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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anuary, 2022

2022.01.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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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5 (화) 눅7:11-17 예수님이 온갖 질병을 치유하시는 기적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향한다. 모든 질병은 죽음의 전조 증상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살리신 주님의 역사가 부활신앙으로 우리 안에 세워져야 한다. 1 아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살려주심으로 그 고통에서 건져 주셨다. 죽음을 해결하신 주님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모두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받기를 기뻐하신다 (욘4:2).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풍성한 긍휼을 따라 불쌍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2 죽은 청년이 다시 살아남으로 과부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했고, 그 광경을 목격한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임할 영원한 생명을 증명하는 표적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전15:20). 부활의 믿음을 가질 때 사탄의 사망 권세는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없게 된다. 이 소망을 가진 성도가 그 기쁜 소식을 사방에 전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주님, 부활의 확신 가운데 영원한 하나님 나라 소망하며 주가 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게 하소서!

2022.01.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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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4 (월) 눅7:1-10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예수님께 칭찬받은 백부장의 경우처럼, 성도는 믿음과 이웃 사랑과 섬김으로 주님께 인정받아야 한다. 1 이탈리아군 장교였지만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 줄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종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백부장은 예수님께 자기 종을 낫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가까이서 오랜 시간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누가 가식적인지 진심인지 대게 안다. 성도는 믿음과 선한 행실로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게도 진실한 신앙인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2 장로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백부장의 집으로 향해 가실 때, 백부장은 벗들을 보내 집까지 오시지 말 것을 요구한다. 자신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것도 감당할 수 없는데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은 더더욱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심을 확신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칭찬하셨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했다는 최고의 칭찬이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3 백부장의 믿음대로 예수님이 그 집에 방문하지 않아도 그 종은 나음을 입었다. 백부장의 믿음대로 응답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킨다. 구하여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간주에 응답하심(약1:6)을 알고, 백부장같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 있는 믿음을 간구하자. 주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실천하는 믿음, 삶으로 증명되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소서.

2022.01.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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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2 (토) 눅6:27-38 성도는 자기감정을 초월해 말씀에 순종함으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흔히들 ‘황금률’이라고 부른다. 사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19:19)는 말씀을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행위를 그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먼저 타인의 처지와 마음을 공감하는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주님은 죄인인 우리의 처지를 공감하시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다. 그 주님이 우리더러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요13:34). 주님의 심장으로 타인에게 공감하고 뜨겁게 사랑하자. 2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그런데 주님은 원수를 갚지 않는 수준을 넘어(롬12:19),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저주하는 수준을 넘어,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심판날이 오기 전까지 사랑으로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벧후3:9). 그러므로 성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롬12:20-21). 십자가에서도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신 모습이나(눅23:34), 스데반이 자신을 처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행7:60)을 본받아 원수까지 사랑하여 승리하자. 주님, 원수를 사랑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원수를 향한 성도의 도리임을 알아 삶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1.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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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1 (금) 눅6:12-26 기복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복 받으라’는 말을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왜곡된 신앙이다. 제자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과연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어떻게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 1 창조주로서 하늘 보좌에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먼저 고난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시자 악한 세상의 권세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박해했다. 그 결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셨다. 이처럼 고난 당하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려는 성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주님은 고난의 길을 함께 걸을 것을 명하신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엔 복된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2 세상의 기준과 달리 주님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주님으로 밖에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을 말씀하신 것이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훗날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 거의 다 순교당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려는 자들이다.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려면 바로 주님이 가신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 땅에서 잠깐 누리는 행복을 위해 영원한 불행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형재의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자 (롬8:18). 주님,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이겨 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진리의 길로 행하여 훗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로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22.01.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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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20 (목) 눅6:1-11 성도는 안식일 규례의 정신과 의미를 따라 살아갈 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문제를 많이 삼은 것이 안식일 법이었다. 본질이 아닌 형식만을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을 정죄한 것이다. 1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 안식하셨던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사건(신5:15; 출20:11)에 근거한 것이 안식일이다.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 쉼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기념해야 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노동했다고 비난했다.  또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도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라고 정죄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당연히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신약의 성도에게는 안식일이 특정한 날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아 이미 안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영적 예배요, 산 제사가 되었다 (롬12:1-2). 안식일 정신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참 안식과 평안의 메시지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 무의미한 종교 행위를 경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2022.01.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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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9 (수) 눅5:27-39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취해 이방인들을 멸시했지만, 그 교만으로 복음을 거부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 영적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김으로 불신 영혼을 구해야 한다. 1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 벌인 큰 잔치에 세리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볼 때 상대하지 말아야 할 부정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권세를 이용해 동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두어 착복하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한다. 자신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아의식에 그 뿌리를 둔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구원 역사의 대상에서 제외됨을 선언하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며 타인을 멸시하는 교만한 자세를 벗어 버리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해야 한다. 2 종교인들은 세리를 창기처럼 죄인의 대명사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다른 관점으로 그들을 대하셨다. 치유해 주어야 하고,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신 것이다. 주님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 부요하신 자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한 죄인을 부요하게 하신 것이다 (고후8:9). 이것이 세상을 향한 성도의 바른 자세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고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시켜 하나님 백성 삼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스스로 낮추고 사랑으로 섬김의 도를 다하게 하소서.

