨이 되게 하소서!

2022.07.0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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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8 (금) 고후1:12-22 고린도를 방문하겠다는 바울의 계획이 여러 번 변경되었더니, 일부 교인들이 이를 빌미로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비난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 1 오해는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바울이 고린도 방문이 변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고린도 일부 성도들은 바울을 오해했다. 경솔하고 이기적인 동기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여긴 것이다. 이에 바울은 진심을 담아 그들이 납득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온유한 태도로 자신의 동기를 설명했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내려놓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자기를 정당하게 해명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된다. 2 오해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바울은 무슨 일이든지 이기적인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음을 강조했고,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을 확언했다. 이유 이 비난과 오해를 받을 때 낙심하거나 분노하기에 앞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담대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받는 온갖 오해와 비난을 사람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이 거두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비난하는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대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반드시 우릴 보호하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주님, 뜻하지 않게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을 때 오로지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혜를 구하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2022.07.0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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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7 . (목) 고후1:1-11 바울은 선교 현장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거의 죽을 뻔했던 일들을 상기하면서 고난 중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던 사도 바울을 어떻게 도우셨을까? 1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자신을 위로해 주셨다고 고백한다(4). 하나님은 성도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샅샅이 살펴보시며 사소한 생각까지 다 헤아리시고, 그 마음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다(시139편). 또 하나님이 주신 위로로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2 여러 선교지 가운데서 생명을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을 만난 적도 있었던 바울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살 희망마저 잃어버렸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그는 위기 중에도 계속 하나님을 의지했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건져 주셨다.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 하지만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못하고 낙심할 때가 있다. 바울처럼 우리도 더욱 굳건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문제를 맡길 때 더 큰 감사로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주님, 환난 중에 위로와 도움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2.07.0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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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6 (수) 시31:9-24 살면서 다양한 고통과 마주친다. 사람들은 이유 없는 비난을 받고 억울해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다윗은 우리에게 모든 시련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특징은 과연 뭘까? 1 다윗은 수많은 고난을 당했다. 육체의 고통, 대적의 두려움, 사람들로부터의 외면. 하지만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었다. 이런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의 특징이다. 이런 믿음이 없는 자들은 자기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생각해서, 원망하고 분노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떤 사람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운이 없는 인생이라 탓하며 소중한 세월을 헛되이 보낸다.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허용하셨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우리 인생을 주께서 주관하시도록 그분께 맡겨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것을 선하게 바꾸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2 고통의 시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해결책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고난 중에도 잠잠히 하나님이 때를 기다린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한다. 우린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기다림은 곧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힘을 내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권면했다. 우린 모든 기도 제목들을 갖고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충성하며 주의 때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마침내 임할 것이다. 주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가 입술의 고백으로만 끝나지 않고, 주의 주권을 인정하고 뜻에 따라 매순간 순종하며 주의 시간까지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07.0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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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5 (화) 시31:1-8 하나님은 성도의 피난처시다.  의와 사랑이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혼자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피할 곳이 하나님 한 분이라고 가르친다. 1 하나님 외에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윗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의가 자신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 주시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믿었다(1).  의로우시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심으로 당신의 책임을 다하는 신실하심을 뜻한다. 갑자기 찾아오는 고난은 우리 마음을 당혹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당한 시련을 통해 우리 모난 성품을 다듬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는 또다른 근거임을 다윗은 믿었다(7). 적의 손에 자신을 넘겨주지 않으셨음을 그는 살아오면서 늘 체험했었다. 우리가 고난이 주는 두려움을 물리치는 길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며 확신하는 사람은 단지 고난이 지나가기만을 구하지 않는다. 고난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묻게 된다. 고난조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주님, 고난 중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약속하신 말씀을 언제나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늘 고정하여 믿음으로 온갖 역경을 극복하게 하소서!   

