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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September, 2023

2023.9.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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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22 (금) 히11:8-16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약속이 성취되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 자신보다 더 신뢰했기에 그 약속을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그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장차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다. 미지의 땅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또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당시 자식이 하나도 없고,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노년인 상태에서 받은 말씀은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고, 그의 이런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다 (창15:6; 롬4:1-3). 그의 영적 자손이 된 성도는 아브라함처럼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영생의 구원을 얻었다. 2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약속은 받지 못한 채 ‘멀리서 보고 환영하는’자로서 살았고, 땅에서는 늘 외국인, 나그네 취급을 받았다(13). 이처럼 본향을 찾는 나그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4; 벧전1:1). 성도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다. 초대교회는 작은 공동체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성읍을 예비하셨다. 지금은 온 땅에 퍼져 나가는 광경을 보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성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기꺼이 나그네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주님, 믿음의 사람들로 세상에 젖어 살지 말고,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나그네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9.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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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21 (목) 히11:1-7 신앙을 갖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나는 점이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바로 믿음이다. 1예수님께서 성전 제사를 완성하셨기에, 이제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선포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차이가 없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말씀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 (엡1:13).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다. 2 아브라함 이전 시대의 조상 아벨, 에녹, 노아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렸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노아 역시 믿음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고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제사만 드렸다면 방주를 지었을 리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유익은 모두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믿음의 사람들 모두 하나님을 주인하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았다. 우리도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주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악한 세대를 이기게 하소서!

2023.9.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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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20 (수) 히10:26-39 당시 일부 유대인 성도가 핍박과 회유 때문에 유대교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앙을 버리고 기존 인간관계를 선택한 것인데, 저자는 이런 배교자들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1 배교의 죄는 율법보다 더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은 것이므로 더 큰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존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배교하는 자들에게 ‘어느 쪽이 정말 두려운 대상인지 확실하게 알라’고 경고한 것이다. 하나님을 보라보기보다 인간관계나 교회에서 얻는 유익이 좋아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버린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어야 한다. 2 큰 고난의 싸움과 비방, 환난을 견딘 사람들은 복음의 기쁨과 영광을 체험했던 사람들이다.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상이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 것을 격려한다 (35).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인내하고 끝까지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 신앙이다. 진리의 가치를 잊지 말고 어려움에 담대히 맞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3 핍박 가운데 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아 누리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했다. 저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붙들자고 격려한다(37-38; 합2:3-4).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곧 썩을 대로 썩어 있던 예루살렘 성전 제사로 돌아가고, 할례와 율법을 숭상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자만심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절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눅9:62). 주님, 구원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가는 믿음의 길에서 세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비록 핍박과 조롱이 있어도 담대히 인내하게 하소서!

2023.9.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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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9 (화) 히10:11-25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핍박을 받아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로 인한 박탈감을 느끼는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참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알려 준다. 1 저자는 시편과 예레미야를 인용하며 성전에 미련을 두지 말라고 권면한다(시110:1; 렘31:31-34).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제단, 가축들의 피를 통해 예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완전한 하늘 성전으로 나아가야 했다. 신앙의 본질을 웅장한 건물이나 화려한 의례에서 찾는 것은 껍데기와 그림자를 붙들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 위에 기반을 둔 참 신앙을 가져야 한다. 2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예수님과 연합한 자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과 같은 지위를 얻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피로 성소에 들어갈 수 있고 (19), 그분의 몸으로 인해 새로운 살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성전은 하늘에 있는 참 성전의 모형에 불과하다. 참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그분과 같이 살아가기로 결단하며 그 뒤를 따라야 한다. 영적 자긍심을 갖고, 이 큰 영광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자. 3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이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23). 이 믿음은 성전에 들어가는 삶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하늘 성전은 바로 교회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모임이 바로 하늘 성전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또한 흩어져 자신이 살아가는 그곳에서 성전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인 것이다. 주님,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거룩한 꿈을 꾸는 하늘 성전에 속한 자들로 매 순간 저희를 붙드소서!

