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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ne, 2021

2021.6.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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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9 (화) 출32:15-24 아담이 범죄 한 후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나를 꾀어서 그랬다’(창3:12)고 변명한 이후로, 인간은 죄를 추궁 당할 때마다 이렇게 핑계를 댄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죄를 짓는 것과 또 죄에 대해 핑계를 대는 것 모두가 인간을 얼마나 무가치하고 비참하게 만드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 1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왔다(15-16).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미 언약을 어겼다는 데 있다. 이미 모세는 내려올 때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상태다(7). 그래서 모세는 계약서를 찢어 버리듯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 깨어졌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는 한, 죄를 용서받을 길은 없었다. 2 아론의 변명을 보면 어떻게든 자기 책임을 축소시키려 애쓴느 것을 볼 수 있다. 모세가 아론에게 “어떻게 했길래 형이 그들을 이렇게 큰 죄에 빠뜨린 것인가?’라고 추궁하자(21), 아론은 ‘이 백성의 악함’을 언급한다(22). 더 나아가 백성의 요구에 응해 금을 불에 던졌더니 저절로 금 송아지가 나왔다는 식의 말은 ‘아론이 송아지 모양의 틀에 붓고 연장으로 다듬어 우상을 만든’(4) 사실을 숨기려는 핑계일 뿐이다.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주위 환경, 불가항력적 힘에 의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이런 죄성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경계하지 않으면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발견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의 뜻에 따르는 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환경 탓을 하는 것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기 존엄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각일 뿐이다. 주님, 주님 안에서 자유롭게 된 존재인 우리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할 때 다시금 자유와 존엄성이 회복됨

2021.6.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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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8 (월) 출32:1-14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에 관해 설명하시는 동안 (25-31), 시내산 아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앞세워 반역을 저지르고 있었다. 출애굽을 통해 온갖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고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처럼 하나님을 속히 떠났는지 묵상해 봐야 한다. 1 비록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70인 장로들이 그 얼굴을 뵙기까지 했지만(24:9-11),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수많은 우상을 보며 살아온 자들이다(출19: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랐다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 모세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모세를 대신할 ‘신’으로 우상을 만들게게 된 것이다(1). 마땅히 백성을 꾸짖어야 할 아론이 우상을 만들고 이를 여호와라고 선포하고(2-4), 전형적인 우상 종교의 방탕한 제의를 이끈다(5-6). 우리의 이성의 범부 내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조종하려 하고, 구체화하려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복하며 살아야 한다. 2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부패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분노하셨다(7-8). 그들을 ‘목이 뻣뻣한 백성’으로 규정하셨고, 그들은 진멸당할 위기에 놓였다(9-10). 문제는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 잊어버렸기에 이런 위기에 놓인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잊어버리는 순간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스라엘을 진멸하시려는 하나님 앞에 모세는 중보했다(11-12).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진멸하지 않으셨다(13-14). 우리의 생명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손에 잡히지 않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데 있다. 타락한 이 세상은 구체적인 지위, 부가 자기를 살

2021.6.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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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6 (토) 출31:1-11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언제나 봉사할 사람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훈련도 되지 않은 사람을 세우기란 또 어렵다. 본문을 통해 교회를 섬기는 일꾼을 세울 때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할지 살펴보자. 1성막을 만들 때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 하나님은 적합한 사람을 선택해 부르신다. 유다 지파의 브살렐을 지명하셨는데, 그는 아말렉 전투에서 아론과 함께 모세의 팔을 올렸던 훌의 손자로 추정된다(2). 하나님은 그에게 당신의 영을 충만하게 하시고 지혜와 충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를 주신다(3). 그래서 그는 ‘장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브살렐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즉 신앙 인격이 성숙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식과 재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2성막 건축은 다양한 작업이 필요하다. 목공 작업, 금속작업, 피륙작업, 기름과 향을 만드는 작업도 필요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업을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에게 맡겨졌다. 여러 작업자들을 지휘하고 총괄하는 역할이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꼭 필요하다(6). 모두 함께 일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여기저기에서 잡음이 일어나고 불평불만이 싸이게 마련이다. 공동체의 지도자를 세울 때은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지를 반드시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 다닌 연수가 아니라 교회의 각 지체들을 돌보고 독려하고 연합시키는 리더십과 지혜를 갖춘 지도자가 세워져야 교회는 평안해진다. 주님,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위해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찾아 세우고, 또한 우리 모두 그런 일꾼이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하소서!

