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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October, 2022

2022.10.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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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22 (토) 창38:12-23 유다의 두 아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따라 행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 1 세월이 지나 유다의 셋째 아들이 장성했는데도 유다는 며느리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며느리 다말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나 판단에 따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다라 합당한 길로 행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었지만 유다는 죄에 노출되어 자신의 연약함을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언제나 죄로 인해 실족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을 외면하자 유다를 통해 자손을 낳기로 작정하고 유다를 속인다. 죽은 남편의 직계가족을 통해 자손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대적 관습 때문에, 다말은 극단의 조치를 택한다. 훗날 다말이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알게 된 유다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악을 행하면 그 일로 인해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게 됨을 기억하며, 비록 내게 손해가 될지라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제나 성결함과 진실함을 따라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행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나타내게 하소서!

2022.10.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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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21 (금) 창38:1-11 결혼이란 영육간의 결합이므로 성도는 경건한 배우자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뤄야 한다. 유다의 가정을 통해 경건한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 모두 믿음으로 행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경건한 가족이 되길 소망한다. 1 야곱의 아들 중 유다는 구속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계보에 들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49:10). 그러나 유다는 이삭과 야곱과 달리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내를 맞이 했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 문화로 인해 자녀들이 불경건한 자가 되기가 쉬웠다. 경건한 신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건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신6:7-9). 성도는 배우자의 조건 중 신앙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생활로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 2 유다가 가나안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함으로 죽임을 당한다. 장자 엘이 어떤 악행을 범했는지 언급은 없지만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 것을 보면 큰 죄를 지었음이 분명하다. 형사취수제(형님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취하여 형의 후손이 있도록 하는 고대 결혼제도)에 따라 동생 오난에게 형의 대를 잇도록 했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다말을 임신시키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오난의 생명도 거두어 가신다. 유다는 남은 아들을 며느리 다말에게 내어주지 못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도구로 쓰임 받을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건한 삶에 힘쓰며 경건한 자손을 양육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정을 이뤄야 한다. 주님, 무엇보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경건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소서!

2022.10.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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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20 (목) 창37:25-36 창세기에는 인간의 악한 마음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잘 묘사된 부분이 많다. 남 탓하기(3:12-13), 회피하기 (4:9), 두려워하기(12:11-12; 20:11), 다른 죄악을 선택하기(19:7-8) 등 인간의 비겁한 죄악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1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후 형들은 태연히 자기들끼리 앉아 음식을 먹는데, 이 행동 자체가 이들의 악함을 잘 보여 준다(25). 하나님은 이때의 식사를 기억하시고, 이후에 그 죄악을 드러내신다(43:32-34). 하나님은 이때 이스마엘 상인들이 지나가게 하심으로 요셉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이집트로 하나님의 계획에 한걸음 더 가까이 옮기신다. 아무리 어머니가 달라도 르우벤의 무능한 모습, 형제들의 비열하고도 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 어떤 비열함과 무책임함은 우리 안에 없어야 한다. 2 형제들이 서로 반목하고 동생을 노예로 팔기까지 하는 죄를 저지르게 된 데에는 아버지 야곱의 편애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의 옷에 숫염소 피를 적시는데, 이는 야곱이 과거 아버지를 속일 때 염소의 털을 사용했던 것을 연상시킨다(31; 27:9, 16). 형제들이 요셉을 ‘아버지 아들’로 부르고(32), 요셉을 ‘내 아들’이라 부르며 애통하면서 다른 자녀들의 위로를 받지 않은 채 애곡하는 모습 역시 가정 안에 차별이 엄연히 있었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그 악의 뿌리를 뽑으시기 위한 대수술을 이제 진행하신다. 주님, 영적으로 더욱 민감하게 하셔서 죄는 속히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도록 성결의 영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10.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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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9 (수) 창37:12-24 악한 자들은 범죄를 모의하고 의인을 대적하기를 즐겨한다. 그들의 모의가 성공하는 것 같으나 결국 하나님의 간섭으로 결국엔 실패하게 된다. 성도는 의인을 대적하는 악인의 모의를 두려워하지 말고 구원의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1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을 만나러 갔을 때, 이미 형들은 요셉을 죽이고 악한 짐승에게 잡아 먹힌 것으로 꾸미자고 모의했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의 화가 폭발한 것이었다. 요셉을 죽여 꿈이 이뤄질 수 없음을 증명코자 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의 역사에 도전하는 악의 편에 선 행동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악을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악인의 모의에 동참해선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편에 서는 의인의 길로 행해야 한다. 2 형들의 모의에 하나님은 르우벤을 통해 요셉을 죽음에서 구해 내시고, 오히려 구덩에 속에 던져지게 하셨다. 당장 죽임 당할 위기를 모면했지만 후에 노예 상인에게 팔려감으로 요셉은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형들의 이같은 악행은 오히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크게 번성하는 결과를 낳게 하셨다. 요셉의 꿈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이다. 우리는 의를 행하다가 악인의 핍박을 받아도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과정으로 여기며 인내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진리 가운데 행하자!  주임, 악한 권세의 그 어떤 도전에도 포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길로 행하게 하소서!

