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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May, 2025

2025.4.26 (토) 민15: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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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6 (토) 민15:22-31  범죄자를 재판할 때 죄질이 나쁘거나, 또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등으로 구분한다. 하나님의 법에서도 마찬가지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는가 하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본문은 죄 용서의 기준을 제시한다.  1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 속죄제를 드리는 규정(22-24)은 레위기4장에도 이미 주어져 있다. 부지중에 지은 죄는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다. 죄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행한 것 뿐 아니라, 순간적 욕심이나 우발적인 분노 등으로 행한 죄와 범죄 이후에 곧 후회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반역을 했어도 회개하고 열 명의 정탐꾼인 족장들을 위해 숫염소로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이 그 죄를 속죄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을 수도 있었다(24-28; 레4:14, 22-23, 27-28). 이처럼 하나님은 이미 백성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기에 언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즉시 용서하시고 그 죄를 다 잊으시는 분이시다(사43:25).  2 그러나 ‘고의로’(히: ‘높이 든 손으로) 죄를 범한 자에게는 용서가 없다(30). 고의로 죄를 범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계명을 깨뜨린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비방한 것이 된다. 하나님을 원망할 때는 참고 계셨다가 그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지려 하자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14:10).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오히려 돌을 든 손으로, 즉 ‘높이 든 손으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죽이려 했기에 용서하지 않으신 것이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낸 38년의 기간은 가나안 땅을 향한 소망을 확고하게 하는 시간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머물 자격이 없는 자들이 솎아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더 확고하게 품고 살아가는 알곡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  주님, 회개하고 용서...

2025.4.25 (금) 민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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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5 (금) 민15:1-21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으로 이스라엘이 남은 38년을 광야에서 헤매야 하는 징계를 주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은혜를 주셔서 광야에서의 동행과 후대에게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물려주게 하셨다.  1 이스라엘이 비록 지금은 광야에 머물고 있었지만 장차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후에 드릴 제사에 대한 지침을 하나님은 주신다(1-3). 밀가루, 올리브기름, 포도주, 어린양, 숫양, 수송아지에 관한 규정에 주목해 보자(4-10). 광야 생활이 길어질수록 이런 품목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하나님은 창자 약속의 땅에서 소제물에 기름을 섞고 번제에 포도주를 부을 날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해도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의 삶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거주하는 타국인이나 모두 같은 규례를 따라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신다(13-14). 또 하나님은 이 율례가 대대로 영원하다고 선포하신다(15).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였지만, 본래는 유다 지파 혈통이 아닌 그나스 사람이었다(32:12).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분은 혈통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부여됨을 깨달아야 한다.  3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지킨 규례는(17-18), 타작할  때 하나님께 거제를 드리고 (19-20), 처음 익은 곡식 가루로 만든 빵으로 거제를(21) 드려야 한다. 거제는 화목제를 드릴 때 그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하나님 앞에서 들어 올려 제사장의 몫으로 삼게 하는 제사댜(레7:32). 타작할 때도 그중 일부를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한 것이다. 광야에 머물고 있지만,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풍요를 누릴 날을 고대하며 이 땅에서 신실하게 살아가자.  주님, 때로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아도...

2025.4.24 (목) 민14: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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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4 (목) 민14:39-45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는 심판 선고를 받는다. 이 선고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 주는 모습으로 그들이 가진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1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백성은 크게 슬퍼한다(39; 출33:4). 그런데 어이없게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면서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가나안 땅으로 올라감’이 곧 회개요 순종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40; 출34:4). 하지만 진정한 회개와 순종은 오히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25).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순종할 줄도 모르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없다.  2 백성들의 모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며, 그들의 시도가 분명 실패할 것을 모세가 경고한다(41). 하나님이 그들과 지금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42a, 43b).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이 순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중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불신했고 불순종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당연히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패하고 말 것이다(42-42; 13:31-33).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지지하시는가?  3 모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지만,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하시지 않았다는 뜻이다(440.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절대 아말렉과 가나안을 이길 수 없었던 이스라엘은 결국 호르마까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45). 가나안 남쪽관문 같은 곳인 호르마가 막혔으니 이제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40년 중에서 38년을 광야에서 앞으로 보내야 한다(신2;14).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