2021.6.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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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5 (금) 출30:17-38 대야와 거룩한 향 기름, 그리고 거룩한 향은 모두 제사장과 성막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들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까? 1 성막 뜰에는 땅을 상징하는 놋 제단과 바다를 상징하는 대야가 있다. 대야는 성막의 기물들 중 유일하게 크기에 대한 규정 없이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을 담아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기 위한 목적이다 (18-19). 대야는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사용되던, 불순물이 없는 청동으로 만들었다(38:8). 제사장들은 성소로 들어갈 때나 제단에서 제물을 바칠 때 반드시 손발을 먼저 씻어야 했다(20-21).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홀히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제사장들처럼 우리 역시 예배에 임할 때나 직분을 감당할 때 자신을 돌아보며 바른 자세와 태도를 갖도록 해야 한다. 2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할 특별한 향 기름을 만들게 하셨다(23-25). 이 기름을 바른 대상은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존재로 선포된다. 성소의 모든 기구와 제사장 역시 이 기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야 했다 (26-30).  거룩한 기름은 오직 성소를 위해서만 제작, 사용되어야 했고, 사적 목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처벌을 받게 했다(31-33). 이 특별한 기름으로 성소와 제사장을 거룩하게 했듯이, 우리 일상을 말씀에 따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은 성소 안에 있는 ‘금 제단’에서 태울 향을 만들게 하셨다. 당시 유명한 향품이었던 소합(발삼나무 진), 나감(홍해의 조개에서 채취한 향료), 풍자(지중해 회향풀에서 채취), 그리고 유향을 같은 분량으로 섞어 만들 후에 소금을 쳐서 거룩하게 했다(34-35). 이 향의 얼마를 곱게 빻아 회막 안 증거궤 앞에 있는 금제단에 놓게 했

2021.6.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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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4 (목) 출30:1-16 출30장에서 하나님은 진정 무엇으로 성막을 채워야 하는지 알려주신다. 1 언약궤, 등대, 진설병 상 등의 기물들이 성막의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하나님이 그 공간에 채우기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었다. 첫째는 향기다. 향단은 성소 안의 제단이기에 네 귀퉁이에 놋 제단처럼 뿔이 달려 있었다. 놋 제단에서 아침저녁으로 제사가 드려지듯이(29:38-42), 금 제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향을 태워 성소에 향기와 연기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제의 피를 이 향단 뿔에 발라 속죄함으로써(10), 여호와 앞에 지극히 거룩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언약궤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야 하듯이, 등대와 진설병상이 놓인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향기와 연기로 가득차야 한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성막이 유지되어야 했다. 성소를 계속 보수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은 이스라엘 각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속전’이라 불리는 성전세로 충당하게 했다(11-12). 만20세 이상 된 자는 반 세겔을 성소에 납부했는데,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다(13-15). 왜냐하면 성소는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백성이 생명을 드리는 헌신으로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회 역시 성도의 헌신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함께 헌신함으로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는 역사를 이루어 가길 소망한다. 주님, 금과 은으로 만든 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로 성막이 채워지고, 그저 재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의 헌신으로 유지되길 원하셨던 것처럼, 그런 교회, 그런 예배, 그런 공동체 되게 하소서!

2021.6.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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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3 (수) 출29:38-46  제사장으로 세워진 아론과 그 아들들ㅇ게 주어진 사역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답게 살기 위해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아보자.   1 하나님은 성막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를 소제와 같이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며, 매일 드리는 이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은 모든 시간 동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말씀이다. 아침저녁으로 제사 드리기 위해서는 나머지 시간에도 영적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무수한 제물이 유익하지 않으면 제물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선언하신 적이 있다(사1:11).  이스라엘이 죄를 계속 범하면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제사의 거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거부하신 거이다. 본질적 의미를 상식한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경계하자.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구약의 제사가 지닌 의미가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부활로 단번에 완전한 제사가 이루어졌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었다. 우리는 이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요 제사장으로서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물이 되기 위해선 죄와 철저히 분리된 성결한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실에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증명하며 살아가자.  주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우리 삶을 드림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은혜 속에서 살아가게 도우소서!