2022.10.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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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8 (화) 창37:1-11 창37-50장은 요셉을 중심으로 야곱의 열두 아들들, 곧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어가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 사이에 존재하는 분열의 원인을 드러내시고, 그 문제를 치유하시며 하나님의 언약 민족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요셉을 선택하셨고 그에게 꿈을 주셨다. 1 죽은 라헬만을 사랑했고 요셉과 베냐민만을 자기 아들로 여겼던 야곱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들들을 차별하고 그 편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한 야곱의 잘못은 분명 있었다. 어쩌면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하나님은 요셉을 통한 특별한 섭리를 펼치심으로 이 가정의 문제를 드러내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시작된다. 2 요셉에게 두 번을 꿈을 하나님은 주셨다. 요셉이 가족들 앞에 꿈을 이야기하게 하심으로 이후 이어질 사건들의 빌미를 하나님은 마련하셨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런 꿈을 주신 이유는 야곱과 아들들 가운데 이미 곪아가고 있던 심각한 문제를 터뜨리기 위해서였다.  요셉의 꿈은 앞으로 수많은 위기를 만나게 되면서 얼마든지 부서질 수 있었지만, 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성취해 주시는 하나님을 놀라운 과정을 통해 만나는 복이 있다. 주님, 하나님의 큰 그림을 말씀의 약속으로 인지하여, 내 개인의 인생살이에도 집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들리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 거룩한 목적을 위해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10.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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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7 (월) 창36:1-43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세속적인 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세속적인 복이 오히려 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에서와 에돔 족속의 역사를 통해 성도가 구하고 받아야만 할 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참된 복을 구해야한다. 1 에서는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아내로 맞았다. 이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에게 가나안 여인들 중에 아내를 얻지 말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아내를 찾도록 했다. 그러자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했다(28:8-9). 언약의 계보를 잇기 위해선 경건한 아내를 얻어 경건한 자손을 낳아 양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에서는 언약의 족장으로서 경건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2 불경건한 가정으로 시작된 에돔 족속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받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세속적 힘을 의지하여 교만함으로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에게 포확을 행한다. 훗날 이방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공격할 때, 에돔은 방관했고 이스라엘을 멸하는 데 동참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공격한 나라들과 함께 에돔에도 심판을 선언하셨다 (옵1:15-16). 이스라엘을 대적함으로 스스로 하나님 편이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임을 증명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린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복을 받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의 부와 힘을 부러워하며 추구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 주님, 세속적인 복이 영적 복의 방해가 됨을 보면서, 먼저 영적인 복을 구하여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잘되고 형통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2022.10.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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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5 (토) 창35:1-15   디나 사건으로 인해 야곱이 곤궁에 처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다. 두려움 가운데 야곱이 길을 떠날 때, 하나님은 그의 가족이 주변 성읍 사람들로부터 위협받지 않게 하신다.  1 하나님은 야곱에게 과거 에서를 피해 도망할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신다. 야곱이 이전에 자발적으로 서원했던 것 (28:19-22)을 시행하라는 말씀이다. 자신의 서원과 약속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하게 세겜에 정착해 살려고 했기에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요구하신 것이다. 그래서 먼저 자기 집 안에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들을 제거하고서야 벧엘로 출발한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을 기대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부정한 것들과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한다.  2 벧엘에 도착해서 다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집(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의 관심사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9)란 표현은 사실 거기서 돌아온 이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가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벧엘로 돌아오기 전에는 온전히 귀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가 벧엘로 돌아왔을 때 드디어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복을 주시고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확인해 주시며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바를 재확인해 주신다. 영적으로 제자리를 찾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 삶에 평안과 복이 임한다.  주님, 제가 있는 자리가 세겜이라면 당장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소서! 

2022.10.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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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4 (금) 창34:18-31 세겜에서 성폭행을 당한 디나의 일로 야곱의 아들들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성경은 우리가 분노할 수 있으나 그것 때문에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친다. 분노가 잘못 분출되면 반드시 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1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할례를 청혼 승낙의 조건으로 건다. 저들이 모두 할례의 고통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시므온과 레위가 성으로 쳐들어가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디나를 데려왔다. 그리고 가축과 어린 아이와 부녀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결국 야곱의 아들들 역시 세겜 거민을 죽인 것은 성읍의  풍요로움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혔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디나의 복수에 멈추지 않고 성읍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기적인 욕망을 우린 경계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친히 원수 갚지 말고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다(롬12:19). 분노의 감정 또한 하나님께 맡길 때 그분의 공의를 보게 될 것이다.  2 아들들이 저지른 일을 알게 된 야곱이 그들을 책망했다. 그런데 야곱의 책망은 아들들이 벌인 죄악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 일로 가나안 사람들에게 복수 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책망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책망을 들은 아들들은 잘못을 뉘우치는 대신 나무라는 아버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디나 사건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야곱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 자녀에게 영적 가르침을 주지 못했음에 있다. 우리는 분노 때문에 자신의 잘못은 간과한 채 다른 사람만 비난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할 때 억울한 상황도 주께서 선한 일이 되도록 바꿔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와 부당함 당함을 아시는 주여, 주만이 의로운 방법으로 불의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주를 통해서 의로 바뀌게 하소서! 

