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September, 2022

2022.9.17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7 (토) 창24:54-67 성경에 등장하는 뛰어난 남성들을 키워 낸 것은 신앙의 여인들이다. 그중에 리브가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1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모든 과정은 신속히 진행되었다. 아브라함의 종이 다음 날 바로 리브가를 데리고 아브라함의 집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라반과 어머니는 리브가가 며칠이라도 더 집에 머물기를 바랬지만, 종은 하나님이 형통한 길을 주셨기 때문에 이 든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속히 이동해야 함을 구했다(56).단순히 자신이 중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언약의 배필을 택하는 데 자신이 쓰임 받고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순종할 수 있다. 2 어제 만난 사람을 따라 오늘 집을 떠나 이역만리로 간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가족의 간청에도 즉시 가겠다고 대답했다(57-58). 아마도 리브가 역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가족의 축복 역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과 일맹상통한다.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적극적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더욱 우리를 형통하게 하신다. 3 브엘라해로이에 있다가 아브라함의 살던 헤브론으로 이삭은 이동했다(62). 애굽에 가까운 곳에서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삭이 언약의 계승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묵상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짝을 만나게 하셨고, 두 사람이 혼인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그간 있었던 일을 듣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에 동참시키신다. 주님, 인생의 모든 과정 가운데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더욱 신속하게 주의 영광을 보며, 주께 영광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소서!

2022.9.16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6 (금) 창24:28-53 누구든 중요한 일을 맡길 때는 믿을 만한 사람을 선택한다. 아브라함 역시 경건한 며느리를 맞이하기 위해 충성스런 종에게 그 일을 맡겼다. 이 충성스런 종을 통해 사명자의 자세를 배우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아브라함의 종이 특별한 사명을 갖고 마침내 브두엘의 집에 방문했다. 라반이 음식을 베풀자 그는 자신의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우선을 둔 충성스런 사람이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를 세워 나갈 사명을 받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음과 나라를 위한 사명 감당을 모든 일보다 우선해야 한다(고전4:2). 2 아브라함의 종은 가나안 족속의 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족속에게 가서 이삭을 위한 아내를 택하라는 명령을 라반에게 전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이 모든 일이 성취됨을 믿었기에 먼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시자 그는 리브가가 하나님이 정하신 이삭의 아내임을 확신했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발견하는 겸손한 자세로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배운다. 3 종이 이 모든 일을 고하자 라반과 브두엘은 그 모든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일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한다. 종은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림으로 감사의 예를 표하고, 리브가 가정에 은금 패물과 의복 등 보물을 주어 감사를 표한다. 자신의 길을 인도하시고 형통케 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 뿐 아니라 이웃에 대한 감사의 열매 또한 풍성하게 맺어야 한다.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충성을 다함으로 마지막 때에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게 하소서!

