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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May, 2022

2022.05.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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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 2022.5.23 (월) 고전10:23-11:1 현대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1 고린도교회 안에 시장에서 파는, 우상 제물로 사용했던 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는 문제에 있어 바울은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음을 명시했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과 유익이 아니라 타인의 양심과 유익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에게 해가 될 상황이라면 먹지 않는 것이 사랑의 법을 좇는 태도라고 교훈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그 자유로 타이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2 성경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따라 이웃을 배려함을 의미한다.  얼마든지 믿음과 경험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를 수 있기에 함부로 타인을 판단해선 안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명한다. 이는 자신의 유익이 아닌 타인의 유익을 구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음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주님, 스스로 낮아져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드러내신 것을 본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2.5.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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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1 (토) 고전10:1-13 ‘우상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8:1-11:1).  바울은 이 질문을 한 자들의 진의를 꿰뚫어보았고, 그 배후에 놓인 심각한 영적 문제를 교정하려 했다. 1 ‘우상 제물’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의 본심이 이전에 행했던 우상 숭배로 끌려들어가고 있음을 간파한 바울은 옛 이스라엘의 예를 들어 경고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모두 구름과 바다를 지나는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성찬에 참여했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 습관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우상 주위를 맴돌면서 ‘이런 고기 먹을 때가 좋았는데’라는 마음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며 자만하면 안 된다.  죄의 영향력은 크고 심각해서 매순간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변질시킬지 모른다. 죄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2 바울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이란 표현을 반복하는데, 이는 고린도 성도들 중 일부가 우상 숭배, 음행, 주님을 시험함, 원망 등의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7-10). 이런 죄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바울은 강조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통해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신ㅇ늘 지키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느냐는 식의 타협적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시험을 이기고 죄를 피할 수 있게 도우시기 때문이다(13). 목적을 갖고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으니, 우리는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영적 자만심이나 자기기만에 붙잡혀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것들을 행하지 않는 심각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2022.5.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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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0 (금) 고전9:19-27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 모두가 복음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소 우리 또한 복음 증거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1 바울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19). 유대인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행하고, 이방인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행하고, 약한 자들에겐 약한 자같이 되었다(20-22). 사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분명한 사람이었지만(빌3:5),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사도로 부르심을 입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한 후로부터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스스로 누구에게나 ‘을’이 되었다(빌3:8).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우리 역시 복음을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2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성도들에게 명하면서, 당시 고린도에서 2년마다 열리던 이쓰미안 경기(Isthumian Games)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상을 받기 위해 힘껏 달린다고 말한다(24).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했다(딤후4:7-8). 성도는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바울과 같은 말을 남길 수 있도록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누구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되었음을 잘 아는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약한 인간은 언제든지 교만해질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자신에게 몸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고백했다(고후12:7). 우리 역시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확신은 갖되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언제나 말씀 앞에 복종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 복음

2022.5.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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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9 (목) 고전9:13-18 우상 제물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사실 사소한 문제였다. 오히려 형제를 위해 자기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신앙임을 바울사도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또한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그렇게 생활했던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냈다. 1 하나님은 성전을 섬기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것이 합당함을 말씀하셨다(민18:8-24). ‘우상 제물을 먹어도 아무런 영적 해악이 없다’는 것이 ‘바른 지식’이듯, ‘복음 사역자는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생활한다’는 것이 ‘바른 지식’이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 전파에 혹시 방해가 될까봐 이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하면서 복음에 방해가 되는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던 바울에게 유일한 자랑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예수님의 길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주님처럼 바울처럼 우리도 이 땅에 살면서 복음 전파의 삶을 위해 희생하며, 남을 배려하며, 고생했노라고 고백하고 간증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자랑임을 기억해야 한다.  2 바울은 자신이 복음 사역자로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나 사역을 통해 많은 열매를 얻었음을 자랑하지 않았다. 복음 사역은 그에게 하지 않으면 화를 입을 수 있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16). 복음 사역이 자의가 아닌 사명이었기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바울이 자랑스러워했던 상은 바로 ‘복음을 값없이 전하고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부분의 사례를 포기하고 교회를 섬기느라 힘겨워하는 많은 사역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상일 것이다. 바울이 자신의 자랑은 십자가 외에는 없다고 고백했듯이(갈6:4), 형제 자매를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주님,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형제 자매를 섬기기 위해 권리와 자유도 얼마든지 포기할 줄

