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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December, 2024

2024.12.27 (금) 계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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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7 (금) 계21:1-8 예수께서 최종 승리를 거두시고 대적들이 심판을 받고 제거된 후, 하나님이 새롭게 역사를 시작하시는 모습이 나타난다. 1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곧 교회가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려온다. 먼 옛날 에덴동산을 지으신 후 거기에 사람을 살게 하셨던 것이 재현된다(2; 창2:15). 일곱 교회에 보내신 편지에 묘사된 것처럼, 교회가 완전하지 않고 연약하며 죄와 허물도 가지고 있다(계2-3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음녀 바벨론’과 영적 전투를 벌이며 그 정체성을 지킴으로써 마지막 심판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되어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같이 아름다운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서 영광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영광스런 공동체 가운데 속한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2 보좌에서 큰 음성이 들려오는데, 마치 하나님이 광야에서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음으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3; 레26:12). 과거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교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더 이상 슬픔, 죽음, 애통, 곡함, 고통 등 처음 세상에 있던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4). 보좌에 앉으신 이가 보증하여 기록하게 하셨기에 의심할 수 없다(5). 지금 우리의 신앙 여정이 광야와 같은 길같이 보여도, 고통이 아니라 복과 은혜의 길임을 기억하자. 3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듯이 교회와도 함께하신다. 반석에서 물을 내셨듯, 하나님은 교회에게 생명수 (성령)를 넘치게 주신다 (6; 7:17; 22:1, 7; 요7:37-38).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셨듯이 교회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실 것이며(7a), 교회를 아들로 삼으실 것이다(7b).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반역하고, 광...

2024.12.25 (수) 눅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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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5 (수) 눅2:1-14 메리 크리스마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당시 로마 제국과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통치자들이 약속하던 거짓 평화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평화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신 것이 성탄이다. 1 로마의 1인 독재시대를 연 초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63-AD14)는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로마의 모든 속주의 왕들이 어떤 반란이나 저항을 꿈꾸지 못하게 했기에 사람들은 그가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가져다주었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그 평화를 위해 식민지들은 억압과 착취를 당해야 했다. 구레뇨(Publius Sulpicius Quirinius, BC51-AD21)는 시리아와 유대를 통치했던 총독으로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엄청난 세금을 징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시대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로마의 강압적 명령으로 인해 해산을 앞둔 임산부까지 이동해야 했고, 결국 마리아는 아이를 낳아 구유에 눕힐 수 밖에 없었다(5-7). 예수님은 통치자의 폭압 아래에서 실로 ‘머리 둘 곳 없는’(마8:20; 눅9:58) 모습으로 태어나셨다. 2 예수님은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구유에 누우셨지만, 하나님은 찬사를 보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10). 하나님은 이 놀라운 소식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지게 하셨다. 이처럼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권력자들의 평화가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치는 평화를 이루실 왕으로 오셨다. 세상 평화는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강한 권세와 권세 앞에 만민이 굴복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영광으로, 만민을 굴복시키는 평화가 아니라 만민에게 생명을 주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유는 낮은 자리에 임하신 주님의 모습을 따르고 닮기 위함이다. 주님,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참된 영광과 평화를 세상에 임하게 하신 주님의 탄생을 기뻐...