2022.9.15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5 (목) 창24:10-27 아브라함의 종이 길을 떠나 이삭의 신붓감을 만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종에게 ‘하나님이 그의 천사를 너보다 앞서 보내신다’(24:7)라고 말한 내용이 그대로 성취됨을 확인한다. 1 귀한 예물을 가지고 길을 떠난 종은 하란에 있는 나홀성에 도착했다. 이제 아브라함의 친척을 찾아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처녀를 수소문할 차례다. 이때 종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아브라함이 말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이런 기도를 적용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기록된 성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2 종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메고 등장했다. 아브라함의 친족이기에 이제 시험만 통과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녀는 종의 부탁대로 물을 대접했을 뿐 아니라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었다. 소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벅찼을 일을 소녀는 급히 (18, 20) 뛰어서(20) 부지런히 그 일을 감당했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종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3 종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묵묵히 리브가를 주목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정하신 이삭의 신붓감인지 신중하게 따져본다. 일단은 그녀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적지 않은 선물을 주었다. 그 다음 그녀이 가문을 확인하고 나서야 종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놀라며 경배와 찬양을 돌렸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면 놀랄 수밖에 없고 경이감에 사로잡혀 찬양하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리 삶에서 이렇게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 주의 성실하심과 자비를 믿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도를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2022.9.14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4 (수) 창24:1-9 아내를 잃은 아브라함은 이제 독자 이삭의 결혼으로 관심을 돌리고 그 일을 진행시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왜 아브라함은 그가 살던 가나안이 아닌 자신의 고향에서 이삭의 신붓감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을까? 1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아 관리하는 늙은 종에게 이삭을 위해 배필을 구해 올 것을 명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배우자를 찾아오게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고, 그가 살던 곳을 떠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혈통’을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는 ‘신앙’과 관련된 태도이다. 즉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나온 땅’으로 이삭이 되돌아가지 못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역사하심을 역행하는 그 어떤 행위도 근절하겠다는 결단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눅9:62)을 기억하며,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뜻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2 아브라함이 자기 종을 고향 땅으로 보내면서 가기가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음을 확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결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만족시켜 줄 만한 것을 우리가 선택하길 좋아한다. 특히나 자녀의 배우자에 대한 것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의 본을 배워야 한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기준보다 하나님 뜻에 자신을 굴복하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이러한 순종을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신다. 우리가 마음을 비울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이다. 주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셔서 주의 약속의 성취를 오롯이 누리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2022.9.13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3 (화) 창23:1-20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위한 땅이 필요한 가운데, 헤브론의 헷 사람들에게 값을 치르고 막벨라 굴에 대한 법적 권리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의 특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 아브라함의 사정을 들은 헷 사람 에브론은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은400세겔이란 큰 값을 지불하고 토지를 매입했다. 왜 굳이 값을 지불했을까? 땅에 대한 소유권을 영구적으로 취득하기 원해서였다.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약속을 바라보고 어떠한 대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귀한 시간과 물질을 그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자가 보여 주는 특징이 있다. 바로 온유와 겸손이다. 아무리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무례하거나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토지도 함부로 요구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을 지도자로 인정하는 헷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몸을 굽히고 자신은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일 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외인들에게 선한 증거를 얻은 것이 교회 리더의 자격 조건에 있는 것이 그 이유이리라 (딤전3:7). 성도의 아름다운 태도와 언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거울이 되고,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중요한 도구가 됨을 잊지 말자. 주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사용해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

2022.9.12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2 (월) 창22:15-24.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모리아 산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언약을 상기시켜 주셨다. 우리는 누구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1 본문은 아브라함이 받을 복을 상기시키면서 아브라함의 철저한 순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반드시 고백 되어야 하며, 그 고백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진정한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복을 받기 원한다면 작고 사소한 적용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으로 삶에서 실천하는 훈련이 필수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을 통해 더 놀랍고 생생한 은혜를 체험하며 영적 충만을 소망하자.  2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을 향해 가는 3일 동안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은 자와 같은 자신과 아내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묵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심을 되새겼을 것이다. 그런 생각 끝에 그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이삭이 죽게 되더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다시 이삭을 살리시리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바로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아시고 지금도 찾고 계신다.  