2022.5.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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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8 (수) 고전9:1-12 교회는 복음 사역자를 후히 대우하고 사역자는 절제의 미를 갖춰야 한다. 1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 됨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같이 복음 증거하는 사역을 통해 자신도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나라의 지원을 받는 군인, 자신의 소출의 열매를 얻는 농부나 목자의 생활이 당연하듯, 바울도 다른 사도들처럼 복음 사역으로 후원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며 주의 일을 위해 일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바울은 권면한다(갈6:6). 교회는 사역자들이 복음 사역에 전념하도록 돕는 것이 마땅하다. 2 복음을 위해 사도의 권리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의 이 권리 사용을 자제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권리 행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행18:3). 복음에 대한 열정과 희생정신은 모든 복음 사역자가 본받아야 할 자세다. 사역자가 자신의 권리를 과하게 주장하는 것도 문제고, 사역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역자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사역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신앙 공동체 전체에 유익을 준다. 주님,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다른 지체들의 믿음을 살피고,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는가를 돌아보게 하소서!  

2022.5.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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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 17 (화) 고전8:1-13 스스로 지혜롭고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 가운데 거침없는 행보를 하기 쉽다. 그래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상처를 주기가 쉽다. 말씀 속에서 교훈을 얻어 언제나 다른 지체들을 배려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1 고린도에서는 우상 제물로 드려졌던 고기가 시장에서 팔렸는데, 성도가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므로 그 고기를 먹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삭이 없는 자들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지식는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지식은 교만이며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잘못된 행실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여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 2 불완전한 지식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타인을 향한 사랑과 배려다. 아무리 자신에게 당연한 권리와 자유가 있다해도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할 때에야 비로소 불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참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사랑의 법을 따라 행함으로 교만하게 하는 불완전한 지식을 온전한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3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사랑의 법에 근거함을 바울은 강조한다 (빌2:6-8). 이런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사랑은 우리 모든 성도가 따라해야 할 모범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 모든 성도가 순종해야 할 새 계병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된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의 행동을 보임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주님, 주님을 닮기를 소망하는 성도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참된 지식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웃을 섬기는 삶을

2022.5.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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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6 (월) 고전7:25-40 고린도교회 안에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있었다. 결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합당한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을 통해 성경적 원칙을 얻어보자. 1 사도바울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미혼으로 남는 것을 추천하면서도 최종 결정은 당사자가 내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용해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주변의 압박과 분위기에 밀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결정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결혼만이 아니라 봉사, 사역 등등에 있어 선택하는 일도 많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용해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다른 지체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결정을 사용하셔서 가장 최선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2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 이를 둔 부모에게 바울은 권면하기를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좋지만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주님을 더 충성되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위해 마음을 쓰는 대신 하나님께 비교적 더 마음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의 이기적 욕심과 편안한 삶을 먼저 생각하고 결정할 때가 많다. 개인의 취미시간 때문에 봉사를 거절할 수도 있고, 영성 훈련보다 휴가나 쉼을 먼저 생각하고 거절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학기가 어렵다. 만일 우리가 모두 먹고 마시는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매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영혼에 유익이 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주님, 다양한 선택 앞에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에 따라,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2022.05.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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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4 (토) 고전7:1-16 고린도의 음행의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부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할 성적 의무에 대해 교훈한다. 하나님은 부부가 서로를 하나의 몸으로 여기고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길 원하신다는 가르침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1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자신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관계를 거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자들을 향해 바울은 배우자에 대한 의무를 다함으로써 사탄이 유혹할 기회를 만들지 말라고 교훈한다. 음행의 문제는 결혼 생활과 더 나아가 교회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성적 의무와 함께 서로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 몸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태도다. 자기 만족을 위해 이혼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성도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함을 통해 주변에 깨어진 가정들을 섬기고 회복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2 부부는 공간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연합해 있어야 한다. 영적 훈련을 위해 얼마 동안 합의하에 떨어져 지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일상의 부부관계나 경건의 훈련 모두 귀하게 보신다. 우리 주변에는 이단적 교리에 빠져 가정을 깨뜨리는 경우를 본다. 영적인 경험과 훈련이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가정에서 맡은 책임을 소홀히 여기도록 유혹하는 잘못된 교훈에 흔들리지 말고, 부부관계에 대한 말씀의 바른 교훈을 배우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가정은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셨기에 부부 관계의 결속을 깨뜨리는 어려움이 있다면 기도하자.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더욱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 주실 것이다. 우리를 한 몸으로 부르시고 온전한 연합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여, 배우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주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소서!

