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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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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22 (토) 삼하7:1-17 12지파의 왕으로 세움을 받고, 예루살렘성을 차지하고, 언약궤를 옮겨 와 예루살렘에 안치한 일련의 과정은 다윗 일생 중 가장 찬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받았다.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다. 1 하나님은 다윗 주변 국가들까지 평정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위협이 될만한 세력이 없게 하셨다. 그런데 다윗에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언약궤는 여전히 천막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선지자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지은 건물이 하나님의 거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2 다윗의 진실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한 복과 은혜를 약속하셨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 그와 함께하셔서 그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며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어떤 원수도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을 흔들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집을 세우고 싶다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그를 위해 집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다윗 왕조를 세워 주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을 기뻐하신다. 3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즉 다윗 왕조는 범죄로 인해 위기를 겪거나 약해질 수는 있지만 끊어지는 일은 없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까지 그 나라를 확장시켜 오셨다. 우린 다윗처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언약 안에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언약에 동참한 자로 진실되게 주를 섬기게 하소서!

2023.4.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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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21 (금) 삼하6:16-23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는 이야기는 하나님은 화려하고 웅장한 예식과 행렬보다 말씀을 따르고 진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기뻐하심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이 대조를 이루는 본문이다. 1 다윗은 언약궤가 안치되고 먼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화목제는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교제를 나누고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를 마친 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고, 모든 백성에게 빵, 고기, 건포도 빵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백성과 함께 소박한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서 인간적 지위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의 평가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정작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2 다윗은 미갈과 결혼함으로써 사울의 사위가 되었지만,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미갈을 빼앗겼다가 후에 다시 찾았다(삼상25:44). 미갈은 다윗이 백성들 앞에서 ‘체통 없이’ 행동한 것을 비난했다. ‘이스라엘 왕의 명예로움’에 관심을 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란 말을 두 번 반복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음을 선언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든지 낮아지고 천하게 보이기를 선택하겠다고 말한다(21-22).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외형을 추구하는 사람의 결말은 이처럼 비참할 수밖에 없다. 주님,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고 그들보다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을 추구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소망하고 하나남이 사랑하시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길 원하는 자에게 무한한 은혜와 복을 주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3.4.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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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20 (목) 삼하6:1-15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치면 안 된다’는 말은 선한 목적을 위해 잘못된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다윗이 경험한 실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어떤 행위도 합당치 않음을 인식하여 모든 삶의 과정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이 거하는 예루살렘성으로 옮기려 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의 표현이다. 이런 다윗의 선한 의도는 성전을 건축하여 그곳에 법궤를 안치하고 싶어 한 그의 마음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은 궁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의지였다(7:2).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며 그런 열정 없이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다. 삶에서 하나님과 가까이하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를 갖고 모든 일에 힘쓰고 노력함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2 목적과 의도는 선하나, 과정에서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서 일 전체를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시려는 다윗의 의도와 목적은 선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옮길 때 레위 자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옮겨는 것이 하나닙의 법이다(수3:6). 그러나 다윗은 소가 끄는 새 수레로 법궤를 옮겼다. 마치 블레셋 사람들처럼(삼상6:12). 결국 법궤가 흔들렸고,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모든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결코 세상의 방법들을 사용한다면 결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일이 될 수 없다. 세상의 것을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바른길을 찾아 행하게 하소서!

