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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5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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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링크   2021.9.25 (토) 딤전3:14-4:5  조직이 세워졌다고 해서 무너진 교회가 금방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사역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목회할 때 무엇보다 경건 훈련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1 바울은 감독(장로)와 집사를 세우는 기준을 제시해 교회의 조직을 갖추는 가이드를 준 다음, 경건 훈련에 대한 가르침을 설명한다.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선 경건의 능력으로 채워져야 하기 때문이다(15). 직분과 조직만 갖추었을 뿐, 지체가 경건한 생활을 지속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집단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경건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과 복음 전파를 통한 영광이다(16). 모든 성도가 경건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2 경건의 반대는 신비적 열광주의(1)나, 위선(2), 금욕주의와 율법주의(3)다. 어떤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며 자신을 주목하게 하거나 성경과 기도생활을 자랑하면서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면서, 실제로 각종 악을 행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다. 믿음의 공동체는 이런 사람들을 잘 분별하고 경계하며, 참된 경건을 위해 힘써야 한다.  3 거짓 경건은 예배당 안에서만,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만 경건하다. 그러나 참된 경건은 특정한 시간, 장소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4-5). 경건의 훈련이란 말씀과 기도의 영향력을 우리 삶 전반에 퍼뜨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경건이다.  주님, 매일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말고 꾸준히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2021.09.24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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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링크   2021.9.24 (금) 딤전3:1-13  거짓 선생들에 의해 큰 혼란을 겪고 나면 조직이 무너지기가 쉽다. 바울은 새롭게 교회를 조직하도록 가르치면서 어떤 사람이 리더십으로 세워져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고 있다.  1 당시 ‘감독’의 역할은 상당한 희생을 각고해야 했기에 누군가를 억지로 세울 수는 더더욱 없었다. 바울이 제시하는 감독의 기준을 보면 교회의 리더십으로 보기엔 너무 평범해 보인다 (2-5). 성경 지식이나, 어떤 리더십이나, 사람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인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발견한다. 초신자를 피하고 또한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라고 권면한다(6-7). 이처럼 교회 리더십은 어떤 특별한 능력 보다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칭찬받을 만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2 초대교회 시대의 집사는 기본적으로 교회 내 활동보다 외부 활동이 더 많았을 것이다. 구제 사역 역시 교회에 큰 사역이었을텐데, 이런 중요한 사역을 위해 세운 사람들이 집사였다. 집사의 자격 역시 감독의 자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뢰성이 깊어야 하고(8-9), 재정적인 면에 있어 정직해야 했다. 교회에서 직분을 잘 감당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다(13). 직분을 받아 섬기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성취감보다는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 그렇기에 인격적으로 잘 갖춰진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 교회는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축복해 줘야 한다.  주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김에 있어 먼저 주님을 닮은 인격을 잘 갖추어 모든 지체들을 아름답게 섬기게 하소서!

2021.09.23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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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링크   2021.9.23 (목) 딤전2:1-15  에베소에는 헬라의 우상들로 가득한 곳이었기에, 세속적인 가치가 교회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에베소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디모데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바울은 가르친다.  1 먼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1-2). 헬라 문화를 두둔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달리 바울은 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해 가르치면서 특별히 예수님이 ‘사람’이였음을 강조했다(5). 바울이 그랬듯이 디모데 역시 헬라 철학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당히 섞어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학문이나 가치관과 복음을 뒤섞는 가르침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2 당시 경건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배척하고 배격하는 자들이 많았고, 에베소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예루살렘 가서 기도하고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은 ‘분노와 다툼을 피하라’고 하면서, 성전이 아니라도 ‘각 곳에서’ 기도하라고 가르친다(8). 여성에게는 헬라의 외모 지상주의 풍조를 버리고 선한 행실을 보이라고 권면한다(9-10). 또한 교회 안(3:15)에서는 영적 질서를 위해 여자가 가르치는 것(설교)과 남자들에 대해 잘못된 권세 (usurp or misappropriate authority)를 사용하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에덴동산 사건을 통해 금했다. 또한 [교회에서 가르치거나,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어머니로 가정에서 자녀를 낳고 (영적 자녀 포함) 키우는 것이 ‘구원(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는 여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임을 가르친다. 고대나 지금이나 성도는 세상의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일상에서 참된 경건을 추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주님, 우리가 바른 신앙관을 갖추지 못해서 세상의 문화와 풍조에 휩쓸리지...

2021.09.22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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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링크   2021.9.22 (수) 딤전1:12-20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섬기는 디모데에게 강조한 사역은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성도들을 미혹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어떻게 권면했나?  1 주를 섬기는 직분은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도리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가 되었다고 바울은 고백했다(12-13). 바로 주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고 직분을 받은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 자기 능력과 자격을 내세우는 것은 이미 벗어난 것이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아는 진정한 사역자는 그저 겸손히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2 율법의 눈으로 본다면 가장 구원받지 못할 ‘괴수’인데, 주님이 자신을 ‘본보기’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임을 보여 주는 것임을 바울은 강조했다(16). 그래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존귀와 영광을 영원토록’ 받으셔야 하는 분임을 선포한다(17). 탁월한 지성과 혈통을 자랑할 만했지만, 자신을 오히려 낮춤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는 것이 바로 사역자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3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에게 가르침을 받지 말고, 신성모독의 죄를 짓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사탄에게 내주다’는 말은 사탄의 지배 아래 넘기는 것과 공식적인 출교를 의미한다(20). 이렇게 출교할 수 있으려면  디모데가 먼저 ‘자신을 지도한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했다(18). 결국 교회 지도자의 권위는 사람의 인정, 지식이나 능력, 지위가 아니라 말씀에 바로선 주님을 닮은 성품(믿음과 선한 양심)에서 나옴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참된 사역자를 분별하고, 세우고, 섬기게 하옵소서!

