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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ne, 2021

2021.6.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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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5 (화) 출26ㅣ1-14 성막은 네 겹으로 되어 있다. 성막의 구조에서 어떤 영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1 성막 가장 안쪽에 있는 휘장에는 가늘게 꼰 베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천사)을 수놓았다. 이 휘장은 모두 10폭인데, 5폭을 연결해 큰 휘장 두 개를 만들고 그 둘을 연결해 한 개의 완성된 휘장을 제작한다. 크기가 가로 18미터, 세로 12.7미터나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막과 같으신 분이다. 천상을 상징하는 ‘청색’, 고귀함을 상징하는 ‘자색’, ‘홍색’은 피를 상징한다. 가늘게 꼰 베실은 ‘흰색’으로 성결을 상징한다. 성육신(청색)하신 하나님은 누구보다 고귀하신 분(자색)이시지만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 피를 흘리셨고(홍색), 이를 믿는 자들을 흰 눈처럼 양털처럼 깨끗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사1:18). 2 성막의 두 번째로 덮는 휘장은 염소 털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만든 휘장을 덮어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로 성막을 덮는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해달의 가죽으로 광야의 모래 바람, 비, 추위와 더위를 막게 했다. 속은 아름다운 실로 가장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위로 갈수록 성막의 덮개는 강하고 단단하다. 그 어떤 세력도 침범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성막 안에 거하는 성도는 예수님이 친히, 돕는 방패가 되어 주신다 (신33:29).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성막처럼, 주께서 우리에게 성막이 되어주시고, 그 안에 있는 자를 보호해 주시는 주님, 가장 안전한 성막 안에서 사는 것처럼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2021.6.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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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6 (수) 출26:15-37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았던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성막의 휘장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경계선이었기에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 주시어 그 길을 여셨다. 오늘 본문에서 성막 휘장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1 성막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다. 하나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성막의 바깥문으로 사용된 휘장이다. 휘장은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 없고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는 경계를 의미한다. 지성소에는 증거궤를 두고, 그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제물의 피를 갖고 들어갈 수 있다(히9:7). 죄인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오직 중보자를 통해 나아갈 수 있다. 성막 바깥문으로 사용된 휘장(26-37)은 오직 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휘장은, 완전한 속죄를 위해서는 성막의 그림자가 예시하는 실체인 메시아가 오시어 속죄의 완성을 이루어야 함을 가르친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완성되어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하나님께 항상 감사해야 한다. 2 성막 휘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보여 주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마27:51).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이다 (히10:19-20). 예수님은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알려 주셨다(요14:6).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과 진리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는 선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또한 주와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함으로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이 은혜로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구원의

2021.6.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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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4 (월) 시25:23-40 성막 문은 동쪽을 향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면 물두멍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성소가 나온다. 성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북쪽에 진설병 상, 남쪽에 등잔대가 보인다. 진설병과 등잔대를 통해, 하나님이 성도에게 어떻게 영의 양식을 주시는지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싯딤나무(아카시아)로 상을 만들라고 하신다. 가볍고 잘 부식되지 않기에 상을 만들기 적합하다. 이 진설병 상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다. 증거궤와 진설병 상은 이동할 때 세가지 덮개로 덮는다(해달 가중, 홍색 보자기, 청색 보자기; 민4장). 증거궤처럼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설병 주위에 턱이 있어 진설병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상에는 고리를 채에 꿰어 운반할 수 있데 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양식이 된다.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진설병을 교체하는데, 이는 마치 주일마다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과 같다. 주일 예배는 의무감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일주일을 살아내고자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갈급한 마음으로 나오는 성도에게 말씀을 부어 주신다. 2 또 하나님은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라 명하셨다.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 비추게 하셨다(37). 성소 안 북쪽에는 진설병, 남쪽에는 등잔대가 있어 진설병(영의 양식)을 비춘다.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말씀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성령께서 빛을 비춰 주셔야 말씀이 이해되고,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곱은 완전수다. 완전하고 충만한 빛이 성소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친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요8:12)이 계신 곳에는 어둠이 발을 붙일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마5:14). 그러므로 성령님이 비춰 주시는 생명의

