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2 NAZAZiM QT

음성큐티

2022.6.2 (목) 고전14:13-25
방언과 예언은 언어를 매체로 나타나는 은사들이다. 그런데 왜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의 은사를 통해 말하기를 권면할까?
1 방언 은사는 통역의 은사 없이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12-17). 방언 은사를 받은 성도가 자신이 방언한다는 것으로 만족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자신이 말하는 방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을 놓치게 될까?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으로 기도하기에 부족한 기도를 채운다는 유익이 본인에게 있을지는 몰라도 성경은 본인도 공동체에게도 유익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한다 (14-17). 그렇기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성도는 더 풍성한 영적 유익을 위해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2 방언의 은사를 분명 갖고 있었던 바울이었기에 통역 없는 방언이 지체들을 세워 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16-18). 기도와 찬양은 영과 이성이 함께 연합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가’ 여부다. 모든 은사는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23). 그러나 예언은 사람들의 죄를 드러나게 하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이 된다.  은사는 개인의 영성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가 아니기에 오직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각자 받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주께서 주신 성령의 은사의 목적을 잘 살펴서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교회 공동체를 든든히 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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