2023.9.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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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8 (월) 히10:1-10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율법대로 제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신과 의미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고, 늘 드리는 같은 제사는 예배자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밖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것은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제사는 그렇지가 못했다.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릴 위해 죽임 당하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믿음을 단지 신념의 영역 안으로 제한하려 할 때 삶에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스리시는 분이다. 몸과 마음 모두 변화를 날마다 경험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2 예수님이 오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전 제사를 폐하기 위해 참제사인 십자가를 준비하셨다. 본문은 하나님이 부리신 한 사람의 ‘몸’(5, 10)을 예비하셨고, 그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헬라문화에서는 영은 좋은 것이고 육은 나쁘고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독생자의 ‘몸’을 제물로 주셨다. 바울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한다(롬12;1).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몸으로 믿자. 주님,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자가 되게 하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살아 있는 제사로 드릴 수 있게 하소서!

2023.9.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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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6 (토) 히9:11-22 구약의 율법이 이루지 못한 완전한 속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 그리스도의 새언약의 의미를 깨닫고 그 언약을 지킴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모세가 받은 첫 언약(율법)에 의해 정죄된 자들을 속량하시려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에 따른 제사가 죄인을 본질적으로 성결하게 만들어 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런 율법의 한계를 깨닫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스스로 거룩하다고 오해하며 제사를 드리지 않던 이방인들을 멸시했다. 하나님은 본질을 떠난 형식뿐인 제사를 책망하셨고, 예수님 역시 외식을 강하게 질책하고 정죄하셨다 (사1:11-14). 우리는 혹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경계해야 한다(딤후3:5). 2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이 만든 성막이 아니라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를 온전한 장막에서 단번에 이루셨다. 예수님 자신의 피로 죄인의 죄를 완전히 씻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는 율법의 제사와는 달리, 사람을 죽은 행실에서 성령으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게 한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죄인을 해방했기 때문이다 (롬8:1-2).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성전인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찬송와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성된 제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어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과 사랑과 헌신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2023.9.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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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5 (금) 히9:1-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를 통해 당신께 나아올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성소를 통한 제사와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때가지만 유효했다. 땅의 성소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계를 갖고 있었을까? 1 성소에는 등대와 상 그리고 진설병이 차려져 있었고,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가 있었다. 오직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던 이곳은 그만큼 하나님과의 만남이 극헤 제한되었음을 뜻한다. 대제사장 조차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나누는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 버리셨다. 믿는 자는 언제든지 누구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특원을 세상의 즐거움과 바쁜 일상을 핑계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최우선 순위에 두자. 2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자기와 백성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동물의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 내면에 있는 더러운 마음과 양심에 기초한 죄의 근본 뿌리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악으로 더러워진 우리의 양심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게 된 것이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우리의 양심과 마음이 이제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우리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죄를 사하시고 당신의 자녀 삼으신 뜻을 헤아려 거룩하고 순결한 삶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가자. 주님, 세상 그 어떤 것에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기쁨을 빼앗기기 않게 하소서!

2023.9.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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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4 (목) 히8:1-13 이스라엘 백성의 불성실함 때문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의 불완전하고 낡은 것들을 청산하시고 완전히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은 뭘까? 1 시내산 언약 자체가 흠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었다.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없다. 제사를 통한 죄 사함 역시 불완전한 것이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해서 드려야 했기 때문에 죄를 완전히 씻을 수 없었다. 시내산 언약은 장치 올 온전한 것들의 그림자와 모형으로 주어진 것이다(5). 그래서 저자는 지나간 낡은 언약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완전한 죄 용서의 새로운 언약에 집중하라고 촉구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자. 2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완전히 대체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누구든지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새 언약을 새기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언약에 담긴 계명을 순종할 능력까지 부여해 주셨다. 또한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용서의 은혜를 의심할 필요도,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도 전혀 없다. 우리의 연약함을 느낄 때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와 긍휼을 구하자. 주님, 새 언약을 주시고 자녀로 우리를 삼아 주신 은혜를 다라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게 하소서!