2024.12.24 (화) 눅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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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화) 눅1:39-56 하나님은 위기를 찬송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43:21). 따라서 찬송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1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소식은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뜻한다.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을가? 그러나 장작 마리아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당시 처녀로서 임신하고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마리아는 사촌이자 제사장의 아내인 엘리사벳을 찾았다(39). 천사가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마리아가 찾아갔을 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뤄지리라는 성령 충만한 엘리사벳의 찬송을 듣는다(41, 45). 그 순간 마라이의 근심의 구름이 걷히고 햇살 같은 주의 은혜만 가득해진다. 찬양은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예수께서 빛이시기 때문이다. 찬양하는 성도는 원망과 불평, 근심과 걱정의 마음을 내어쫓고 믿음으로 굳게 서는 자들이다. 2 성령으로 부른 찬송은 단순히 엘리사벳의 노래가 아니다. 두려워하던 마리아를 위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시키시는 성령의 음성이다. 이 찬송은 즉시 마리아의 영혼을 깨워 마리아가 감사의 찬양으로 화답하게 한다(46-48).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역사를 좁은 우리 삶에 담지 못해 불평한다. 우리 눈에 좋은 것들만을 담으려 하기 때문이다. 찬양을 통해 마리아는 자기 자신의 삶에 일어날 일들을 더 이상 염려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능력과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다(52-53).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세세 무궁하다. 위기가 찾아왔는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며 찬양하자. 주님, 엘리사벳의 찬양도 마리아의 찬양도 성령께서 흘러나오게 하셨으니, 성도 서로 간에 시와 찬미와 신...

2024.12.23 (월) 눅1: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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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월) 눅1:26-38 오늘 본문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조차 없었던 하늘의 큰 복을 누림을 보여준다. 성도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은혜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1 우리는 때로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주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실 때가 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를 잉태하고 낳을 것(31)이란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당혹스런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결론은 ‘말씀대로 내게 이뤄지이다’였다(38). 어떻게 마리아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고 부담스런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는 선물이다. 주권적 은혜를 마리아는 받았다(28). 이처럼 주의 은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랍니다. 그래서 때로 그 은혜가 두렵고 떨린다. 그러나 은혜를 주시는 분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담대할 수 있다(30). 말씀 앞에 두려워도 은혜를 더욱 사모하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담대하게 세워 줄 것이다. 2 고대 유대 결혼 풍습은 신랑이 신부 집에 ‘결혼지참금’을 보내 신부와 대게 13-15세쯤 약혼(정혼)을 하고 약 1년쯤 지나 결혼을 한다. 따라서 마리아는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의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에게 아들을 낳으리라 하시고, 그것이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한다. 결혼해서 요셉의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은혜는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해서 아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믿음의 영역으로 때로 은혜는 인도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 인간적인 차원에서 주의 역사를 이해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차원을 초월한 하나님의 차원에서 이뤄진다. 결국 은혜는 믿음으로만 해석될 수 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일하실 믿음의 영역을 ...

2024.12. 21 (토) 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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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21 (토) 19:11-21 결국 세상을 조종했던 사탄은 최종 심판을 당하고,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이기시고 영광을 얻으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 지금까지 보았던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다 포괄하는 강력한 장수가 나타난다. 일곱 금 등대 사이에 계셨던 예수님처럼 불꽃같은 눈을 갖고(12; 1:14), 첫째 인을 뗄 때 나타난 사람처럼 백마를 타고 싸우며(11; 6:2), 관을 쓰고(12; 12:1), 여인 이스라엘의 아들처럼 세상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로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15; 12:5; 14:19-20) 한 명의 장수가 나타난다. 이 장수는 피 뿌린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대제사장으로서 제물을 드림과 동시에 세마포 옷을 입은 군대들이 백마를 타고 이 장수를 따른다(14; 출28:39-40). 이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며(13;요1:요1:1; 요일1:1-3), 그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와 만국을 칠 것인데 이 또한 권능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이라, ‘만주의 주’라 쓰인 이름을 통해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분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신랑이 되실 분이다(계21:2). 2 이번에는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 있다(17). 이 천사의 선포는 예수님이 이끄시는 하늘의 군대와 원수들의 전쟁이 이미 끝났음을 알려 준다. 천사는 공중의 모든 새에게 대적들의 살을 먹으라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큰 잔치라고 선언한다. 군대가 전멸당한 이유는 음녀 로마가 의지했던 짐승과 땅의 임금들이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하늘의 군대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다가 결국 패하여 붙잡히고, 이적을 행하며 백성을 미혹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붙잡혀 유황불에 던져졌기 때문이다(19-20). 또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이 짐승의 권세를 따르던 자들을 전멸시켰다(15, 21). 예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누구든 상관없이 결국 모두 전멸당하게 ...

