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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ne, 2022

2022.06.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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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5 (토) 시22:1-2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로 시작하는 시22편은 신약 성도들의 마음을 크게 울리는 시편이다.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윗에게 배우고자 한다. 1 고통 중에 있던 다윗은 하나님이 지금 멀리 계셔서 돕지 않으신다고 느끼고 있다 (1-2).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울부짖음을 ‘찬송’으로 바꾸며 주께서 그 가운데 임재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 또 과거에 나를 붙드시고 위로하셨던 주님을 기억하자.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절망 가운데 머물지 않는 힘이 된다. 2 사람들은 시인이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조롱하고 있다.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헛된 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섬겨온 하나님을 잊지 않은 것이다. 어려운 일을 겪고 시험에 들어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참된 신앙인은 아무리 큰 어려움을 겪어도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부인하지 않고,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11). 상황과 상관없이 주를 끝까지 의지해야 한다. 3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으며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체념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구원하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간구하는 자는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 주님, 그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으며 기도를 멈추지 않을 때 가장 적절할 때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항상 찬양케 하소서!    

2022.06.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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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4 (금) 에9:29-10:3 모르드개는 분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위해 사용하신 인물이다. 에스더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모르드개에 관한 기록은 영적 리더십에 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1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전쟁 포로의 후손으로 태어나 이방인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해 내는 큰 역할을 감당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실한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셉처럼 신앙의 정절을 지킨 것이다. 목숨을 걸고 하만에게 굴복하지 않는 신앙의 절개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신앙의 정절과 믿음의 용기를 지닌 자를 지금도 사용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담대한 믿음을 소유함으로 구원 역사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2 모르드개는 유다 백성과 형제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아닌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했기에 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라고 말한 것에서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이 맡기신 권세나 지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 것을 주의 영광과 이웃 사랑을 위해 바로 사용할 때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는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된다. 주님, 주께서 허락하신 은사와 상황들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쓰임 받는 복이 오늘 나에게 있게 하소서!   

2022.06.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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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3 (목) 에9:17-28 본문은 유대인들의 부림절의 기원에 대해 알려 준다.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제정된 절기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겪은 특별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절기다. 부림절에 담긴 영적 의미와 교훈을 깨닫고 신앙생활의 지혜를 얻어보자. 1. 진멸당할 위기에서 오히려 대적들에게 보복할 수 있었던 유다인들은 그날의 구원과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제정하고 대대로 지키기로 한다. 유대 민족이 구원을 경험하게 된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인 유월절과 무교절과 맥을 같이 한다. 신약시대 교회와 성도들이 구원과 승리를 기념하며 지키는 절기는 부활절이다. 사탄과 그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키셔서 믿는 모든 자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다. 그래서  부림절은 부활절과도 맥을 같이 한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서로 선물을 나누는 행위는 기쁨과 사랑을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부림절의 반전의 역사로 공동체성을 더욱 견고히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함으로 천국 창고에 보화를 쌓아 둬야 함을 가르치신 것처럼 (마19:21),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지체들과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다음 세대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열심히 가르쳐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 각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함으로 그들 역시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주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우리 삶에서 결코 희미해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사랑을 전하고 베푸는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6.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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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2 (수) 에9:1-16 에스더서는 ‘하나님’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악인들을 벌하시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악한 자들의 모의는 결국 그들의 멸망을 재촉할 뿐이다. 성도에게는 사적 복수가 허락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위해 축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이다. 1 왕의 조서에 적힌 날이 되자 유다 백성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대적들을 도륙했다. 유다인들의 수장인 모르드개가 명성과 권세를 얻게 되었고 주변 모든 지도자들이 유다인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자기방어에 협력했다. 에스더의 소청으로 복수의 날을 하루 더 연장하게 되었다. 하만의 아들들과 7만 5천 명이나 죽임을 당했다. 대적들에게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다(렘46:10). 원수 같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 있다(히10:30).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에 대적하는 영적 싸움이다(엡6:12).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 사탄을 대항하는 영적 전쟁의 도구로 쓰이도록 자신을 드리기에 힘써야 한다. 2 하만이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해하고자 했던 이유는 유다인의 수장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무릎 꿇고 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졸한 분노에 사로잡혀 유다인들을 진멸하고 재산까지 탈취하여 탐욕을 채우려 했다(3:6, 13). 그러나 유다인들은 대적들을 진멸하면서도 그들의 재산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10, 15-16). 권리가 주어져도 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거룩한 싸움임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 승리하자 전리품을 취하라는 소돔 왕의 권유를 거절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함이었다(창14:2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권리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영적 싸움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써야 한다. 주님, 세상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싸우지만 거룩한 성도로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영적인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함으로 하나님