2023.9.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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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3 (수) 히7:23-28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탁월하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영원히 해방시키기 위한 주님의 대제사장 직을 살펴보면서, 대속의 은혜를 되새겨보자. 1 예수님의 탁월하신 대제사장 되심을 설명하던 저자는 먼저 주님이 영원하신 분이심을 강조한다. 아론의 계열을 따르는 제사장들은 유한한 인간이기에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뀌지 않으시고 영원히 이어지신다. 주님의 제사장 직은 대체불가능이다. 2 예수님은 온전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다. 항상 살아서 지금도 죄인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다(요일2:1).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이시다(시121:3).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도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으신 분이시다(26). 따라서 제사장으로서 그분의 중보 사역은 온전하고도 충분하다. 온전히, 영원히,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3 또한 예수님께서는 완전하고 흠이 없는 온전한 제물이 되셨다. 인간 대제사장과 달리 영원하고도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흠이 없으셔서 먼저 당신을 정결케 하는 의식을 치를 필요도 이유도 없으시다. 우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완전하신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 (벧전1:8). 은혜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이 은혜의 복음이 많은 이에게 전해지도록 살아가자! 주의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았으니, 합당한 영광을 주께 돌리며, 복음 전파의 영광스런 직분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2023.9.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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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2 (화) 히7:11-22 우리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도 온전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변화된 제사 제도의 필요성ㄱ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탁월성을 강조한다. 1 그리스도께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오신 이유는 바로 구약 제사 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구약 제사 제도와 제사장직은 육신에 속한 계명에 의존한다(16a).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온전히 해결하진 못한다. 그래서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완전한 다른 대제사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더이상 구약의 제사장직이나 율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천국 백성으로 새 삶을 새작했기에 더 이상 세상 것에 휘둘려선 안 된다. 옛것을 넘어 완전하신 주님을 따르는 참 신앙인으로 서야 한다. 2 전에 있던 계명은 무력하고 무익하여 폐지되었다. 유대교로 회귀하려 했던 자들의 퇴행적 행위는 율법의 역할에 대한 무지와 완전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불완저한 믿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맹세로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변치 않고 영원하다 (21; 시110:4). 그래서 예수님은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김으로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 주님, 불완전한 것 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완전하고 영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늘 승리하게 하소서!

2023.9.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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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11 (월) 히7:1-10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미스터리한 인물 멜기세덱 이야기를 꺼낸다. 멜기세덱은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1 ‘의의 왕(멜키제덱)’이요 ‘평강의 왕’(살렘 왕)인 멜기세덱은 왕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받은 높은 존재였다. 그는 부모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었다는 것으로 부아 이 땅에 제한적 틀에 갇힐 만한 작은 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의 제사장직은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잠시 맡은 것도 아닌, 영원한 것이었다. 이에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라고 말한다. 믿음의 주상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치고 높였던 인물이니, 그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지 않냐는 선언이다. 하지만 멜기세덱조차 영원하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표일 뿐이다. 주님만이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실 수 있으신 분이다. 2아브라함보다 높은 자요, 또한 레위 자손 도 그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것으로 여길 수 있기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뒤를 잇는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난 자라고 설명한다(9-10). 히브리서 저자의 이 모든 논의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시고,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이 인간의 지각과 생각 속에 갇히실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으로, 인간의 어떤 혈통이나 권위에 비할 수 없는 탁월하고 놀라운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당신의 피로 우리 죄를 죄를 대속하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 주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돌려야 한다. 주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존하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경건한 예배자들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소서!

2023.9.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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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9 (토) 히6:1-12 우리의 신앙이 후퇴할 수 있을까? 히브리서 저자는 그래선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한다. 영적 초보 상태에 머무르거나 배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 자세는 과연 무엇일까? 1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약속 받았다. 하지만 영적성숙은 부단한 경건 생활과 순종으로 훈련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열매다. 우리에게는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업이 준비되어 있다. 현재의 신앙에 머물러선 안 된다. 종교적 주제와 형식에 대한 관심을 넘어 ‘온전한 데’로 나아가는 실제적 삶의 순종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 기업을 받기에 합당한 삶은 열심을 내어 부지런히 신앙훈련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니 얼마든지 이것을 할 수 있다(3). 2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 데는 인내가 요구된다. 우리 자신과 다른 지체들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며 오래 인내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때로 빨리 변화되지 않는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여러 현실 문제에 영적 관심을 빼앗겨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아 주셨던 주님을 묵상해야 한다. 인내 없이 영적 장성함에 이를 수 없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내를 맺게 하는 도구인 것을 기억하고, 모든 상황 속에서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기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 그리스도를 더 닮은 장성한 자가 되어 가는 영적 훈련에 열심을 내게 하소서!