2021. 6. 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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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2 (화) 출29:10-37 제사장 위임식의 주제는 거룩함이다.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 당신의 백성이 거룩해지는 방법을 교훈하신다.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맡았으니, 동일하게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제사장의 직무는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죄 문제가 해결되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사를 드리도록 명하셨다. 제물로 가져온 수송아지와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해 죗값을 그 짐승의 피로 대신 치르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해짐으로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로 대속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거룩한 길로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2 하나님은 7일동안 제단을 위해 속죄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명하신다.  성경은 구약의 제사장과 성막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신다(히10:1-14).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시면서 제사장이신 동시에 성정의 실체시다.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제물, 제사장, 성전이 되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소망에 참여한다(롬6:8; 갈2:2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고전3;16)이 되었고,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산 제사(롬12:1)를 하나님께 드리는 왕같은 제사장(벧전2:9)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순간 하나님 앞에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죄인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우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직분을 한시도 잊지 말게 하소서!

2021.6.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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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21 (월) 출29:1-9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의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그 이후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행위를 보면 그들이 본래 그렇게 거룩한 자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출32:1-5, 21-25; 레10: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룩한 사명을 맡기심으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실 계획을 진행해 가셨다. 1 제사장 위임식을 위해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이 필요한데, 이는 속죄 제물로 드릴 수소와 번제물로 드릴 숫양, 그리고 위임식에 쓸 숫양입니다(1; 레8장). 그리고 고운 밀가루로 무교병도 세 가지로 만들고(2), 송아지와 두 양, 그리고 세 가지 소제물을 준비해야 했다(3).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제사장 위임식을 생각해 볼 때, 위임식 과정에서 바치는 제물의 규모가 소박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필요한 제물이 미리 제시되고, 무교병을 세 종류로 준비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헌신은 그 크기와 화려함이 아니라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드려져야 한다. 2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의 옷을 입히는 것은 그들을 구별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선 이들을 회막문에서 물로 씻어야 한다(4). 그리고 아론에게 대제사장의 옷을 입히는 순서가 따로 있다(5-6). 예복을 입는 순서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예식이었다. 그리고 그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7). 다음 그 아들들이 제사장의 옷을 입고 제사장으로 선포된다. 제사장들은 대제사장을 돕는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8-9). 제사장들에게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붓는 의식을 통해 하나님은 실제로 아무 자격이 없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 주의 일을 감당할 자격이 전혀 없지만, 은혜를 주셔서 저희로 감당하게 하셨으니, 더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저희에게 맡기신 사역을 겸손히 감당하게 하소서!

2021.6.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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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9 (토) 출28:15-30 많은 사람이 자신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불안과 궁금증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찾지만, 모든 인생의 길을 결정하시는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에 있는 우림과 둠밈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자. 1 제사장 옷에 여러가지 장식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판결 흉배였다. 이를 제사장의 가슴에 항상 붙이고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으라고 명하셨다. 이 돌들은 각각 ‘빛’과 ‘완전함’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여쭐 때 쓰는 도구다 (민27:21; 삼상30:7-8).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겸손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이다. 성도와 교회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사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2.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림과 둠밈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는다 (요1:18; 히1:2). 주님의 성육신을 통해 행하신 모든 구속 사역과 말씀, 그리고 사도들의 증언들을 통해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구원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딤후3:15-16).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내주하시기에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다(롬9:2).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뜻을 깨달았으면 고집을 버리고 기꺼이 복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신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게 하소서!  

2021.6.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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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8 (금) 출28:1-14 의복은 그 사람의 특별한 역할을 규정해 준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님 백성으로, 특별한 신분을 나타내는 거룩한 옷을 입은 자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하셨다. 1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하시며 거룩한 옷을 지어 입히라고 명하신다. 제사장은 거룩한 옷을 입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임을 나타내야 했다. 자신이 입은 거룩한 옷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했고, 백성은 제사장이 입은 거룩한 옷을 보고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인식했다. 제사장이 의 복에 어울리게 거룩하게 행했듯이, 우리 모든 성도들 역시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2  제사장 역시 일반인들과 같은 죄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별하심으로 거룩하다 여기시고, 그 표시로 거룩한 옷을 입히신 것이다. 불완전한 사람이 거룩한 제사장직을 수행하려니 특별한 옷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용서해주심으로 더이상 거룩한 옷을 입은 특별한 제사장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모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 (딤후3:5). 3 성도는 영적으로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한다.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애쓰지 마십시오”(롬13:14)라고 권고한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을 닮는 것을 뜻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제사장이다(벧전2:5). 복음 전파를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롬15:16).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게 하시려고 자기 몸을 대속물로