2022.10.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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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3 (목) 창34:1-17  땅에만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바다에도 길이 있듯이, 우리 인생도 주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의 서원을 잊고 벧엘이 아니라 세겜에 머물러 살다가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1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땅에 사는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지역 추장인 세겜에게 겁탈을 당하게 되었다. 벧엘로 가야 할 여정을 중단하고 세겜의 풍요로움과 하려함에 이끌려 정착하게 된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디나는 세속의 화려함에 마음이 빼앗기는 상태를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행복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우리를 언제든 공격하고 유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2 엄청난 불행이 자신의 딸에게 닥쳤음에도 야곱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몰과 세겜의 청혼과 통혼 요청은 얼마든지 야곱 가족의 정착과 기타 유익한 일이 될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아니다. 불신 세상과의 통혼은 모세 시대 이전 족장들의 결혼이나 홍수 직전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고븨 아들들이 제시한 할례는 디나의 일을 복수하려는 계획인 것을 볼 때, 거룩한 의식을 거짓과 복수의 도구로 삼았다는 것에 저들의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성도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함을 잘 지켜 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 성도로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분투함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힘쓰게 하소서! 

2022.10.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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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2 (수) 창33:12-20  형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마다하고 야곱은 세일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향했다. 왜 형의 제안을 거절했을까?  1야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망각하지 않는다. 에서를 만나 많은 선물을 건넸고, 형은 그동안 쌓인 감정을 털고 야곱을 받아 주었다. 이제 야곱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아름다운 화해의 모습이 틀림없다. 그런데 야곱은 에서의 제안을 거절한다. 밧단아람을 떠나며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31:3)’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한 것이다. 에서와의 관계 해결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을 잊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끝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2 마침내 세겜에 머물게 된 야곱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이 평안히 인도하셨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야곱이 라바노가 함께한 삶은 어떠했는가?  레아와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 동안 품삯도 받지 못하고 일했고, 이후에도 6년 동안 품삯을 받기는 했지만, 라반은 야곱의 삯을 10번이나 변경했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무사히 (샬롬)’ 인도하셨음을 고백한다. 성경이 보여주는 평안은 아무런 고생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힘든 여정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주님, 평안한 일상 뿐 아니라 위기 중에 만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늘 유지하며, 부르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2022.10.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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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10.11. (화) 창33:1-11 야곱에 두려워했던 일이 이제 눈앞에 벌어지기 직전이다. 지난 20년동안 복수를 꿈꾸며 기다려온 형 에서가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에게 온 것이다. 그런데 보복과 응징의 자리가 화해의 자리로 바꿔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1 야곱이 만난 에서는 복수 대신 너그러운 태도로 동생 야곱을 만났다. 이는 아마도 하나님이 주신 복을 통해 넉넉한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곱이 준비한 가축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넉넉한 상태였다. 또한 야곱이 간밤에 하나님과 씨름하며 자신을 간절히 하나님께 의탁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 (엡4:32).  2 예전 같았으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무든 가로채려 했던 태도로 일관했을 야곱이 에서를 더 이상 경쟁 관계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높은 자로 여기는 것을 본다. 바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는 은혜를 경험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결핍을 채워 주시는 공급자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분명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이 마땅하다. 남을 나보다 나은 자로 여기고 섬기며 살아가야한다.  주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사람과의 바른 관계로 이어짐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안에서 타인을 용서하고 그들을 높여주는 성숙한 관계를 경험하게 하소서! 

2022.10.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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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9/2022 ~ 10/8/2022 주간의 Voice QT 는 담임 목사님 출장및 출타 관계로 업로드 되지 않았습니다. 2022.10.10 NAZAZim QT 음성큐티 2022.10.10. (월) 창32:21-32  야곱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본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얍복 나루에서 씨름을 하고, 그에게서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남은 생을 살게 될 것이란 의미다.  1 야곱이 형을 위한 예물을 세 떼로 만들어 먼저 출발시켰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한밤중에 가족들에게 강을 건너게 한다. 그가 에서를 많이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홀로 남은 야곱을 어떤 사람이 찾아와 격렬하게 씨름을 한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젠 상대가 하나님이다. 그 어떤 노력도 하나님이 주시는 새 이름, 하나님을 만나야만 시작되는 새로운 인생보다 더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못할 것이다.  2 야곱은 이 신비한 존재를 이길 수 없었다. 허벅지 관절뼈가 어긋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대적이 특별한 존재임을 알았다. 이 신비한 존재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주고 떠났다. 야곱은 ‘속이는 자’란 뜻이고 (25:26; 27:36), ‘이스라엘’은 하나님(엘)이 싸우신다’란 뜻이다(28).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자신이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자’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것, 하나님을 만나 생명을 얻은 것이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이다.  주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된 새로운 이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늘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