2023.9.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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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8 (금) 히5:1-14 본문은 우리에게 오신 대제사장인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구약의 대제사장 아론과 멜기세덱을 예로 든다. 우릴 위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1 대제사장 직무는 ‘사람’ 가운데 택함 받음 자여야 하고, ‘하나님께 속한 일을 사람을 위해’ 해야 하고,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다. 하지만 대제사장 역시 인간이기에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매번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속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속죄 받았음을 감사하며 매일 구속의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2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도 하나님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었다(5-6). 예수님은 창조주이면서도 스스로 육체를 입어 죽음의 고통과 고난을 순종하며 배우셨다. 인간 제사장과 비교될 수 없이 탁월하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통해 영원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을 공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시고 낮아져 고통과 고난을 다 겪으셨다.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신 주님을 찬양하고 그 구원의 이름을 높여야 한다. 3 저자는 멜기세덱에 관해 여기선 더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수신자들의 영적 미숙함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자들은 말씀의 초보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부드러운 것만 삼키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단단하고 버거운 훈련도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으로 우릴 찾아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장성한 분량의 목표와 모델을 보여주신다 (엡4:13).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전한 성도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주님, 영적 초보의 상태를 벗어나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삶을 시작하게 하소서!

2023.9.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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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7. (목) 히4:12-16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고 안식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가지 중요한 영적 무기를 주셨다. 바로 말씀과 기도다. 이 두가지는 우리 믿음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은혜의 방편이다. 1 믿음의 경주에서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모나고 다듬어지지 않은 옛 성품 때문이다. 이기적인 자아는 때로 주의 뜻을 저버리고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가 믿음에서 후퇴하지 않도록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이다. 불순종한 부분을 도려내어 다시금 주께 순종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는 것이다(딤후3:16). 다윗 역시 자기 마음속 깊은 곳을 하나님이 샅샅이 캐어 보시고 속속들이 자신의 마음을 뒤집어 봐 달라고 호소했다(시26). 우리가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로 순종의 길을 가게 하신다. 2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 시련으로 인해 우린 불안해하고 자신의 모난 성품 때문에 사람들과 갈등하며 낙심한다. 성경은 우리 마음에 불안, 두려움, 좌절을 홀로 감당할 필요가 이유가 없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친히 체험하셨다. 그래서 누구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를 깊이 이해해 주시고 지극한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다. 기도 자리에서 주님을 구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상황을 선하게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주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주님,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무장하여 날마다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3.9.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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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6 (수) 히4:1-11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안식의 약속과 복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안식의 복에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각각 어떤 특징이 있을까? 1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믿지 않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고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 대신에 자신들이 눈으로 본 것과 경험한 것들 더 신뢰했다. 그들 중심에 하나님 말씀이 없었기에 인간적 판단밖에는 할 수 없었고 마음도 지킬 수 없었다. 우리는 모든 문제들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으로 마음을 지켜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매 순간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2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정한 안식을 고대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이미 경험한다는 것은 ‘순종’으로 가능하다(6). 안식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써 순종하여 일하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멀리하고 바로 지금 주님의 초대에 힘써 나아가 순종하는 것만이 진정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잊지 말자. 주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안식의 약속을 사모하며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순종하는 ‘약속 안’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3.9.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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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5 (화) 히3:12-19 앞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완악한 마음으로 인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역사를 예로 들었다. 비그리스도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교회 안 성도들에게 저자는 동일한 도전의 말씀을 전한다. 1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행동을 믿음의 형제들이 반복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죄로부터 영적 출애굽한 그리스도인들이 옛 생활로 회귀하려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려는 악한 불신의 마음’이라고 경고한다. 이 일을 막기 위해 먼저 ‘서로 격려하라’고 말하면서, 이는 ‘오늘’이 라고 하는 그날에 매일 행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cf. 10:24-25). 그만큼 성도 간의 견인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서로 돌아보며 사랑으로 훈계하며 그런 영적 싸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2 저자는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처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굳게 붙잡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14). 바로 처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전도자로부터 듣고 믿게 되었을 때의 확신을 뜻한다. 중도에 포기하고 이전의 불신 상태로 돌아간 이들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복음을 처음 듣고 믿게 되었을 때의 그 확신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을 때,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동반자요 상속자로 살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불순종은 곧 불신앙이다. 끝까지 붙잡으라. 안식의 땅에 들어설 때까지 확실히 붙들라. 주님, 복음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붙들 수 있도록 서로 든든히 세워 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023.9.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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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4 (월) 히3:1-11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인 출애굽 사건을 돌이켜 보며 모세보다 더욱 뛰어나시며, 진정한 안식으로 우릴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것을 요청한다. 1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난 메신저시며 구언의 창시자로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모세를 소환한다. 모세는 아무리 훌륭히 자신의 일을 감당했다 하더라도 그는 여호와의 집을 위해 쓰임 받은 ‘종’에 불과한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즉 만물을 지으시고 이스라엘이란 집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시란 뜻이다. 주인이신 예수를 그의 종인 모세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큰 죄다. 우리는 어떤가? 주님이 부리시는 종인 물질과 사람과 환경과 기획 등을 주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주인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 2 7-11절 말씀은 시95:7-11의 해설에 가까운 내용으로 므리바와 맛사에서 마음이 완악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평했던 사건을 회상하게 한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하여 바로 불평하는 마음은, 예수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마음이 완악해져 다시 예전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히브리서 독자들의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완악한 마음의 결과는 바로 40년 방황과 죽음이었다(9). 그런 마음과 태도로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11). 마음이 완악해져 은혜를 망각하고 안식에서 멀어진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를 우린 반복해선 안 된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그분의 은혜를 잊지 말자. 주님, 우리의 본양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게 하소서!

