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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ugust, 2022

2022.8.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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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27 (토) 창15:1-11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 근거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근거가 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구원의 원리를 깨닫고 주의 은혜에 합당한 성도로 살아가야 한다. 1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은 자신에게 자식이 없기에 자기 종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의 몸에서 난 자로 언약을 잇게 하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에 그가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롬10:17; 엡2:8). 그렇다면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2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람은 많은 자손을 주시고 가나안을 소유로 주시겠다는 약속 성취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구했더니 하나님은 암소와 암염소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번제로 가져오게 하신다. 하나님은 타는 횃불이 쪼개진 짐승 사이에 지나가게 하심으로 언약 성취의 증거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이 직접 그 언약을 체결하셨으니 절대로 성취될 수밖에 없는 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 우리는 그 대속의 은혜를 받았으니, 생명을 다해 주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주님,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우리를 동참하게 하셨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높이는 헌신으로 응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8.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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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26 (금) 창14:17-24 하나님의 백성이 감당하는 전쟁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를 분명히 알았던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1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롯과 사로잡혔던 사람들을 구해 돌아오자 소돔 왕과 살렘 왕 멜기세덱이 그를 맞으러 나왔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이 감당한 전쟁이 여호와께서 이끄신 여호와의 전쟁이었음을 선언한다. 아브람의 소수의 종들이 막강한 연합군을 이긴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도의 영적 전쟁은 하나님이 싸우셔서 승리케 하시는 전쟁이기에 승리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2 살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아브람은 전리품의 10분의 일을 바친다. 십일조의 규례가 세우지기 전이었지만 아브람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전쟁의 승리와 전리품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됨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의미가 바로 십일조다. 성도는 자신의 모든 성공과 승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 3 소돔 왕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을 맞이하면서, 사람은 자신에게 보내고 모든 물품은 가지라고 명한다. 아브람이 승리했으니 사실 모든 것이 아브람의 소유다. 그러나 아브람은 과감히 전리품 중 그 어떤 것도 취하지 않았다. 나중에 소돔 왕에게 선물을 받아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다른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취하지 않기를 바랬고, 오직 하나님만이 온전히 영광 받으시길 원했기 때문이다. 주를 향한 이런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많은 물질 앞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우리에게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주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과 영광을 온전히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8.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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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 25 (목) 창14:1-16  성경에 기록된 전쟁의 특징은 군사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가 최초로 적용된 아브라함의 승리에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교훈을 얻어보자.  1 롯이 소돔 땅에 거주하고 있을 때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소돔이 전쟁에서 패하고, 롯의 가족들까지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생겼다. 아브람은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318명을 거느리고 쫓아가 그들을 쳐부수고 롯의 가족을 구했다. 정식 군인도 아니지만 아마도 그들은 대적으로부터 자신과 가축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 꾸준히 훈련한 것이 유사시에 승리로 이어진다. 이처럼 영적으로 훈련된 자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시고, 영적 전투에서도 승리하게 하신다.  2아무로 평소에 훈련을 열심히 했다 해도 아브람의 사람들과 연합군의 군사력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아브람과 그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싸웠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그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고 언제나 그의 편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12:3). 하나님의 군대는 객관적인 수와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심을 믿기 때문에 담대하게 대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 우릴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영적 싸움을 싸우셨고, 부활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땅에서 사탄의 세력과 싸워 항상 승리하게 하소서!  

2022.8.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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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24 (수) 창13:1-18 대부분의 갈등과 다툼은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 때문에 생긴다. 아브람이 조카 롯과 동거하는 가운데 일어난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화평케 하는 지혜를 얻는다. 1 자식이 없었던 아브람은 조카 롯을 아마 자식같이 여겼고, 롯도 아브람을 아버지처럼 의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축이 많아지면서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생겼다. 아브람은 차라리 서로 헤어지는 방법을 택한다. 공동체에 갈등의 요소가 있으면 그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소해 공동체가 나뉘어 서로 다툼으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2 롯을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브람은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더 좋은 땅이 어디인지 살펴보고 연장자로서 먼저 그 땅을 선택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우선권을 양보함으로써 갈등의 요소를 원천적으로 제거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자세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3 롯의 눈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속한 땅이 수자원도 풍부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선택했다. 그곳이 죄악으로 가득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곳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 사방으로 보이는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언약을 믿고 아브람은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예배한다. 성도는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언제든지 복의 근원이시니 하나님과의 동행에 최우선을 두는 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용을 베풀며 갈등을 해소하고 화평을 이루게 하소서!   