2021.6.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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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7 (목) 출27:1-21 하나님은 온 땅을 상징하는 성전 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가르치셨다. 또 그 안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 쓰는 기구들을 두라고 명령하셨다. 1 성전 뜰은 성소와 달리 시장을 상징하는데, 제단은 성전 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설물이기에 가로세로 5규빗인 정사각형 모양을 이룬다(1). 각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뿔 역시 ‘땅의 네 모퉁이’를 상징한다 (2; 계7:1). 제단에는 제물을 불로 태워 드릴 수 있고(8), 불을. 땔 나무와 타고 남은 재를 다루는 도구들과 함께 석쇠 역할을 하는 그물이 딸려 있다(3-5). 제단 역시 다른 기물들과 마찬가지로 채를 꿰어 옮기도록 만든다. 놋 제단이 땅을 상징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 곧 예배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2.남북 100규빗, 동서 50규빗되는 뜰을 너비 100규빗의 흰색 세마포 휘장을 쳐서 만들게 하셨다. 그 안에는 제단과, 바다를 상징하는 물두멍이 있다. 세마포 휘장을 위한 기둥과 받침이 있다 (9-12, 17-19). 성소는 기둥들이 연결되어 벽체를 이루지만, 성전 뜰의 기둥은 5규빗 간격으로 떨어져 세워진다. 성전 뜰 문은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베실로 수놓은 폭 20규빗짜리 천으로 동쪽에 걸린다(14-16). 하나님은 성소를 온 땅의 상징으로 만드심으로, 당신이 성막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온 세계 위에 있고 또한 온 세계가 당신 안에 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3 제사장은 성막에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저 상징물로서의 성막이 안되도록(20), 저녁부터 아침까지(21) 항상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성막은 결코 이방의 우상들처럼 죽은 건축물이 되어선 안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항상 예배해야 한다. 성막을 통해 이스

2021.6.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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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5 (화) 출26ㅣ1-14 성막은 네 겹으로 되어 있다. 성막의 구조에서 어떤 영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1 성막 가장 안쪽에 있는 휘장에는 가늘게 꼰 베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천사)을 수놓았다. 이 휘장은 모두 10폭인데, 5폭을 연결해 큰 휘장 두 개를 만들고 그 둘을 연결해 한 개의 완성된 휘장을 제작한다. 크기가 가로 18미터, 세로 12.7미터나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막과 같으신 분이다. 천상을 상징하는 ‘청색’, 고귀함을 상징하는 ‘자색’, ‘홍색’은 피를 상징한다. 가늘게 꼰 베실은 ‘흰색’으로 성결을 상징한다. 성육신(청색)하신 하나님은 누구보다 고귀하신 분(자색)이시지만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 피를 흘리셨고(홍색), 이를 믿는 자들을 흰 눈처럼 양털처럼 깨끗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사1:18). 2 성막의 두 번째로 덮는 휘장은 염소 털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만든 휘장을 덮어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로 성막을 덮는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해달의 가죽으로 광야의 모래 바람, 비, 추위와 더위를 막게 했다. 속은 아름다운 실로 가장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위로 갈수록 성막의 덮개는 강하고 단단하다. 그 어떤 세력도 침범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성막 안에 거하는 성도는 예수님이 친히, 돕는 방패가 되어 주신다 (신33:29).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성막처럼, 주께서 우리에게 성막이 되어주시고, 그 안에 있는 자를 보호해 주시는 주님, 가장 안전한 성막 안에서 사는 것처럼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2021.6.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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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6 (수) 출26:15-37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았던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성막의 휘장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경계선이었기에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 주시어 그 길을 여셨다. 오늘 본문에서 성막 휘장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1 성막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다. 하나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성막의 바깥문으로 사용된 휘장이다. 휘장은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 없고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는 경계를 의미한다. 지성소에는 증거궤를 두고, 그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제물의 피를 갖고 들어갈 수 있다(히9:7). 죄인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오직 중보자를 통해 나아갈 수 있다. 성막 바깥문으로 사용된 휘장(26-37)은 오직 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휘장은, 완전한 속죄를 위해서는 성막의 그림자가 예시하는 실체인 메시아가 오시어 속죄의 완성을 이루어야 함을 가르친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완성되어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하나님께 항상 감사해야 한다. 2 성막 휘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보여 주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마27:51).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이다 (히10:19-20). 예수님은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알려 주셨다(요14:6).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과 진리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또한 주와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함으로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이 은혜로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구원의

