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August, 2021

2021.8.28 NAZAZiM QT

Image
2021.8.28 (토) 삿10:10-18 음성링크   처음으로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적 암흑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회개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 블레셋과 암몬에 의해 18년 동안이나 압제를 당한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긴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다(10).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겼으니 다시는 구원하지 않겠고 섬기던 신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라고 하신다(13-14). 평소에 전혀 관심도 없다가 정작 어려워지면 도와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곱게 보일 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기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다. 이런 태도를 지닌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네가 좋아하던 돈과 명예와 쾌락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해라”라고 답하실지도 모른다. 우릴 사랑하사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절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2 재차 회개하고 하나님의 처분을 이스라엘은 기다리면서 이방 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섰다(15-1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대로 벌하신다 해도 이스라엘은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이스라엘을 위해 슬퍼하셨다. 이스라엘 중에는 아무도 군대를 이끌고 나설 자가 없었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살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죄를 범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철저히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모든 삶을 맡긴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보고 아시는 하나님, 철저히 회개하는 심령으로 항상 주 앞에 서서 살아가게 하소서.

2021.8.27 NAZAZiM QT

Image
2021.8.27 (금) 삿10:1-9 음성링크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이방민족에게 압제 당한 기간보다 사사들의 지도 아래 평화를 누린 기간이 더 길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부터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배반했을 대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심을 보여준다. 1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는 강한 지파였다. 또 베냐민은 에브라임과 유다 사이에 위치했었다. 유다에서 옷니엘(3:9), 베냐민에서 에훗(3:15), 에브라임에서 드보라(4:5), 므낫세에서 기드온(6:15)이 사사로 세워진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작은 지파에서 사사를 세우신다. 먼저 잇사갈 지파에서 돌라가 사사로 섬겼다. 그 뒤로 요단강 동편 길르앗 사람 야일이 사사로 섬겼다(3). 특히 야일에게는 30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각기 나귀를 타고 30개의 마을을 통치했다.  아비멜렉의 3년간의 암흑기가 끝나고, 돌라와 야일의 때에는 45년동안의 평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 풍요의 시기에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을 잊었다. 풍요와 안정을 느낄 때가 하나님을 떠날 위험이 가장 높은 시점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이스라엘은 이전과 다르가 가나안 모든 지역의 신들을 다 끌어와서 섬겼다(6). 사사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서쪽으로는 블레셋과 동쪽으로는 암몬으로부터 18년 동안 이스라엘이 압제당하게 하셨음을 밝힌다. 조공 정도를 바치면서 일상을 유지해가는 정도가 아니라, 양쪽으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8-9). 이스라엘이 평화의 기간에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동서남북의 여러 신을 배척했다면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하시고 주변 나라들보다 훨씬 크게 세우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쌍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일뿐이다. 주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축복으로 내 삶에 채워진 은혜를 잊지 말고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게 하소서!

2021.8.26 NAZAZiM QT

Image
2021.8.26 (목) 삿9:46-57 음성링크    아비멜렉은 왕이 되기 위해 70명의 이복형제를 죽였다. 그 자리가 이런 악행을 저지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본문은 어리석은 죄인들이 의지하고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무가치한지를 잘 보여준다. 1 아비멜렉이 세겜을 쳐서 사람들을 도륙하자,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신전 요새로 피신했다. 그들은 ‘언약의 신’이란 우상이 자기들을 지켜 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아비멜렉이 신전까지는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의 기대는 모두 헛된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로 몸을 피한 1000명의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47-49). 하나님은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이고 악인을 왕으로 세운 자들이 죗값을 치루게 하셨다. 그들의 우상 신전마저 함께 제거하셨다. 인간은 이처럼 헛된 것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은 그 헛된 것들을 철저히 멸하심으로 당신의 엄위하심을 드러내신다. 2 아비멜렉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데베스로 진격해 그 성도 점령했다. 이들이 세겜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에 맞섰다 해도 이 행동은 지나치게 잔인했다(51-52). 그는 복수와 살인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불한당이었다. 이제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신다.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으로 치명상을 입고, 자기 부하에게 자신을 찔러 죽여 달라고 요청한다. 얼마나 무가치한 것을 끝까지 추구한 인생인지 잘 보여 준다. 3 아비멜렉이 죽가, 그의 권세 또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의 휘하에 있던 군사들 역시 흩어졌다. 사사기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악행에 보응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이 서로를 태워 버리는 것으로 끝났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아비멜렉은 강한 힘의 소유자요, 요담은 나약한 자이지만, 하나님은 요담의 편이 되어 주셨다.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는 약하고 평범해 보이나 그 누구보다 강력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임을 확신해야 한다. 주님, 그 무엇 보다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선하고 가치