2025.4. 23 (수) 민14: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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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 23 (수) 민14:26-38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해 내리신 형벌은 ‘이스라엘이 내뱉은 말’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되었다. 다만 그들의 악한 말들을 모두 실현시키지는 않으셨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원망에 대한 형벌은 바로 그들의 말대로 하시겠다는 것이다(2, 28-29a). 20세 이상 계수된 자들 중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29b-30; 1:46). 하나님의 군대가 아닌 군중의 성향대로, 자유민이 아니라 노예의 모습을 갈망하면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2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벌하지 않으시고, 아비의 잘못을 아들에게 갚지 않은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원망한 당대의 사람들만 광야에서 죽을 것이다 (33; 창18:25; 신24:16). 다만 아비의 죄를 자녀에게 삼사 대까지 갚겠다고 하신 말씀대로 그 자녀들은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고 그 아버지 세대가 모두 죽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다(18:33). 이런 조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세심하게 지키시는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분명 죄를 벌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다.  3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날수를 연수로 환산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를 떠돌게 하신다. 하나님을 멸시한 결과가 어떠한가를 이 기간에 철저히 깨닫게 될 것이다(34). 또 그 땅을 악평한 열 명의 정탐꾼은 반란의 주동자들이었기에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36-37). 하나님으로부터 훈계와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속히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 받은 하나님의 군대다. 군대는 지휘관의 명령에 적대 복종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용사들로 살아가자.  우리에게 하...

2025.4.22 (화) 민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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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2 (화) 민14:11-25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했던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반역했고, 모세는 시내산에서처럼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린다(출32-34; 민13-14). 죄의 뿌리는 깊지만, 주님의 마음은 그보다 더 넓음을 말씀을 통해 발견한다.  1 하나님은 ‘어느 때까지’라는 질문을 반복하시며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책망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멸하고 모세를 시조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시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숭배했을 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11-12; 출32:10). 그러면서 모세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하셨던 말씀을 인용하며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길 간구한다(17-19; 출34:6-7). 모세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광대하신 인자하심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그분 앞에 설 수 없다.  2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 주신다. 그러나 형량을 감해 주신 것이지, 없던 일로 되지 않음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고서도 열번이나(3; 출14:11; 15:24; 16:3, 20, 27; 17:3; 32:4; 민11:1, 4) 당신을 시험하고 당신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신다. 애굽에 임한 열 가지 재앙을 보고서도 광야에서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한 자들은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고 평가하신 갈렙(과 여호수아)을 그가 보았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선언하신다(24; 창18:32). 갈렙과 같이 다른 마음, 다른 영을 가지고 다르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게 마련이다.  주님, 다른 사람들이 불평하며 불의와 타협할 때, 갈렙처럼 여호와께 소망을 품고 의로운 길을 선택하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5.4.21 (월) 민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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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1 (월) 민14:1-10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하고 출애굽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계속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말해 왔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서는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과 자기 생각을 따르는 사람의 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1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극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소리 높여 부르짖고, 밤새도록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1-2).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함을 발견한다. ‘차라리 애굽 땅에서…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란 불평은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보다 노예로 살다, 또는 광야에서 헤매다가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미련한 판단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3b).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믿지 않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한다(4, 10).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만 무가치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2 모세와 아론,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모습이 온 회중의 불신앙의 태도와 대조되며 부각된다. 소리 높여 울고 원망하는 모습과 달리 이들은 엎드리는 모습을 보인다(5). 하나님을 의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고 회중에게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강변했다(6).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을 심히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땅에 살게 하시는 것임을 밝혔다(7-8).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9a).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 기동으로, 매일 만나로 먹이셨고, 광야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물을 공급하셨고, 메추라기를 땅에 쌓이게 하셨다(...

2025.4.19 (토) 막15: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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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9 (토) 막15:39-47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들을 목격했지만,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영광을 깨달은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시고, 부활의 영광을 선포하실 준비를 하셨다.  1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최초로 깨달은 자는 놀랍게도 로마 백부장이다. 유대인도 아닌 이탈리아 점령군 장교가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유대인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고, 이후 복음이 로마 전역의 이방인들에게 퍼져 나갈 것을 미리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사건과, 기대하지 않았던 자들을 통해 일하신다. 절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얼마든지 불러 회심시키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2 두 번째 사람들은 갈릴리 시절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겨왔던 여인들이었다(41). 12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랐고, 멀리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았다(40). 막달라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까지 따라갔다(47; 16;1). 주님은 유명한 사람들만 사용하신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다 할지라도, 주의 손에 들리면 그 나라를 위해 얼마든지 귀한 일을 할 수 있다.  3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빌라도에게 넘긴 산헤드린 공위원들 중에도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43). 유월절 준비일이던 안식일 전날, 모든 유대인들이 부정한 대상과 접촉하지 않으려 할 그때, 빌라도에게 가서 가장 부정하게 여겨졌던 시신을 받아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안치한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이다(42, 44-46). 물론 그의 종들이 실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분명 공회의 결정이 ...