2022.06.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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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1 (화) 에8:11-17 기쁜 소식은 사망과 슬픔을 생명과 기쁨으로 바꾸는 소식이다. 이 메시지를 듣지 못한 자, 듣기를 거부한 자는 구원받을 수 없기에, 들어야 할 영혼들에게 기쁜 소식은 시급히 전해져야 한다. 1 아하수에로왕의 명에 따라 모든 고을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조서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유다인들을 공격하는 대적들을 진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할 권한을 유다인들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 명령이 너무 시급했기에 역졸들은 준마를 타고 급히 그 조서를 전달하게 된다. 전달이 늦어 그 소식을 듣지 못하면 유다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대적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명으로 뒤바꿔 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바로 이 조서였다. 그리스도의 복음 또한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속히 전해져야 한다. 우리가 복음 전도의 사명을 미룬다면 우리 자신 뿐 아리나 복음을 속히 들어야 할 영혼들에게 큰 화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기에 항상 힘쓰라고 명했다(딤후4:2). 2 유다인들을 몰살하려는 하만의 조서가 공포되었을 때 유다인들은 크게 애통하고 금식하며 울며불며 슬퍼했다(4:3). 이제 새로운 조서가 전달되자 이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해 잔치를 베풀고 그날을 축일로 삼았다. 이처럼 복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는 능력이 된다. 우리가 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구원의 빛을 비춰야 한다. 3 새로운 조서가 전달되자 제국에 살던 모든 민족들이 유다인을 두려워했고, 심지어 유다인이 되는 자도 많았다(17). 유다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저들이 섬겼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유다인들을 통해 드러나자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 위대하심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도 하나님의 능력