2021.8.25 NAZAZiM QT

Image
2021.8.25 (수) 삿9:26-45 음성링크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어떻게 자멸하는지 그 과정을 오늘과 내일 본문은 차근차근 보여준다. 인류 역사상 언제 어디서나 일어났던 권력투쟁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하나? 1 아비멜렉처럼 경쟁자를 다 죽이고 왕이 되어도 언제나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비멜렉으로부터 기대하던 것을 얻지 못한 세겜 사람들의 심리를 에벳의 아들 가알은 파고들어서 그들의 신임을 얻고는 신당에서 먹고 마시며 자신의 지지 세력을 규합했다(26-27). 가알은 아비멜렉이 자신들의 왕이 될 수 없음을 공포하며 선전포고까지 하게 된다(28-29). 아비멜렉을 도왔던 세겜 사람들이 이번에는 도리어 아비멜렉을 대항한다. 2 함께 먹고 마셨다고 해서 다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세겜 사람들이 베푼 연회 자리에 참석한 스불은 비밀리 이런 사실을 아비멜렉에게 전했고, 싸울 작전까지 제안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알이 아비멜렉과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몰아간다.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가알은 쫓겨난다. 악인들의 세상에서는 배신과 속임수가 빈번하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참된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으로 진실하신 분이다. 3 가알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축매제나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은 가알이란 악인을 사용하셔서 결국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모두 서로 치게 하신 것이다. 가알은 세겜에서 쫓겨나고, 세렘 사람들에 대한 아비멜렉의 분노는 이 지역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났다(42-45). 사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다. 악인들의 손으로 다른 악인들을 진멸하시고, 죗값을 치르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악인들이 잠시 흥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여 그 길을 따르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된다. 주님, 세상의 권세와 처세를 부러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가장 평탄하고 영광스런 길임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2021.8.24 NAZAZiM QT

Image
2021.8.24 (화) 삿9:16-25 음성링크    아비멜렉과 같은 자는 왕이 되어선 안 되었다. 그가 정당한 왕이 될 수 없었던 이유가 뭘까? 1 고대에 왕의 지위는 아들에게 세습되었다. 서자라고 왕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왕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는 이유는 선왕의 덕과 업적을 기리고 그의 통치가 계속 이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되었기에 올바른 왕위 계승이라 볼 수 없다(16).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정당하지 않음을 지적했다(18). 2 의로운 왕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높이고 성공의 열매를 그들과 나누지만, 악한 왕은 자기가 왕이 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부터 숙청하는 형태를 보인다. 요담은 아비멜렉잉 진실하고 의로운 자라면 그와 함께한 자들도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면 세겜과 밀로 사람들을 아비멜렉이 죽일 것이라고 경고한다(20). 그는 브엘로 도망쳐 거기서 여생을 보낸다. 우리의 마음에 탐욕과 악이 가득하고 삶이 거룩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고 해를 입히게 된다. 성도는 거룩하고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야 한다. 3 요담은 왜 아비멜렉에게 보복하고 빼앗긴 권위를 되찾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악인들이 그 악함으로 자멸하게 하신다는 교훈을 사사기는 보여준다(24).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3년까지만 놔두셨다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했고(22-23), 아비멜렉을 감사하며 그 길로 다니는 사람들을 강탈했다(25). 이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만들어 줬는데 자기들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에 이런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죄의 길에서 속히 돌이키지 않으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죄로 인해 자멸하게 된다. 주님, 악인들이 흥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주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길을 가게 하소서!

2021.8.23 NAZAZiM QT

Image
2021.8.23 (월) 삿9:1-15 음성링크    기드온과 그 아들 아비멜렉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가를 성경은 보여준다. 1 아비멜렉이 왕으로 추대되는 과정은 세상에서 왕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준다. 먼저 자기 세력을 만들고 혈연 지연에 호소해서 자기 편으로 만든다(1-3). 그리고 종교적인 배경이 필요했기에 바알브릿 신전의 돈으로 폭력배를 모아 자기 군대로 삼았다. 그리고 잠재적 경쟁자인 모든 형제들도 가차 없이 죽이고, 왕이 된다(5-6). 세상 권력의 실체를 성경은 밝힌다.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건강한 리더십이다. 2 아비멜렉이 70명이나 되는 형제들을 죽일 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막내 요담은 그리심산에 올라가 나우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을 책망했다. 이 세상의 왕들이 왜 포악하고 자격 없는 자들이 되는가에 대한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인격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은 자기 본문에 충실하려 한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꼭 필요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는 것을 본다. 반면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세상의 지도자에게 헛된 기대나 부적절하고 왜곡된 지지가 전체 공동체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깨달아야 한다. 3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하나같이 왕이 되길 거부하자, 궁여지책으로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라고 요청했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나무들은 모두 자기 그늘에 피하라고 명령한다(15a). 잎이 넓지 않아 제대로 된 그늘을 만들 수도 없는데 자기 밑에 오지 않으면 레바논의 백향목을 불태울 것이라고 위협한다(15b). 아무리 좋은 것도 다 불살라 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잘못된 지도자를 세우면 그 해악이 모두에게 돌아간다. 지도자를 세울 때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지혜를 다해 선

