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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9 (화) 갈5: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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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9 (화) 갈5:13-26 복음을 믿음으로 자유를 얻는 성도들은 율법을 무시해도 될까? 갈라디아서의 마지막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성도는 ‘자유’를 지키고 종이 되지 않는 것이다. 1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강조했다. 역설적으로, 자유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종노릇이다. 율법에서 벗어나 사랑의 종이 되는 것이다(13-14). 유대인들처럼 율법의 규정들을 놓고 따지지 말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육체의 소욕에 대해 싸우며 성령의 소욕을 따라야 함을 가르친다(16-17). 성령은 우리로 예수님처럼 살도록 이끄신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말씀에 나타난 주의 뜻을 분별하며, 실수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삶을 택해야 한다. 2 성령을 따르지 않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다. 바울은 육체의 일로 여러 죄악을 열거하고, 이어 성령의 9 가지 열매를 열거함으로써 육체의 일과 대조하여 성령의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한다(22-23). 정욕과 탐심이 동기가 된 행위는 악하고, 이미 성도는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한다(24). 성도가 할례와 율법을 따르게 되면 오히려 ‘헛된 영광’을 구하게 되고, 결국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게 될 것이다(25-26). 복음으로 자유케 된 성도는 모든 억압과 얽매임을 벗어 버렸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은 모두가 형제 자매들이며, 그 안에는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주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유인의 삶을 주셨으니,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매일같이 닮아가게 하소서!

2024.10.28 (월) 갈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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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8 (월) 갈5:1-12 앞서 바울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이방인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약속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이제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방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1 할례를 받는 것은 곧 율법 전체를 행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겠다는 다짐이고, 믿음의 효력을 부정하는 태도나 다를 바 없다(2, 4). 갈라디아 성도들이 유대인 교사들에게 미혹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적 열등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세속적이고 헛된 가치관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다. 2 그리스도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서는 할례자와 무할례자,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고 오직 사랑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만이 의미가 있음을 바울은 선언한다(6). 그래서 그는 아무리 작은 죄나 거짓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전체를 오염시킬 위험이 있음을 상기시킨다(9). 우리가 바라봐야 할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또 주께서 주신 복음 뿐이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거짓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7-8). 3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만약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전했다면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참된 진리인 ‘십자가의 걸림돌’이 사라진다(11). 바울인 이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박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길을 걸었고, 갈라디아 성도들에게도 믿음의 길을 걸으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 ‘차라리 스스로를 거세해 버려라’는 말로 논쟁을 마무리한다. 이처럼 거짓에 대해 강력한 적개심을 표현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복음을 따르도록 촉구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주님,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

2024.10.26 (토) 갈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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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6 (토) 갈4:12-20 복음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마쳤지만,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에 빠진 갈라디아 성도들에게는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함을 바울은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논조와는 달리 그들과의 친분 관계에 근거해 설득하지 시작한다. 1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처럼, 갈라디아 성도들도 유대인이 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권면한다(12). 바울이 갈라디아에 처음 갔을 때 몸이 아팠다. 당시 사람들은 병에 걸린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를 영접하듯 바울을 영접했고, 바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14-15). 이들은 바울의 외모를 보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바울의 참된 말에 집중했고, 초라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참된 말을 하는 바울을 멀리하고, 할례와 율법, 즉 인간의 겉모습을 중시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은 의아해한다. 사람의 외모, 학벌, 집안, 기타 외적 요사를 보고 지도자를 택하거나 그 말을 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선 안 된다. 2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은 진리가 아니라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열심을 내도록’, 즉 인기를 얻으려고 열정적으로 일하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교인들을 갈라놓고, 바울을 공격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진리를 위하 열정은 유익하지만(18), 자기 세력을 늘리려는 열정은 경계해야 한다. 바울은 이미 갈라디아 교회를 세우고 떠난 상태였지만, 상황이 어린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바울은 ‘내 음성을 바꾸었으면 좋겠다(언성을 높여야겠다)’는 말로 이어지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병에 걸려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가서, 진리를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갈라디아 교회가 세워졌다. 성도는 어떤 지도자를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준다. 주님, 우리모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꾼으로 성장되게 하소서!...