2022.01.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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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8 (화) 눅5:12-26 불치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표적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1 나병 환자가 와서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신의 병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고백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주님은 이 사람의 믿음을 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언제나 ‘주님이 원하시면’이란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주의 뜻이라면’이란 전제로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고 야고보 사도도 동일하게 교훈한다 (약4:15). 2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메고 온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많아 할 수 없게 되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환자를 달아 내렸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0)고 선포하신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리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치유 사역은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현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적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를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엡1:6).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께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2022.01.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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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7 (월) 눅5:1-11 기적을 보면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의 현장에서 주님은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믿고 행할 때 주님이 역사하심을 잊지 말자. 1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입은 현장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 물고기 기적 직후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8)라고 고백한 이유는 물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 때문이 아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던졌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전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었고, 기적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확신한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됨을 바울은 말한다(롬10:17). 2 베드로가 자신에게서 떠나시기를 구했지만, 예수님은 우히려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셨다. 사람을 낚는 복음 전도자로 그를 부르신 것이다. 베드로와 그의 일행이 어부의 생계 수단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조건과 상황도 따지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으신다. 부자 청년은 재산을 포기하고 주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막10:22). 우리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믿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2:26). 성도는 순종의 열매를 맺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자들이다. 주님, 말씀을 듣고 행하고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특권이자 사명임을 깨닫고 주를 높이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 1. 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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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5 (토) 눅4:16-30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바로 인간적 판단과 세속적 기대는 신앙에 큰 장애물이 된다. 1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사61:1-2)을 읽으신 것은 메시아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선언에 그들은 가장 큰 기쁨으로 반응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이 아는 요셉의 아들로만 인식했기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인간적 사고의 틀 속게 갇혀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했다.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저 좋은 말씀을 가르치신 선생이나, 종교의 창시자 정도로 인식해선 안된다. 예수님을 구원자요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하고 합당한 태도다. 2 이들은 잘못된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만을 찾고 있었다. 믿음으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경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저들의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살해하려 했다.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 메시아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현주소도 동일하다. 내가 하고픈 대로 동의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쫓아가는 신앙은 비극이다. 우리 삶의 왕이신 예수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 내가 아닌 그분이 기대하시는 바를 기대하며 따르는 바른 성도가 되어야 한다. 주님, 성령이 조명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달아 그 어떤 선입견이나 인간적 기대감이 내 삶의 기준이 되지 않게 하소서!