2022.06.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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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0 (월) 에8:1-10 처음에는 의로운 길로 가다 악이 득세하는 현실에 실망하여 악인의 길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의인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결국 의인이 승리함을 믿고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1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스스로 세운 나무에 달려 죽은 하만의 집을 아하수에로왕은 에스더에게 준 다음, 하만이 가지고 있던 왕의 반지도 모르드개에게 맡겼다. 왕의 권세를 위임하여 대리하게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악인에게서 빼앗은 재산과 권세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맡기신다 (잠2:26). 많은 재산을 탐하지도, 권세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경건한 모르드개에게 주셨다. 악인이 재물을 사랑하여 이 땅에 재물을 쌓아 두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만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김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누린다. 선한 길은 항상 하나님의 선물로 채워진다 (마6:19-20. 2 하만이 보낸 조서로 진멸의 위기에 처한 유다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권한을 이제 모르드개가 받았다. 한 번 왕의 반지로 찍은 조서는 취소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조서를 쓰고 왕의 반지를 찍으라고 왕은 허락한다. 이로서 모르드개는 유다 민족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할 권한을 부여하는 조서를 내려 유다 민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 낸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쳐 놓은 그물에 그들 스스로 걸려 들게 하신다. 성도는 사탄의 어떠한 공격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믿고 소망해야 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모르드개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구원을 호소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주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때문에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이뤄짐을 믿고 잠깐은 패하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승리하는 의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2022.06.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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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8 (토) 에6:1-14 오늘 본문은 에스더서의 클라이막스 부분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마침내 드러난다.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놓치지 말고 또 믿어야 한다. 1 하나님은 왕을 잠들지 못하게 하시고 왕궁일기를 읽게 하셔서 모르드개의 공적을 알게 하셨다. 이때를 위해 하나님은 아하수에로의 어리석음을 기다렸다가 사용하셔서 모르드개에게 보상하시고, 나아가 유대 민족까지 구원해 주셨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위험하고 억울한 일을 겪지만, 주의 주권과 통치로 주의 자녀들을 반드시 보호해 주심을 믿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 주를 신뢰하고 예배하게 된다.  2 하나님은 모르드개를 높이시기 위해 교만하고 악한 하만을 사용하셨다. 왕을 통해 하만 앞에서 모르드개를 높이셨다. 교만한 하만이 왕에 필적할 만한 영예를 얻고자 했지만(7-9) 그 영예는 그가 방금까지 죽이기를 건의하려 했던 모르드개의 것이었다(10). 수많은 악인이 흥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하나님은 의인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데 쓰이는 도구에 불과하다. 3 모르드개를 높이는 일을 하만이 앞장서서 해야될 판이다(11). 이 일로 하만은 큰 번뇌에 빠졌을 뿐 아니라, 부인과 친구들 모두 피해야 할 저주의 시간이 곧 임할 것이다. 하지만 피할 시간이 없다. 악인은 이와 같이 의인을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는 데 사용된 후 심판의 자리로 던져진다.  악인이 아루미 빠르게 번영을 얻어도 또한 빠르게 멸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성도는 올바는 신앙의 길, 참된 기쁨과 축복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님,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을 믿고 따를 때 반드시 보상하시고 복을 허락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항상 의로운 길에 서 있게 하소서!   

2022.06.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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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7 (금) 에5:1-14 세상에는 악한 권세자도 있고 선한 권세자도 있다.  그들은 결국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악한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좇는 성도로 살아가야 할 의미를 본문에서 배운다.  1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은 에스더를 기쁨으로 맞이하며 손에 잡았던 규를 내밀었고, 에스더는 적법하게 와 앞에 설 수 있었다. 에스더가 준비한 잔치에 참여한 왕은 에스더의 소청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에스더는 또다시 자신으 잔치에 하만과 함께 올 것을 청한다. 두 번 연속 초청받은 사실로 인해 하만은 한껏 교만해졌다. 세상의 권세는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정의를 따르지 않는 불의한 권세는 헛되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들을 자랑하며 의지하지 말고, 오직 겸손하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함으로 생명과 승리의 길로 행해야 한다. 2 왕후의 초청에 한껏 교만에 빠진 하만은 자신에게 예를 표하지 않는 모르드개에게 더욱 분노하며 그를 죽여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만은 아내와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 모르드개를 달아 죽일 나무를 세우고 처형 계획을 세운다. 공적 권세를 사적 복수를 위해 악용하는 전형적인 모델이다. 하나님이 권세를 주신 이유는, 의인에게 상을 주고 악인을 벌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라는 뜻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반대로 악을 저지른다(롬13:3).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주님만을 주인으로 고백하며 순종해야 한다. 주의 재림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세상의 악한 세력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매 순간 승리해야 한다. 주님, 사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악한 권세를 대항하여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06.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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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6 (목) 에4:1-17 보통 사람들은 생사의 문제가 달린 극한의 위기에 처하면 절망하지만, 지헤로운 자는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다. 모르드개가 보인 모습을 통해 지혜와 결단을 배워보자. 1 하만의 계략으로 유다 민족 전체가 진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모르드개는 먼저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를 시작했다(1).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왕후 에스더를 찾아간다. 모르드개에게 소식을 들은 에스더 역시 왕의 부름을 받은 지 30일이나 지나 왕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했다. 왕의 재가가 없으면 죽임을 당하는 무서운 법이 있어서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때 모르드개는 왕후의 자리에 있게 된 것도 이때를 위함임을 주지시키며 민족을 구원할 사명이 있음을 강조한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반드시 구원받을 것을 확신했다(14). 우리는 모르드개처럼 역사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신앙적 관점으로 판단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2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걸고 왕 앞에 나아가기로 결단한다. 이때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유대인들을 모아 3일동안 금식할 것을 명하면서 자신도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갈 것이라고 전한다. 이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고백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얼마든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지만, 모르드개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모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다 멸하실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함을 다시 깨닫는다 (눅12:4-5). 주님, 눈에 보이는 세상 권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게 함을 알아 이 믿음 갖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2022.06.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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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5 (수) 에3:1-15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억울해 한다. 어떻게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할까? 1 본문에서 우리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모르드개는 왕의 목숨을 구했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고, 하만은 어떤 업적도 없이 엄청난 대우를 받는다. 또한 페르시아에 살던 유대인은 모두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다. 살면서 이 같은 일이 왜 없을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는 것도 그렇지만, 기대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것 모두 경계해야 한다. 기대 이상의 대우는 자만에 빠지기 쉽고, 기대 이하의 대우는 스스로가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2 성도의 삶이 언제나 기쁨과 환희만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슬픔과 아픔도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최종적인 승리를 보장하시지만, 현재라는 현실에서 어려움도 허락하신다. 둘 사이의 긴장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계속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이땅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우리의 영적 정체성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빌3:20). 주님, 때로 고통과 박해를 당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굳센 믿음과 용기를 통해 날마다 이기는 복이 있게 하소서!   