2024.12.20 (금) 계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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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0 (금) 계19:1-10 오늘 본문에서 요한계시록 마지막 찬송을 발견한다. 5장에 나왔던 어린양을 소개하는 찬양(5:9-14) 만큼이나 창송이 길고, 찬송에 참여하는 자들이 많다. 1 하늘의 많은 무리들이 큰 소리로 부르는 찬송은 할렐루야로 시작해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 형식이다. 시편에서 자주 발견하는 찬송 형태다 (1, 3; 시135; 146~150편). 하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그 연기가 꺼지지 않고 세세토록 올라가는 영원한 제사다(3). 참되시고 의롭고 영광스런 하나님께서 당을 더럽힌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을 기뻐하는 찬송을 그 제사에 참여한 성도들이 부른다. 보좌 주위의 24장로와 네 생물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화답하며 다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친다(4). 지금은 이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 이런 기쁨의 예배에 참여할 것을 소망한다. 2 성도들의 찬송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사가 이에 화답해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선포한다. 이에 성도들은 ‘많은 음성’, ‘많은 물소리’, ‘큰 천둥소리’와 같은 큰 소리로 다시 하나님을 찬양한다(6).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옳은 행실을 가진 자들이다. 그 누구도 슬퍼하는 자가 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여기서 본다. 모든 성도가 꿈꾸는 기쁨의 자리다. 모든 성도가 함께 모여 찬송하며 기쁨으로 충만한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3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올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며 이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언하는 천사에게 강력한 권위를 느꼈는지 요한이 그 앞에 경배하려 했다(9-10). 그러나 천사는 자신 역시 복음을 증언하는 형제들과 같은 종이라며,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는 예언의 영을 받은 자라고 선언한다.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은 모두 천사와 같은 권위를 가진 사역자들이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소망을 잃지 않고 설렘과 기대로 예수님을 찬양...

2024.12.19 (목) 계1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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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목) 계18:9-24 악인들이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살 때, 종종 성도들은 회의감을 느끼고 의구심을 갖는다. 그럴 때 성도는 하나님께 대적하던 로마의 영광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던가를 돌이켜봐야 한다. 주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이 삶은 정말 고귀한 것이다. 1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각 군왕들이 ‘견고한 성’이었던 로마가 ‘한 시간’에 심판당해 멸망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한다(9-10). 상인들이 로마의 멸망으로 인해 울고 애통할 것이라고 천사가 선포한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물건을 팔 수 없기 때문인 사실을 꼬집는다. 저들이 거래하던 온갖 사치스런 품목들, 심지어 사람들의 영혼들까지(13) 소유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라진다. 악인의 영화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2 상인과 뱃사람들 역시 로마가 ‘한시간에 망했다’는 말을 반복한다(10, 17, 19). 로마의 멸망을 보며 자신들의 재산 역시 사라졌다고 탄식하고 있다. 분명 로마의 문명은 찬란했고, 그 권세와 부유함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기억될 만큼 막강하긴 하다. 하지만 문명이 아무리 강하고 화려해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교만하여 자신을 신으로 세우는 나라는 한순간에 무너질 것에 불과하다. 3 로마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승리의 기쁜 소식이다(20). 왕들과 상인과 뱃사람들의 탄식 후, 한 힘센 천사가 나타나 큰 맷돌을 들어 던지며 바벨론, 곳 로마가 멸망할 것을 선포한다(21). 과거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렘51:62-64). 로마에는 모든 기쁨이 사라질 것이다. 빛도 없고, 밤에 떠들썩한 결혼식도 없다(22-23; 사23:8; 24:8; 렘25:10). 로마의 멸망은 저들이 선지자와 성도들을 박해하며 죽였기 때문이다 (24).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박해하고 치부하고 권세를 부렸던 자들을 절대 용서치 않으신다. 주님, 세상의 권세와 부유함을 부러워 말고, 악인들의 힘과 재산이 결코 영원하지 못하며,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2024.12.18 (수) 계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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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8 (수) 계18:1-8 인생은 육체를 위해 심어 썩어질 것을 거두는 삶과, 성령을 위해 심어 영생을 거두는 삶으로 나뉜다(갈6;8). 악인은 악을 통해 당장의 이득만을 보기 때문에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영적 원리를 생각지 못한다. 1 악은 사탄의 권세 아래 수행된다. 이 땅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갖고 사회 전반에서 기세를 드높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세상의 권세는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 무릎 꿇는다(1). 모든 악은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우상 숭배와 황제 숭배를 행하고 사치와 향락으로 하나님께 음행한 큰 성 바벨론(로마)은 이제 그가 심은 죄로 인해 멸망을 선고받는다(2-3). 이 경고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하나님이 거듭 주시는 회개의 기도도 다 놓쳐 버린다면, 그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죄악에 둔감하게 만들어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아니라면 과감히 그 방식을 포기하자. 2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악에서 빠져나오라고 명령하신다. 죄악에 참여해 재앙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신다(4).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그 누구든 그 자신의 악행대로 엄중한 심판을 받는다(6).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존재는 없다. 예상치 못한 날에 죽음의 재앙으로 갑작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음녀 로마는 자신이 애통함을 경험할 리 없다고 장담했지만, 하나님은 단번에 대제국 로마를 파멸시키사 사명과 애통과 흉년을 겪게 하셨다(7-8).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문명 역시 하나님의 법도 안에 거하지 않으면 결코 그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가들은 역사가 반복되는 현상을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한 분 하나님이 그분의 성품대로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은 결국 파멸할 수박에 없다. 주님, 지금도 같은 원칙으로 역...