2022.05.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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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3 (금) 고전6:12-20 우리가 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진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바울사도는 성도가 자신의 몸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갖고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다는 뜻이다. 율법과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그런데 자유가 있기에 내 몸으로 뭘 하든 상관없다고 여겨 음행을 일삼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가 주의 몸의 일부를 마치 떼어다 창녀의 몸을 만드는 것 같은 비유로 바울은 경고했다. 교회 공동체 안에도 음란한 세속 문화가 흘러 들어와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바로 깨달아야 한다. 주님이 주신 자유는 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사명에 의해 언제든지 제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거룩하고 성결한 장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의 몸이 성전이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통치하고 돌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거룩함이다. 성도는 자신의 몸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지켜야 한다. 육체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음행과 같이 자기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육체(전인격)이 사용되어야 함을 적극적으로 권면한다. 주님, 음란하고 악한 문화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 성결한 삶을 선택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영적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2022.05.1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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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2 (목) 고전6:1-11 때로 교회 안의 분쟁이 뉴스로 나오면 부끄럽다. 어떤 이들은 옳고 그름을 명백히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교회가 그만큼 세속화했고 죄에 대해 무뎌져 있다 사실에 안타깝다. 1 당시 고린도 성도들 간에 갈등 때문에 세상 법정에 고발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물론 벌어진다. 법정 다툼이나, 교인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분쟁하다가 법정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바울은 교회 안의 갈등과 분쟁은 교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보다 더 높은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거룩한 무리)’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끌어야 한다(2). 2 혹 다툼과 분쟁이 쉽게 해결되지 않아도 세상 법정에 가느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거나 속는 것이 낫다고 바울은 권면한다. 분쟁의 상대방이 형제이기 때문이다(8).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 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손해를 감수하고 참는 것이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보다 성경적이란 말씀이다. 공동체가 말씀에 따라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쓸 때 더욱 성숙하고 견고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3 바울은 여러 악행을 열거하면서 이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방종하게 행하는 자들은 실제로 믿음이 없는 자는 자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속히 그런자들이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아 거룩함과 의로움을 입어야 하고, 그 일을 위해 공동체는 적극적으로 훈계함으로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불의하고 방종하게 행하는 지체들도 그 은혜를 입어 회개하고 거룩한 지체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힘쓸 때 교회는 거룩하고 의로운 공동체로 세워져 갈 것이다. 주님, 주의 보혈로 성도가 깨끗해지고, 거룩해졌으니, 지속적으로 정결을 유지하며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소서!