2022.06.1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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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4 (화) 에2:12-23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진행되는 것은 유대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뤄 가시는 일이다. 우리가 역사의 흐름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그분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1 왕후 후보로 정해진 여인들은 열두 달 동안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 왕에게 간택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에스더는 내시 헤개가 일상적으로 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 왕의 눈에 들기 위해 특별히 애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에스더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과, 하나님이 이 모든 사건에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결과는 인위적으로 행한 그 어떤 것보다 탁월하다. 2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자 왕은 에스더가 마음에 들었고, 은총을 받아 왕후가 된다(17). 에스더가 왕의 총애를 받은 것은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직 에스더는 자신이 왜 왕후가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일을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신다. 3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 모르드개는 우연히 왕의 암살음모를 듣게 되어, 에스더를 통해 그 사실을 왕에게 알림으로 왕을 구하는 공을 세운다(21-22). 이런 중요한 공을 세웠는데 그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다. 그저 궁중 일기에 기록되는 것으로 끝났다. 때로 우리가 잊혀지거나 예상했던 인정을 못 받아도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통해 놀라운 반정을 펼치신다. 실수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주님,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며 변함없이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6.1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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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3 (월) 에2:1-11 하나님은 세상의 불의하고 악한 일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는 일이 페르시아에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다. 1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지 약3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하수에로왕의 신하들이 새로운 왕후를 들일 것을 조언한다. 당연히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왕에게 조언했던 자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황까지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신다. 페르시아에 있는 유다 백성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리라는 약속을 이루신다. 2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이 등장한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이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자손이고(5), 하만은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의 후손이다(에3:1). 베냐민 지파로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은 아각이 이끄는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각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사울의 자손과 아각의 자손이 또다시 대결하는 구도가 펼쳐진다. 하나님은 연약한 모르드개와 고아가 된 에스더를 준비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3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보낸 것도, 에스더가 왕후가 되고자 자원한 것도 아니다. 강제로 차출된 것이다. 에스더는 새로운 왕후로 간택받기 위해 모여든 후보들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궁녀를 관장하는 내시 헤개의 눈에 에스더가 들게 하시고, 호의를 베풀게 하셨다 (9).  하나님은 여러 정황을 통해 에스더를 왕후로 이미 준비시키신 것이다. 주님,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성도로 주의 뜻에 순종함으로 주의 역사에 기쁘게 동참할 수 있는 복을 오늘도 허락하옵소서!   