2021.8.21 NAZAZiM QT

Image
2021.8.21. (토) 삿8:10-21 음성링크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 과거의 성공에 붙잡혀 초심을 잃고 교만해지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기드온에게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가 어떤 유혹에 이끌렸는지 살펴보자. 1 기드온의 군대는 여전히 300명, 미디안의 군대는 비록 전쟁에 대패해서 12만 명을 잃었지만, 여전히 1만5천 명이 남았다(10). 하지만 미디안은 다시 한 번 대패해서 진영은 대파되고 두 왕이 사로잡혔다.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승리가 확정되자 기드온은 이를 자신의 승리로 여기기 시작한다. 동족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적군처럼 대했고, 자신을 희롱했다는 이유로 두 성읍을 징벌했고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16-17). 왜 기드온은 세상의 왕들처럼 행동했을까? 하나님은 이 승리가 사람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시기 위해 단 300명만 사용하셨는데, 기드온은 그 승리를 토대로 권세를 부리며 동족을 죽이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돌리려는 태도는 반드시 타락으로 이끈다. 2 기드온은 이제 세상의 대적들에게 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이 다볼에서 죽인 자들에 대해 묻자, 세바와 살문나는 그들의 ‘너처럼’ 왕자의 모습과 같았다고 말한다(18). 기드온은 이 말을 인정하며 은연중에 자신을 왕족의 위치로 올려놓고는, 어린 자기 아들 여델에게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라고 했다. 세상 왕들이 자기 뒤를 이을 수 있도록 후계자 수업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능력은 지위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기드온은 직접 그들을 죽이고,그들이 가졌던 왕의 표식인 낙타 목의 초승달 장식을 불태우지 않고, 떼어 가져갔다(21). 하나님의 승리를 자기 것으로 삼고, 세상 가치관을 따라 왕처럼 행동하면, 결국 세상의 유혹에 따라 세상 가치관에 젖어들고 만다. 주님,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시인하고, 주게 돌려야 할 영광 모두 올려드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1.8.20 NAZAZiM QT

Image
2021.8.20 (금) 삿8:1-9 음성링크   이스라엘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 안에 있던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12지파가 전혀 하나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 유다 지파와 함께 가장 강한 지파였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처음부터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고 화를 냈다(1). 사실 므낫세 남쪽에 위치하여 이스르엘 골짜기까지는 거리가 있어 가까운 므낫세,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아셀 지파들이 먼저 나섰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그중에서도 300명만 동원하셨으니 에브라임이 처음부터 참전하기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에브라임의 이런 태도는 공도를 자신들에게 돌리고자 하는 이기적인 것이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이 오렙과 스엡을 죽였기에 그 공로가 더 크다고 치하함으로 그들을 달랬다(2-3). 이스라엘의 하나 됨을 무너뜨리는 행위에 기드온이 지혜롭게 대처했지만, 그의 지혜도 여기까지였다. 2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미디안을 추격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넜다. 그러나 동편의 숙곳 사람들이 이 군대에 동조해주지 않았다. 숙곳은 조상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돌아오다가 형 에서와 만나 화해하고 정착한 장소였는데(창33:17), 이곳 리더들은 기드온의 협조 요청을 무시했다. 훗날 미디안의 두 왕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5-6). 에브라임 사람들의 이기적 공로 의식이나, 숙곳 사람들의 냉랭한 태도 때문에 이스라엘의 연합은 무너졌다. 3 브누엘(브니엘)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씨름하다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곳이다(창32:30). 숙곳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한 조상의 후손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들 역시 기드온과 그 용사들에게 냉랭하게 반응했다(8). 그리고 기드온은 이 두 곳에 대한 보복을 맹세했다(7, 9). 기드온의 이같은 반응은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모든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을 연합하는데 도움이