2022. 1. 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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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4 (금) 눅4:1-15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유혹과 시험을 받으셨다.  주께서 당하신 여러 종류의 시험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사탄의 시험에 승리할 수 있는지 배워보자. 1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주님은 가셨고, 거기서 40일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오랫동안 굶주리신 주님을 사탄은 달콤한 속삭임으로 공격했다. 주님은 당신의 생각을 지키셨다. 마귀는 내면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 은밀한 속삭임. 그러나 주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당신의 생각을 굴복시킴으로 사단의 시험에 승리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굴복시켜야 한다. 우리에게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순결한 것들로 우리의 생각을 채우라고 바울도 권면했다(빌4:8).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들로 우리 마음을 지킨다면 주님처럼 유혹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생각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이다. 주님은 마귀에게 대응하시기 위해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용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험이 왔을 때 육신이 연약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말씀을 신뢰하셨고 말씀의 원리를 좇으셨기에 마귀가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사탄은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유혹거리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우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한지만 확인하고 행동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만 마음에 새기고 오직 말씀대로 살겠다는 굳은 결심과 실천만이 승리의 비결이다. 주님이 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마귀의 그 어떤 속삭임을 따라 타협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게 하소서! (잠4:23)

2022. 1. 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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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3 (목) 눅3:21-38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기록과 예수님의 가문의 족보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본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세상의 구주요 왕이시다. 1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졌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께 내려오시고 하늘로부터 음성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증거해 주셨다. 세례 중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신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성취다(사61).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졌기에 그 권세를 근거로 주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영혼 구원의 사명을 부여하신 것이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맡겨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자. 2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후손, 즉 유대인을 위한 왕으로 소개한 반면, 누가는 아담의 후손이시며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힌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두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다.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는데,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셔서 인류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을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은혜를 얻은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바울과 함께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던 누가의 사명감을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신다. 주께서 우리의 주인 되심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내어, 세상이 우릴 통해 주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세상을 통치하심을 보게 하소서!

2022. 1. 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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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2 (수) 눅3:7-20 세례요한은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참된 회개로 참된 구원을 얻으라고 도전한다.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일까? 1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와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냐며 물었다. 요한은 참된 회개는 삶의 변화라고 강조한다(9-14).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삶의 변화와 열매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입술의 고백만으로도 구원받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말씀처럼 삶의 구체적인 열매가 바로 그 사람의 진짜 신앙고백이다. 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열매를 맺고 이는가? 나의 삶의 모습이 주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오히려 진실한 변화를 통해 구체적인 열매를 드러낼 수 있도록 힘을 다하자. 2 요한은 또 자기 보다 뒤에 오시는 더 강한 분,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소개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백성의 진정한 왕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가져 오실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우린 왕으로 오신 예수를 전하는 일에 담대해야 한다. 거짓에 종노릇하며 이 시대의 헤롯에게 아첨하며 살아가는 구원이 꼭 필요한 자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주님,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게 하시고, 주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전환하는 태도가 있게 하소서!

2022. 1. 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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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1 (화) 눅3:1-6 세례요한이 활동하던 때(A.D.28-29년경)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은 폭군에 의한 ‘공포정치’에 가까웠다. 제사장들은 영적 지도자 역할을 충실히 하지도 않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례요한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선지자의 사역을 시작했다. 1 요한은 죄 용서받기 위한 회개를 선포하며 세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는 이스라엘 선지자들과 동일한 사역을 감당했음을 뜻한다. 우리는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만이 구원으로 가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혹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들추실 때 듣기를 거부하거나 하나님의 주시는 무조건적 은혜의 말씀만을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회개 없이는 구원도, 위로도 없기 때문이다. 2 이사야40장에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에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고, 그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라고 명령한다(4-5).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명령은 무슨 뜻인가? 이는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영적, 윤리젹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의 교만과 거만함을 버리고 낮고 가난한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가난한 심령과 애통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해야 한다. 주여, 말씀이 죄를 지적하실 때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거역하는 교만한 죄에서 돌이키도록 권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2022. 1. 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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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10 (월) 눅2:41-52 예수님은 어린시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장하셨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리가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힘써야 할 바가 무엇일까? 1 예수님의 부모는 율법의 규례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월절을 지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에 함께하지 않고 어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그대로 남게 되어 뒤늦게 예수님을 찾아 성전으로 돌아온 부모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고, 당신이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야 할 존재임을 말씀하신다. 이처럼 주님은 어린 시적부터 하나님과 영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온전히 유지하셨다. 자녀가 믿음 안에서 자라기 위해선 하나님과 영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부모는 먼저 영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이때 자녀들의 삶에는 목적과 비전이 세워진다. 2 예수님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순종하셨다. 주님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알고 계셨고, 메시아라는 특별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부모의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경건한 삶을 사셨다. 우리 자녀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덕목이 바로 겸손함에서 오는 순종이다.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공의가 없는 사회에 살면서 우리 성도는 예수님을 본받아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친다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이다. 겸손히 순종하는 태도를 자녀들이 배운다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선한 일꾼으로 빚어질 것이다. 주님,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며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신실한 자녀로 양육되게 하소서!