2022.6.1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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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1 (토) 에1:1-12 페르시아 아하수에로왕 때 일어난 극적인 사건을 기록한 에스더서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1 아하수에로왕은 페르시아와 메대의 모든 관료들을 위해 180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많은 역사가들은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단합과 전력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이 잔치 후에 그리스도와 전쟁을 치른다. 하나님은 제국의 왕을 통해서도 일하심을 보여 주신다. 때로 우리 눈에 불합리하게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2. 6개월간의 잔치가 끝나고, 왕이 당시 머물고 있던 수산성의 백성을 위해서 다시 7일간의 잔치를 벌인다. 왕궁의 후원에서 열린 이 잔치는 그야말로 페르시아의 사치를 가늠할 정도다. 잔치 마지막 날, 왕은 주흥이 일어나 왕후 와스디에게 잔치 자리에 나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왕후의 거절로 인해 잔치는 왕의 진노로 끝난다. 자기감정과 자기과시는 일을 쉽게 그르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 삶에서 자랑하고 싶은 외적인 화려함과 풍요로움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됨을 깨닫고 항상 주님께 시선을 두어야 한다. 주님, 세상이 주는 순간의 기쁨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소서!   

2022.6.1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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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9 음성큐티는 담임 목사님 출타중으로 쉽니다. 음성큐티 2022.6.10 (금) 고전16:13-24 여러 은사를 열거하면서도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바울은 사랑으로 서로 문안하고, 사랑으로 서로 순종하며, 사랑으로 서로 알아주라고 당부한다. 1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수많은 문제를 다뤘다. 이제 성도들이 강건하길 당부하면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한다(14). 강건함과 사랑이 균형을 이룰 때 주님의 일을 완성된다.  십자가 사건 역시 공의의 강함과 사랑이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 성도가 하는 모든 일에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2 스데바나는 바울이 세례를 베풀었던 가정이다(1:16). 그때부터 여일하게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다. 부르심과 직분을 귀하게 여기며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이렇게 귀하게 섬기는 자에게 성도들은 순종해야 하고, 이들의 수고를 알아줘야 한다고 권면한다. 바울이 있는 에베소까지 찾아와 고린도교회 소식을 전해 주어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즉 온 마음을 다해 교회와 지도자를 섬기는 자들이었다. 수고를 알아주는 자들이 있으면 섬길 때 더 보람을 느낀다. 3 고린도교회에게 다른 교회와 성도들의 문안을 바울은 전한다. 다른 교회들도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며 함께 기도로 동역하고 있음을 전한 것이다. 또한 성도들끼리도 거룩한 입맞춤(문안)으로 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볼 때, 바울은 성도들 간의 ‘교통’을 권면한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홀로 선 자들이 아니다. 서로 문안하며 다시 한 번 주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며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을 전한다(21-24). 교회는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이다. 주님,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가 사랑임을 믿고(골3:14) 먼저는 주님을 깊이 사랑하며, 서로를 향한 모든 일도 사랑으로 행하게 하소서!   