2021.8.19 NAZAZiM QT

Image
2021.8.19 (목) 삿7:9-25 음성링크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에서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감당하는 영적 전쟁은 세상 사람들의 전쟁과 다르다. 우린 어떻게 승리하는가? 1 세상의 싸움은 힘과 규모를 비교해 보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그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9-11). 외적으로는 적의 어마어마한 군사력으로 인해 승산이 전혀 없어 보인다(12). 하나님은 미디안 군인이 꾼 꿈 이야기를 몰래 들으며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의 승리를 결정해 놓으셨음을 알게 된다(13-15). 성도는 영적 전투에서 이미 승리했기에 눈에 보이는 세상의 규모나 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말씀대로 살 때 승리는 주어지는 것이다. 2 전쟁을 하는 사람의 손에는 당연히 무기가 들려 있기 마련이지만,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 손에는 나팔과 빈 항아리, 횃불 뿐이다(16).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다(20). 군대 지휘관은 원래 뒤에 있고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기드온이 앞장서서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17). 또한 하나님이 알려 주신 시간과 전술을 통해 대적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방법과 전술로 세상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방법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에 능히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디안 군인들이 서로 칼로 치게 하셨고, 결국 이들은 후퇴하게 된다(22). 기드온이 주변 지파의 사람들을 불러 요단강 나루터 벧바라를 점령하고 갇혀 버린 미디안 군대를 무찔렀고, 연합군 대장인 오렙과 스엡까지 잡아 죽였다(24-25). 하나님은 당신의 수단과 방식으로 이스라에게 승리를 주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승리를 받아 누리는 자들이다. 비록 우리의 능력이 약해도 하나님이 강하시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님, 그 어떤

2021.8.18 NAZAZiM QT

Image
2021.8.18 (수) 삿7:9-25 음성링크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에서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감당하는 영적 전쟁은 세상 사람들의 전쟁과 다르다. 우린 어떻게 승리하는가? 1 세상의 싸움은 힘과 규모를 비교해 보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그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9-11). 외적으로는 적의 어마어마한 군사력으로 인해 승산이 전혀 없어 보인다(12). 하나님은 미디안 군인이 꾼 꿈 이야기를 몰래 들으며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의 승리를 결정해 놓으셨음을 알게 된다(13-15). 성도는 영적 전투에서 이미 승리했기에 눈에 보이는 세상의 규모나 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말씀대로 살 때 승리는 주어지는 것이다. 2 전쟁을 하는 사람의 손에는 당연히 무기가 들려 있기 마련이지만,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 손에는 나팔과 빈 항아리, 횃불 뿐이다(16).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다(20). 군대 지휘관은 원래 뒤에 있고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기드온이 앞장서서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17). 또한 하나님이 알려 주신 시간과 전술을 통해 대적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방법과 전술로 세상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방법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에 능히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디안 군인들이 서로 칼로 치게 하셨고, 결국 이들은 후퇴하게 된다(22). 기드온이 주변 지파의 사람들을 불러 요단강 나루터 벧바라를 점령하고 갇혀 버린 미디안 군대를 무찔렀고, 연합군 대장인 오렙과 스엡까지 잡아 죽였다(24-25). 하나님은 당신의 수단과 방식으로 이스라에게 승리를 주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승리를 받아 누리는 자들이다. 비록 우리의 능력이 약해도 하나님이 강하시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님, 그 어떤

2021.8.17 NAZAZiM QT

Image
2021.8.17 (화) 삿6:33-40 음성링크   연약한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섬김은 성령 충만을 받아 말씀이 성취될 것을 확신하며 순종할 때 이뤄진다. 1 미디안과 여러 이방 족속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진을 쳤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셨다(사11:2). 하나님 영의 임재를 체험한 기드온은 백성을 소집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기 전의 기드온은 평범하고 소심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람의 지혜와 재능과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만 감당할 수 있다. 성도가 구원받고 하나님 백성으로 새롭게 되는 것도 성령의 임재로부터 시작된다(딛3:5). 우리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감당해야 한다. 2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방 족속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된다는 징조를 보여 달라고 두 번이나 구했고,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응답해 주셨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징조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믿음이 연약하여 두려워하는 자에게 당신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담대한 믿음을 갖도록 도우신다. 주님,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여 성령 충만함을 유지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1.8.16 NAZAZiM QT

Image
2021.8.16(월) 삿6:25-32 음성링크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12)라 부르셨다. 큰 용사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선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조건이 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1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먼저 기드온에게 7년 된 수소로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수소로 드리는 제사는 가장 큰 헌신을 뜻하는 제사다(레1:3-9). 거기에 한가지 명령이 더 추가된다. 바로 그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자단과 아세라상을 찍어 그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아세라를 동시에 섬기는 혼합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나님과 세상의 양다리를 걸친 자는 결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으며, 진정한 인생의 가치도 찾을 수 없다. 2 기드온은 종을 열 명이나 동원해서 우상을 파괴했다. 그럼에도 성읍 사람들이 두려워 밤에 우상을 찍은 것을 보면 그만큼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상 숭배에 찌들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27). 기드온 아버지 집에 있는 우상이었음에도, 성읍 사람이 이 일을 적발해 내고 요아스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요구했다(28-30). 성읍 사람들이 바알을 절대적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상숭배가 만연한 사회에서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거룩한 하나님의 손에 들려 쓰임 받으려면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거룩함을 고수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3 원래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큰 죄다. 그러나 유야무야 바알 숭배를 용납했기에 바알 제단을 허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태까지 저들의 신앙이 변질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용납하며 살아야 하지만,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해야 할 때만큼은 예외없이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지 않는 자가 진리의 하나님께 쓰임 받을 리

