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2025.1.31 (금) 요8:48-59

Image
2025.1.31 (금) 요8:48-59 성도는 말씀을 깨닫는 귀를 가져야 한다.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말만 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말씀을 듣는 귀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다. 1 유대인들은 ‘너희 아비는 마귀’(44)란 예수님의 말씀에 ‘너는 사마리아인이다. 귀신 들렸다’고 받아 친다(48). 예수님은 당신이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공경하고, 당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신다고 반박하신다(49). 사실 유대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팔아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장차 예수님의 영광을 인정하시고, 누가 하나님께 속했는지 판단해 주실 것이다(50). 누군가가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거짓에 속한 자인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신10:17; 삼상16:7). 2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믿고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영생의 진리를 가르치신다(51).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약속을 대놓고 비웃었다. 아브라함도 죽고, 모든 선지자가 죽었으니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아니고선 영생을 줄 수 없는데, 예수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52-53).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시고, 하나님의 본체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분이다(55). 이 영광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는다. 예외는 없다. 3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대하며 즐거워했고, 또 예수님을 보고 기뻐햇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50년도 살지 못한 예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며 조롱한다(56-57). 그러자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란 말씀으로 당신이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내셨다(58; 출3:14).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는데, 예수님은 은밀하게 성전에서 나가신다(59; 7;10). 저들이 요구한 대로 예수님이 그 영광을 드러내셨지만, 저들은 오만...

2025.1.30(목) 요8:31-47

Image
2025.1.30(목) 요8:31-47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육신의 혈통을 따라 아브라함의 후순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3:5). 1 인간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해야 그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고 자유를 얻는다 (31-32).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반발했다. 자신들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 자유인이란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죄의 종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죄의 종은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아들에 의해 자유를 얻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35-36). 2 유대인들은 혈통으론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지 않기에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37). 예수님은 그들의 아비인 마귀에게 들은 바를 행하는 마귀의 자손이라고 책망하신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행한 일을 실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보고 들은 진리를 전하는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38b, 39b-40). 그들은 마음과 행실로는 마귀의 자손임을 직접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중시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이다. 3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합법적인 자손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손이라면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42),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깨닫지도 못했다(45-47). 경건한 체 자랑해도 정작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으로부터 ‘마귀의 자손’이란 책망을 받은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주님, 주님의 말씀과 멀어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구원받은 성도라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감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2025.1.29 (수) 요8:21-30

Image
2025.1.29 (수) 요8:21-30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다. 1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당신을 찾다가 죄 가운데 죽을 것이고, 당신이 가시는 곳에 그들이 결코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22).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분이고, 그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인데, 만약 예수님이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24).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는다. 2 ‘처음부터 저들에게 말해 온 자’ 즉 태초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이심을 예수님은 드러내셨고(25), ‘나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께 들은 것만 전한다고 하셨지만(26),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란 사실도,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셨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27). 이 놀라운 신비는 십자가와 부활로만 온전히 계시될 수 있었다. 3 유대인들이 당장 믿지 못하고, 예수님은 ‘인자가 들린 후’ 즉 십자가 이후에 ‘내가 그인 줄’ 알 것을 말씀하신다(28).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신 분임을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다. 복음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가르침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이다.

2025.1.28 (화) 요8:12-20

Image
2025.1.28 (화) 요8:12-20 초막절 마지막 날,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당시 초막절 마지막 날 밤에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광야 생활 동안 인도하심을 기념했다. 이들이 기억하고 기대하는 그 빛이 바로 당신임을 드러내신다. 1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는데, 이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동일한 표현이다(출3:14).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를 위한 증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13).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시는 분이시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참되다(14). 우리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고,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에 이를 수 있다. 2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육체를 따라 판단함을 지적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모든 것을 밝히실 뿐, 아무도 인간적으로 판단치 않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언은 참되다. 아버지께서도 동일하게 증언하시기 때문이다(16, 18). 이 가르침을 통해 삼위일체의 신비를 드러내고 계신다. 그러나 어둠에 속한 바리새인들은 빛이신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신비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1:5). 3 바리새인들은 마치 니고데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신비로운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추궁했다(19a; 3:4).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알아야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19b). 예수님의 신성을 말씀하심에도 예수님을 체포해 종교 재판에 넘기지 못했던 이유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이전부터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고 가르치셨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영광을 깨닫지 못했다(1:10). 주님,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을 허락하셔서 주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이 은혜에 감사하...