2025.4.18 (금) 막15: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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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8 (금) 막15:25-38  인간의 눈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불쌍하고 비참한 패배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영광의 자리다. 십자가에서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셨기 때문이다.  1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과정 중에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옷을 빼앗기심으로 시편의 예언을 성취하셨다(24b; 시22:17-18). 유대인들의 아침 기도 시간이던 제 삼시(9am)에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 되셨다(25b). 빌라도가 모욕하며 쓴 ‘유대인의 왕’이란 팻말은 도리어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했다(26). 사람들의 눈에는 철저히 실패한 모습으로 보인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아무 차질 없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선포되셨다. 좌인들을 위해 모든 치욕과 고통을 받아들이신 주님은 영원히 온 세상만물의 찬송을 받아 마땅하시다.  2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는’ 사역을 감당하셨으며(29), 십자가에서 내려와 무덤으로 향하심으로 온 세상의 모든 죄악을 대속하셨다(30). 도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조롱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버리심으로써 다른 모든 이를 구원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31). 양쪽에 달린 강도들로부터도 욕을 받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받은 고독한 존재가 되셨지만(32), 예수님은 그로 인해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셨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찬양할 뿐이다  3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인 제 삼시, 육시, 구시(9am, 12pm, 3pm)에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사하는 제물이 되셨다. 그런데 정오부터 3pm까지, 하루 중 가장 밝을 대에 온 땅에 어둠이 임했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예수님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33-34; 시22:1). 그때 온 땅을 향한 하나님의 쏟아지는 진노를, 예수님은 십자...

2025.4.17 (목) 막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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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7 (목) 막15;1-15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사역은 죄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본문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대중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실망 때문에 예수님을 고난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을 보여준다. 정말 아무 짝에 쓸데 없던 인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1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밤에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앞으로 끌려가셨다가 (마26:57; 요18:19-24). 이후 빌라도 앞으로 끌려 가셨다가(요18:29), 헤롯에게 보내지고 (눅23:7), 다시 빌라도에게로 와서 (눅23:11-12) 최종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며 재판을 받으신 이유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14:55). 유대인들이 자율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었기에 예수님은 로마 법정에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게 되셨다.  2  유대 백성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빌라도가 무죄한 예수님을 석방하려 하자 대제사장과 백성이 들고 일어났다. 물론 대제사장들이 백성을 선동한 것이다. 폭력을 일삼았던 바라바를 예수님 대신 연호했다(11; 마27;16). 백성의 기세에 눌린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염려해 결국 그들을 만족시키고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준다.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는 우리를 미혹해 만족을 취하라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님,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주의 생명을 통한 그 고귀한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2025.4.16 (수) 막14: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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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6 (수) 막14:32-42  많은 성도가 기도를 하긴 하지만, 그 기도가 잘 응답을 받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우리 기도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앞으로 하나님께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오늘 본문을 묵상해보자.  1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은 무감각하게 자고 있다(40). 우리도 ‘마음은 간절한데 육신이 약하다’며 핑계 대기도 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 사역을 앞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해야 할 때는 피곤을 이기지 못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29). 그런데 시험에 들지 않게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는 없었다(37). 기도하지 못하여 연약해지면 사탄이 그 틈을 파고든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피곤한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 일 때문이라기 보단, 돈 버는 일과 온갖 세상일에 바쁘고 정신을 쏟기 때문이다. 육신이 연약함은 우리의 약함이라기 보다 오히려 강함 때문이다. 내 지식과 경험으로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내 중심적 기도, 세속적 가치관을 따르는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 일에 쓰임 받길 소원하는 기도를 드리자.  2 우리는 고난 중 기도할 때 ‘이 고난이 사라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고난도 견디게 해 주시길 기도했다(36). 예수님의 기도 습관에서 우리 앞에 놓인 고난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비결을 찾는다(눅22:39). 주님은 늘 하루의 첫 시간을 아버지와 교제하는 시간으로 보내셨다(막1:35). 하나님과의 교제의 습관을 통해 당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뤄지길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는 기도, 세상의 압박에서 벗어나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기도, 예수님의 기도 모범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전적 신...

2025.4.15 (화) 막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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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5 (화) 막14:12-26  유월절 식사 준비 과정, 유다의 배신 예고, 떡과 잔에 관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하시며 차질 없이 진행해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도록 지시하시는데, 그 과정이 평범하지가 않다. 성 안에서 물동이를 자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따라가면 준비된 큰 방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모든 것을 아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께만 가능한 일이다(13-15). 제자들은 순종하며 주의 말씀대로 유월절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이 당의 마지막 유월절을 완벽히 준비하심으로, 곧 다가올 고난과 죽음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뤄질 것을 암시하신다.  2 유월절 식사 도중에 예수님이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당신을 팔 것이라고 예고하신다(18). 제자들이 불안해 하자 예수님은 더 구체적으로 암시하신다(19-20). 유다에게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겠지만’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이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계획이 이며 섭리이기에 그 뜻에 기꺼이 순종하실 것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유다에 대해서는 큰 화를 당할 것이기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신다.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우린 절대 외면치 말고 즉시 돌이킬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구원의 기쁨이 히복된다.  3 예수님은 떡을 떼어 축복하신 후 ‘내 몸이다’(22), 또 잔을 주시면 ‘내 피 곧 언약의 피’(24)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릴 위해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셨고, 피를 흘리셨고, 유월절 어린양처럼, 우릴 대신해 죽으셨다. 우릴 향한 주의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온 마음과 영혼으로 깨닫고 누리고 감격하자.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고 생명을 얻었음을 날마다 기억하며 그 은혜로 살아가자.  처음부터 마지...