2024.12.17 (화) 계1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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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7 (화) 계17::7-18 인간 역사를 보면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강력한 제국들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그 자리를 다른 나라가 차지하는 일들이 반복되어 왔다. 그 모든 과정의 뒤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는데, 사탄의 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 요한에게 천사는 여자와 짐승에 대한 비밀을 설명한다. 로마 제국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사탄의 세력이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은 사탄의 권세을 보고 놀라하며 숭배할 것이다(8). 그러나 세상의 강자들은 모두 사탄의 세력에 붙잡혀 잠깐 있다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2 천사는 ‘여덟째 왕’이 멸망하리라고 선언하는데(11), 황제 숭배를 강압적으로 추진하며 교회를 핍박했던 네로 황제로 표현되는 사탄의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들 모두 멸망으로 들어갈 자들이다. 열 뿔은 로마 제국의 각 지역을 나눠 다스리던 왕들을 상징한다(12). 이들은 모두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고 어린양과 더불어 싸운다(13-14). 그러나 저들은 어린양과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 곧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에게 패할 수밖에 없다. 3 천사는 음녀가 앉은 물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로마 제국임을 알려준다(15, 18). 그러나 로마 제국의 하수인들은 음녀 로마를 멸망시킬 것이다(16). 내분이 일어나 서로 싸우게 되어 결국 제국은 무너진다. 이 모든 것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셔서 세상을 다스리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할 때 허망하게 무너지게도 하셨다. 이처럼 세상의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손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주님, 세상의 모든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항상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편에서 진리로 사탄의 권세를 대적하며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

