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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5 (화) 왕하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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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5 (화) 왕하4:1-7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도 그 문제의 해결책은 기도와 순종이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단순한 영적 원리를 본문은 가르친다. 1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던 이스라엘에서 선지자의 제자로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극심한 박해와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죽은 자신의 남편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라 표현한 대목에서 이들 부부는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던 경건한 부부였음을 알 수 있다. 가정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던 여인은 그런 상황 속에서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와 자신의 상황을 소상히 아뢰고 의지했다.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은 어려운 때를 만나도 기도한다.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상황과 상관없이 변함없이 일상을 살아 내기 위한 삶의 영적 원리로 삼은 것이다. 2 본문의 과부는 감당할 수 없는 빚까지 있었다. 채궈자는 돈을 갚지 못하는 여인의 두 아들을 데려가 종을 삼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사는 다른 방법이 아닌, 모든 이웃에게 그릇들을 최대한 많이 빌려, 집에 가지고 있는 기름을 그 모든 그릇에 옮겨 담으라고 지시한다. 놀라운 것은 여인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생각한 문제의 해결책대로 이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지식, 경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뤄 주소서라는 고백이다.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해 순종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예비하신 역사를 이룬다. 주님,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대로 해결되도록 늘 기도하며, 순종하는 영성을 허락하소서!

2024.6.24 (월) 왕하3: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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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4 (월) 왕하3:13-27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은 후 더욱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가 해결되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지 않고, 우상이 내린 재앙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연합군의 모습을 본다. 1 별일 없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제야 하나님을 찾고 기도 부탁하는 교인들이 있다. 비록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여쭤 보지도 않고 여호람과 함께 모압을 치러 나왔지만,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찾자 여호사밧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 세 왕이 원한 것은 마실 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골짜기 가득한 물과 함께 모압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하셨다(17-18).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키고 기도할 때 듣고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잘못도 하나님 앞에 숨기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긍휼을 구해야 한다. 2 엘리사를 통한 신탁의 말씀이 모두 성취되어 이스라엘 연합군은 모압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물을 피로 착각한 모압군대가 전세를 오판하는 바람에 이스라엘이 쉽게 승리한 것이다. 승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의 응답을 목격한 연합군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압 왕이 최후의 발악으로 우상에게 왕의 장자를 인신제사로 드리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해가 갈까 두려워한 나머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다. 인신제사를 받은 우상의 해코지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기도 응답 후 성도의 삶은 더욱 영적으로 깊어지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더 풍성해져야 한다. 주님,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 응답의 은혜를 간직하며 더욱 깊어지고 풍성한 영적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2024.6.22 (토) 왕하2: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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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2 (토) 왕하2:15-25 본문은 최고의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실상은 정반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가치있게 생각하시는 일들을 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1 여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의 권능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을 보았음에도 엘리야의 시신을 찾아 나설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일로 3일의 시간을 허비한다. 이같이 행동한 이유는 ‘자기 신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제자들로 스승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영적인 일에 열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하늘로 올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영적 경험과 열심, 헌신을 내세우며 자신의 옮음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이 강할수록 영적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교회의 분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각자 열심히 한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어렵에 하는 일은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영적 시야를 넓히는 기도와 훈련이 더욱 필요하다. 2 엘리야의 승천을 직접 목격한 엘리사는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지도, 또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한 것을 떠벌리지도 않았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 가야 할 사명을 위한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때로는 조롱도 당하도(23-24) 나쁜 것을 좋게 고쳐 주는 의미있는 일이다(19-22).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 내 삶의 편안함에서 가치의 유무를 따지지 시작한다면 처음에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던 사명자도 점점 자기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되기 쉽다.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 없으니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두렵긴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선한 도구가 될 대 우리 삶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4.6.21 (금) 왕하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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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1 (금) 왕하2:1-14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이제 엘리야는 하늘로 부름을 입고 그 자리를 엘리사가 이어 받게 되었다. 선지자의 계승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뤄진다. 1 벧엘과 여리고에 있던 엘리야의 제자들까지도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엘리야의 후계자가 엘리사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한다(1b-2a, 4a, 6a). 