2021.6.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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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4 (월) 시25:23-40 성막 문은 동쪽을 향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면 물두멍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성소가 나온다. 성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북쪽에 진설병 상, 남쪽에 등잔대가 보인다. 진설병과 등잔대를 통해, 하나님이 성도에게 어떻게 영의 양식을 주시는지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싯딤나무(아카시아)로 상을 만들라고 하신다. 가볍고 잘 부식되지 않기에 상을 만들기 적합하다. 이 진설병 상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다. 증거궤와 진설병 상은 이동할 때 세가지 덮개로 덮는다(해달 가중, 홍색 보자기, 청색 보자기; 민4장). 증거궤처럼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설병 주위에 턱이 있어 진설병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상에는 고리를 채에 꿰어 운반할 수 있데 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양식이 된다.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진설병을 교체하는데, 이는 마치 주일마다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과 같다. 주일 예배는 의무감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일주일을 살아내고자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갈급한 마음으로 나오는 성도에게 말씀을 부어 주신다. 2 또 하나님은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라 명하셨다.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 비추게 하셨다(37). 성소 안 북쪽에는 진설병, 남쪽에는 등잔대가 있어 진설병(영의 양식)을 비춘다.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말씀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성령께서 빛을 비춰 주셔야 말씀이 이해되고,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곱은 완전수다. 완전하고 충만한 빛이 성소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친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요8:12)이 계신 곳에는 어둠이 발을 붙일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마5:14). 그러므로 성령님이 비춰 주시는 생명의

2021. 6.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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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2 (토) 시11:1-7 시인은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을 듣지만, 그 조언을 거부한다. 현실적인 조언이 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가 참된 복을 받을까? 1 사울왕에게 쫓기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다윗에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새’같이 도망가라고 권면한다. 사울왕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가 아무리 빨라도 순식간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피하지 않고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피했다(1). 다윗은 용사였지만, 인간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여호와께 피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2:12).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먼저 찾는 것은 도망가는 것에 불과하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싸울 수 있다해도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 2 여호와는 성전에 계신다. 다윗 당시엔, 하나님께서 법궤가 있는 성막에 계셨다. 이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의미한다. 고난 중에 있던 다윗과 함께 하셨다. 또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초월성’을 뜻한다. 다윗의 모든 상황을 통치하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란 뜻이다. 이런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 의인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시기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7).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을 받는다. 주여, 역경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의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큰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6.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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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1 (금) 시10:1-18 시편 기자는 악인들의 행위를 관찰하고, 그들의 악행을 보복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이 모든 죄의 근원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나? 1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악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가득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주와 거짓을 쏟아내고, 무죄한 자를 죽이고 가련한 자를 잡고 넘어뜨린다. 시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고발하는데 더 주력한다.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에서 온갖 악행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악행보다 무신론적 마음에 그 뿌리가 있다. 2 시인은 하나님께 ‘일어나소서, 손을 높이 드소서’라고 간정한다. 거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12) 악인의 팔을 꺾으실 것을 간청한다(15).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악행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악한 자의 악을 모두 찾아내시고 심판하신다(18). 성도는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간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세상이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돌아올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드리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사 악을 심판하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저희를 그 통로로 사용하소서!