2023.9.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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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9.2 (토) 히2:1-9 다원화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갖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이처럼 진리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오염시키는 여러 도전 앞에서 우리는 진리 편에 서서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일까? 1 당시 유대인 성도 중에는 거짓 교리와 악한 풍습에 미혹 당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히브리서 저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율법을 무시하는 자들이 받았던 심판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 역시 세속문화와 거짓 교리 그리고 악한 풍습들은 이미 우리 주변 구석구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가르치신 복음의 진리를 그 어느 것보다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꾸준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벧후3:18). 2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시편을 인용해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 구원받아 온전케 된 새로운 세상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입니다(시8:4-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으심,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귀한 구원을 선물받았다. 주님은 다시 하나님 우편의 통치자로 영원히 이 땅을 다스리신다. 아직 주의 왕국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예수 앞에 복종치 않는 자들이 있다(8-9). 예수님의 성육신의 방법을 오해하거나 믿지 않는 자들이다. 잠시 천사보다 못한 인간의 형편으로 오셨으나 이 모든 것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으며, 구원을 이루신 이후 다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사와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한 통치자시다. 구원자 예수님을 온 맘 다해 높이뎌, 또 전파하자. 주님, 구원의 주님께 합당한 존귀와 영광을 주 앞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2023.9.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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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1. (금) 히1:1-14 음성큐티 모세 율법과 구약의 제의에 익숙한 히브리인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에도 이전 습관과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1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당신을 계시하신 분이시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사사나 선지자 등을 통해 인간의 언어로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단순한 말씀 대리인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이 오신 것이다. 창조주시며, 하나님 우편에 계신 통치자시다. 최고의 메신저, 최고의 메시지를 우리는 듣고 믿고 따르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놀랍고 영광스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믿음을 약하게 하고 과거의 악한 생활로 회귀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공격이 심한 이 때 우리는 최고의 메신저이신 예수님께 집중해야 한다. 2 1세기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전달자인 천사를 숭배했고, 교회 안에서 분쟁과 어려움을 낳기도 했다(골2:18). 이에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던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메신저임을 구약 인용으로 증명했다(5-9). 천사가 아무리 아름답고 강력하고 그들이 전한 말씀이 귀하고 놀라워도, 그들이 섬기고 있는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설 순 없다. 천사 숭배하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당장 우리 눈에 보이고 마음에 더 가까운 ‘대리인’ 같은 존재들을 예수님보다 더 높이는 어리석음은 여전히 많다. 모든 것에 뛰어나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만ㅇ늘 높여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이끄심에 삶을 내어 드리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3.8.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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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31 (목) 28:23-31 음성큐티 1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에 간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판했다. 로마에 거하던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강론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도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사람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다. 복음 전도자는 말씀을 듣는 사람의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따라 그들이 말씀을 수용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2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유대인 중에는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완벽하게 증명해도 결국 듣는 사람이 믿지 않으면 복음의 열매는 맺힐 수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엡2:8). 복음의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와 임재로 말씀을 열매를 맺게 해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주님, 지금도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믿고 그 복음을 전파함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2023.8.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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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30 (수) 28:11-22 음성큐티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다. 이 땅끝이란 ‘이방 세계’를 가리킨다. 이 말씀대로 바울이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1 로마로 가기 위해 승선한 알렉산드리아 배의 뱃머리에는 디오스구로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풍랑을 막는 수호신으로,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쌍둥이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가리킨다. 