2025.4.14 (월) 막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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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4 (월) 막12:1-12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독생자까지 죽인 패역한 이스라엘을 고발하시고, 그런 자들을 위해 아들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 주신다.  1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긴 주인의 모습은 이스라엘에게 좋은 열매를 기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상징한다(사5:1-7). 그런데 이 농부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한 자들이었다. 자신의 소출을 정산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을 잡아 때리고 상처를 입혀 능욕하길 반복한다. 마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계속 박해했던 이스라엘처럼 (왕상19:10; 렘7:25-26). 이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본질상 죄인이었던 우리의 옛모습이었다 (엡2:3).  2 주인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지만 (6; 요3:16),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극단적인 반역까지 저지른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을 예고하며, 인간의 죄악과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수님은 주인이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 하시며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 아니, 사랑으로 호소하신다. 보내신 사랑, 견디신 사랑, 죽기까지 순종하신 사랑, 그럼에도 기다리시는 그 사랑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3.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지만 가장 가치 있는 머릿돌이 되실 것을 선포하신다 (10-11; 시118:22). 악한 종들에게 버림받고 죽임 당하는 그 아들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바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만 부활하셔서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과 완악함을 종국에는 심판하신다(9). 그러나 동시에 구원을 이루신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사신 예수님처럼, 우리에게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주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늘 기억하자.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

2025.4.12 (토) 민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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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2 (토) 민13: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가나안 땅 정복을 주저했다. 하나님은 이들의 두려움을 헤아리시고 가나안 땅 정탐을 허락하셨다.   1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정탐꾼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백성에게 증언하게 해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것을 기대하셨다. 지파별로 한 명씩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다. 지파의 리더들이었기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동안 모든 상황을 전략적으로 잘 분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며 책임 있게 또 역량 있게 앞서서 살피는 자들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   2 모세는 정탐의 경로와 대상과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했다(17-20). 땅의 지형, 거주민의 강약, 성읍 상태, 농산물의 풍요 여부는 전략적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담대하라’고 격려한 뒤, 그 땅의 실과를 증거물로 가져올 것을 명한다. 여호와의 약속과 명령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준비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다. 믿음은 두려움을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마음을 다잡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맡겨진 임무를 담대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한다.  3 12 정탐꾼이 땅을 정탐하고 정해진 경로를 따라 충실히 정찰의 임무를 수행하고, 한 골짜기에 이르러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와 다른 열매들을 정탐의 증거로 가지고 온다. 이 증거물은 이후 전혀 다른 두 가지 반응을 이끌어 낸다. 증거 자체가 아니라, 증거에 대한 반응이 믿음에서 왔는지, 불신에서 왔는지가 우리는 살펴보아야 한다. 믿음의 증거는 격려가 되지만, 증거가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증거를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 주께서 주신 약속을 이루는 과정에서 믿음으로 제게 맡겨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

2025.4.11 (금) 민1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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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1 (금) 민12:9-16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던 미리암이 나병이 걸리는 징벌을 받습니다. 아론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죄를 뉘우치며 미리암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자, 모세가 중보합니다. 어리석은 반역에 대한 징계와 회복 과정은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모두 보여 줍니다.  1 모세를 향한 질투와 비방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하나님의 진로를 자초하는 결과는 낳았다(9).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는 징계를 받는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공동체에 큰 혼란과 위협이 된다. 이 사건에서 나병은 영적 현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망적 상황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마8:1-4; 눅17:11-19).  2 아론은 나병이 걸린 미리암을 보고 ‘자신들의 어리석은 죄를 회개하며 미리암의 치유를 위해 간청해 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했다(11). 미리암이 주도한 반란 사건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회개했다. 용서와 구원은 죄를 깨닫고 인정한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다.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는다(잠28:13). 하나님은 애통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기 때문이다(시51:17). 중보는 다른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다.  3 아론의 회개와 모세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은 회복의 길을 얼어 주신다. 일정 기간 동안 미라암을 공동체에서 격리하게 하신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수치심과 책임이 따름을 알려 주신 것이다. 용서받았다고 죄로 인한 영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리암이 격리된 7일간 온 이스라엘은 행진을 멈추었다. 예상치 못한 지연이었지만 공동체는 불평하지 않고 미리암을 기다렸다. 죄는 하나님 나라의 진보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죄를 멀리함으로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거룩하게 지키는데 힘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