따라오지 말고 이곳에 머물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이는 ‘네가 원치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러나 엘리사는 맹세하며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 말함으로써 그가 엘리야의 뒤를 잇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선포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엘리사를 선택하셨음을 알면서도 ‘이 길은 힘든 길이다. 힘들다면 지금이라고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이뤄 가는 자의 삶은 고통스럽고 외롭다. 그러나 진리를 본 자, 하나님의 마음과 권능을 아는 자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걷고자 결단하게 마련이다. 2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가르는 모습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멈추었던 것처럼 엘리야와 엘리사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리더십 계승을 이루고 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을 구한 것은 장자가 유산을 다른 아들들보다 갑절로 받는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자신이 엘리야의 장자로서 사역의 계승자가 되길 원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불수레, 불말,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사가 계승자임을 확증해 주셨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강물을 가르는 이적으로 하나님은 엘리사와 함께 계심을 확증해 주셨다. 왕위와 달리 이스라엘의 참된 통치권은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 전수될 수 있었다. 주님, 주의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 세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기억하고, 오직 주의 권능과 뜻만이 우릴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2024.6.20 (목) 왕하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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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20 (목) 왕하1:9-18 아버지 아합의 길로 행하며 하나님을 떠난 아하시야는 모압에게 배반당하고 자신은 중병에 드는 징벌을 받고서도 우상을 찾았다. 엘리야를 통해 죽음을 예언받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며 회개할 줄 몰랐다. 하나님을 이기려 들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길이 열린다. 1 질병으로 죽게 되리라는 예언을 들은 아사히야는 그 예언을 전한 엘리야에게 많은 군사를 보내 겁박하려 했다. 아마도 그 예언을 바꾸려 했던 시도로 보인다. 그를 사로잡아 자신 앞에 무릎 꿇리려 했다. 왕의 권세로 하나님의 뜻을 무력하게 만들려는 사고인 것이다. 그러나 무장된 군사의 수가 상징하는 인간의 권세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9-12).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권력, 정치, 경제 , 문화의 힘이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이길 수 없다. 2 아하시야는 돌이킬 줄 모르는 무모함으로 엘리야를 잡기 위해 자신의 군사들을 3번이나 반복해 파송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죄인 취급하며 위협하다 앞선 두 그룹은 하늘에서 내린 불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9, 11). 하나님의 권세를 대적하는 것은 이처럼 무모하고 무지한 것이다. 그런데 3번째로 엘리야를 찾은 오십부장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다. 엘리야 앞에 꿇어 엎드려 은혜를 구했다. 그는 초라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무릎 꿇은 비겁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앞에 무릎 꿇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세상의 권세에 위축되기 쉽다. 그러나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무릎 꿇을 수 있는 용기와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소’라고 기도하셨던 것을 마음에 새기며 ‘오직 내 삶에는 하나님만이 승리자시요, 나는 순종할 따름입니다’라 고백하며 나아가게

2024.6.19 (수) 왕하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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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19 (수) 왕하1:1-9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 열왕기상을 이어 열왕기하는 그 아들 아하시야가 초라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비극적이고도 초라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1 길르앗 라못 정벌이 실패하고(왕상22:29-40), 이스라엘 국력은 약화되었다. 이스라엘 지배하에 있던 모압은 어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최후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보고도 아들 아하시아는 전혀 왕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락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하자 블레셋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자기가 나을 수 있는지를 물기 위해 종을 보낸다. 자신의 운명을 우상에게 묻고 있으니, 부왕 아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 이 종을 만나 아하시야가 침상에서 반드시 죽을 것을 예언한다(3-4, 6, 16). 하나님보다 우상을 의지하고 섬기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머물기 때문에 결국은 망하고 만다. 2 왕의 종들이 아하시야에게 돌아가 엘리야의 예언을 전한다. 이들은 엘리야를 ‘털이 많은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복장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엘리야를 ‘바알 세아르의 사람’이라 무시한 것이다. ‘바알 세아르’ 즉 ‘털의 주인’이라고 조롱한 것이다. 더운 지역에서는 얇고 가벼운 옷이 좋은 옷이다. 아하시야 역시 더위를 피하려고 다락에 있다가 떨어졌던 것을 미뤄 짐작할 때, 엘리야는 제대로 된 옷이 아닌 짐승의 털가죽을 대충 두르고 있던 것과, 더 나아가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 선지자에게 털옷 밖에 주지 못하는 신’처럼 하대하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아하시야나 그 신하들은 어리석게도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또 그가 섬기는 하나님까지 판단했다. 이 같은 불신앙은 재앙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주님,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조롱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2024.6.18 (화) 옵1: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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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하나님 백성의 회복에 관한 선언이다. 하나님이 백성을 회복시키신다는 주제는 여호와의 날 신학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1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은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날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을 세상의 마지막 날로 이해하고 자극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세상의 끝이라기 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세상의 첫 모습을 회복하는 날이다. 나아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 받았던 주의 백성이 회복되는 날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이행되는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예언자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이 완전하게 회복되고 그들의 원수의 땅까지도 차지하게 되리라고 선언한다. 2 무너진 예배의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 오바댜는 무너졌던 예루살렘의 성전 산, 즉 시온이 회복됨을 선언한다. 시온이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오심과 함께 시작된다. 무엇보다 본문의 ‘거룩’이라는 표현(16, 17)은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심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가 회복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그곳에서 보호받는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예배받길 원하신다(21). 오늘날 성도들도 예배의 자리가 회복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무너졌던 현장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고,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님,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주를 붙들어, 주께서 모든 악을 끝장내시는 날, 주의 영광의 날에 최후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