2024.12.16 (월) 계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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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6 (월) 계17:1-6 초대교회는 로마황제를 신으로 떠받들며 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 예배하기를 강요했던 자들로부터 많은 고난을 당해야 했다. 로마제국의 본질이 과연 뭘까? 1 로마는 원래 도시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신격화해 여신으로 만들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란 지중해를 내해로 사용하던 로마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존재임을 뜻한다. 천사는 땅의 ‘왕들’ 즉 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여러 속주의 통치자들이 모두 음행했고, 그들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도 음행했다고 고발한다(2). 음행이란 곧 황제 숭배와 음란한 종교의식을 뜻한다. 속국 지도자들은 로마에 잘 보이려고 경쟁적으로 황제 숭배를 시행했다. 영적 간음을 비롯한 모든 악행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이다. 2 광야는 고난의 땅이요, 과거로부터 하나님을 만나는 곳, 계시가 주어지는 공간이다. 요한이 거기서 교회가 겪는 고난의 의미를 파악하고, 고난의 근원인 로마의 본질을 보았다. 음녀 로마가 탄 붉은빛 짐승은 로마 제국의 배후 세력인 사탄을 상징하는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각종 우상과 더러운 문화가 있었다(3). 또 음녀 로마는 갖은 보석으로 꾸몄는데, 이는 부유하고 아름다웠던 그 도시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들과 더러운 음행이 가득했다(4). 우리는 세상의 악한 문화에 녹아들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3 당시 통상적으로 로마가 바벨론에 비유되었고(5a; 벧전5:13), 땅의 음녀와 가증한 것들의 어미, 즉 근원이었다. 요한은 음녀 로마가 교회를 박해해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이 피에 취한 모습을 보고 큰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우리는 초대교회 같은 박해를 경험하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은 온 세상에 가득 차 있고 세상은 우리에게 그것을 추종하라고 강요한다. 음란한 문화와 세상의 우상들을 거부한다면 필연적으로 그 안에서 영적 전투와 그로 인한 박해와 갈등이...

2024.12.14 (토) 계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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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16장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을 준비하는 서곡과 같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것 같은 본문을 보면서 영광스런 승리를 고대하는 동시에 최후통첩 같은 경고를 이 세상에 전해야 함을. 깨닫는다. 1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마쳐질 것이 예고된다(1). 마지막 재앙을 가리키는 것은 구원의 완성을 이끄는 재앙으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성도들이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노래의 내용은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그의 거룩한 성품에 대한 찬양이다(3-4).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간계가 결국 무너질 것을 아는 성도는 지금 이 땅에서부터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분의 의롭고 참된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자(3). 주님의 놀라운 일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4). 2 성도들의 찬양이 끝나자 하늘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렸다. 오래도록 지연된 심판, 마지막 일곱 대접 재앙이 시작됨을 그 성전으로부터 나온 천사들이 경고한다. 4-6장에서 나왔던 네 생물 중 하나가 나타나 그들에게 금 대접을 준다. 여기엔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억울하게 고난 당한 성도들의 수많은 신원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눈물로 기도했던 성도의 애끓는 소리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진노의 대접에 담아 내놓으신 것이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연기가 가득 찼다. 심판은 더 이상 지체되지 않는다. 단지 구원을 위해 지연되었을 뿐이다. 주님, 지연된 심판이 임하기 전에 마지막 경고를 주위에 전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와 공의와 정의를 통해 한 영혼이라도 더 주께 돌아오게 하는 증인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4.12.13 (금) 계14: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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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3 (금) 계14:14-20 시온산 위에 선 성도의 찬양과 세 천사의 전언을 통해 위로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신 주님은 이제 추수의 비유를 통해 마지막 날에 임할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하신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성도가 누릴 영원한 구원의 영광과 불신자에게 임할 영원한 형벌의 극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1 ‘마지막 추수’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하늘 위에서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낫을 들고 계신다. 주의 위엄과 권위, 구원이면서 동시에 심판자로서의 능력을 나타낸다. 본문의 곡식 추수는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요엘3:13을 반영한다. 땅의 곡식이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들의 죄악이 찼고,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 심판 때가 도래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때에 대한 약속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2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땅의 포도송이를 거둬달라고 요청한다(18). 포도송이는 악이 만연한 세상을 상징한다. 이 땅의 죄악이 극에 달해 최후의 심판이 내려질 것을 말한다. 천사가 낫을 휘둘러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고 짓밟으니 포도주 틀에서 피가 흘러나와 1,600스다디온(약 300 km)에 퍼진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국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무르익었을 때, 끝까지 패역한 상태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남김없이 부어질 것이다. 이 마지막 심판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돌이킬 자는 돌이키고, 전할 자는 전하며 크게 외쳐 경고하는 말세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 주님, 주님의 은혜를 받아 사망과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24.12.12 (목) 계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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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목) 계14:1-13 이단 교주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숫자는 바로 14만 4천이다. 이 숫자를 그릇된 교리를 만드는 데 사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했다. 14만 4천 명은 어린양에게 속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이들은 목자이신 주님께만 순종한다. 마치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가듯이, 이들은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귀 기울인다. 비록 주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 해도 그 말씀에 자기 생각과 의지를 굴복시킨다. 구원받은 성도들만 어린양을 노래하는데, 이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과 통치를 찬양할 특권을 성도들에게만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어린양께 속하지 않은 자들로 세상의 가치와 세속적 욕망으로 오염된 자들이다(4-5).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여 신앙을 떠나는 자들이 많다(마19:22; 딤후4:10). 어린양께 속한 성도라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 분만을 따르고, 평생 그분과 동행하는 인생길을 걷는 것이 합당하다. 2 바벨론이라 불리는 세상은 주의 날에 무너질 것이다. 그 순간을 분노와 고통 속에서 바라보며 심판의 경고에 두려워해야 할 자들이 있는가 하면 기뻐하며 환영할 이들이 있다. 짐승과 그 우상에 절하며 그 질서 속에서 쾌락과 욕망을 따르던 자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슬퍼하고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으로 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양께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난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로 기뻐할 것이다.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과 위로, 영광스런 승리와 얼마나 대조적인 결고인지 모른다. 성도들의 인내가 그래서 아름답고 감사하다(12). 성도는 모든 수고가 끝나고 완전한 안식을 얻을 날을 소망하며 현재의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주님, 현재의 수고가 힘겹고,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절망스러운 위기가 찾아온다 해도 결국 성도의 승리와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오늘을 견디고 이기는 어린양께 속한 자들이 되게 하소서...