2022.8.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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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23 (화) 창12:10-20 눈에 보이는 위기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도는 약한 육신이 아닌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1 아브람이 거하던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러나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이 아내 사래를 빼앗으로고 자신을 죽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사래에게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 하라고 지시한다. 바로가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녀를 궁으로 들게 한다. 반면 아브람에게는 많은 짐승을 주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담대히 행동했다면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셨을 것이다.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꼼수가 아닌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 2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길 위기에 하나님은 사래의 일로 인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바로는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이며, 아브람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임을 알게 된다. 바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래를 아브람에게 돌려보냈다. 인간의 연약함 중에도 하나님은 ‘맺은 언약’에 신실하시다. 아브람과 사래를 통해 낳을 아들을 언약을 이룰 후손으로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어떤 위기 속에서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기뻐하시며, 약속을 굳게 믿는 자에게 구원의 승리를 기쁘게 베푸신다. 주님, 때로 실수하는 과정을 겪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더 깊고 높은 신앙의 단계로 나아가게 하소서!   

2022.8.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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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금일 script는 제공 되지않습니다. 

2022.8.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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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20 (토) 창11:1-9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벨탑 이야기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죄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1 인간들이 벽돌을 만들고 진흙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높은 탑을 쌓았다. 문명과 기술이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죄로 오염되어 타락한 인류는 문명과 기술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데 사용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다. 온 땅에 거하라는 주의 명령을 거부하고 흩어짐을 면하려 했다. 사탄은 이처럼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대항하게 만든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말고 순종하는 길로 행해야 한다. 2 한 언어를 사용하던 인류가 힘을 합해 하나님을 대적하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그들이 지면에 흩어지게 하셨다. 서로 소통되는 무리들끼리 흩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려는 사탄의 계획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악한 계획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계획으로 이끄셨다. 무슨 일을 결정하든지 나의 이익을 우선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선택해야 자신에게도 유익하고 복이 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주님, 세상의 가치관을 멀리하고, 주의 다스리심과 말씀에 순복하는 천국시민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8.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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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9 (금) 창10:1-32 본문은 노아의 세 아들의자손들의 족보다. 모세는 특히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자손들이 야벳, 셈의 자손보다 더 자세히 기록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주변 나라들이 어떻게 땅에 퍼져 갔는지 보여 주고자 한다. 1 홍수로 인해 모든 인류가 멸망하고, 노아의 가족만 남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명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처럼 노아에게도 동일한 복을 주셨다 (9:10). 이 말씀이 그대로 이뤄져 노아의 아들들을 통해 인류는 다시 생육하고 번성했고,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온 땅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사탄은 인류를 타락시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듦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려 했지만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다시 인류가 번성하도록 하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그대로 성취된다.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주를 의지하고 섬겨야 할 이유다. 2 홍수 이후 노아로부터 시작한 인류의 계보 속에는 구원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 함이 셈의 종이 될 것이라는 노아의 예언은 세 아들 중 메시아의 조상으로 셈이 선택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을 명시하기 위해 11장에서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셈의 족보를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11:10-26). 이는 사탄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려 해도 결국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구원 역사를 막으려는 사탄의 끊임없는 시도 (왕하11:1-2; 마2:13-18; 요13:27)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의 뜻을 이루셨다. 성도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동의 되지 않는 때나, 그 어떤 핍박 속에서도 절대로 복음을 배반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에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보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 ‘참 믿음’을 소유한 자로 제발  살아가게 하소서!   