2021.8.14 NAZAZiM QT

Image
8월 14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14 (토) 삿6:1-10 이스라엘은 또다시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7년간 미디안의 압제와 착취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죄악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하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일까? 1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자, 이들을 일깨우시기 위해 하나님은 미디안 족속을 보내셨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농작물과 가축을 탈취해 갔고, 이스라엘 밳ㅇ은 이들을 피해 산에 올라가 굴을 파고 살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렇게 7년을 보내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다. 아모리 사람들의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저버린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가치관에 마음을 빼앗겨 말씀에 불순종한 행동을 성찰해야 한다. 교만과 영적 둔감함으로 죄에 빠져 사는 자들을 각성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가운데 있다면 먼저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2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한 예언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믿고 의지해야 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일깨우신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부르짖는 백성을 회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그들에게 또다시 보여주신다. 그저 눈앞에 닥친 고난을 피할 목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물론 바른 태도가 아니다. 고난의 시간은 반드시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감염병으로 고통의 시를 보내고 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진지하게 묻고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마땅히 따르고 순종해야 할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주님,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시련과 역경이 헛되지 않도록 주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들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주의 예비하신 은혜를 얻게

2021.8.13 NAZAZiM QT

Image
8월 13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13 (금) 삿5:19-31 드보라는 승리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백성에게는 축복이, 대적들들에게는 저주가 있음을 선포한다. 1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구체적으로 노래한다. 대적들은 뛰어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유린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하나님이 막으셨다. 하나님은 자연을 움직이셔서 그들을 무력하게 하셨다. 드보라는 강물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격해 외치고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은 매순간 감격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온 세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 앞을 찬양하자. 2 전쟁이 끝난 후 축복과 저주가 함께 나타난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고, 수치스런 모습을 보인 사람에게는 저주가 내려지다. 메로스는 기손강 부근에 위치한 마을로 추정하고 있다. 그 마을 주민들은 전쟁 중에 하나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런데 헤벨의 아내 야엘은 하나님 편에 서서 적장 시스라를 죽였다. 복과 저주는 누구 편에 서 있느냐로 결정된다.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싸움을 했을 뿐이다. 그런 야엘을 하나님은 축복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할 때 곧 주께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마25:40). 3 시스라 어머니에게 아들은 자랑이자 기쁨이었을 것이다. 도무지 패배할 이유도 없고, 승리를 추호도 의심할 수 없었지만 그 역시 한낱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자랑은 언제 근심으로 바뀔지 모른다. 드보라는 승리의 노래 마지막에 자신의 간절한 소망, 곶 주의 원수들이 망하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이 힘을 얻기를 기도한다.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평온함을 누렸다. 주님, 드보라와 바락이 함께 부르는 승리의 노래에 나도 영적으로 동참하여 나의 삶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

2021.8.12 NAZAZiM QT

Image
8월 12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12 (목) 삿5:1-18 야빈의 군대를 물리친 후 영광스런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본문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여러 시 중에서 모세의 노래와 함께 가장 오래된 시로 여겨진다. 1 이스라엘의 승리 후에 드보라와 바락이 함께 찬양하는데, 전쟁의 승리를 두고 가장 먼저 기뻐한 주제는 이스라엘이 함께 헌신했다는 사실이다. 승리는 하나님이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시인은 온 백성이 함께 헌신해서 그 승리를 이루었음에 기뻐하고 감사한 것이다. 함께 헌신하고 함게 구원의 감격을 노래한 것이다. 사사기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하나님의 언약을 떠났지만, 드로라는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지나 온 모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상기시킨다. 찬양과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할 때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다. 2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셔서 역사 속에서 함께 하셨듯이 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불러 세우셨고, 이스라엘 용사들이 함께해 놀라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드보라는 자신의 업적이나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헌신한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9).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승리를 전할 것을 권면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하며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 3 이스라엘이 연합해 가나안 왕 야빈을 이긴 것을 드보라는 찬양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전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자원한 사람과 반대한 사람 그리고 전사자들을 구분 짓는다. 적극적으로 연합한 지파도 있었지만,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 지파는 반대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겼다. 모든 지파가 한마음으로 싸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음은 하나님이 이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정쟁에 우리가 참여한다는 것은 정말 말할 수 없는 영광이다