2024.12.11 (수) 계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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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수) 계13:11-18 13장 후반부는 땅에서 올라온 한 짐승을 소개한다. 바다 짐승의 오른팔 격인 그 짐승은 그리스도 행세를 하지만 용처럼 거짓을 일삼는 거짓 선지자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성도는 말세에 깨어 거짓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1 바다 짐승의 하수인격인 이 짐승은 거짓 선지자 역할을 한다(11). 어린양처럼 보이지만 용(사탄)의 말을 한다. 거짓의 아비인 사탄은 스스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방하여, 바다 짐승을 부리고, 바다 짐승은 땅 짐승을 부린다. 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은 바다 짐승에게 힘을 부여받아 땅에 사는 자들이 바다 짐승을 경배하며 추종하도록 미혹하는 역하을 한다. 이적을 행하고, 미혹하며, 독재 권력을 위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한다. 또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또 우상숭배를 거절하는 자들을 처형하기까지 했다. 이는 말세가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의 유사 기적이 사람들을 혼미케 할 뿐 아니라, 세상 권력에 복종하도록 더욱 거세고 치밀하게 탄압하여 우상숭배를 거부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질 것인지를 보여 준다. 성도는 더욱 깨어 거짓을 말씀을 통해 분별해야 한다. 오직 영과 진리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더욱 힘쓰자. 2 불경한 삼위일체의 세 짐승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경제체제를 동원한다. 짐승을 추종하는 자들에게만 부여되는 표식을 통해서만 매매할 수 있게 해서 그 표식을 받지 않은 사람을 위협한다(16-17). 숫자를 통해 이름이라 단어를 표시하는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불리는 방법은 당시에 매우 흔했다. 이 방법대로 666 으로 표현될 수 있는 수많은 이름이 존재하지만 (예, 알레산더, 율리우스 카아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도미티아누스, 히틀러, 등등), 가장 유력한 것은 네로 카이사르다. 당시 로마 제국 전체에 네로 카이사르에 대한 게마트리아식 표식이 도처에 퍼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네로 카이사르를 히브리어로 음역해 숫자 값을...