2024.10.25 (금) 갈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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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금) 갈4:1-11 바울은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음을 천명했고, 이제 이방인들이 유대인처럼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부연하기 시작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 외에는 없다. 1 당시 로마에서 ‘초등교사’는 미성년 자녀들을 가르치는 훈육의 책임을 맡았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영적으로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던 율법 아래 있었다(1-3; 3:24). 하나님은 믿는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 조차도 상속자로 세우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고 믿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믿는 자들의 마음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 2 이방인들은 율법의 훈육을 받지 않았지만 복음을 듣고 믿을 때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 상속자가 된 것이다(6-7).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에서 종과 다름없이 사는 동안,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믿고 양자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완전한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런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이전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주님,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생명을 이어 가게 하셨으니, 아버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데 쓰임 받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4.10.24 (목) 갈3: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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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목) 갈3:19-29 율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은 죄인에 불과함을 바울 사도는 논증하고 있다. 1 인간의 범법 때문에 주어진 율법은 약속의 씨,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만 필요한 것이다(19). 율법은 약속과 모순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는 사람을 살리거나 의롭게 할 수 없다. 율법은 사람들이 스스로 죄 아래 있음을 알려 줌으로 예수님을 믿게 한다. 율법 아래서 볼 때 유대인들은 어떤 법을 어겼는지 아는 죄수이고, 이방인은 모르는 죄수일 뿐이다. 2 바울은 ‘우리’ 즉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전에는 오히려 율법 아래 ‘갇혔다’고 말한다. 당시 어린이의 가정교사와 보모 역할을 했던 선생에 비유된다. 따라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구원받기에 더 유리한 환경에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어렸을 때 선생에게서 훈육을 받았느냐, 안 받았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전에 율법을 알았느냐, 몰랐느냐는 중요치 않다. 믿음을 가진 후에는 더 이상 율법의 영향력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25). 모든 성도는 과거 환경이 어떠했든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3믿음을 통해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세례를 받으면 그 어떤 차별도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의 상속자가 된다(27, 29). 이것이 복음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도 사람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주님,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기억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서로 사랑으로 품고 섬기는 주께서 기뻐하실 교회로 계속 성장하게 하소서!

2024.10.23 (수) 갈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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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수) 갈3:10-18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복음의 핵심을 논증한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하는 자들은 오히려 저주 아래 있다. 하나님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다. 1 율법은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곤 선언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10; 신27:26).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빠짐없이 행하는 방법밖에 없으니, 실제로는 모두가 율법의 저주를 당하게 된다. 율법주의자들이 자신들도 율법 안에 살지 못하면서 이방인(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면 자기들처럼 저주를 당하리라고 가르친 셈이다.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홀로 받으심으로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죄를 속량하지 않으셨다면, 유대인들 역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13; 신21:23).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기에, 이제 이방인들은 율법을 따를 필요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에 들어가게 되었다(14). 2 유대인들이 할례와 율법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언약 백성의 표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울 역시 인간 사이의 계약도 폐하거나 더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의 언약 역시 그러함을 가르친다(15).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당사자가 그의 여러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이란 사실을 바울은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자손’을 의미하는 ‘씨’라는 단어는 모두 단수로 되어 있다 (16a; 창13:15-16; 15:4-6; 22:17-18; 24:7).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 단어를 단수로 쓰신 이유는 그리스도에 의해 많은 영적 자손이 나타날 것을 보셨기 때문이다 (16b). 아브라함의 언약의 시작은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이미 언약을 맺었던 것이다. 구...

2024.10.22 (화)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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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화) 3:1-9 신앙 문제는 생명이 문제이며, 우리 존재 자체에 대한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검증되지 않은 가르침을 섣부르게 받아들였다고 꾸짖으며, 왜 그 가르침이 거짓인가를 논증한다. 1 갈라디아 성도들은 어리석게 꾐에 넘어갔다.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했는데, 율법의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 믿음으로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1-2).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괴로움도 기꺼이 감수했는데, 만약 율법과 할례가 구원의 필수요건이라면, 그 모든 고난과 수고가 다 헛된 셈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왜 성령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로 마치려 하고 있다고 질타하며, 바른 신앙을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죄나 거짓 가르침, 세상의 고통 등으로 신앙이 흔들리고 있는가? 주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행하셨던 일들을 떠 올려 보라.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심을 기억하자 2 성령을 통해 체험한 것뿐 아니라, 성경 또한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증거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6; 롬4:1-13; 창15:6).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조건은 율법과 할례가 아니라 믿음이다(7).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8; 창12:2).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얻음을 성경은 증거한다(9). 체험되는 것은 말씀으로 확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든든한 뒷받침이다. 주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함으로 바른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