주님, 입술의 고백이 삶에서 실천되어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예비하신 참된 복을 누리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2.9.10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0 (토) 창21:22-34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으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불신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하나님 백성의 삶은 어떤 것일까? 1그랄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 비록 아브라함이 나그네지만 자신들과 그 땅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비록 아브라함보다 더 큰 권세를 가졌음에도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줄 것을 아브라함에게 맹세시킨 이유가 뭘까?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다. 우리도 동일하게 연약하지만, 바로 기도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브라함에게서 배워야 한다. 기도를 쉬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2 아브라함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들어주고 친절하게 호의를 베풀었다. 원래 그 우물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 아비멜렉의 종들에게 빼앗기자 새끼 암양 일곱을 주어 되돌려 받았다. 때로 우리가 호의를 베풀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재산상의 손해를 보고서 그랄 왕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우리가 친절을 베풀며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기도와 친절함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2022.9.9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9 (금) 창21:8-21 이삭이 자라 젖을  뗀 시점에 아브라함 가정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이스마엘로 인해 이삭의 위치가 애매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인내하지 못한 결과는 고통스럽다. 1 이삭의 위치와 권한을 이스마엘이 위협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라는 결국 하갈을 집에서 쫓아내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한다. 비록 약속의 자녀는 아니지만 엄연히 그의 큰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마멜을 끝까지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라의 요청을 들어주라고 하나님은 지시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불신하고 불순종하면 그 결과는 큰 근심과 고통이다. 주의 뜻을 기다리고 그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만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임을 기억하자. 2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보내는 일이 아브라함에게 어찌 쉬웠을까?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에 의지하여 마침내 그들을 광야로 내보냈다. 이스마엘을 향한 부성애를 내려놓고 또다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선택한다(13-14). 하나님은 하갈과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끝까지 신실하게 돌봐주셨다. 아무리 인간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먼저 순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평강과 은혜를 반드시 경험하게 하신다. 주님, 불완전한 우리의 지혜에 의지하여 불순종할 때 평강이 깨어지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할 때 참 평강을 경험하게 됨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2022.9.8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8 (목) 창21:1-7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은 25년이란 긴 기다림 후에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는 영적으로 성숙해진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기다리는 자는 어떤 복을 받게 될까? 1 육체적으로 도저히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임신을 하고 자녀를 출생하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정한 때가 되기까지 미루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과정에서 우리 역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2 아브라함은 아들이 태어나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짓고, 출생 8일 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례를 행했다. 그는 아들의 출생으로 인해 더욱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여정 속에서 아브라함이 항상 순종했던 것은 아니다. 이집트 사건,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인정한 사건,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고, 또 아비멜렉 사건등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기다림을 하나님은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 순종으로 나아가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실 것이다. 주여,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나를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빚어 가심을 깨닫고 항상 하나님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9.7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7 (수) 창20:1-18 아브라함이 그랄 지역으로 옮겨 살다가 그곳 사람들에게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예전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일이 재발했다(12:11-13)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연약한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부어주시는가? 1 아비멜렉 왕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겼다. 그러자 그날 밤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에게 경고하셨다. 비록 아브라함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개입하셨고, 사라를 보호하셨다. 때로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과 위기도 대부분 우리 죄와 실수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찾아오시고 위기에서 건지시고 우릴 고쳐 주신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로 응답하시고, 우릴 만나주시고 변화시켜 참된 평강과 안식을 다시 경험하게 하신다. 2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면 아비멜렉이 살 것임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7).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비멜렉의 아내와 여종까지 출산하는 복을 내려 주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위기를 기쁨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크게 잘못한 상황에서도 은혜를 베푸시며 이삭이 안전적인 환경 가운데 태어나도록 상황을 주관하셨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성취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뜻을 합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그 책임과 오명이 뒤따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증거와 간증과 전도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항상 순종의 길을 가야 한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기에 빠뜨리고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의 마음을 붙드셔서 항상 순종의 길을 걷도록 힘을 주소서!   