2024.12.10 (화) 계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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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0 (화) 계13:1-10 요한은 13장에서 사탄이 부리는 두 짐승을 묘사한다. 오늘 본문은 그중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에 대해 묘사하는데, 그에게 어떤 권세가 있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모든 성도가 말세를 대비하도록 경고한다. 1 앞 장 마지막 절에서 교회와 싸우려 바다 모래 위에 섰던 용(사탄)은 기어이 그가 부리는 하수인 하나를 육지로 불러낸다. 그 짐승의 모습은 여러 머리와 뿔이 있는 용의 모습과도 같고(12:3), 다니엘 7장에 등장하는 네 짐승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다니엘서의 네 짐승이 고대 제국 바벨론, 메대-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을 상징했던 것처럼, 바다에서 올라온 이 짐승 역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한 제국, 혹은 그 모든 세력의 총합이다. 이 세력은 사탄으로부터 이 땅에 대한 지배권을 위임받아 매우 강력한 권세로 교회를 박해할 것이다(2). ‘상하여 죽게 된’ 머리는,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적그리스도를 칭한다. 이 짐승은 거짓으로 온 땅을 속여 숭배를 받고 사탄으로부터 받은 권세를 떨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다(3-4). 사탄은 거짓의 아버지요(요8:44), 종종 영광스런 존재인 것처럼 자신을 가장한다(고후11:14). 그런 짐승의 모습에 속지 말자. 아무리 강력하고 위대해 보여도 하나님을 대신할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말세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구하며 진리에 매진해야 한다. 2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과장된 말, 신성모독적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의 백성을 비방할 것이다(5). 그러나 이 권세는 42달이란 제한이 있어, 주의 백성을 향한 박해가 영원하진 않다. 이 짐승은 성도와 싸워 이기고, 온 세상을 정복 통치할 것이다(7). 그러나 8절 말씀을 뒤집으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인내와 굳건한 믿음이 필요한 환난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10).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10). 이 말씀은 선언인 동시에 명령이...

2024.12.9 (월) 계 1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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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9 (월) 계 12:7-17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를 공격한다.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참소하며 거짓과 간계로 성도의 삶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나 사탄은 분명 패한 존재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오늘의 삶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1 승리의 비결은 어린양의 피와 말씀이다. 사탄이란 이름은 ‘참소하는 자’란 뜻이다. 누군가의 죄를 재판장에게 고소하는 행위를 끊임이 한다는 의미다. 우리를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뜨리며 좌절시키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다. 그러나 어린양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을 사탄은 정죄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군사에게 막강한 무기가 있다면 승리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그분이 주시는 권능을 통해 승리할 수 있다. 또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을 때 참과 거짓을,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 2 사람들에게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돈과 명예, 권력을 중시하며 사는 자들도 그런 것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한 자들이 있었다. 스데반을 비롯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성도가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사탄은 성도들을 괴롭히고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애를 쓴다. 온갖 간계를 꾸며 교회를 공격한다. 이런 사탄의 위협을 이기는 길은 우리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정해진 기간 동안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이다(14). 성도는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서 마지막 떼 박해가 더해지고 핍박이 강해질수록 우리에게 남겨진 예수님의 증거를 더 욱 붙들어야 한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완전히 승리할 것을 믿으며, 영적 싸움을 충성스럽게 임할 수 있도록 더 큰 은혜를 ...