2023.4.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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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19 (수) 삼하5:13-25 영적 싸움은 율과 혈의 싸움과 전혀 다르다. 사람은 스스로 절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바울 역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울 것을 명령했다. 다윗이 수행한 불레셋과의 싸움에서도 영적 전쟁의 원리를 발견한다. 1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군대는 다윗을 대적하려고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다. 다윗은 이들을 치러 나가기 전 먼저 하나님께 전투의 승패를 묻는다. 하나님의 응답의 확신 가운데 전투를 치른 것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아 확신 가운데 무슨 일이든지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머리에만 있는 관념적 신앙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함이 승리의 비결이다. 2 다윗에게 한 번 패한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 다윗을 대적한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뒤로 돌아 기습공격 할 것을 명하시면서 ‘여호와가 네 앞에 나아가 블레셋 군대를 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24). 전쟁의 승패 결정 뿐 아니라 전략까지 주시고 직접 블레셋 군대를 치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대적을 치는 것은 ‘거룩한 전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출23:28; 신7:20; 수6:20; 24:12; 삿7:22;). 성도는 우리의 대장이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명령에 순종할 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주님, 십자가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영적 싸움이 있음을 알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십자가 군병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2023.4.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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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18 (화) 삼하5:1-12 사람의 눈에 비효율적이고 오래 걸리더라도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길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과연 이런 다윗을 어떤 방식으로 왕으로 세우셨을까?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나아와 ‘우리는 왕과 친척이다’, ‘사울왕 때에도 이스라엘 군대를 당신이 통솔했다’, ‘하나님이 당신을 목자와 통치자로 세우셨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왕이 되어 주길 간청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다윗은 헤브론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가장 적절한 시기까지 필요한 훈련을 하나님은 받게 하셨다. 이처럼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법도를 따르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시지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영광스런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 2 하나님은 다윗을 위한 새로운 왕도를 준비해 주셨다. 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 사람들이 거하던 요새였다(6). 그러나 다윗은 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침투해 그 성을 점령했다. 이 역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셧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 왕궁을 지은 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그 뜻을 따르는 자는 이처럼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영광스런 곳에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주님, 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선택했던 다윗처럼, 주 앞에 정직하며,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3.4.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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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17 (월) 삼사4:1-12 세상에서는 정직한 길로 행하는 자보다 거짓과 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더 유리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진다. 우리는 멸망으로 가는 악인의 꾀를 버리고, 진리를 따라 복된 길로 행해야 한다. 1 이스보셋의 군 지휘관인 바아나와 레갑은 아브넬이 죽임을 당하자 곧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을 찾아간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인 자신들에게 상을 베풀 것이라 착각했다. 일반 사람들의 소견에서 보면 그들은 다윗에게 큰 도움을 준 자들이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상식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들의 어리석음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같이 악한 자의 꾀는 언뜻 합리적인 것 같으나 반드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결과를 낳는다. 2 다윗이 이스보셋을 죽인 레갑과 바아나를 정죄하여 죽인 것은 명분으로나 실제로나 지혜로운 행위였다. 이들을 우대했더라면 사울 편의 사람들은 다윗에 대해 반감을 가졌을 것이고, 민심은 다윗왕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윗은 아브넬 장군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울 왕가에 적대감이 없음을 보여 줌으로 백성의 민심을 자신에게 돌리 수 있었다. 세상의 지혜와 계산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따라 행하는 경건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사로운 꾀로 스스로 앞길을 열어 가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지혜의 길로 행해야 한다. 주님, 사사로움을 포기하고 항상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주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형통함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2023.4.1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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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3.4.15 (토) 삼하3:12-21 이스보셋 앞에서 다윗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이용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곧장 다윗에게 붙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신의도, 책임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1 아브넬은 자기 권세를 이용해 반역을 일으켜 나라를 넘길 속셈이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압의 손에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손에 의해 세워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긴다. 다윗은 아브넬과 언약을 맺기 전 그의 진정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자신의 첫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2 아브넬은 미갈을 다윗에게 보낸 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만나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을 종용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반역을 꾀하면서도, 그 명분을 하나님 뜻에서 찾고자 하는 거짓됨을 본다(18). 권력욕, 물욕을 채우기 위해 일을 벌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처럼 가면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갈6:7). 하나님을 경외하고 늘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3 다윗에게 미갈을 보냈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까지 설득했으니 이제 다윗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얻었을 것으로 아브넬은 생각했을 것이다. 부하 20명을 데리고 다윗을 찾아가서는, 다시 한 번 다윗에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지극히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이다. 이런 자와 손을 잡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주님, 아무리 유익해 보여도 악인과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거룩한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