2021.8.11 NAZAZiM QT

Image
8월 11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11 (수) 삿4:11-24 드보라의 지시대로 군대를 모으고 바락은 전쟁을 준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이 전쟁 역시 그 과정 하나하나까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성취하신다. 1 이 전쟁 이야기 중에 갑자기 헤벨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유서 유다 자손들과 함께 거하기로 했던(1:16) 모세의 장인(원어는 ‘처남’이란 뜻도 됨) 호밥의 자손 중한 명이었다. 시스라는 쇠 전차 900대를 이끌고 시스라가 전장터로 나왔다.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며 드보라가 나가싸우리고 명령했다. 하나님이 앞서 나가심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면 그 아무리 난공불락의 세상 영광과 자랑은 오히려 수치로 변한다. 2 900대 전차 중 한 대도 건지지 못하고 걸어서 시스라는 도망친다. 겐 사람 헤벨의 천막으로 숨어들어 갔다. 시스라는 우호관계를 맺고 있던 헤벨의 장막에서 도움을 얻었다고 안도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형통할 것으로 생각한 그는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던 사람으로 설명된다. 비록 집안의 평안을 위해 야빈과 친분을 맺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 편에서 시스라를 대적으로 대하고 있다. 이 또한 드보라의 예언처럼 여인의 손에 시스라가 죽임을 당한다. 3 이날의 모든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이스라엘을 박해하던 야빈은 이 전쟁 이후로 힘을 잃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멸당하게 된다. 본문은 이 전쟁의 승리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달렸다. 담대히 여호와를 의지하고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나안을 허락하신다. 주님, 900대나 되는 쇠 전차를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지혜가 있게 하소서!

2021.8.10 NAZAZiM QT

Image
8월 10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10 (화) 삿4:1-10 에훗이 죽자 또다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 오늘 본문에서 ‘범죄와 구원의 사이클’을 본다. 1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죄악과 구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죄악의 역사는 모든 세대가 은혜 아니면 살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솔의 가나안 왕 야빈에게 넘기셨다. 그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당시 쇠 전차가 900대가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변변한 무기 하나 없는 이스라엘에게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절대 군사력을 상징한다. 야빈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히 학대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이스라엘은 세상의 힘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사실 이것이 그들의 능력이다. 2 새로운 사사로 하나님은 드보라를 준비하셨다. 절대적 군사력 우위의 야빈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여성 사사를 세우신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백성들 가운데 일어난 일의 옳고 그름을 판결하고 그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르쳤다. 사사는 군사적 리더의 역할 뿐 아니라, 언약의 회복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것이 전쟁의 승리보다 더 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 말씀으로 서 있는 것이 실생활에서의 승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바락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을 치르게 하셔서 드보라가 이 말씀을 바락에게 전달했고, 그에게 하나님게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바락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드보라를 더 의지했다.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드보라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이 행동은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영광을 얻지 못할 것과, 적장을 죽이는 가장 영광스런 일이 한 여인의 손에 뺏길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2021.8.9 NAZAZiM QT

Image
8월 9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9 (월) 삿3:12-31 옷니엘이 죽자 다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사사들이 필요했다. 인간의 시각에서는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 쓰임 받아 누구보다 큰 능력을 발휘한 영적 지도자들이었다. 1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신다.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의 상징적인 도시인 여리고 성읍을 정복한다. 그렇게 정령당한 이스라엘은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동안 에글론을 섬겨야 했다. 2 고난 속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우신다. 하나님은 에훗을 사용하셔서 에글론을 물리치셨다. 세상 사람들은 에글론을 크다고 여기며 에글론을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은 초라해 보이는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쓰셨다. 3 에훗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모압과 전쟁을 치렀고, 용사 만 명을 죽였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함께하지 않으시면 패배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에훗은 하나님이 모압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셨다고 선포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강한 용사가 된다. 4 삼갈은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다. 그는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이겼다. 600명의 대적을 빈약한 무기로도 이겼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것은 멋진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의 용사에게는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기적 같은 대단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를 붙드셔서 주의 목적을 위해 소중하게 쓰임받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1.08.07 NZAZAZiM QT

Image
8월 7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7 (토) 삿2:11-23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도 관심이 없던 세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이방민족들로 인해 이스라엘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하셨다. 1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다. 마땅히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겨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우상을 섬겼다. 그 결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기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심한 고통이 따랐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 안에 있을 때 평안을 누린다. 언약이 하나님 백성의 힘이며 능력이다.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에 순종할 때 평안을 얻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 2 하나님은 심판으로 고통 받던 당신의 백성을 위해 사사들을 세우셨다. 사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판결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과 언약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이다. 고통 당하는 백성을 외면치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하지만 고난이 해결되고 나면 바로 하나님을 떠나는 일을 백성들은 반복했다. 언약을 중요시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마무리 긍휼을 베푸셔도, 우리가 죄를 멈추지 않으면 타락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3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남겨 둔 이방 민족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연단하신다. 가나안에 들어왔다고 언약 백성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다. 한 번 순종했다고 끝이 아니다. 매일 매순간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자신을 부인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이런 삶이 비록 시험처럼 다가온다. 절대로 쉽지 않다. 어렵고 갈등을 경험한다. 그때마다 구원의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자! 주께서 보여주신 그 길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림을 알아 세상의 유혹과 생활 방식에 물들지 않도록 우리