2022.9.6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6 (화) 창19:30-38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롯과 그의 두 딸을 구원해 주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서, 세상의 도리를 따른 이들이 얼마나 악한 결말을 초래했는지 볼 수 있다. 1 산으로 도망치라’고 천사들이 말했지만 가까이 있는 소알을 도피처로 요청했다. 하나님의 보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눈에 안전해 보이는 곳을 골랐던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아내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사건까지 경험하자 극심한 두려움에 빠졌다. 그래서 소알에서 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여호와의 말씀’을 따른 것과 대조를 이룬다(12:4).  두 딸 역시 아버지와 지내면서 결혼이 불가능하다 판단해서 단지 후손만을 생각해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 바로 ‘세상의 관습’에 따라 선택한 결과다(31). 우리는 선택 기준이 절대로 ‘세상’이 되어선 안된다. 이들의 선택은 어느 날 갑자기 순간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사소한 죄가 하나 둘씩 쌓여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결과다. 2 두 딸이 아버지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게 한 후, 패륜적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큰딸은 장차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될 ‘모압’을, 작은딸은 장차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될 ‘벤암미’를 낳았다. 자신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세속적 선택을 우선하며 살던 생활방식은 재물도, 아내도 잃고, 딸들의 패륜적 행동에 이용당하며, 대대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될 두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이처럼 죄의 장악력은 무섭다. 우리의 모든 선택에서 하나님이 없다면, 그 선택은 하나님과 무관한 결과, 즉 악한 겨과를 볼러 올 수밖에 없다. 세상 모두가 ‘세상의 도리’를 따를지라도 우리는 ‘여호와의 도리’를 행해야 하는 성도로 부름 받았다 (18:19). 주님, ‘세속의 관습’을 철저히 경계하고,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9.5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5 (월) 창19:23-29 마침내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심판이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로 내려와 사람들과 땅에 난 풀 한 포기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롯과 아내의 운명이 달라졌다. 한 사람은 구원을, 다른 한 사람은 심판을 받았다. 왜 이런 일이? 1 이미 천사들은 롯과 그 가족에게 구원받기 위해 지켜야 할 한 가지 단서를 제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왜 뒤를 돌아보았는지 그 연유는 모르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다. 우리에게도 뒤를 돌아보게 하는 많은 문제가 있다. 롯의 아내처럼 우리 마음을 잠아끄는 문제에만 관심을 쏟다가 구원의 문제를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온 세상을 얻었다 한들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8:36). 2 하나님은 롯이 소알 땅으로 피신할 때까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을 유예하고 기다리셨다. 그래서 그가 소알에 도착하자 비로소 심판을 내리셨다. 롯이 구원받은 것은 그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29).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실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심판이 유예되는 것은 죄인들을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 때문이다.  약속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주님, 심판의 때가 오기 전 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복음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9.3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3 (토) 창19:1-11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 백성의 심각한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다. 의로운 10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그곳의 죄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1 천사들이 소돔을 방문하여 롯은 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소돔 사람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롯의 손님들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찾아왔다.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누구든 이용할 만큼 타락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아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 일체의 행위를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성도는 영적으로 혼탁하고 어두운 사회를 밝히는 빛과 소금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거룩하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감찰하시고 언젠가 심판하신다는 엄중한 진리를 담대히 전하며 살아야겠다. 2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풍요함에 이끌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곳 사람들 역시 이런 넉넉함 속에서 넘치는 양식에 만족하고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소돔의 죄악을 한마디로 ‘교만’이라고 지적했다(겔16:49, 56).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영적 교만인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경건하게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은 대적하신다(벧전5:5).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기적 욕심을 따라 살고 있지 않은지 날마다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삶을 보여 주는 것이 불신자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주님, 타락한 이 시대의 가치들을 따르지 않고 더욱 근신하며 깨어 거룩한 말씀의 빛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2022.9.2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2 (금) 창18:16-33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 예고를 들은 아브라함은 그곳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로 하나님 앞에 섰다. 아브라함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탄원하는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하나님은 왜 들어 주셨을까? 1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악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거기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의인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라 분명히 믿었다. 이런 기도는 타인을 위한 기도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더 친밀히 알아갔다. 지금도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2 사람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아브라함은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더라도 그 안에 사는 의인들을 보호하시길 간절히 원했다. 더 나아가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들이 용서받고 구원받기를 또한 간절히 간구했다. 사랑과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죄인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 어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닮아 가도록 빚어 가실 것이다.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 자리에서 이런 복을 경험하게 된다. 주님, 우리 개인의 관심을 넘어 아브라함과 같은 기도 중보자가 되어 주변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쉬지 않고 기도로 중재하는 하나님을 참된 자녀들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9.1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9.1 (목) 창18:1-15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눈앞에 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자 한다. 과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삶의 태도를 기대하실까? 1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 한낮에 낯선 세 사람을 발견한 아브라함은 즉시 뛰어가 정성을 다해 그들을 환대했다. 식사시간 내내 곁을 지키며 정성을 다해 시중을 들었다. 남을 섬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히13:1-2은 아브라함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하는 기회를 가진 것을 보여준다. 우리 역시 평범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속에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과 섬김을 실천한다면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복이 있다. 2 식사를 마친 천사들은 1년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이 태어날 것을 선언했다. 그 말을 사라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도 늙었고 자신도 월경이 끊어진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보며 사라는 속으로 웃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많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라를 하나님은 책망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당신의 전능하심을 신뢰하기를 기대하신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진리(히11:6)를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주님, 내 주변의 환경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며 약속이 성취될 날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게 하소서!   