2021.09.21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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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링크   2021.9.21 (화) 딤전1:1-11  디모데전서는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디모데에게 사역의 마음가짐을, 에베소 성도들에게는 디모데에게 순종을 당부하는 바울의 서신이다. 사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뭘까?  1 바울은 짧은 두 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세 번 반복하며 강조했다.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된 아들’로 부른 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도가 된 것처럼, 디모데 역시 에베소의 사역을 감당할 직임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따는 것임을 뜻한다. 목회의 권위는 사람이 아닌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교회의 모든 권위가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철저히 인정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2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일전에 경고한 대로(행20:29-31) 에베소에도 거짓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복음 외에 헬라 문화와 유대교의 ‘족보’같은 이야기로 교회를 흔드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므로 선생이란 자들은 구약성경을 가르친다고 주장하지만(7), 이들은 깨끗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없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었다(5). 교회는 이단과 거짓 가르침에 휩쓸리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3 바울은 유대교의 신화적 교훈으로 교회를 흔드는 자들을 경계하면서도 율법, 즉 구약성경을 바로 사용해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 율법은 악한 자들을 바른길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것이기에 반드시 바른 교훈, 즉 복음으로 해석 되어야만 한다(9-10). 그래서 바울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강조하며 바른 교훈은 모두 이 복음에서 나옴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일꾼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위에 서서 세상의 다른 가르침, 왜곡된 가르침을 분별해 믿음의 지체들이 거짓에 오도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주님, 세상의 헛된 지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서 살아가게 하소서!

2021.09.20 NZ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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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링크   2021.9.20 (월) 삿21:16-25  사사기는 어처구니없는 죄악의 이야기로 마감된다.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종교적 열심을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이스라엘이 어디까지 악해졌는지 살펴보자.  1 소수 불량배들을 비호하고 전체 11지파와 싸우려 했던 베냐민 지파의 죄와 형제 지파를 마치 가나안 족속 진멸하듯 여인과 아이들까지 죽인 11지파의 죄가 어우러져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스라엘 리더들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16-17) 하나님께 맹세한 것 때문에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때 필요한 유일한 것이 회개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이 모든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은 것이 결국 더 크고 가중한 죄로 이어지고 말았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그냥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더 심한 죄로 이어진다.  2 사람을 납치하는 것을 하나님은 살인으로 간주하셨다(출21:16).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베냐민 지파의 존속을 위해 여호와의 명절을 여인 납치의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베냐민 지파에게 사람들의 딸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납치행위가 얼마나 큰 죄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22-23). 율법에 맞지도 않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이 금지한 행위를 죄책감 없이 행하는 것이 바로 사사시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서 행하지 않으면 결국 죄가 더 큰 죄를 낳고, 그 죄를 막으려다가 돌이킬 수 없는 정도의 큰 재앙을 만나게 된다.  3 24-25절은 사사기 19-21장의 결론이자 사사기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12지파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가나안 족속들의 침공이 있을 때 하나가 되어 막아 내지 못했다. 내전을 겪은 후 이스라엘 자손들이 각기 자기 가족에게도 돌아갔다.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는 모습을 암시한다. 정치적, 종교적으로 혼란의 시기를...

2021.09.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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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18 (토) 삿20:29-48 음성링크    하나님은 11지파에게 두 번의 패배를 경험하게 하셔서 그들의 온전하지 못함을 드러내셨다. 기브아의 악행을 단죄하지 않은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는 마치 아이성의 가나안 족속에게 내리신 것과 같은 심판을 내리셨다. 1 베냐민 사람들이 기브아에서 패배하는 모습은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패배한 아이성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수8:10-25). 두 번의 승리에 도취된 베냐민 군사는 함정에 빠졌고, 그 싸움에서 죽게 될 것을 매우 늦게 깨달았다(32, 34). 겨우 천 명도 안되게 살아남고, 2만5천명이 죽임을 당했다(15, 34-35).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자만하다가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원칙을 발견한다.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다며 계속 그 죄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다. 그때가 오기 전에 빨리 돌이켜야 한다. 2 사사기 저자는 베냐민 사람들의 파멸을 서술하면서도 11지파가 베냐민 사람들에게 지나친 징벌을 가했음을 내놓지 않았다. 이들이 전투 의지를 잃고 도망가자 끝까지 추격하여 ‘이삭 줍듯’ 죽여 살아남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43,45, 47) 모든 성읍이 모두 불탔다. 사실 베냐민 사람들이 진멸한 대상의 가나안 민족은 아니었다. 자만하고 자기 죄악을 제거하지 않는 자는 결국 다른 어리석고 악한 자들에 의해 심판을 당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일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칭해지는 이스라엘 내전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주님, 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파멸한 베냐민 지파를 보면서, 나의 매일의 삶 가운데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