바울이 마침내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그곳 성도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았던 바울이 이방 지역에서는 안전할 뿐 아니라 환대 받는 모습을 통해 복음이 성전과 유대교의 벽을 허물고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묘사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성도로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갖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되어야 한다. 2 로마에서 바울은 제한적 자유를 허락받았다.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를 위해 여건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회당을 찾아갈 수 없는 처지여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했다. 바울은 일관되게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심을 선포했고, 그 때문에 쇠사슬에 매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4:2), 복음 전파를 목숨보다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우리 역시 복음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보냄 받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 주님, 바울처럼 저희도 오직 복음에 붙잡혀 자기 삶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참 가지 있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2023.8.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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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9(화) 행28:1-10 음성큐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 하나님은 몰타섬 원주민들에게 바울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1 하나님께서 실제로 ‘야만인’(롬1:14; ‘원주민’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인들이 당시 다른 민족들게 사용하던 단어였다)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바울에게 허락하셨다. 바울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땔감을 더 모아 불에 넣었는데, 그 와중에 독사에게 물렸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죄수였기에 그를 살인범으로 생각해 자신들의 신이 그를 죽인다고 생각했다(4). 그러나 바울이 전혀 해를 입지 않자, 이번에는 바울을 ‘신’처럼 여겼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몰타인들에게 그들이 기존에 섬기던 신보다 더 큰 신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2 함께 배를 탔던 일행들은 조난을 당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바울이 함께 하였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또한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몰타 섬의 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고, 이들은 바울 일행이 떠날 때 항해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닝의 백성이라 자부하지만 복음 전도자들을 박해하고 복음을 거부했기에 결국 하나님이 버리셨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몰타 ‘야만인’들은 복음 전도자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 일상에서 만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귀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2023.8.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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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8 (월) 행27:27-44 음성큐티 바울은 로마로 향하는 배에서 한 명의 죄수에 불과했지만, 그 배와 타고 있던 모든 자들의 생명을 구했고, 통치하는 자로 인정받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신다. 1 바울을 호송하던 배가 풍랑으로 인해 결국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을 탈출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불안에 떨며 14일동안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바울은 음식을 권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안심시킨다. 이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음식을 나눠 먹을 때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임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성도는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도와줌으로 복음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2 날이 새자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었지만 큰 배가 상륙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모든 짐을 버리고 배를 가볍게 했지만 결국 두 물결이 만나는 곳에서 배가 파손되기 시작했다. 죄수들이 혼란을 틈타 도망치는 어려움이 있을까 염려하는 과정에 바울을 신뢰하며 내심 존경했던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려는 생각을 막았다. 바울의 말대로 모두 무사히 육지까지 상륙할 수 있었다. 바울이 한 명의 죄수였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에 함께한 자들 모두 구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모습이다. 지금 우리 각자가 처한 현실 가운데,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권세로 세상에 참 소망을 제시하는 참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2023.8.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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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6 (토) 행27:1-12 음성큐티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성도는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절대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자가 되어 사람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야 한다. 1 바울이 탄 배가 로마로 항해하는 중에 시기를 고려할 때 항해가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해 ‘아름다운 항구’에서 겨울을 보내고 항해를 재개할 것을 권면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바울의 말을 더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행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사람이 알 수 없는 은밀한 것을 알게 하심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주변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야 한다. 2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고, 그들의 말에 따라 항해를 강행한다. 상식적으로 바울보다는 항해의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바울의 말을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의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많다. 성도는 바울과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바른 길을 선택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 지혜와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지혜자가 되게 하소서!