2022. 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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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8 (토) 눅2:8-20 온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은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때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알렸다. 1 들판에서 밤새워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했다. 생계를 위해 밤낮 열심히 일해야 하는 목자는 사회적으로 미약한 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오히려 주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의 넉넉함과 세속적인 풍요만 추구하지 않도록 가난한 심령을 구해야 한다. 주를 기대하고 갈급해 하는 가난한 심령을 가질 때, 주께서 주시는 영적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2 천사들의 출현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들을 비추자 목자들은 두려워했다. 이들을 안심시키며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천사들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급히 달려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누가는 이들이 ‘서둘러’갔다고 말한 것을 볼 때, 목자들에게는 메시아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목자들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주의 뜻에 즉각 반응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참된 제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께서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주를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양떼)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까지 기꺼이 감수함을 뜻한다. 주님,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 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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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7 (금) 눅2:1-7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조사를 명령해서,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이 땅에 구주로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신다. 일련의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1 당시 로마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온 세상에 대한 절대 권력을 가졌다. 그의 칙령에 요셉과 마리아도 베들레헴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로마 황제와 비교할 수 없는 미약하고 나약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메시아 탄생이란 목적을 성취하셨다. 세상 기준과 달리 온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때로 우리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우리의 사역과 봉사가 미약하게 생각되어도 낙심하지 말자. 연약한 우리의 작은 헌신과 노력을 들어 사용하시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순종해야 한다.  2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은 가브리엘 천사의 예고, 또 미가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다(미5:2). 아우구스투스 황제 역시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사용된 도구였다.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것을 실현하셨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놀라운 약속을 받았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약속도 받았다.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우리는 믿고 기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가는 과정에 있음을 확신하고 믿음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 한다. 주님, 우리 주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여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 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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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6 (목) 눅1:67-8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분의 평강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사가랴는 아들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일을 경험하고 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예언한다. 1 사가랴의 찬양은 마리아의 찬양과 갈리 먼저 이스라엘을 위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를 다윗의 자손 가운데 일으키실 것을 약속하셨다(시132:17). 사가랴는 이 약속의 성취를 확신했다. 처음엔 자신도 믿지 못했던 것을 성령 충만함을 받아 믿음으로 찬양하게 된 것이다. 2 사가랴의 찬양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이유는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믿음으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적을 두려워하며 살게 된다. 성도의 마땅한 본분은 하나님을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섬기는 것이다. 구원자 예수 안에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3 주의 길을 예비할 사명을 받은 아이에 대해 사가랴는 감사하며 찬양한다. 주의 길을 앞서 준비한다는 것은 곧 구원에 대한 지식을 알려 주는 것이다. 요한이 선포할 구원자로 인해 우리는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평강의 길로 인도받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큰 은혜를 찬양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분주한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삶의 질서를 바로 세울 때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주님, 죄에 종노릇하며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사명을 우리도 충실히 감당케 하소서!