2022.8.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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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8.18 (목) 창9:18-29 새롭게 시작된 시점에서도 에덴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본문은 가나안의 아버지인 함이 저지른 죄를 기록함으로써 장차 이스라엘이 정복하고 멸절해야 할 가나안 족속들이 이어 온 부패한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밝힌다. 1 모세는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함이 가나안의 아비였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이 멸절시켜야 하는 가나안 족속을 포함하여 주위 여러 민족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강조한다. 죄의 뿌리 역시 모든 민족에게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대 의인이로 여겨진 노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포도주에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 죄성이 장막으로 감춰졌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2 함은 다른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수치스런 모습을 알렸다. 내면에 있는 죄의 영향력을 밖으로 표출하는 함과 달리,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덮었다. 지혜로운 자는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에 대한 열망을 덮고 제어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발견하는 음란하고 탐욕스런 문화 모두 인간의 죄성을 제어하려 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악한 문화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고 정결하게 살아가야 한다. 3 함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그의 아들 가나안이 치러야 하는 말처럼 보이는 것은,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함이 후손인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리라는 예언 때문이다(24-27). 모세가 살던 시기를 보더라도 가나안 족속들은 자기 내면에 있던 죄의 욕망을 밖으로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 땅에 죄악이 가득했기에 이스라엘에 의해 멸절된 것이다. 어리석음은 인간의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을 자유라 부르며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결국 죄를 제어하는 자들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세상을 바르게 세워가는데 쓰임 받게 하소서!.   

2022.8.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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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7 (수) 창9:1-17 대홍수가 끝나고 새로운 창조의 질서가 시작되자 노아는 새로운 아담이 되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사명을 받았다. 노아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1 에덴에서 아담과의 언약에서는 죄가 들어오기 전이어서 식물만 먹을 것으로 허락하셨다 (1:29). 그러나 홍수 이후 노아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는 동물도 허락하셨다. 홍수 이후에 환경이 바뀌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셨는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동물을 음식으로 허락하시면서 생명 되는 피채 먹는 것을 금하셨다. 동물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 생명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란 말씀으로 이해된다. 모든 생명이 사망의 올무에 잡혀 있는 현실 속에서 생명과 진리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2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피조 세계를 심판하는 일이 없으리라 약속하시면서 그 언약의 징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주신다. 비가 올 때마다 심판의 공포에 휩싸이지 않게 하시려고 언약의 징표로 허락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지개를 보실 때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의 죄에 대한 최후 심판의 시간이 될 것이다.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에 대한 멸망의 심판을 피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새언약의 증표로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한 삶을 통해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주님, 피조물들을 기억하시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주변 모두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저희가 최대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8.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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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렁큐티 2022.8.16 (화) 창8:13-22 대홍수 심판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우리 인생에도 고난은 찾아온다. 그러나 반드시 끝이 있다. 고난이 끝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고난을 극복한 후 어떤 삶을 살아 내느냐’이다. 1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 즉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렸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자신에게 한없는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도 깨달았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지면서 예배에 쏟는 우리의 수고와 정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에게 예배는 무엇보다 중요한 의무요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특권이다. 다시금 예배를 위해 최선의 수고와 정성을 다하자. 2 대홍수 심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인류가 잃어버린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반역을 저질렀기 때문에 인류가 심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이후 새로운 세상을 주시면서 다시금 노아와 그 가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 노아는 그 축복대로 세상에 인류를 번성케 했다. 이는 노아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방주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시자 순종하여 나가듯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순종이다. 삶의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순종할 때 우린 하나님의 축복 안에 머물 것이다. 주여, 우리가 지나는 고난의 의미를 분별하고 우리 삶이 더욱 성결하고 의롭게 빚어지게 역사하옵소서!   

2022.8.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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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5 (월) 창8:1-12 홍수 심판의 마무리 부분의 본문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기억하심’과 ‘노아의 기다림’이다.  신앙생활에서도 동일한 원리를 발견한다. 1 홍수가 150일동안 땅을 뒤덮은 이후 바람이 불면서 물이 줄어들었다. 깊은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비가 그쳤다. 마침내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췄고, 열째 달 1일에는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또 그와 함께 한 짐승들을 기억하셔서’ 그렇게 하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했다. 다시금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심이 바로 우리의 구원과 회복 뿐 아리나 일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2 방주가 멈추고 40일이 지난 후에야 방주의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다. 또 비둘기도 내보냈다. 앉을 곳을 찾지 못한 비둘기가 다시 돌아왔다. 새들을 보내서 아래쪽의 상태를 알아보고자 한 노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실 때를 얼마나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하듯(롬8:21) 우리는 온전히 회복될 그날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3. 7일 후 비둘기를 내보냈는데,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다시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땅이 회복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상식일 텐데, 노아는 여전히 방주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아의 태도와 행동을 종합해 보면,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한 것임을 볼 수 있다(8:16). 노아는 앞서 나가지 않았다. 주의 말씀이 우리의 들이요, 빛이기 때문이다 (시119:105). 주님, 크고 작은 모든 상황 속에서 주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믿음으로 주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저희 되게 하소서!   