2022.07.0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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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4 (월) 시30:1-12 불신자들도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려운 처지에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1 다윗은 하나님이 죽음의 깊은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 주셨음에 감사한다. 두려움으로 절망하고 좌정했을 텐데, 하나님이 그를 올려 구원해 주신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음의 수렁 안에 놓인 존재들이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를 하나님이 건져 주셨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 현실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게 된다. 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2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해 주셨다고 고백한다. 슬픔의 노래를 기쁨의 춤으로 바꿔 주셨고, 상복을 벗기시고 나들이 옷으로 갈아 입히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셨음을 다윗은 기억한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만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탄식을 하기가 쉽다. 다윗 역시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두려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기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부르짖었더니,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했으며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신실한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다려야 한다. 가장 완벽한 때와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우릴 높이실 것이다. 주님, 구원의 은혜와 지금까지 돌보신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를 회복하게 하시고, 현실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놓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2022.07.0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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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2 (토) 시28:1-9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악한 사람들이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득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성도는 악에 대항하며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1 다윗은 악인들의 불경건과 불의한 행위로 해를 끼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가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한다. 그래서 우리는 악인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김과 동시에 우리는 악에 대항하며 기도해야 한다. 비록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고 악인들이 보응을 받기까지 우리는 인내하며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2 다윗은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백성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이끌어 주시길 간구했다. 과거부터 하나님이 대적들과 맞서 싸울 힘을 이스라엘에 주셨고 모든 악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셨던 일을 기억했다 (5, 7). 그래서 다윗은 위태로운 순간마다 도움을 주셨던 하나님이 계속 연약한 자신과 백성을 보호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는 이웃을 위해 마땅히 중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힘없고 연약한 우리의 이웃을 악한 일에서 구원해 주시길, 연약한 자들에게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악을 심판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음을 기억하고 악이 득세하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늘 기도에 힘쓰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2.07.0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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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7.1 (금) 시27:1-14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오는 시련과 위기 앞에서 당황해하며 두려움에 빠진다. 위기 중에도 담대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1 위기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발견한다. 그런데 다윗은 아무리 큰 위기가 닥치고 대적이 공격해도 자신은 쓰러지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어떻게 이런 담대함과 확신이? 그는 어둠을 한순간에 빛으로 바꾸시고 원수를 한 방에 쓰러뜨리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했다(1,3). 수많은 전쟁에서 자신의 산성이 되어 주신 하나님을 경험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 주시며 생명을 지키시는 전능자이심을 경험으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날마다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했고 그 시간을 무엇보다 사모했다. 만약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자리로 나아간다면 우리 역시 인생의 파도 속에서도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2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자신이 승리할 것을 확신했기에 그 확신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4, 7, 9) 자신이 선택해야 할 생명의 길을 보여 달라고, 그리고 대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11). 위기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담대함을 잃지 않는 또 다른 비결이다. 기도의 사람이었던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소리 내어 부르짖는다’라고 표현했다(7). 이는 단순히 목청껏 큰 소리로 간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다는 의미다. 어려움이 왔을 때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기도가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수록 우리가 만나는 시련과 위기는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는 복된 기회가 될 것이다. 주님과의 교제가 날마다 깊어지며, 기도를 더 자연스럽고 익숙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2022.06.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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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30 (목) 시26:1-12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면 불완전한 인간도 완전함으로 행할 수 있게 된다.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도는 주 안에서 완전함으로 행해야 한다. 1 다윗은 자신이 진실되이 (1, 11에서 각각 ‘진실하게’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완전함’이다) 행하기 위해 악한 자들을 경계하고 가까이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성도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시1:1). 오히려 여호와를 의지하고 주의 진리 중에 행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는 주의 말씀을 따라 온전한/완전한 길로 행해야 한다. 2 다윗은 자신이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제사를 드림을 고백한다. 이는 속죄함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림을 뜻한다. 여호와를 의지한 자는 하나님의 판단을 오히려 갈망한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살피시고, 시험하시고 단련(‘알아보소서’로 우리말은 번역했지만, 원어는 ‘재련하다’)시켜 달라고 간구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의 은혜를 입고 의롭다고 인정 받은 우리도 다윗처럼 은혜의 역사를 선포하고 찬송하며 완전함으로 행해야 한다. 3 다윗은 주께서 계신 집과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선악 간에 심판받을 것을 준비하는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다(9-10). 마지막 날에 주의 심판대에 설 것을 기억한다면 항상 바른길로 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실의 이익과 탐욕을 추구하는 자들과 구별되어 거룩한 길로 행해야 한다. 주님,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완전하신 나의 주님만 의지하며 인도하시는대로 완전한 진리의 길로 항상 행하게 하소서!   