2024.11.30 (토) 계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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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토) 계6:1-17 요한은 어린양이 책의 인봉을 떼는 것과 더불어 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먼저 보여 주고, 하늘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설명해 준다. 1 요한계시록의 재앙 가운데 먼저 일곱 인의 재앙이 시작된다. 첫째 인의 재앙에 나오는 흰말이나 활은 모두 전쟁을 의미한다(2). 둘째 인을 떼자 붉은 말이 나온다. 붉은 말을 탄 자는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큰 칼로 전쟁과 폭력적인 죽음의 심판을 행한다(4). 세째 인을 떼자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말이 나오는데, 이는 저울의 이미지와 함께 기근을 상징한다(5-6). 넷째 인을 떼자 질병과 죽음을 상징하는 푸르스름한 말이 나와 전쟁과 기근으로 많은 이가 죽음을 맞이할 것을 전한다. 그러나 ¼이라는 제한된 권세만 행사할 것을 분명히 한다(8).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고난과 죽음의 심판이 계속된다. 평안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심어 놓으면, 고난의 때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2 어린양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순교자의 영혼들이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 악을 물리쳐 주시기를 탄원한다(9-10).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국 상급의 흰 옷을 주시고, 정한 때가 이르기 전까지 고난을 견디며 기다릴 것을 말씀하신다(11). 여섯째 인을 떼시자 재앙의 범위가 우주까지 확장된다(13). 이는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을 주어 모두 숨게 만든다(15).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린양의 진노에서 어느 누구도 살아날 수 없다고 탄식한다(15-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요3:17). 주님이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셔서 우리를 살리셨듯이 우리도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함으로 죽음의 심판에 놓인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주의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것을 기억하고(살전5: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 증인의 길을 가게 하소서!

2024.11.29 (금) 계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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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9 (금) 계5:8-14 마지막 때를 살아가며 모든 성도가 더욱 열심을 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도와 찬양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가 더욱 기도와 찬양에 열심을 내야 할 근거를 오늘 본문에서 다시 발견한다. 1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책을 받으시자 하나님의 권세가 어린양께 이전되었다. 그러자 보좌 주변의 4생물과 24장로가 모두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함으로써 어린양이 하나님과 동등한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함을 드러낸다(8a). 각기 하프와 향이 가득 담긴 금대접을 들고 왔는데, 거기에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있다고 설명한다(8b).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책을 취해 인들을 뗄 권세를 가지게 되셨다(9).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발휘할 자들로 삼으셨다. 이는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자 머리시라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2 4생물과 24장로들의 경배 후에 수많은 천사들이 찬양하며 등장한다(11). 거대한 천사의 무리는 어린양이야말로 능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크게 외친다. 여기서 우리는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란 데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으로 오셨기에 이런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어린양께 바치는 찬양은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와 그 가운데’ 있는 즉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께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있기를’ 찬양한다(13). 이에 화답하여 성소의 4생물은 ‘아멘’을 외치고 24장로는 엎드려 경배한다. 하늘의 성소와 천사들과 세상의 모든 만물이 어우러지는 온 우주적 예배가 오직 한 분, 어린양께 드려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눈으로 ...

2024.11.28 (목) 계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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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8 (목) 계5:1-7 계시록 제2막(5:1-7:12)의 시작이 인상적이다. 앞에서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일곱 금 등대를 붙잡고 계신 분으로 계시되었는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은 앞뒤로 기록되고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이기에 책을 펴고 감히 인을 뗄 수 있는 존재가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2-3). 요한이 크게 운 것은 인간이 처한 절망적 상태 때문이었을 것이다(4). 그 책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인간은 삶의 목적이나 이유, 세상의 참된 가치를 모른 채, 되는 대로 살아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요한이 절망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 책을 펴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인생의 참된 의미나 가치와는 아무 상관 없이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2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승리했으니 그 책과 일곱 인을 열 것이란 희소식을 전해 준다(5). 이 분은 다윗보다 먼저 계신, 근원이신 분임을 나타낸다 (사11;11; 마22:45). 이때 요한은 ‘사자’가 아니라 어린양을 보았다. 그것도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즉 제물로 사용된 어린양이었다(6a).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 곧 하나님의 일곱 영이 있었다(6b). 창주주의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책을 받으셨다.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에 그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권세를 가지신 어린양,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행4:12).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심판하실 권세를 가지신 영원한 왕이시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시며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주님을 따라 우리도 낮은 곳을 행해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