2022.8.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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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3 (토) 창7:1-12 홍수 심판 7일 전의 상황과 홍수 심판의 시작을 다르는 본문이다. 특히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동물들이 방주 안에 이렇게 다양한 동물들을 모아 놓으신 것을 통해 공동체에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자. 1 방주 안에 정결한 짐승 뿐만 아니라 부정한 짐승들까지 함께 두셨다. 물로 심판하시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부정한 짐승들을 없애 버리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정결한 짐승과 함께 살리셨다. 방주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방주 안에서 동물들이 서로 다툰다면 방주는 얼마 가지 못해 가라앉고 말았을 것이다. 지체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관용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관용하는 마음으로 서로 품고 하나될 때 우린 하나 됨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2 노아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행했다. 방주를 만든 것도, 방주 안에 동물들이 들어간 것도 모두 노아의 순종에 의해 이뤄졌다. 모든 짐승들을 방주 안으로 들였고,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말씀대로 가족을 이끌고 방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참된 공동체는 순종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가르치셨다. 영혼구원의 사명을 이 교회에 맡기시며, 교회가 그 사명에 순종하길 기대하고 계신다. 교회의 섬김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더 많은 영혼을 구원의 방주로 이끄실 것이다. 주님, 서로 용납하고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며 더욱 하나로 연합되어 주의 말씀에 함께 순종으로 반응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소서!   