2022.06.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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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9 (수) 시25:1-22 환난을 당할 때 성도는 죄를 회개하고 진리를 따를 때 승리한다. 환난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고, 그 가운데 주시는 메시지가 있음을 깨달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순종할 때 얼마든지 환난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승리한다.  1 다윗은 자신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환난을 당했을 때 먼저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용서의 은혜를 구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사43:25). 다윗은 죄 사함의 은혜와 용서의 핵심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노의 자식이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죄 사함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2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항상 바라보는 것은 그분이 자신을 구원하실 분임을 믿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15). 단순히 어떤 고난을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 주께서 자신을 진리로 지도하시고 교훈해 달라고 간구하는 모습은 우리가 정말 닮아야 할 태도다. 우리가 죄악과 환난에서 벗어나 구원과 생명으로 가기 위해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주의 진리의 도는 궁극적으로 생명과 진리와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요14:6). 주께서 징계를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우리가 치유를 받고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사53:5).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주의 도를 따라가야 한다.  3 다윗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이방 세력과 평생 전쟁을 벌였다. 그래서 다윗의 싸움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영적 전쟁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군사로 모집된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 다윗은 대적들 앞에서 자기 영혼을 지키고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미 승리가 결정되었지만, 사탄은

2022.06.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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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8 (화) 시24:1-10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다.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은 바로 거룩한 마음과 언행임을 다시 확인한다. 1 시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 곧 거룩한 곳에 설 자는 바로 손이 깨끗한 자라고 답한다.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은유적 표현이다. 깨끗하게 된 것은 회개를 상징한다. 야고보 역시 손을 깨끗이 할 것을 권면하며 회개를 촉구했다(약4:8). 하나님은 손이 깨끗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시18:24).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중 하나가 바로 회개를 통해 손이 깨끗한 것이다. 2 시인은 또한 청결한 마음을 천국 백성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예수님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마5:8).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감을 뜻한다. 사람의 언행은 결국 그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죄를 범하게 된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내기 때문에 마음의 청결은 중요하다(눅6:45). 문제는 우리가 죄인이기에 스스로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야 한다(딤전1:5). 또한 끊임없이 주님과 소통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딤전4:5). 3 시인은 또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고, 야고보 사도 역시 그저 그렇다,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말함으로 정죄받음을 면하라고 하셨다(마5:34; 약5:12).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변하지 않더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할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 미혹되어 세상사람들처럼 거짓말을 경계함과 동시에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정직한 길로 행해야 한다(시84:11). 주님, 깨끗한 마음과 진실한 언행으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2022.06.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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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7 (월) 시23:1-6 하나님을 목자로, 성도를 양으로 비유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 다윗은 자신을 양으로,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했다. 양들은 시력도 나쁘고, 스스로 길을 찾지도 못하고, 먹지 말아야 하는 풀을 구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보호할 수도, 생존할 지혜도 없다. 목자가 없이는 양의 삶은 그냥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구원과 인생의 인도하심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모든 일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직 주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2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망 권세에서 지키고 보호해 주시는 분임을 다윗은 고백한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의 ‘임마누엘’이신 주님과 동행하면서 우리는 죄의 세력과 싸워 승리해야 한다.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 주실 때까지 우리는 주를 뒤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원수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는 여호와의 집 (성소)에 영원히 거하는 예배자인 것이다. 예배자는 부활의 믿음이 있기에 평생토록 하나님의 선 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라 승리의 길을 가게 된다. 주님, 주님과의 동행이 성도로서의 존재감인 것을 알고, 항상 기도와 말씀을 통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바른길로 행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