2021. 6.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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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2 (토) 시11:1-7 시인은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을 듣지만, 그 조언을 거부한다. 현실적인 조언이 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가 참된 복을 받을까? 1 사울왕에게 쫓기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다윗에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새’같이 도망가라고 권면한다. 사울왕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가 아무리 빨라도 순식간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피하지 않고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피했다(1). 다윗은 용사였지만, 인간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여호와께 피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2:12).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먼저 찾는 것은 도망가는 것에 불과하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싸울 수 있다해도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 2 여호와는 성전에 계신다. 다윗 당시엔, 하나님께서 법궤가 있는 성막에 계셨다. 이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의미한다. 고난 중에 있던 다윗과 함께 하셨다. 또 여호와의 보좌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초월성’을 뜻한다. 다윗의 모든 상황을 통치하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란 뜻이다. 이런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 의인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시기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7).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을 받는다. 주여, 역경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의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큰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6.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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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1 (금) 시10:1-18 시편 기자는 악인들의 행위를 관찰하고, 그들의 악행을 보복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이 모든 죄의 근원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나? 1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악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가득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주와 거짓을 쏟아내고, 무죄한 자를 죽이고 가련한 자를 잡고 넘어뜨린다. 시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고발하는데 더 주력한다.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에서 온갖 악행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악행보다 무신론적 마음에 그 뿌리가 있다. 2 시인은 하나님께 ‘일어나소서, 손을 높이 드소서’라고 간정한다. 거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12) 악인의 팔을 꺾으실 것을 간청한다(15).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악행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악한 자의 악을 모두 찾아내시고 심판하신다(18). 성도는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간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세상이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돌아올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드리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사 악을 심판하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저희를 그 통로로 사용하소서!

2021.6.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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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10 (목) 시9:11-20 삶에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악인이 득세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거나 의인이 억울한 고통을 당한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과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붙잡아야 할 진리와 그에 따른 올바른 태도가 무엇이라고 본문을 말씀하시는가? 1 세상의 혼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의 주관자이시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악인이 득세하여 무죄한 자를 억압하고 의인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 해도 하나님이 결국 악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행위를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저들을 징계하실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고통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억울한 상황에서 건지시며 보상해 주신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실 것을 믿고, 이 땅의 불의, 인권, 압박, 폭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과 열방을 향해 하나님을 알려야 할 사명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하고 빛 된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을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임을 알고 더욱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우리의 소유를 나눌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는 선포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깎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어두운 세상에서 당신의 빛을 드러낼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영광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 땅 살아가는 동안 거룩하고 구별되이 살아가게 하소서!

2021.06.0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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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9 (수) 시9:1-10 시편9편과 10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시를 기록해 나가는 답관체(acrostic) 형식을 따라 쓰여졌다. 시인이 이 형식을 통해 노래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1 다윗을 힘들게 하던 원수는 도망가며 하나님 앞에서 넘어졌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재판하셔서 다윗의 억울함을 풀어 주신 것이다. 또 이방을 책망하시고 악인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다. 감사의 이유를 들여다 보면, 다윗이 한 일은 없고, 모두 하나님이 하셨기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다. 1절의 ‘감사하오며’는 미완료형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감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도들의 마지막 원수는 사망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롬8:2). 이런 감사의 이유가 있기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신 재판장이시다. 그분은 재판하시기 위해 영원한 보좌에 앉아 계시며, 심판 기준은 공의와 정직이다(8). 세상의 모든 재판관과는 다르게 하나님만 공의롭고 정직하신 재판관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억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이 성도들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을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절대로 당신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자기 양들을 보해해 주신다(요10:11). 성도는 공의와 정직으로 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와 간구로 주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 다윗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전심으로 지속적인 감사가 찬양을 올려드리는 신앙을 영적 성숙을 허락하소서!

2021.6.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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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8 (화) 시8:1-9 시편에 총29편의 감사 찬양시가 나오는데, 8편이 첫 번째 감사 찬양시다. 시인은 무슨 이유로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을까? 1 하나님은 능력과 신성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명확히 볼 수 있다(롬1:20). 그래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19편). 자연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는 어린아이와 젖먹이처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2). 말씀으로 천체를 창조하신 사건(창1장)을 시인은 ‘손가락’으로 만드셨다고 표현한다. 성도는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창조 작품으로 봐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2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 작품인 사람에게 관심을 돌린다. 죄를 짓는 보잘것없는 조재인데 하나님은 그런 존재를 생각해 주시고 돌보아 주신다. (하나님)천사보다 조금(잠시) 못하게 하셨지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 피조 세계를 다스리신다. 이 권한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화와 존귀의 관이다. 창조물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특권이요 위임이기에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고 생각하시고 돌보시는지 알 수 있다. 통치 대리자로 세우신 사실을 깨달은 성도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주님,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며, 그 안에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특권을 잘 드러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1.6.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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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7 (월) 시7:1-17 시편7편은 개인 탄원시로 부름-탄식-탄원-신뢰-찬양의 기본적인 구조를 잘 따르고 있다. 7편을 통해 시편 기자의 처지는 어떠한지,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청원을 드려야 하는지 알아보자. 1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정한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하는 배경일 가능성이 높다. 대적들은 다윗이 반역을 계획한다고 모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다윗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울을 높였다. 다윗은 만일 자신에게 죄악이 있다면,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다 버리겠다고 약속한다(5). 그가 이렇게까지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주께 피한다고 말한다(1).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주께 피할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도피할 수 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시34:8). 2 다윗은 하나님께서 진노로 일어나셔서 심판하시도록 호소한다(6). 하나님이 일어나신다는 표현은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행동하심을 뜻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일어나소서”(6)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다. 그런 하나님께 ‘일어나소서(깨소서)’라고 말하는것은, 속히 심판을 이행해 달라는 간청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에게는 재앙이요, 의로운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순간이다. 3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악인을 심판하신다. 마치 악인의 최후를 본 것처럼 다윗은 말한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우리의 방패는 하나님께 있다(10). 방패이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면 우리는 모든 공격과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자.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