2022.05.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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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1 (수) 고전5:1-13 작게 여겼던 죄가 엄청난 파괴력으로 우릴 함몰시킬 때가 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하나씩 거론하며 교훈을 주고 있는데, 그 첫번째 문제는 바로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음행’이란 죄 문제다. 1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아내와 음행을 저질렀다. 아버지의 다른 아내였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이방인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행이라며 바울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음행에 대해 교회가 통한해하지도 않고, 이들을 내쫒지도 않았다고 바울은 꾸짖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2 ‘병을 키운다’는 말이 있다. 분명 문제가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여길 때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바울은 교회 안의 ‘음행’ 문제를 ‘누룩’에 비유했다(6-8). 음행한 자를 출교함으로써 공동체의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특히 바울은 음행, 탐욕, 우상숭배, 중상모략, 술꾼, 속여 빼앗는 행위를 하는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 필요한 조치다. 하나님이 죄와 함께하실 수 없듯이 교회와 성도 역시 죄와 함께해선 안 된다. 3 세상 사람들이 악하게 살아가는 것이야 우리가 어찌할 문제가 아니다(12). 그러나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교인들 중에서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회개하고 거룩한 삶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우리는 죄에 대해 너무 관대해져 있다. 자비와 온유를 베풀어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할 줄 알아야 거룩이 유지된다. 우리 안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죄악이 있다면 단호하게 그 죄악을 해결하고 경계해야 한다. 주님, 내 안에 죄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철저히 회개하고 차단하며 거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십시오.   

2022.05.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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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0 (화) 고전4:9-21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아직 영적으로 미성숙했음에도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다 가진 것처럼 착각하여 왕 노릇 하려 했다. 이에 바울은 그와 대조되는 사역자들의 모습을 강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 그들의 관계가 어떠한지 설명해 준다. 1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의 구경거리, 세상의 쓰레기,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지헤롭고 존귀한 자처럼 여겨지길 원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굶주림, 박해, 모욕, 비방을 당하면서 주님을 섬겼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고 서로 분쟁, 시기, 질투했다. 2  아버지와 스승은 자녀 혹은 제자를 잘 키우려는 목적에 있어 동일하지만, 그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 아버지는 자녀의 총체적인 면을 사랑하는 마음을 돌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려 한다.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포기하지 않고 권면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을 본받는 자들이 되길 바랬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보면서 닮아 가고 배워가듯 이 믿음의 스승을 보고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3 영적으로 양육받을 때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교만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있는 교만을 지적했다(18). 이미 성숙한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있는데, 실은 아직도 그들은 부족한 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성도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는 번드르한 말에 있지 않고 삶에서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는지를 보고 그 영적 성숙도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19-20).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서로 분쟁, 갈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서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능력은 온유하고 겸손하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능히 이기는 신앙을 가리킨다. 주님, 항상 아직 다 갖추지 못한 것을 인정하며 겸손히 행하며,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05.0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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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9 (월) 고전4:1-8 고린도교회는 특정 사역자의 추종자임을 내세워 서로 편을 가름으로 갈등이 생겼다. 본문을 통한 바울의 사역자에 관한 가르침은 성도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1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충성스런 태도 하나다(2). 하나님 앞에서 변질되지 않고 한결같은 신앙으로 섬기는 태도를 뜻한다. 사역자가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그분께만 충성하듯, 성도들 역시 사역자의 충성된 신앙을 모범으로 삼고 사역자와 같은 태도로 하나님께만 헌신해야 한다. 사람을 의지하면 그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고, 자기 기준대로 분류하고 서열을 정할 것이다. 성도는 이런 행위를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사역자들을 평가하고 칭찬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5). 교회 모든 사역자와 성도들 모두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간적 갈등을 넘어야 한다. 2 바울은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역자나 성도 모두 성경의 가르침 안에 있어야 한다. 말씀을 자기 뜻보다 아래로 취급하는 것 만한 교만도 없다.  답답한 마음에 바울은 3번에 걸쳐 같은 질문을 던진다(7).  핵심은 바로 자랑하지 마라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므로 경쟁적으로 자랑할 이유가 없다. 세상의 잣대로 서로 비교하며 열등감과 우월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태도는 비신자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3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미 배부르고 물질적으로 풍성하여 왕처럼 행세한다고 바울은 꼬집는다. 그러나 앞서 그들이 세상적으로 내세울 조건이 전혀 없다는 언급을 떠올려 보면(1:26), 바울의 이 말은 조소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절대로 세속적인 기준으로 다른 지체들을 판단해선 안된다. 오히려 이런 비신자들의 주장을 경계하고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절대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교만하지