2022.6.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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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6 (월) 고전15:20-34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바라보며 믿는 일은 쉽지 않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이들이 부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주어졌다. 1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에게 부활을 약속하셨다(요11:25-26).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주님은 소망을 주셨다. 사망 권세를 물리치신 주님처럼 우리 역시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23). 사탄은 사망이란 것으로 인간을 다스리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죄 아래 있을 땐 사망의 두려움 때문에 사탄에게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사망도 끊어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롬8:38-39). 부활로 인해 예수님은 진정 만왕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시는 영원한 통치자 이심을 증명해 주신 것이다. 2 바울 당시에는 죽은 자를 대신해서 살아 있는 자들이 세례를 받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행동을 했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처럼 물속에 들어가 자신이 죄에 대해 죽었고, 물속에서 나오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예식이다. 죽음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유 또한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가능하다 (30-32). 부활을 소망하는 성도는 죄 가운데 있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가야 한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자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성도에게 합당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3-34). 주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동일한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성도들 속에서 지금도 활동하심을 믿고, 부활의 능력에 힘입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께 충성을 다하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2.6.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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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4 (토) 고전15:1-1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는 신앙은 언제나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다시 되새겨 준다. 1 많은 은사와 신비한 경험은 있었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믿음이 고린도교회는 약했다. 복음의 핵심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이란 사실이다(2-4). 복음의 핵심 진리는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여러 모양으로 전해져 온 내용이다. 그 구원의 은혜를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잊지 말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2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신앙에 가장 뿌리가 되는 진리임을 강조하면서, 비록 자신이 사도로 불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증인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고 주님은 명령하셨다. 우리는 복음의 산 증인으로 얼마나 충실하게 이 의무를 감당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11).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정신을 구현한다면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올 것이다. 주님,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복음의 진리에 머무르며,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6.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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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3 (금) 고전14:26-40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질서 없이 사용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결국 공동체에 유익이 아니라 해가 된다. 바울은 가장 필요한 때에 적절한 곳에, 질서 있게 은사가 사용될 때 교회 공동체가 더욱 아름답고 견고하게 세워감을 강조한다. 1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용되어야 한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바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영성에만 집중한다면 교회의 질서 뿐 아니라 개인의 영성도 무너질 것이다. 은사를 사용할 땐 서로 차례를 따라 질서 있게 해야 한다(27, 30-31). 한 성령께서 주신 은사이기에 공동체에 사용되는 은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하고 확증해야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 2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십시오’(34)란 권면은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말씀이다. 36절의 말씀을 감안할 때 당시 일부 여성도들이 무질서를 야기할 정도로 고린도교회 안에서 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난 상황으로 인해 권면한 말씀이지 여성을 비하하는 말씀은 아니다. 당시 교회의 일꾼 중에는 여신도들도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3 아마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 중에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만 중요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꾸짖으며(36) 자신이 지금 전하는 편지가 하나님의 말씀/명령이므로 겸손히 받아야 함을 가르친다.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무지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함을 강조한다. 은사는 결국 품위 있고 질서 있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주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이 다른 은사들과 조화를 이루어 적절하게 사용되어 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2022.6.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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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2 (목) 고전14:13-25 방언과 예언은 언어를 매체로 나타나는 은사들이다. 그런데 왜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의 은사를 통해 말하기를 권면할까? 1 방언 은사는 통역의 은사 없이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12-17). 방언 은사를 받은 성도가 자신이 방언한다는 것으로 만족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자신이 말하는 방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을 놓치게 될까?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으로 기도하기에 부족한 기도를 채운다는 유익이 본인에게 있을지는 몰라도 성경은 본인도 공동체에게도 유익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한다 (14-17). 그렇기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성도는 더 풍성한 영적 유익을 위해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2 방언의 은사를 분명 갖고 있었던 바울이었기에 통역 없는 방언이 지체들을 세워 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16-18). 기도와 찬양은 영과 이성이 함께 연합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가’ 여부다. 모든 은사는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23). 그러나 예언은 사람들의 죄를 드러나게 하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이 된다.  은사는 개인의 영성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가 아니기에 오직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각자 받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주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의 목적을 잘 살펴서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교회 공동체를 든든히 세우게 하소서!   

2022.6.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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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6.1 (수) 고전14:1-12 은사는 개인의 만족이 아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셨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본문 말씀을 통해 배워보자. 1 바울은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의 신앙에 유익 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켜 하나님께 인도하는 유익이 있는 예언의 은사를 추구하라고 권면한다. 은사의 목적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도구로 주어졌다. 이 목적을 위해 쓰여질 때 어떤 은사든 그 은사의 참된 목적이 드러난다. 주변을 돌아보며 우리가 부지런히 섬겨야 할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은사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해보자. 2 모든 은사는 지체를 ‘세우는’ 은사인데, 통역이 없는 방언은 ‘개인’을 세우지만, 예언은 ‘교회’를 세운다. 예언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참된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주변에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미래의 일들을 알려주고 신비한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거짓된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교회에 필요한 교훈을 전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성한 은사를 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통해 교회를 건강히 세우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주님, 교회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여 우리의 지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더욱 건강히 세워지게 하소서!   