2022.8.31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8.31 (수) 창17:15-27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 일을 이루셨다. 본문은 왜 사라가 낳을 아들의 이름이 ‘웃음’을 뜻하는 ‘이삭’이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두 본문 중 하나다 (18:10-15) 1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변한 것처럼 ‘사라이(나의 사라)’’의 이름을 ‘사라(공주)’’라고 하나님이 바꿔 주셨다. 이렇게 이름을 바꿔 주신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곧 아들이 태어나 새로운 인생의 전기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16). 100세, 90세 노인에게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맞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을 후사로 세울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믿을 수도 없었던 아브라함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엎드려 웃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때마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주시겠다는 말씀에 아브라함이 웃었다(17). 이에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 (그가 웃었다)’으로 지으라고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웃었음을 기억하게 하신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의심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21).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이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심을 믿고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3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말씀대로 그의 집에 속한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했다.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기록한 것을 보면(23, 24-25, 26-27) 이 사건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세워지는 역사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통해 온 땅의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는 구원의

2022.8.30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8.30 (화) 창17:1-14 : 1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신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증표인 것이다 (21:18; 36:9).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영적 후손들이 모든 족속 중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확장된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오히려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그 은혜와 복이 이방인들에게 임하게 되었다(롬11:11-12). 성도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영생의 복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2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언약의 징표가 되는 할례를 모든 자손과 함께 거하는 이방인들까지 받으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이 혈통이 아니라 언약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율법 역시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기로 약속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신23:1-8)을 볼 때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실 계획을 이미 가지셨던 것이다. 성도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아야 하는 사역에 충성해야 한다. 3 예수님이 오신 후 성령의 인 치심을 받아 성도가 마음에 할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다(렘31:33). 바울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가 진짜 유대인임을 강조했듯이(롬2:29),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할례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법을 좇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인 치심으로 구원의 보증을 받은 ‘성도’가 되었으니 그 이름에 합당하게 세상 사람들과 성별되어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8.29 NAZAZiM QT

Image
음성큐티   2022.8.29 (월) 창16:1-16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분의 영광을 아브람은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하고 말았다. 왜 아브람이 이런 잘못을 했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찾아보자. 1 당시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본처가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는 일이 흔했다. 사래는 당시의 관행에 따라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게 했고,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으려 했다. 아브람이 85세였을 때,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었으니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 가정에 기쁨이 아니라 큰 어려움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 결국 온 집안의 어려움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 보다 앞서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겐 없어야 한다. 2 하나님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하갈이 사래의 수하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하갈의 고통을 위로하시고, 태어날 아들이 강해질 것을 약속해 주시며 하갈 또한 소망을 품고 아브람의 집에서 사래의 여종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이스마엘도 아브람의 아들이기에 그에게 이런 약속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사래의 아들이 아닌 ‘하갈이 낳은 아들’로 성경은 기록한다. 이처럼 인간적인 방법은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상처만 남기게 된다. 주님,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기다리지 못해서 자기 생각대로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주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