2022. 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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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5 (수) 눅1:57-66 엘리사벳은 천사가 예고한 것처럼 아들을 낳고,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날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과 같이 ‘사가랴’로 지으려 했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천사의 말대로 ‘요한’이란 이름을 지어 준다. 아이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어떤 교훈을? 1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가문의 전통에 따라 지으려 했지만, 엘리사벳은 전통적 사고방식과 관습을 넘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남편 사가랴 역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서판을 통해 알려주자, 그의 혀가 풀려 다시 말하게 되었다. 천사의 말을 의심했기에 10달동안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겼을 것이다. 전통과 관습을 벗어나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2 우리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신중을 기한다. 이스라엘 문화도 마찬가지다. 아이에 대한 소망을 그 이름에 담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이름을 새롭게 지어 주실 때가 있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요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란 뜻이다. 장차 오실 구세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제사장인 아버지의 뒤를 이러 제사장으로서 율법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명을 받았기에 요한이란 이름을 받은 것이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제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리고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할 임무를 부여 받았음을 기억하자.  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주셨으니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 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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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4 (화) 눅1:39-56 천사에게 메시아 수태라는 놀라운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두 여인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앞으로 태어날 예수님의 탄생을 축복하고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엡5:19). 찬양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마리아가 수태한 아기가 이 세상의 왕이시며 자신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듣고, 마리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놀라운 자비와 사랑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인간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마리아에게 복을 주셨다. 낮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분이시다. 세상은 신분과 부와 권력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한다. 비록 세상이 볼 때 우리는 보잘것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음을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찬양으로 화답하자 (행3:6). 2 46-55절을 ‘마리아의 송가(Mary’s Magnificat)’라고 보통 부른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베푸셔서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신 것을 찬양한 내용이다. 당시 로마제국과 헤롯이라는 폭군들이 판치는 세상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새로운 왕을 보내셔서 세상을 억압하는 권력들을 대신해 이 땅을 하나님의 뜻으로 통치하겠다는 선언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감사했다. 장차 하나님이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의 약속을 가진 자들은 아무리 암울한 현실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 (살전5:16, 18). 현실의 문제만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이런 기쁨을 유지할 수 없다. 반면 더 크신 하나님,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긴다. 주님, 매순간 우리와 함께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날마다 주를 높이고 찬양할 수 있는 영성을 주소서!

2022. 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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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1.3 (월) 눅1:26-38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는 사건은 말씀의 선포와 함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된 순종은 우리의 상황과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1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가 조만간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로 하라고 전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당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결연하게 순종을 선택한다. 마리아의 순종을 보면서 나의 상황을 핑계 대지 않는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얼마든지 나의 처지와 상황, 분주한 일상, 재정적 어려움,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봉사와 사역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저버리기가 너무도 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문의 말씀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남자와 관계도 없는데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냐며 마리아는 질문한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믿으라고 도전한다. 때로 우리는 믿음을 갖고 이성을 뛰어 넘어 순종해야 할 대도 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신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믿음의 순종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이 임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고 이로 인해 더 큰 믿음을 허락해 주소서!

2021.12.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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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31 (금) 욥42:7-17  살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경험한다. 때론 왜 그런 일을 당하는지 알 수 없어 억울한 마음에 가슴을 친다. 그럴 때마다 욥이 마지막에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1 하나님은 엘리바스와 그 친구들을 꾸짖으신다. ‘사람이 재앙을 당하는 이유가 반드시 죄 때문인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신다(7).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제사를 통해 용서받게 하셨는데, 수소와 숫양을 7마리씩이나 바치는 제사인 것을 보아 그들의 행동을 하나님은 큰 죄로 보셨다. 그리고 욥과 친구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고통 당하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것이 참 지혜며, 죄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짐작해 상대방을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죄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2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 모든 지인들이 함께 모여 욥을 위로하고 도왔다. 고통 중에 있는 자와 함께 울고 위로하고 필요를 채우는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 위에 은혜를 베푸시고 회복시키시고, 더 큰 복을 주신다. 판단보다는 공감을, 복수보다는 용서를 선택함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참된 풍요의 복을 누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3 하나님은 욥의 자산을 재앙을 당하기 전보다 갑절로, 자녀들 또한 이전과 동일하게 주셨다.  특히 당시 문화와 다르게 (구약성경에서도 유일함) 아들들과 동일하게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게 했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욥의 사고와 관점이 변화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욥은 장수의 복과 가문의 복을 누리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의인의 고난을 경험하게 하시지만 결국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더 큰 복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 주님을 본받아 용서와 공감을 통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통로가 되게 하소서!