2022.5.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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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31 (화) 고전13:8-13 바울은 신령한 은사나 중요 직분을 얻으려 하고, 자기 은사를 내세우며 자랑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참으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고 권면한다. 1 예언, 방언, 지식과 같은 은사들은 성경을 가르치거나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은사였기에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래도 주복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도 회중 앞에 나서서 이런 자가 되고 싶어서 자기 은사를 내세우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언, 방언, 지식도 지금 보기에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버려질 것에 불과하다(11). 이땅에서 교회를 세우는 목적을 위해 주신 것이고, 온전한 것인 주님의 재림과 그의 나라가 오기 전까지 유효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영원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함을 바울은 가르친다. 2 당시 고린도의 주요 생산품 중 하나가 청동거울이었다. 하지만 당시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가 만들어도 지금의 유리거울처럼 선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이 왜곡되는 부분도 많았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방언, 예언, 지식의 은사는  온전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필요치 않는 것이기에, 결국 영원한 것은 예언, 방언, 지식 같은 은사가 아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그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라 바울은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가 은사를 얻고자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서로 더욱 뜨겁게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마음에 은사나 직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태도는 없는지 돌아보며, 무엇보다 지체를 더 뜨겁게 사랑하는  데 관심과 연정을 쏟아야겠다. 주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전심으로 지체들을 사랑하며 주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5.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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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30 (월) 고전13:1-7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 사랑 없이 이뤄지는 모든 행위가 무의미함을 강조한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알 소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고린도교회는 서로 다른 은사로 인해 갈등이 있었다. 은사는 한 성령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12:4-7). 그래서 그 어떤 은사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바울은 강조했다. 바울이 강조하는 이 아가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없이 나름대로의 보람과 가치를 위한 희생은 사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한다. 2 보통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적인 요소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울이 가르치는 사랑의 정의는 신앙의 근본적인 요소요 목적이요, 전인적이기까지 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속성이다. 당연히 모든 죄의 요소와 상반되는 것이다. 시기, 자랑, 교만, 모례함, 성냄, 불의를 기뻐함과 같은 죄의 열매와는 반대 개념이다(갈5:19-21). 그러므로 사랑은 성도의 존재 목적이며 신앙생활의 근본 요소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거룩하고 경건한 삶으로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분명히 증명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니,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 풍성히 맺으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2.05.2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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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8 (토) 고전12:12-20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그 몸의 지체인 성도는 각자의 역할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사랑으로 서로 연합과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건강해진다. 1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서, 몸이 다양한 지체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와 직분과 역할을 가진 성도들이 있다.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성도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교회는 건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갈 수 있다. 2 각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지체가 다치거나 병이 들면 다른 지체들도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성도들 간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하고 협력함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몸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각 지체들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뤄야 하듯이 교회가 어떤 사역을 감당할 때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 자신의 사명에 충성할 뿐 아니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해야 한다 (히10:24). 3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 된 모든 성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순종함으로 조화롭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각자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교회는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게 된다. 사탄은 성도들을 공격해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사욕을 따르게 함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성령의 검으로 무장해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온전히 서도록 힘써야 한다. 주님,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으로 주의 교회를 더욱 온전히 세워 나가게 하소서!   