2023.8.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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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5 (금) 행26:24-32 음성큐티 아무런 잘못 없이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정죄와 비난을 당한다면 참기 어렵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대한 확신 가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1 바울의 증언에, 베스도는 바울의 많은 학문이 그를 미치게 했다고 말한다. 불신자의 입장에서 복음을 믿는 것은 이상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복음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불신자들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은혜의 선물이 복음이다. 성도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지식과 재물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삼아 언제나 복음 전도의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2 아그립바가 적은 말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바울을 힐난하자, 바울은 결박된 것 외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한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사람들에게 멸시와 박해, 조롱을 받는 약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전의 화려한 삶보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바울처럼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복음의 증거로 삼아야 한다. 주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근거해 바울과 같이 영적인 담대함과 영혼 구원을 위한 열심이 우리에게도 더 나타나게 하소서!

2023.8.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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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4 (목) 행26:13-23 음성큐티 과거에는 어둠에 속했으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빛의 자녀가 된 성도는 어둔 세상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1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을 간증했다. 해보다 밝은 빛이 비추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삼아 이스라엘과 이방 사람들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빛은 하나님의 재창조, 즉 구원을 상징한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묘사한다(요1:4; 8:12).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밝히 드러내고 사람들을 그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한다. 2 성도가 세상에 빛을 비춘다는 것은 성도가 착한 행실을 행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 사랑의 법을 지킴으로 빛의 자녀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과 구별되는 빛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주님,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삶으로 어둔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2023.8.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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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3 (수) 행26:1-12 음성큐티 성경의 주제는 메시아다. 구약의 오실 메시아, 신약은 오신 메시아와 오실 메시아를 증언한다. 성도는 메시아와 영원히 함께할 소망 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1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된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고소 당해 심문 받는 것이 하나님이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임을 밝힌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창12:3; 신18:15).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새로운 언약인 신약으로 완성된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믿음을 근거로 말씀의 약속을 믿고 소망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복을 누려야 한다. 2 바울도 전에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예수님 믿는 자들을 이단으로 여기고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부할하신 주님을 만나 후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증언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아는 것은 지식과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는 것임을 보여 준다. 성도는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듯을 바르게 깨닫고 확신하는 가운데 바울처럼 어떤 도전과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 믿음으로 장차 누리게 될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3.8.22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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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2 (화) 행25:13-27 음성큐티 같은 잘못이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비난을 받는다. 성도는 바울처럼 복음의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어떤 문제로도 비난받을 일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1 베스도는 가이사 황제앞에 서기 전에 바울의 적당한 죄목을 찾아야 하는데, 그 어떤 불법 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주장대로 바울을 로마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였다(단6:4-15). 성도는 세상에서 선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도가 세상의 법을 어기거나 비난받을 만한 일을 행하면 성도 자신만이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2 바울은 단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미움을 받아 고난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는 복된 자다. 성경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외치는 자들이 박해를 당했음을 알려 준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은 현재 고난이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롬8:18). 또한 인내로써 소망을 이루는 영적 비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에 낙망하지 않는다. 성도는 경건한 삶을 살면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로 인해 박해를 받을 때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이겨 나가야 한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신실한 일꾼되게 하소서!

2023.8.21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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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1 (월) 행24:24-25:12 음성큐티 바울은 억울하게 헤롯궁에 2년을 갇혀 지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휴식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로마 통치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1 벨릭스도 그랬지만 사생활이 아주 문란했던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바울은 복음과 자기 절제와 다가올 심판을 강론했으니, 이들 부부는 두려움을 느끼며 복음 듣기를 미루면서도, 혹시 뇌물을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자주 바울을 불러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벨릭스의 비겁함 때문에 2년이나 헤롯궁에 바울이 머물렀지만, 하나님은 악하고 비겁한 자들을 통해 주의 백성들에게 사명을 재정립하는 기회를 허락하신다. 2 베스도가 새 총독으로 부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부임 3일밖에 되지 않아 앞뒤 사정을 모르는 총독을 이용해 바울을 살해할 계획을 유대인들이 세웠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을 하나님은 다시 허무시고, 다시 가이사랴에서 재판이 재개되었다. 비겁한 총독과 합리적으로 보이는 총독까지 하나님은 모두 사용하셔서 바울을 지키셨다. 3 베스도 역시 유대인들과 관계가 자신의 출세와 밀접함을 알아 이들과 척이 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재판을 받겠느냐고 바울에게 묻는다. 아무 증거도 없이 자신을 예루살렘 법정으로 보내려는 불합리함을 간파한 바울은 로마에 가서 시저에게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른다. 지난 500년이 넘는 로마시민에 대한 전통을 베스도가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 바울을 지키셨고, 또 선교의 비젼을 밝혀 주셨다. 주님,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보호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확신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