2021.08.06 NZAZAZiM QT

Image
8월 6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6 (금) 삿2:1-10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한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세대였다. 이들이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은 급속도로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인 가나안에 살면서도 그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상숭배의 죄로 타락한 이유가 뭘까? 1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책망한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그저 그 땅에 정착하는 것에 만족했고,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가나안 족속을 남기는 것이 심각한 불순종이자 죄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죄는 저절로 소멸되지 않는다. 점점 더 중대하고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는 특성이 있다. 우리 마음에 알게 모르게 타협하고 있는 죄들은 없는지 말씀을 통해 성찰하면(시7:9), 불순종의 죄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은 우릴 도우실 것이다. 2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 족속을 무찌르게 하시는 일을 직접 보았다. 가는 곳마다 승리를 경험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약속된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세대가 다 죽고 사라지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한다(10). 이들은 비록 자기 민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과정이야 잘 알고 있었겠지만, 하나님 중심의 삶, 말씀 중심의 삶, 순종하는 삶을 배우지 못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세대가 그 다음 세대에게 온전한 믿음을 가르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을 잊고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반드시 우상 숭배라는 지독한 악에 빠지고 만다. 자녀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배우듯, 부모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애써야 한다. 그럴 때 자녀 세대 역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누리게 된다. 주님, 말씀을 거역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작은 것이 결국은 삶을 완전히 집

2021.08.05 NZAZAZiM QT

Image
8월 5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5 (목) 삿1:22-36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그들 손에 주어졌음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내기보다는 그들을 그대로 거주하도록 허용하며  노동력으로 이용했다.   1 하나님을 신뢰하고 싸우러 갔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셔서 승리를 주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는 대신 여전히 그 땅에 거주하도록 허용했다. 쫓아내는 것보다 노동력으로 삼는 것을 경제적 이득으로 보았던 것이다. 오랫동안 여기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족속들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경제적 이득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순간, 온전한 순종은 항상 불가능해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을 온전히 성결하게 신뢰하라고 경고하신다. 쫓아내지 않았던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을 결국 우상을 섬기도록 타락시켰다. 내 마음에도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하려는 마음은 없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올곧은 마음이다. 2 아셀과 납달리 지파는 자신들이 정복해야 할 땅을 위해 끝까지 싸우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끼어 사는 것에 만족했다. 므낫세와 스불론 지파 역시 가나안 족속을 자신들과 함께 거주하도록 허락했다. 왜 진멸하지 않았을까?  전쟁은 수고와 힘을 쏟아 붓고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장소다. 끝까지 싸우는 대신 적당한선에서 타협하며 안락한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편안함과 안락함은 우리의 신앙을 시험한다. 우리에게 충성을 다하라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좀 더 쉬자, 나중에 하자고 말한다. 비대면 예배가 허용되고 길어지는 요즘 상황에서 봉사와 사역에 헌신해야 할 열정이 약해져, 게을러지는 우리 자신을 합리화하기 쉽다. 그래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세계 선교의 사명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해야 할 영적 싸움이 남아있다. 게으름과 편안함이 나를 점령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처

2021.08.04 NZAZAZiM QT

Image
8월 4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4 (수) 삿1:11-21 헤브론 지역까지 점령한 유다 지파는 이제 가나안 지역의 남쪽 지역과 서쪽 지중해 해안 지역까지 점령해 갑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의 차이는? 1 헤브론 지역은 점령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 지역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갈렙은 그 땅을 믿음으로 요구했고, 점령했다(수14:6-15). 기럇 세벨 역시 점령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어서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하자, 옷니엘이 나서서 이 지역을 점령했다. 갈렙이 딸을 보상으로 주겠다고 한 일은 자신의 가문을 믿음의 집안으로 세우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었기에 믿음으로 점령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용사가 될 것임을 갈렙은 잘 알았을 것이다. 믿음은 한 세대에만 머무르면 안된다. 2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나안 남서부 지역을 점령했다. 그런데 오직 스밧 지역에 관해서만 ‘진멸’이란 표현을 썼다. 가나안 땅의 모든 지역을 이스라엘이 진멸해야 했고,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해 주심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로 만든 전차가 있다는 이유로 쫓아내지 못했다. 자신들이 보기에 두렵고 무서운 무기 앞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베냐민 자손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던 갈렙과 대조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반드시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전차 앞에서도, 강한 군대 앞에서도,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 성도의 능력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나의 실력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모든 일에 승리하게 하소서!  