2022.05.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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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7 (금) 고전12:1-11 세상 속으로 보내졌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공동체’인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가 바로 성령의 은사다. 성령의 은사를 통해 모든 성도는 거룩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한다. 1 아마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를 예배 때 경쟁적으로 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무질서를 조장하게 되었다. 이에 바울은 우선 은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우상 종교에도 황홀경과 같은 현상(2)을 경계하면서, ‘예수를 주로 고백함’ 있는지 점검해 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온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예수님을 드러낸다. 고린도 성도들이 신비한 현상에 집중하지 않도록, 바울은 성령, 성자, 성부의 순서로 교회에 주어진 영적 선물을 설명하면서, 성삼위 하나님 모두 은사와 연관됨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유익을 주도록 은사를 주셨음을 가르친다. 2 성령의 은사는 각각의 지체가 교회 공동체에 유익을 주도록 다양한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셔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셨다면, 내게 주신 은사를 깨닫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유익을 위해 비교나 자랑이 아닌 섬김으로 은사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과 직분을 충실히 감당함으로 주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충성되이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주님,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각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소서!   

2022.05.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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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6 (목) 고전1:27-34 성도는 말씀의 원리를 따라 실천할 때 죄에 빠지는  실수를 피하게 된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할 때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가 영적으로 성숙해진다. 1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심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바로 말씀의 원리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 오히려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바울은 지적한다. 먼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기를 살피고 주의 몸을 분별하여 바다야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악한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순결한 믿음이다. 성도는 모든 일에 말씀의 원리대로 순종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바릉 원리와 방향을 정하고 열심을 내야 한다. 2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성찬에 참여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해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심으로 많은 자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징계는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돌이켜 멸망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채찍을 드시다는 의미다(히12:8). 우리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즉시 회개하고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 바른 태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맺는 수직적 관계가 회복되고 성도 간에 수평적 관계도 지키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 용서를 받아 의롭다 함을 얻어도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아 유혹에 넘어갈 때도 많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기도 한다. 그때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바른길로 돌이킬 때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엡4:13). 주님, 세상의 가치관과 관습을 따르지 말고 오직 말씀의 원리대로 행함으로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고 지키게 하소서!     

2022.05.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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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5 (수) 고전11:17-26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성도는 성찬식에 담겨 있는 의미를 깨닫고 삶에서 구현해야 한다. 1 바울 당시 주일 저녁에 각자 음식을 가지고 와서 애찬과 성찬을 성도들이 함께 했는데 (행20:7),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먼저 온 부자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빈손으로 늦게 올 수밖에 없는 노예나 노동자 교인들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가져온 음식을 머넞 먹고 마셨다는 데 있다. 가난한 성도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먼저 온 부자들은 식사를 마치고 포두주까지 마셔서 취하기까지 했고, 먹을 음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21). 예배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을 기억하지 않고, 형제를 배려하지 않은 모임은 예배도 성찬식도 아니며, 교회 공동체에 해가 된다(17).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공동체로서 주님의 새 계명을 따라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2 성찬은 우리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의식이기에 결코 웃고 떠들며 식사를 나눌 수 없다. 성찬이 단지 교제를 나누기 위한 도우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세상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이 교회 안에서 재현되는 시간이다. 우리가 성찬을 나눌 때 우리 안에서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 놀라운 신비를 절대로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온전한 성만찬을 행하며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주님,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가 받은 구원에 감사하고 그 구원의 은혜를 부지런히 전하게 하소서!   

2022.05.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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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4 (화) 고전11:2-16 형식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그 형식이 담고 있는 본질을 망각하기가 쉽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변함없는 본질과 다양한 형식을 잘 구분해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근거로 삼는다. 바울은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고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의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의 연합을 통해 생명을 창조하게 하셨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한 의존적 관계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원칙을 바울은 강조했다(엡5:22-25). 영적 질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함으로 복종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함을 교훈한다. 2 바울은 당시 관습을 존중해 교회에서 여자가 두건을 쓰지 않는 것을 수치스런 일이라고 권면했다. 당시 여성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머리칼을 보이는 것을 음란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회적인 관습을 따른 것이었다.  신앙의 본질과 형식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형식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은 하나이며 영원한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인해 분열하고 서로 정죄하는 일들이 생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신앙의 본질은 철저히 지키되, 다양한 형식을 인정하고 다른 지체를 포용함으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켜 나가자 (엡4:3). 주님,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수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