2025.1.27 (월) 요7:53-8:11

Image
2025.1.27 (월) 요7:53-8:11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타인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본문은 긍휼이 사라진 이유를 밝히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한다. 1헬라어로 ‘기혼자’로 묘사된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다. 붙잡은 사람들이 율법대로 그녀를 돌로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신22;22). 성문 밖으로 먼저 끌고 가서 처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정결을 위해서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 그녀를 성전으로 데리고 온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다(6).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정죄하려는 그들의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율법을 범하는 행동이었다. 오히려 성전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이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은 감히 긍휼을 생각할 수 없다. 목적보다 수단이 중시될 때 긍휼은 사라진다. 사랑의 마음, 용서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다. 이를 위해 비난과 멸시가 아닌 배려와 인내, 헌신과 섬김의 수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2 그들의 위선적이고 잔인한 형태 앞에서 예수님은 즉각 답을 주지 않으시고 땅에 뭔가를 쓰셨다. 그리고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이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무리들이 하나씩 자리를 떠났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다(10-11). 형벌을 주는 것보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인도하는 데 관심을 두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주된 관심이 역시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어떻게 구원할지에 초점을 맞추며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제자로 살아가자! 주님, 우리 모두 죄인이었지만 주께서 우릴 용서하셨음을 기억하고, 주의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참된 공동체를 이뤄 나가게 하소서!

2025.1.25 (토) 요7:25-36

Image
2025.1.25 (토) 요7:25-36 ‘생명의 빵’으로 소개하셨다가(6:35), 초막절 마지막 날에 당신을 믿는 자에게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예수님은 선포하신다(7:38). 마치 강의 발원지와 종착지를 말하듯 예수님은 어디서 오셨고,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하신다. 1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일부 사람들이 알아본다. 예수님이 드러나게 말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유대 지도자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음을 비난하며(26),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가 예수님일 리 없다고 주장한다(27).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출신지를 명확히 알려 준다(미5:2). 자신의 무지함을 모르는 무지함에 빠지지 않도록 꾸준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임은 알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사실은 몰랐다. 성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자는 예수님 뿐이다(28-29).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때가 되기 전에는 누구도 예수님을 붙잡을 수 없었다(30).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아졌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장차 저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겠지만, 그 일 역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때와 계획에 맞춰 성취된다. 3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것을 알고 계셨기에 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며, 이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올 수도 없다고 하신다(33-34). ‘그리스인들에게 가서 그들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가정해 본 말이다. 그러나 복음이 유대의 경계를 넘어 그리스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이처럼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오셔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고 승천하셨고, 또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상상하지 못한 때에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벅찬 감격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를 품고 복음의 증인으로 매일 살아가게 하...

2025.1.24 (금) 요7:14-24

Image
2025.1.24 (금) 요7:14-24 유대인들은 율법을 생명처럼 중시했고, 배우고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율법 선생들의 권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어이없는 현상에 예수님은 신랄하게 질타하신다. 1 초막절 중간에 예수님이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유명 랍비에게서 배운 경력이 없는 사람이 뛰어난 학식을 갖고 가르치시는 모습에 놀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시는 교훈이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인 양 자랑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상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2 당시 랍비들은 지식을 뽐내고 파벌을 만드는 데 골몰했다. 당연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어떤 교훈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17). 그리고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의 가르침이 참되다고 하신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오히려 율법을 어기며 의인이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또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비난한다. 진리는 그것을 순종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자의 것이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자의 것이 될 수 없다. 3 예수님이 이전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갖고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트집을 잡았다(21; 5:1-16). 할례는 안식일에도 시행하면서,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일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이 과연 율법을 지키는 태도냐고 항변하신다(22-23). 외모가 아니라 공의로 판단해야 다. 참된 지식과 지혜가 없으면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만 판단하게 된다. 온전한 지혜 위에 섬으로 이런 어리석은 태도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돌아보자. 주님, 오로지 순종하고, 주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주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읽고 묵상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