2021.08.03 NZAZAZiM QT

Image
8월 3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3 (화) 삿1:1-10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전쟁을 이끌었던 여호수가가 죽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는 남은 전쟁을 여호수아 없이 치러야 했다. 1 하나님은 한 개인이 아닌 유다 지파 전체가 먼저 싸우러 올라가라고 지목하셨다. 그리고 이미 가나안 땅을 그들의 소에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러자 유다 지파는 자신들의 지경 안에 거하는 시므온 지파(수19:1-9) 에게 도움을 청한다. 유다와 시므온은 레아의 후손으로 매우 가까웠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한 명의 지도자나 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예루살렘 근처로 추측하는 베섹에 거하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물리치고,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는 매우 잔인한 처벌을 내린다. 가나안 족속들이 대적들에게 하던 방식대로 그대로 따라했다. 승리 후에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 가나안의 풍습을 따랐다는 것은 승리보다 끝까지 순종하는 것을 더 중요시해야 함을 가르친다. 3 베섹에서 승리한 유다 지파는 가까이에 위치했던 예루살렘도 정복했으나 여전히 불완전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살던 여부스 족속과 싸워 승리했다(수10:3; 1:10). 이때도 완전히 그 땅을 점령하지는 못했으며, 이곳을 기업으로 받은 베냐민 지파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21). 훗날 다윗이 이 성을 다시 정복해야 했다(삼하5:6-10). 불완전한 정복을 뒤로하고 그들은 계속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기럇 아르바라 불렸던 헤브론에서 승리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 그만큼 그 약속은 성취되지 않는다. 주님,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라는 진리를 간과하지 않게 하소서!  

2021.08.02 NZAZAZiM QT

Image
8월 2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8.2 (월) 몬1:15-25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 대신 빚을 갚겠다는 간청을 통해, 우리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1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난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났음을 말하면서, 그 섭리를 인정한다면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빌레몬에게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이미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로 인정하고 있다. 복음 안에서는 다른 지체의 과오를 용서할 수 있다. 나아가 그가 공동체 안에서 함께 교제할 수 있도록 다른 이들에게 권면할 수 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한 아버지를 둔 형제 자매이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오네시모를 바울 자신처럼 동역자로 받아달라고 권면한다. 여기 ‘동역자’란 말은 복음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동료를 가리키는 말이다. 만약 빌레몬이 바울을 그렇게 여긴다면, 오네시모 역시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빌레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혹시라도 오네시모로 인해 손해가 있다면 자신이 그 빚을 갚아 주겠다며 자신의 친필로 확증하면서 빌레몬이 진 빚에 대해선 자신이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는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 빚진 자들이다. 주께서 우리가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임을 기억하고(마18:21-35)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마땅히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다. 3 바울은 짧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오네시모를 위해 부탁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밝힌다. 이다. 그는 빌레몬의 결정이 자신에게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며, 빌레몬이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나아가 자신이 부탁하는 것 이상으로 빌레몬이 더 행한 것도 믿고 있다. 믿음의 관계는 서로에게 기쁨과 평안을 준다.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은 서로가 말씀 안에서 순종할 것을 기대한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

2021.7.31 NAZAZiM QT

Image
7월 31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7.31 (토) 시21:1-13 시21편은 ‘제왕시’로, 아마도 대관식이나 다른 예식에서 사용된 시편이었을 것이다. 왕을 지켜 주시고 승리하게 해 달라는 기도시인데, 왕을 지키셔서 모든 백성으로 번영과 승리를 얻게 해 달라는 기도다. 1 전반부(1-7)은 왕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임했다는 선포로 시작하고 끝난다. 하나님이 왕에게 힘과 구원을 허락하셨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1-2) 영원토록 복을 누리게 하셔서(6) 왕은 기쁨을 누린다. 금관을 쓸 정도의 부유함과(3), 건강과 장수로 오랜 기간의 통치와(4) 다른 나라들 앞에서 영광과 존귀와 위엄이 드러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5). 이런 은혜를 누리는 근거는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사실이다(7). 지금 우리는 하늘 보좌에 계신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우리의 헌신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가 풍요로워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지고,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의뢰하는 왕은 원수들을 이길 뿐 아니라 모든 원수를 찾아내 응징할 것이다(8-10). 하나님을 의뢰하는 왕을 해하려는 음모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며, 왕이 그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게 될 것이다(11-12). 이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번영과 승리를 얻음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는 선포로 이 시편은 끝난다(13).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 영원한 왕으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주를 대적하는 자들의 모든 도모는 수포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복락을 누릴 수 있다. 주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어 세상을 부끄럽게 하셔서 결국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며, 성도는 날마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쁨과 풍요와 능력을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