2021.6.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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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0 (목) 시9:11-20 삶에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악인이 득세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거나 의인이 억울한 고통을 당한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과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붙잡아야 할 진리와 그에 따른 올바른 태도가 무엇이라고 본문을 말씀하시는가? 1 세상의 혼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의 주관자이시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악인이 득세하여 무죄한 자를 억압하고 의인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 해도 하나님이 결국 악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행위를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저들을 징계하실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고통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억울한 상황에서 건지시며 보상해 주신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실 것을 믿고, 이 땅의 불의, 인권, 압박, 폭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과 열방을 향해 하나님을 알려야 할 사명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하고 빛 된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을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임을 알고 더욱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우리의 소유를 나눌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는 선포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깎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어두운 세상에서 당신의 빛을 드러낼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영광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 땅 살아가는 동안 거룩하고 구별되이 살아가게 하소서!

2021.06.0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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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9 (수) 시9:1-10 시편9편과 10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시를 기록해 나가는 답관체(acrostic) 형식을 따라 쓰여졌다. 시인이 이 형식을 통해 노래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1 다윗을 힘들게 하던 원수는 도망가며 하나님 앞에서 넘어졌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재판하셔서 다윗의 억울함을 풀어 주신 것이다. 또 이방을 책망하시고 악인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다. 감사의 이유를 들여다 보면, 다윗이 한 일은 없고,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다. 1절의 ‘감사하오며’는 미완료형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감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도들의 마지막 원수는 사망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롬8:2). 이런 감사의 이유가 있기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신 재판장이시다. 그분은 재판하시기 위해 영원한 보좌에 앉아 계시며, 심판 기준은 공의와 정직이다(8). 세상의 모든 재판관과는 다르게 하나님만 공의롭고 정직하신 재판관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억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이 성도들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을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절대로 당신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자기 양들을 보해해 주신다(요10:11). 성도는 공의와 정직으로 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와 간구로 주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 다윗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전심으로 지속적인 감사가 찬양을 올려드리는 신앙을 영적 성숙을 허락하소서!

2021.6.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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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8 (화) 시8:1-9 시편에 총29편의 감사 찬양시가 나오는데, 8편이 첫 번째 감사 찬양시다. 시인은 무슨 이유로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을까? 1 하나님은 능력과 신성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명확히 볼 수 있다(롬1:20). 그래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19편). 자연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는 어린아이와 젖먹이처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2). 말씀으로 천체를 창조하신 사건(창1장)을 시인은 ‘손가락’으로 만드셨다고 표현한다. 성도는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창조 작품으로 봐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2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 작품인 사람에게 관심을 돌린다. 죄를 짓는 보잘것없는 조재인데 하나님은 그런 존재를 생각해 주시고 돌보아 주신다. (하나님)천사보다 조금(잠시) 못하게 하셨지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 피조 세계를 다스리신다. 이 권한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화와 존귀의 관이다. 창조물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특권이요 위임이기에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고 생각하시고 돌보시는지 알 수 있다. 통치 대리자로 세우신 사실을 깨달은 성도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주님,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며, 그 안에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특권을 잘 드러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1.6.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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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7 (월) 시7:1-17 시편7편은 개인 탄원시로 부름-탄식-탄원-신뢰-찬양의 기본적인 구조를 잘 따르고 있다. 7편을 통해 시편 기자의 처지는 어떠한지,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청원을 드려야 하는지 알아보자. 1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정한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하는 배경일 가능성이 높다. 대적들은 다윗이 반역을 계획한다고 모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다윗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울을 높였다. 다윗은 만일 자신에게 죄악이 있다면,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다 버리겠다고 약속한다(5). 그가 이렇게까지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주께 피한다고 말한다(1).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주께 피할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도피할 수 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시34:8). 2 다윗은 하나님께서 진노로 일어나셔서 심판하시도록 호소한다(6).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표현은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행동하심을 뜻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일어나소서”(6)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다. 그런 하나님께 ‘일어나소서(깨소서)’라고 말하는것은, 속히 심판을 이행해 달라는 간청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에게는 재앙이요, 의로운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순간이다. 3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악인을 심판하신다. 마치 악인의 최후를 본 것처럼 다윗은 말한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우리의 방패는 하나님께 있다(10). 방패이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면 우리는 모든 공격과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자.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