2022.05.0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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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7 (토) 고전3:1-15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신령하고 영적이라고 여겼지만, 그들 안에는 인간적 자랑, 불순종, 분열이 그들의 미숙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스도를 닮아 연합을 이루는 것이 바로 영적 성숙함이다. 영적 성숙함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들 사이에 시기,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의식과 이기심, 그들 속에 숨겨진 세속적인 사고 때문에 교회 직분이나 은사들을 시기하는 것은 지금도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연합해야 할 교회를 해하는 것이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그들의 마음과 생각은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있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 할지라도 그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를 닮아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영적 어린아이다.  우리는 영적 미숙함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 성숙해지기 위해 세속적인 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한다. 2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에 만족한다. 종으로 섬기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들이 수고하여 다른 사람을 돕기 원한다. 바울은 다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함께 필요함을 인정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다른 사역자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협력했다. 연합은 영적 성숙함을 드러내는 표지다. 교회의 연합은 분쟁과 다툼으로 소란스런 세상에서 믿음 공동체를 구별하는 표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영적 성숙을 이루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 영적 성숙함에서 나오는 섬김과 수고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불에 타지 않는 우리의 자랑이 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아이 상태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을 닮은 성숙한 자들로 영적 성숙에 진보를 나타내며, 교회의 연합에 힘을 다하게 하소서!   

2022.05.0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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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6 (금) 고전2:10-16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은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성령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 한다. 1 하나님의 성령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이해시켜 주신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구원의 도를 깨닫게 하시기에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비한 체험과 같은 자극적인 경험을 쫓지 말고, 성령 안에서 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사모해야 한다.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의 영혼에 진리를 깨달을 영적 이해를 더해 주실 것이다. 2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지혜에 때라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된다(16).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태도와 생각, 이성적 판단, 감정 등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것을 동일하게 품을 수 있다. 우리가 성령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 성령께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우리가 애써야 할 것은 어떤 행위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주님, 교회 공동체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혜로 오늘도 살아가게 하소서!