2021.6.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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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5 (토) 시5:1-12 고난 중에 성도들이 의지할 유일한 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시편 기자는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시라는 신앙을 고백한다. 오늘 시편을 통해 다윗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살펴보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적용해 보자. 1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간청했다. ‘헤아려 주소서’란 표현은 불을 밝히듯 환하게 헤아려 살핀다는 뜻이다. 다윗은 대충 기도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하여 기도했다. ‘기도하다’(3)로 번역된 히브리어어 (‘아라크’)는 ‘정렬하다’, ‘줄지어 놓다’, ‘정리하다’는 뜻으로, 성소 안 진설병상 위에 있는 진설병을 정렬하거나(출40:23) 제단 위에 나무를 배열할 때(창22:9) 사용되던 단어다. 즉, 다윗은 마치 제사드릴 때 온 전성을 다해 성물을 정리하듯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해야 한다. 2 다윗은 대적들이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며 하나님께 정죄를 받아 쫓겨나기를 간구한다(4-6, 9-10). 그러나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자는 기뻐하고 하나님께 보호를 받는다고 말한다(11). 하나님은 커다란 방패처럼 은혜로 당신께 피하는 자들을 지켜 주신다 (12).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이 호위해 주신다. 고대 전쟁에서 크고 강한 방패가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방패는 대적의 거짓, 오만, 저주, 중상모략, 권모술수, 물리적 공격을 다 막아 준다. 방패이신 하나님은 당신께 피하는 의인들을 호위해 주신다. 주님,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일이라면, 커다란 방패로 우리를 지키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확신을 갖고 마음을 다해 늘 기도해 힘쓰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021.6.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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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4 (금) 시4:1-8 시편 기자는 자기를 공격하는 대적들로 인해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선 대부분 상대방을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불명의 밤을 보내지만 시편 기자는 여전히 평안히 눕고 잘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 영적 비결이 무얼까? 1 살면서 여러 모양의 고통을 경험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 안에서 빚어진 오해와 불신, 배신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은 견디기 힘들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원망하거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분노를 쏟아 낸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평안히 잘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비결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로 그의 마음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누구보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마음을 그분께 털어놓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다시 평안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사랑의 능력을 간구하자. 2 추수 때가 되면 농부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그런데 시인은 곡식이 풍성할 때의 기쁨보다 더한 기쁨을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두셨다고 고백한다.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이 주신 것들을 되돌아 보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지켰기에, 시인은 사람들의 공격이 계속 되는 때에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음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전쟁터다. 이런 전쟁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여기게 있기 때문이다 (잠4:23). 고통스런 상황에 놓일수록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되돌아보자. 감사의 기도 자리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다. 주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지킴으로 믿음 안에서 더욱 견고히 성장하게 하소서!

2021.6.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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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6.3 (목) 시3:1-8 살면서 우리를 압도하는 위기를 만날 때가 있다. 다윗에게도 이런 위기가 찾아왔다.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쫓겨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고, 가까운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배신도 경험했다. 어떻게 그는 이런 위기를 이길 수 있었을까? 1 대적들이 다윗을 보고 비웃었지만, 다윗은 그런 비웃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면 기도로 나아갔다. 첫 기도는 ‘여호와여’였다. 외마디의 기도.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하심, 보호하심으로 살았다. 다윗이 가장 의지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때로 성도의 입에서 외마디 절규가 나오게 하는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이다. 이럴 때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2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고 말한다. 큰 방패는 온 몸을 방어할 수 있다. 얼마든지 적군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 도망자로서의 다윗의 자존감도 다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을 그는 신뢰했다. 고난의 순간에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다윗을 붙드셨고 천만인이 에워싼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할 수 있는 담대함을 오히려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머리를 들게 해 주시면 이런 고백이 나온다. 3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는 하나님의 법궤가 진중으로 이동할 대 부르는 함성이다. 법궤가 이동하면 전쟁이 시작되어 전쟁의 용사 (출15:3)이신 하나님이 싸우게 된다. 하나님이 싸우시면 전쟁은 무조건 승리한다. 패배가 있을 수 없다. 다윗은 하나님이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고 말한다. 이는 대적들의 힘을 빼앗으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 주신다. 주님, 전쟁과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전쟁의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승리를 주십시오!?