2021.6.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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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5 (토) 시5:1-12 고난 중에 성도들이 의지할 유일한 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시편 기자는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한다. 오늘 시편을 통해 다윗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살펴보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적용해 보자. 1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간청했다. ‘헤아려 주소서’란 표현은 불을 밝히듯 환하게 헤아려 살핀다는 뜻이다. 다윗은 대충 기도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하여 기도했다. ‘기도하다’(3)로 번역된 히브리어어 (‘아라크’)는 ‘정렬하다’, ‘줄지어 놓다’, ‘정리하다’는 뜻으로, 성소 안 진설병상 위에 있는 진설병을 정렬하거나(출40:23) 제단 위에 나무를 배열할 때(창22:9) 사용되던 단어다. 즉, 다윗은 마치 제사드릴 때 온 전성을 다해 성물을 정리하듯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해야 한다. 2 다윗은 대적들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며 하나님께 정죄를 받아 쫓겨나기를 간구한다(4-6, 9-10). 그러나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자는 기뻐하고 하나님께 보호를 받는다고 말한다(11). 하나님은 커다란 방패처럼 은혜로 당신께 피하는 자들을 지켜 주신다 (12).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이 호위해 주신다. 고대 전쟁에서 크고 강한 방패가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방패는 대적의 거짓, 오만, 저주, 중상모략, 권모술수, 물리적 공격을 다 막아 준다. 방패이신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의인들을 호위해 주신다. 주님,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일이라면, 커다란 방패로 우리를 지키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확신을 갖고 마음을 다해 늘 기도해 힘쓰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021.6.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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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4 (금) 시4:1-8 시편 기자는 자기를 공격하는 대적들로 인해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선 대부분 상대방을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불명의 밤을 보내지만 시편 기자는 여전히 평안히 눕고 잘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 영적 비결이 무얼까? 1 살면서 여러 모양의 고통을 경험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 안에서 빚어진 오해와 불신, 배신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은 견디기 힘들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원망하거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분노를 쏟아 낸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평안히 잘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비결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로 그의 마음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누구보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마음을 그분께 털어놓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다시 평안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사랑의 능력을 간구하자. 2 추수 때가 되면 농부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그런데 시인은 곡식이 풍성할 때의 기쁨보다 더한 기쁨을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두셨다고 고백한다.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이 주신 것들을 되돌아 보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지켰기에, 시인은 사람들의 공격이 계속 되는 때에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음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전쟁터다. 이런 전쟁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여기게 있기 때문이다 (잠4:23). 고통스런 상황에 놓일수록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되돌아보자. 감사의 기도 자리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다. 주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지킴으로 믿음 안에서 더욱 견고히 성장하게 하소서!

2021.6.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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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3 (목) 시3:1-8 살면서 우리를 압도하는 위기를 만날 때가 있다. 다윗에게도 이런 위기가 찾아왔다.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쫓겨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고, 가까운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배신도 경험했다. 어떻게 그는 이런 위기를 이길 수 있었을까? 1 대적들이 다윗을 보고 비웃었지만, 다윗은 그런 비웃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면 기도로 나아갔다. 첫 기도는 ‘여호와여’였다. 외마디의 기도.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하심, 보호하심으로 살았다. 다윗이 가장 의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때로 성도의 입에서 외마디 절규가 나오게 하는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이다. 이럴 때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2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고 말한다. 큰 방패는 온 몸을 방어할 수 있다. 얼마든지 적군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 도망자로서의 다윗의 자존감도 다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을 그는 신뢰했다. 고난의 순간에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다윗을 붙드셨고 천만인이 에워싼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할 수 있는 담대함을 오히려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머리를 들게 해 주시면 이런 고백이 나온다. 3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는 하나님의 법궤가 진중으로 이동할 대 부르는 함성이다. 법궤가 이동하면 전쟁이 시작되어 전쟁의 용사 (출15:3)이신 하나님이 싸우게 된다. 하나님이 싸우시면 전쟁은 무조건 승리한다. 패배가 있을 수 없다. 다윗은 하나님이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고 말한다. 이는 대적들의 힘을 빼앗으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 주신다. 주님, 전쟁과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전쟁의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승리를 주십시오!?