2022.8.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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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2 (금) 창6:11-22 물로 세상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하기로 선택하셨다.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1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노아는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방식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뜻에 따라 이뤄졌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노아 자신의 지혜와 방법으로 방주를 고안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역시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제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2 방주에는 문이 하나 있다. 누구든지 방주로 들어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 문을 통해야 한다.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으려면 오직 단 하나뿐인 문,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요14:6). 예수 외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없다(행4:12).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려면 일정 기간 그 나라에 거주해야 하고, 자격 조건을 갖추고 정해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규정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다. 주님, 노아의 홍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하나님이시지만, 남은 자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이미 구원받은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는 남은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8.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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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1 (목) 창6:1-10 모든 사건에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 노아의 대홍수 사건의 원인을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다. 1 셋의 후손은 육신의 욕망을 위해 외모만 보고 주저하지 않고 가인의 후손의 딸들로 아내를 삼았다. 이는 그들의 신앙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불경건한 삶에 젖어 버렸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세상을 사랑하며 욕망을 따라 살아서는 안된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고 구원의 약속을 저버리는 패역한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과 부패는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원인이 된다. 결국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은 우릴 통해 복음이 온 인류에게 전파되길 원하신다. 2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8).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은 신실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던 노아를 구원하기로 정하셨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다. 은혜를 입은 의인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죄악으로 인해 세상은 결국 심판 당하지만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을 것을 확신하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주님, 세상의 정욕과 악한 가치관으로 타락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의롭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8.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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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10 (수) 창5:1-32 우리 인간의 모든 역사를 간섭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1 아담의 후손들 가운데 유독 에녹이 눈에 띈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면, 에녹은 하나님과 오랜 세월 동행했다. 인간의 죄가 점점 더 쌓이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던 와중에도, 성경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동행한 소수의 인물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이렇게 신앙은 소수의 사람을 통해 유지된다. 2 에녹은 365세를 살았다. 적지 않은 연수이긴 하지만, 당대 인문들과 비교하면 1/3 정도 되는 연수다. 이는 땅에서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시편기자가 고백했듯이 주의 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나음을 매일 기억하며 우리는 살아야 한다(시84:10). 3 에녹이 65세에 아들을 낳고 그에게 특별한 이름 (무드셀라: ‘death thrower’)을 주었다. 무드셀라가 969세를 살고 죽던 해가 바로 노아가 600세되던 해로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시점이다(창7:11).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후 인간은 쉼을 얻지 못하고 평생 수고해야만 하는 운명이 되었다(3:17). 저주받은 것은 그 수고에 상응한 결실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다시금 수고로이 일하는 인간들을 위로하심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위로가 참 위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권과 완전한 통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8.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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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9 (화) 창4:16-24 아담의 후손들이 자기 안에 있는 욕구를 따라, 그 욕구가 반영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죄악이 가득한 인간의 욕망을 담은 문화가 있는가 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성스러운 문화도 있다. 1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후(16) 도시를 세웠다. 가인과 그의 후손은 거대한 성을 짓고 그것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편안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라멕은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는 자에 대한 복수를 주제로 삼아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과 그 후손들은 더러운 욕망과 폭력에 오염된 인간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인간의 욕망을 따라가는 삶은 결국 죄악으로 가득찬 문화를 생산할 뿐이다. 2 아벨의 죽음 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아들을 주셨다. 그의 이름은 셋이었으며 그는 에노스(‘사람’이란 뜻)를 낳고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깊이 통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의 후손들에게 ‘여호와의 이름’과 예배 중심의 문화를 물려주었다.  그런 문화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자유와 만족감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가 정결한 생각과 거룩한 행위를 통해 이 세상을 변혁시키고 그 안에 참된 기쁨을 일깨우는 거룩한 문화를 정착시키길 원하신다. 주여, 세상의 ‘성’을 물려주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물려주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8.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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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8 (월) 창4:1-15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영적으로 단절된 그의 가정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은 각자 마련한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신 이유는 뭘까? 1 아벨은 하나님께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다. 첫 태생은 하나님께 구별된 것을 상징한다. 그만큼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헌신의 마음이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공경하는 태도를 귀히 여기셨고, 그의 삶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 나의 예배는 어떤가? 내가 드리는 예물은 과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내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 삶 자체가 영적 예배라고 했던 것이다(롬12:1). 아벨처럼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를 통해 그분을 기쁘시게 하자. 2 히브리서 저자에 따르면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이로써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고 인정받았다. 그러나 가인에게는 아벨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 그의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현이 아니라 단지 형식적이며 습관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만 받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필요를 얻으려는 수단으로 전락한 모양세다. 그의 삶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제사가 거절되자 분노에 못 이겨 동생을 죽였고, 하나님께 엄중한 책망과 심판을 받게 되었다. 내 안에 거짓이 숨어 있다면 속히 그 죄에서 돌이켜 참된 삶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주님, 우리가 드리는 예물에 앞서 아벨과 같은 믿음과 순종의 삶이 있는지 항상 돌아보며, 내 삶 전체가 거룩하고 의로운 예배가 되게 하소서!   

2022.8.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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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6 (토) 창3:1-12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어기는 죄를 짓게 된다. 아담이 유혹을 받아 죄를 짓는 과정은 모든 사람이 죄악으로 빠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죄에 빠지지 않는 지혜를 발견해 보자. 1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유혹한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금하신 사실과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는 경고를 의심하게 사탄은 유혹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면 죄악에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탄도 알고 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사탄은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접근해서 우리 마음이 진실함과 정결함에서 떠나 부패해지도록 여전히 우리를 공격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시간을 구별해서 지켜야 한다. 2 마귀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권위에 도전한다. 뱀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이 과연 선하신 분인지 의심하도록 부추겼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을 두려워하는 편협한 분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작전으로 우리를 지금도 넘어뜨린다. 우리더러 하나님이 되어 마음대로 살도록 충동질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순간 우리는 실족하게 된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명철과 지혜를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잠3:5). 그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함없이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항상 말씀 속에 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2022.8.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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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5 (금) 창2:18-25 아담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이뤄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가 바로 아담을 위해 배필을 지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친밀한 부부 관계의 근본 원리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1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를 하나 뽑아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 오셨다. 이 만남에도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가 있었다.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으니 분명 부부가 한 몸으로 연합되어 가장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길 원하신 것이다. 하와를 본 순간 아담은 그녀가 자기 몸의 한 부분임을 알아보았다. 부부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친밀한 관계 유지다. 그 어떤 다른 인간관계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부부간의 친밀감이다. 이 연합을 통해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온전한 연합의 비밀도 깨닫게 된다. 2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만드셨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로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희생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런 것들을 배우고 익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이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상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말씀은 가르친다. 서로의 허물과 연약함 조차 솔직히 노출되고 용납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서로 수치를 느끼지 않는 하나됨이다. 부부관계가 용서와 사랑으로 유지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러 야 함이 필수다. 부부관계에서도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여 진정으로 건강하고 친밀한 부부 관계가 유지되게 하소서!    