2022.05.0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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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5 (목) 고전2:1-10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사회의 주류 사상은 헬라철학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붙들고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인간의 지혜가 아닌 성령님을 의지하여 올바른 복음 선포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대부분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갖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할 때 가능한 한 많은 방법 (미사여구와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배경 지식을 동원해서)을 사용한다. 바울은 인간적인 말솜씨를 배제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고, 억지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도록 도왔다. 말과 수단에 의해 믿음이 생긴다면 나의 지혜를 자랑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믿음을 이끌어 낼 땐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전도에 앞서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선행된다면 전도의 현장에서 죄인이 회개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2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를 희석시키거나 과정해서도 안된다. 전도 대상자들 중에는 세속적 기대를 갖고 복음의 메시지보다 지적 호기심이나 자극적 간증을 기대하기도 한다. 좋은 가르침과 간증이 유용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배우고 깨닫는 말씀의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복음의 진리만이 생명의 길이며 그것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항상 성령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의지하여 참된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을 잘 준비하는 전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22.05.0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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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4 (수) 고전1:26-31 하나님은 자신의 미련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부르신다. 교회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며, 세상적인 자랑과 분열은 성경적일 수가 없다. 1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결코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약자요 소외된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심을 경험하며 새롭게 변화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학식이나 무슨 능력 지위가 나은 사람을 가까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릴 선택하실 때 그 반대였다. 이런 선택을 우리가 받았음에도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세상의 기준을 내세울 수 있을까? 세상적 판단과 선택은 교회를 오염시킨다. 반드시 성경적 올바른 기준에 따라야 한다. 오직 쓸모없는 죄인을 불러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과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려는 열정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신다. 자기만족으로 가득한 사람 대신 심령이 가난한 자를 불러 이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기쁘게 인정하는 우리는 모두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가 오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과거의 가난했던 마음을 잃어버리고 어느 새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마치 자신이 이룬 것인 양 자랑하고 내가 누리여 할 사람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감사하는 성도로 살아야 한다. 주님, 지금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비한 자들을 찾아 위로하시고 복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심령의 가난함을 사모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2022.05.0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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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3 (화) 고전1:18-25 성도가 세상 지혜를 따라가면 반드시 분열됨을 바울은 진단했다. 세상의 지혜로 미련해 보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오히려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세태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붙들어야 한다. 1 십자가는 당시 최악의 사형 방법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유대인에겐 ‘저주의 나무’에 달린 자, 헬라인에겐 ‘죄수로 실패자’로 보였다. 그러나 십자가는 죄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이 십자가를 괄시하지만, 바로 그것이 구원을 주는 참된 지혜다. 2 헬라 철학이 발달되어 있던 당시 고린도 사회는 인간의 지혜를 겨루는 각축장이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자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간의 지혜가 어찌 하나님의 뜻과 지혜와 감히 견줄 수 있을까(사55:8-9)? 지식과 학문이 고도로 발달해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도 없다. 매우 단순해 보이는 십자가의 복음은 죄를 해결하고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참된 지혜다. 3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역시 여전히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찾는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 하지만 인간의 지혜 지식으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가 없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우릴 구원하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지혜요, 우리를 죄에서 살리신 것이 능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관점을 내려놓고 십자가에 담긴 참된 지혜를 붙들 때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이길 능력이 더 강하게 역사하게 될 것이다. 주님, 세상의 생각들, 가치관들에 절대로 미혹되어 살아가지 않게 오늘도 도우소서!  

2022.05.0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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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 (월) 고전1:10-17 글로에의 종들이 사도 바울을 찾아와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영적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들 사이에 생긴 분쟁으로 영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분쟁 해결책은 뭘까?  오직 OO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1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각자 특정 지도자에게 자신들이 속했다고 주장하며 분쟁했다. 여러 파벌을 만들면서 마땅히 바라봐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은 것이다. 이때 바울은 누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 생각해 보라고 도전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만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연합시킨다. 교회 안에서 분쟁과 다툼을 경험하곤 한다. 십자가에서 우릴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 안에 감격과 감사가 회복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뛰어넘게 되고,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 가며 성숙한 길로 나아가게 된다. 2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당시 자신들이 세례 받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각자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에게 소속되었다고 여겼다. 이때 바울은 바울은 자신에게서 세례 받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오직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진리를 상기시켜 주었다. 세례의 의미가 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주인 되어 살지 않겠다는 결단을 뜻한다. 예수님의 주권에 굴복하고, 내 주장을 하지 않고, 그분의 뜻에 헌신함으로 온전히 연합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주님의 사명에 헌신해 있다면 우리는 깊은 연합을 경험할 것이다. 주님, 교회가 연합할 때 세상을 향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아,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주께서 주신 사명에 온전히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22.04.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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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4.30 (토) 말4:1-6 전도할 때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데, 그 이면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복음에 내포된 구원과 심판의 양면성을 기억하고, 영혼에 대한 긍휼과 사랑과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 1 하나님의 심판은 교만한 자와 행악자에게 심판의 불로 임한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다(사66:16; 겔38:22; 창19:24-25; 마5:22; 눅3:17).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소멸되었다. 예수님은 행악자들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알곡과 쭉정이 비유에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워지는 비유는 악인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시급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심판에 이르지 않기를 주님은 원하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의의 태양이 치료하는 광선으로 치료하신다고 한다(2).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로 회복시키는 것으로, 죄와 사망의 올무에 매여 있던 영혼이 죄 사함을 받음으로 자유하게 됨을 송아지로 비유되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롬8:1-2). 본문의 치유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고, 지금도 복음 전파를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뤄지고 있다. 영혼까지도 치유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명을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3 예언된 엘리야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리고 자식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게 할 것이란 말씀을 주셨다. 바로 세례 요한을 보내 회개의 복음을 외치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시키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마17:12).  부모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녀들에게, 또한 불신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상기시킨 말씀이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치유의 광선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불 심판을 준비하셨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 중심, 말씀

