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9 (수) 왕하1:1-9

2024.6.19 (수) 왕하1:1-9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 열왕기상을 이어 열왕기하는 그 아들 아하시야가 초라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비극적이고도 초라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1 길르앗 라못 정벌이 실패하고(왕상22:29-40), 이스라엘 국력은 약화되었다. 이스라엘 지배하에 있던 모압은 어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최후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보고도 아들 아하시아는 전혀 왕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락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하자 블레셋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자기가 나을 수 있는지를 물기 위해 종을 보낸다. 자신의 운명을 우상에게 묻고 있으니, 부왕 아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 이 종을 만나 아하시야가 침상에서 반드시 죽을 것을 예언한다(3-4, 6, 16). 하나님보다 우상을 의지하고 섬기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머물기 때문에 결국은 망하고 만다. 2 왕의 종들이 아하시야에게 돌아가 엘리야의 예언을 전한다. 이들은 엘리야를 ‘털이 많은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복장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엘리야를 ‘바알 세아르의 사람’이라 무시한 것이다. ‘바알 세아르’ 즉 ‘털의 주인’이라고 조롱한 것이다. 더운 지역에서는 얇고 가벼운 옷이 좋은 옷이다. 아하시야 역시 더위를 피하려고 다락에 있다가 떨어졌던 것을 미뤄 짐작할 때, 엘리야는 제대로 된 옷이 아닌 짐승의 털가죽을 대충 두르고 있던 것과, 더 나아가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 선지자에게 털옷 밖에 주지 못하는 신’처럼 하대하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아하시야나 그 신하들은 어리석게도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또 그가 섬기는 하나님까지 판단했다. 이 같은 불신앙은 재앙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주님,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조롱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살아가는 담대한 성도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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