2022.8.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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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4 (목) 창2:4-17 선하신 하나님은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을까?  선 1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곳을 관리하게 하셨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게 하셨다. 선악과를 금지하시기 전에 이미 다른 모든 것을 먼저 사람에게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접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은혜를 헤아리고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내게 없는 것들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갈 때는 없는지 돌아보자. 2 선악과를 만드시 목적은 사람이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 받았다.  그런데 만약 사람에게 어떠한 한계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 앞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선악과를 통해 일깨우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다. 매 순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복된 마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 주님, 내 자신을 높이고자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8.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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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3 (수) 창1:24-2:3 창조의 결정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인가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본문이다. 1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강과 바다와 공중에 하나님은 온갖 생물로 채우신다. 최종적으로 인간까지 창조하여 채우셨다. 본문은 인간의 창조가 특별함을 제시한다. 먼저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다. 다른 모든 푸지물의 창조에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지만, 인간창조와 관련해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여 특별히 강조했다.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인간 창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하나님의 창조가 ‘안식’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명시한다. 이는 인간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최종 목적지는 아님을 제시한다. 창조의 최종 목적지는 다름 아닌 안식, 즉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창조 세계의 중심이나 대리인’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 면류관이요 중심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일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목적과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 하나님 나라를 향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8.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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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8.2 (화) 창1:14-23 창조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능력을 느낀다. 1 하나님은 대기권 바깥 우주에 여러 광명체들로 채우신다. 빵을 비추고, 낮과 밤을 나누며, 계절을 이루는 역할을 하게 하셨다. ‘큰 빛과 작은 빛’란 표현이 눈길을 끈다. 분명 해와 달을 가리키는 말인데, 왜 모세는 굳이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을까? 이미 모세 시대에 사람들이 태양과 달을 섬기던 우상 숭배적 관습과 사고를 배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해와 달로 밤낮을 주관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 주신 청지기적 권세를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2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물에 생물들을, 하늘에 새들로 채우셨다. 이 다양한 생물들은 인간이 생활하는 자연환경의 한 부분을 차지함으로 인간의 대리 통치 사역의 대상이 된다(26).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자연세계와 그 안의 피조물들에 더 관심을 갖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지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고 돌봐야 한다. 주께서 아름답게 지으신 창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자요 하나님의 자녀로 충실하게 돌보고 보호하는 거룩한 책임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2.8.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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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0.8.1 (월) 창1:1-13 세상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지혜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피조 세계 안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담겨 있다. 첫째 날부터 세째 날에 이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엔 어떤 뜻이 있을까? 1 하나님은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셨다. 혼돈과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만드시고 낮이라 칭하시며, 빛이 비추지 않는 어둠을 밤이라 하셨다. 시간의 흐름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 영원 가운데 계시지만, 인간은 시간에 종속되어 그 영향 아래 살아간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하지 않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이다. 세상 유한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살아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이란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2 또 하나님은 땅과 바다를 나누시고, 인간이 땅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게 하셨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생물과 자원은 인류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선물이다. 인류더러 보호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런데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저주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 죄악에 빠진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세계 곳곳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살도록 이 땅을 완벽하게 창조하시고 허락하신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최우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탐욕과 정욕에 이끌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이 땅의 청지기임을 기억하자. 주님,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가 창조 과정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태초부터 이렇게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