2022.04.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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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29 (금) 말3:13-18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으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나’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봉사, 섬김, 헌금이 큰 부담으로 느껴지고, 강한 거부감까지 들기도 한다. 말라기 선지자는 왜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하나? 1 당시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 섬기는 것은 쓸데없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슬프게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음을 지적한다(14). 심지어 ‘오히려 교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더 복 받고 화를 안 입는다’라고 말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즉 신앙생활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허나 이런 주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다(13). 우리가 과거를 알고 역사를 안다면 그런 생각은 꿈에라도 가져선 안된다. 이 땅에 살면서 믿음만 갖고 어찌 살아갑니까’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신앙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릴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라는 데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우리와 다음세대까지 망하지 않게 하는 길이다.  2 왕정사회는 왕을 대적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자는 당장 처형을 당했다. 당시 팍팍한 현실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당장 심판을 선언하시 않으신다. 다만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자의 이름을 당신의 책에 기록하셔서 잊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특별한 내 소유’란 말은 시내산에서, 왕의 심복, 나라의 2인자를 의미하는 표현이다(출19:5). 하나님은 대적하는 자를 벌하기 보단, 신실한 자를 높이기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회개의 시간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주시지만 반드시 심판의 시간은 오는 법이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만을 섬기는 높이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요, 참 복이다. 주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와 하늘을 소망하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2022.04.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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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4.26 (화) 말2:10-16 성도라면 육적,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그러나 세상은 온갖 음행과 가증한 일로 우리를 현혹한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1 유다백성은 하나님과 그 조상들이 맺은 언약을 욕되게 했다. 이방 사람들과의 결혼이 그 원인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 거민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이 땅을 주시면서 이방 민족과 통혼하는 일을 금하셨다. 혼합종교의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성결을 욕되게 했고, 제사장들조차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스10:18).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봉헌물을 받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은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는 것을 뜻한다. 성도는 육체의 정욕에 따라 사는 거짓 행위를 금하고 경건한 가정을 이뤄야 한다. 2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젊어서 맞이한 아내와의 언약을 깨뜨리고 불륜을 일삼으며 이혼과 폭력을 행하는 것을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이런 악행을 미워하신다. 배우자에게 거짓을 행하는 것은 부부로 짝지어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큰 죄악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단언하신 것이다(막10:9). 성도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혼 생활 가운데 거짓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3 우상 숭배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린 영적 간음으로 하나님은 정죄하셨다(대상5:25).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백성이 음란한 우상 숭배에 빠짐으로 하나님을 배신했다.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된다(계21:9). 크리스천은 주님과 언약관계에 있다. 성도는 결혼 생활에서 성결함을 지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주님을 온전히 섬겨야 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고 영원한 기쁨을 얻기 위해 우상 숭배를

2022.04.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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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2.4.25 (월) 말2:1-9 구약 제사장 직분은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졌다(벧전2:9).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의 직무와 책임을 깨닫고,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제사장 직분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온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출애굽 당시 시내산 밑에서 일어난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32:26-29; 민25:6-13). 자기 몸을 드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적인 직분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영적 예배,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롬12:1-2). 또한 평화의 복음을 세상에 전함으로 사람들이 사죄의 은총을 받고 영생과 평강을 누리도록 이끌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마음에 두지 않고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저버리고 불법을 범했고, 백성 역시 불법을 행하게 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  백성들 앞장서서 메시아를 섬기고 따라야 할 위치에 있던 자들이 세상을 향한 헛된 욕망 때문에 영안이 가려져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진리와 생명의 복을 따라 행함으로 주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요일2:16). 주님, 저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셨으니 죄를 멀리하고 경건한 삶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