2021.6.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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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 6. 2 (수) 시편 2:1-12 시편 1편이 복 있는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를 개인적인 삶의 문제 차원에서 조명했다면, 시편 2편은 이 문제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1. (1-3절)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는 것이 세상의 풍조이자 상식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본성상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든 하나님을 대적한다. 예를 들어, 세상의 부와 힘을 가진 사람은 교만해짐으로서, 반면에 세상의 약자들은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 또한 지성인들은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며, 지식이 부족한 자들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 2. 4-9절은 세상의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왕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통치와 뜻이 이 땅에서 더욱 견고히 세워지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왕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다. 3. (10-12절) 성도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다. 성도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가운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참으심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참으심을 전할 수 있는 시대도 지금 뿐이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과 달리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주님, 저희가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을 아끼셔서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유일한 생명의 길임을 이 세상에 전하는 백성 되게 하소서.

2021.6.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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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5.31 (월) 출24:12-18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마치 결혼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후, 약속의 증표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려 성막을 제작하려 하셨다. 그 증표를 모세에게 전달하시고, 성막의 양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4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을 맺은 후 그 내용을 돌에 새기거나 점토에 새겨 구워 하나씩 보관하기도 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내용인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언약의 상징물로 주겠다고 하신다(12). 그 돌판에 새겨진 내용을 이스라엘이 떠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모세가 산에 머무는 동안 아론과 훌의 지휘를 받으며 기다리도록 당부했다. 모세는 하나님께도 신실했지만 백성을 향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2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렸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15-16). 이스라엘은 산 아래에서 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산 위에 임한 맹렬한 불(17)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13:21-22). 구름 가운데로 모세가 들어가 40일을 보낸다(18). 이 40일 동안 아론과 홀이 백성들을 잘 이끌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뵙고 내려온 지도자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언약의 징표를 가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졌을 것이다. 주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이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질 기회를 얻었던 이스라엘처럼, 저의도 죄의 종으로 살다가 아무런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권세를 얻었으니, 이 땅에서 마땅히 그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며,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리는 백성되게 하소서!

2021. 5. 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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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5.31 (월) 출24:12-18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는 마치 결혼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후, 약속의 증표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려 성막을 제작하려 하셨다. 그 증표를 모세에게 전달하시고, 성막의 양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4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을 맺은 후 그 내용을 돌에 새기거나 점토에 새겨 구워 하나씩 보관하기도 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내용인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언약의 상징물로 주겠다고 하신다(12). 그 돌판에 새겨진 내용을 이스라엘이 떠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모세가 산에 머무는 동안 아론과 훌의 지휘를 받으며 기다리도록 당부했다. 모세는 하나님께도 신실했지만 백성을 향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2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렸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15-16). 이스라엘은 산 아래에서 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산 위에 임한 맹렬한 불(17)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13:21-22). 구름 가운데로 모세가 들어가 40일을 보낸다(18). 이 40일 동안 아론과 홀이 백성들을 잘 이끌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뵙고 내려온 지도자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언약의 징표를 가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졌을 것이다. 주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이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질 기회를 얻었던 이스라엘처럼, 저의도 죄의 종으로 살다가 아무런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권세를 얻었으니, 이 땅에서 마땅히 그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며,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리는 백성되게 하소서!

2021.5.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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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5.29 (토) 출23:14-33 본문은 ‘언약서’(20:22-23:33)의 마지막 결론 부분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법도를 명령과 당부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붙들 원칙이 뭘까? 1 국경일은 나라의 역사나 가치를 국민들이 기억하게 돕는다.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매년 세 번의 절기를 지켜야 했다(14, 17). 무교절은 출애굽의 역사를(15), 맥추절(칠칠절, 오순절)과 수장절(초막절, 추수감사절)은 가나안 땅에서 열매를 거두고 저장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절기다(16). 절기에는 올바른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이방 종교의 풍습을 따라서도 안된다(18-19). 세속에 왜곡되지 않게 교회 절기를 거룩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2 하나님은 ‘내 천사’를 보내겠다고 하시는데, 단순한 전령을 의미하기에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고, 천사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20a). 그 천사가 어떤 존재든, 이스라엘이 그 ‘사자’의 말에 순종하면 대적들을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20b, 22).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 곧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고,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해 나가는 길에 승리를 주신다(21, 23). 지금도 하나님의 권세를 발휘할 지도자를 세우신다. 주의 이름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지도자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3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거듭 약속하신다(27-28,31).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의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받게 되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종교를 철저히 파괴하고 그 문화를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강조하신다(24-25, 32-33).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누리지만(25-26), 우상을 섬기면 그것이 반드시 덫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