2021.12.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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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30 (목) 욥42:1-6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는 마치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여 믿음으로 고통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욥의 모습을 통해 경건한 자가 고통을 극복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뭘까?  1 욥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회개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욥의 세 친구가 요구했던 ‘자기를 재앙으로 몰아넣은 죄’에 대한 회개라기 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보고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주장한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가 재앙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고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이다.  2 처음에는 그래도 믿음으로 버티려고 하지만 (1:21; 2:10),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욥도 탄식과 원망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고통을 이미 알고 계셨음과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4-5). 하나님과의 만남이 당장에 상황적 변화가 없어도 이처럼 성도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 주께 위로를 받든, 책망을 듣든, 내 죄가 드러나는 부끄러움을 당하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모슨 것을 새롭게 하고, 내가 처한 현신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꾸준히 주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를 찾아 나아가야한다.  주님,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를 만나기를 힘쓰게 하소서!

2021.12.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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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9 (수) 욥41:1-34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히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피조물의 왕으로서의 위상이 있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타락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은 머무나 연약하고 초라할 뿐이다. 말씀 속에서 처음의 영광스런 위상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1 하나님은 리워야단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증명하신다. 인간은 피조물들에 대해서도 완전한 통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다(창1:27-29). 리워야단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죄로 인한 자연을 온전히 통제하고 다스릴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이신 것이다.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욥에게 자신의 정체를 바로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을 펼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주제를 알고 겸손히 엎드리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2 하나님은 또 ‘하나님 앞을 가로막고 갚은 것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고 온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강조하신다. 욥이 했던 ‘주신 이도 여호와시고,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다’(1:21)라는 처음 고백의 그 신앙으로 온전히 돌아갈 것을 요구하신다. 친구들과 의 논쟁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을 털어내라 하신다. 인간이 먼저 무언가를 드려서 하나님이 갚으시도록 할 사람은 없다.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롬11:35-36). 우리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구원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 된다.  주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위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옆으로는 이웃과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돌보며, 구원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1.12.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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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8 (화) 욥40:6-24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두번의 말씀은 욥의 항복으로 각각 끝난다(40:3-4; 42:1-6).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 제시된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확증하는 것이다. 1 욥은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지켰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기에 불의하게 행동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더 큰 영역에서 욥에게 의로움을 지키고 계셨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부정하려면 사실 욥이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주고 받는 관계여야 하는데, 정작 욥은 하나님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하나님은 밝히신다. 하나님이 욥에게 일방적 은혜를 베풀고 계셨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14). 일방적인 은혜를 받고 있을 뿐이면서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않다. 우리는 오직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뿐이다.  2 베헤못이 어떤 동물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마가 가장 유력함). 다만 그 어떤 동물보다 크고 강하며 사람도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초식동물을 하나님은 소개하시면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태도를 꼬집으신다(19).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시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자기들이 가장 보배로운 존재라고 착각하지 말라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불평하며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도우셔야 할 분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교만일 수 밖에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주의 종이란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2021.12.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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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12.27 (월) 욥40:1-5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지적,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하나님 앞에 서면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사실은 믿음의 시작이다.  1 하나님은 욥을 ‘트집 잡는 자’, ‘하나님을 탓하는 자’라고 부르신다. 38:2에서는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라고 부르셨다.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억울해하고 하나님을 탓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할 때 자신의 생각을 절대시하며 마음껏 하나님을 비판한다. 이는 절대 성도가 해선 안되는 행동이다. 오히려 우리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2 욥은 자신이 비천해서 하나님께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나름대로 생각을 말할 수 있었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크고 깊은 능력과 영광을 깨닫고 나니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비천함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옳은지 분별할 수 있게 만든다.  3 욥이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말하지 않도록 입을 가리겠다고 한 것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복종하겠다는 표현이다. 즉 하나님의 역사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겠다는 고백이다.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며 원망하던 이스라엘을 향해 모세가 했듯이(출14:13),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지 말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는 다윗의 권면(시37:7)에 귀 기울이자.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으며 주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주님,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와 능력을 알았으니,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