2021.6.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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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 6. 2 (수) 시편 2:1-12 시편 1편이 복 있는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를 개인적인 삶의 문제 차원에서 조명했다면, 시편 2편은 이 문제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1. (1-3절)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는 것이 세상의 풍조이자 상식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본성상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든 하나님을 대적한다. 예를 들어, 세상의 부와 힘을 가진 사람은 교만해짐으로서, 반면에 세상의 약자들은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 또한 지성인들은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며, 지식이 부족한 자들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 2. 4-9절은 세상의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왕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통치와 뜻이 이 땅에서 더욱 견고히 세워지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왕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다. 3. (10-12절) 성도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다. 성도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가운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참으심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참으심을 전할 수 있는 시대도 지금 뿐이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과 달리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주님, 저희가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을 아끼셔서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유일한 생명의 길임을 이 세상에 전하는 백성 되게 하소서.

2021.6.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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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5.31 (월) 출24:12-18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마치 결혼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후, 약속의 증표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려 성막을 제작하려 하셨다. 그 증표를 모세에게 전달하시고, 성막의 양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4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을 맺은 후 그 내용을 돌에 새기거나 점토에 새겨 구워 하나씩 보관하기도 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내용인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언약의 상징물로 주겠다고 하신다(12). 그 돌판에 새겨진 내용을 이스라엘이 떠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모세가 산에 머무는 동안 아론과 훌의 지휘를 받으며 기다리도록 당부했다. 모세는 하나님께도 신실했지만 백성을 향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2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렸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15-16). 이스라엘은 산 아래에서 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산 위에 임한 맹렬한 불(17)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13:21-22). 구름 가운데로 모세가 들어가 40일을 보낸다(18). 이 40일 동안 아론과 홀이 백성들을 잘 이끌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뵙고 내려온 지도자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언약의 징표를 가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졌을 것이다. 주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이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질 기회를 얻었던 이스라엘처럼, 저의도 죄의 종으로 살다가 아무런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권세를 얻었으니, 이 땅에서 마땅히 그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며,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리는 백성되게 하소서!

2021. 5. 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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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5.31 (월) 출24:12-18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마치 결혼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후, 약속의 증표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려 성막을 제작하려 하셨다. 그 증표를 모세에게 전달하시고, 성막의 양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4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을 맺은 후 그 내용을 돌에 새기거나 점토에 새겨 구워 하나씩 보관하기도 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내용인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언약의 상징물로 주겠다고 하신다(12). 그 돌판에 새겨진 내용을 이스라엘이 떠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모세가 산에 머무는 동안 아론과 훌의 지휘를 받으며 기다리도록 당부했다. 모세는 하나님께도 신실했지만 백성을 향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2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렸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15-16). 이스라엘은 산 아래에서 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산 위에 임한 맹렬한 불(17)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13:21-22). 구름 가운데로 모세가 들어가 40일을 보낸다(18). 이 40일 동안 아론과 홀이 백성들을 잘 이끌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뵙고 내려온 지도자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언약의 징표를 가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졌을 것이다. 주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이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질 기회를 얻었던 이스라엘처럼, 저의도 죄의 종으로 살다가 아무런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권세를 얻었으니, 이 땅에서 마땅히 그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며,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리는 백성되게 하소서!

2021.5.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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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5.29 (토) 출23:14-33 본문은 ‘언약서’(20:22-23:33)의 마지막 결론 부분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법도를 명령과 당부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붙들 원칙이 뭘까? 1 국경일은 나라의 역사나 가치를 국민들이 기억하게 돕는다.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매년 세 번의 절기를 지켜야 했다(14, 17). 무교절은 출애굽의 역사를(15), 맥추절(칠칠절, 오순절)과 수장절(초막절, 추수감사절)은 가나안 땅에서 열매를 거두고 저장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절기다(16). 절기에는 올바른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이방 종교의 풍습을 따라서도 안된다(18-19). 세속에 왜곡되지 않게 교회 절기를 거룩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2 하나님은 ‘내 천사’를 보내겠다고 하시는데, 단순한 전령을 의미하기에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고, 천사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20a). 그 천사가 어떤 존재든, 이스라엘이 그 ‘사자’의 말에 순종하면 대적들을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20b, 22).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 곧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고,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해 나가는 길에 승리를 주신다(21, 23). 지금도 하나님의 권세를 발휘할 지도자를 세우신다. 주의 이름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지도자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3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거듭 약속하신다(27-28,31).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의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받게 되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종교를 철저히 파괴하고 그 문화를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강조하신다(24-25, 32-33).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누리지만(25-26), 우상을 섬기면 그것이 반드시 덫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