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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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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 2022.5.23 (월) 고전10:23-11:1 현대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1 고린도교회 안에 시장에서 파는, 우상 제물로 사용했던 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는 문제에 있어 바울은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음을 명시했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과 유익이 아니라 타인의 양심과 유익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에게 해가 될 상황이라면 먹지 않는 것이 사랑의 법을 좇는 태도라고 교훈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그 자유로 타이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2 성경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따라 이웃을 배려함을 의미한다.  얼마든지 믿음과 경험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를 수 있기에 함부로 타인을 판단해선 안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명한다. 이는 자신의 유익이 아닌 타인의 유익을 구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음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주님, 스스로 낮아져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드러내신 것을 본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22.5.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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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1 (토) 고전10:1-13 ‘우상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8:1-11:1).  바울은 이 질문을 한 자들의 진의를 꿰뚫어보았고, 그 배후에 놓인 심각한 영적 문제를 교정하려 했다. 1 ‘우상 제물’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의 본심이 이전에 행했던 우상 숭배로 끌려들어가고 있음을 간파한 바울은 옛 이스라엘의 예를 들어 경고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모두 구름과 바다를 지나는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성찬에 참여했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 습관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우상 주위를 맴돌면서 ‘이런 고기 먹을 때가 좋았는데’라는 마음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며 자만하면 안 된다.  죄의 영향력은 크고 심각해서 매순간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변질시킬지 모른다. 죄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2 바울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이란 표현을 반복하는데, 이는 고린도 성도들 중 일부가 우상 숭배, 음행, 주님을 시험함, 원망 등의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7-10). 이런 죄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바울은 강조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통해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신ㅇ늘 지키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느냐는 식의 타협적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시험을 이기고 죄를 피할 수 있게 도우시기 때문이다(13). 목적을 갖고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으니, 우리는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영적 자만심이나 자기기만에 붙잡혀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것들을 행하지 않는 심각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

2022.5.2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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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20 (금) 고전9:19-27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 모두가 복음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소 우리 또한 복음 증거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1 바울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19). 유대인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행하고, 이방인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행하고, 약한 자들에겐 약한 자같이 되었다(20-22). 사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분명한 사람이었지만(빌3:5),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사도로 부르심을 입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한 후로부터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스스로 누구에게나 ‘을’이 되었다(빌3:8).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우리 역시 복음을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2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성도들에게 명하면서, 당시 고린도에서 2년마다 열리던 이쓰미안 경기(Isthumian Games)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상을 받기 위해 힘껏 달린다고 말한다(24).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했다(딤후4:7-8). 성도는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바울과 같은 말을 남길 수 있도록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누구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되었음을 잘 아는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약한 인간은 언제든지 교만해질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자신에게 몸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고백했다(고후12:7). 우리 역시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확신은 갖되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언제나 말씀 앞에 복종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 복음...

2022.5.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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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9 (목) 고전9:13-18 우상 제물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사실 사소한 문제였다. 오히려 형제를 위해 자기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신앙임을 바울사도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또한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그렇게 생활했던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냈다. 1 하나님은 성전을 섬기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것이 합당함을 말씀하셨다(민18:8-24). ‘우상 제물을 먹어도 아무런 영적 해악이 없다’는 것이 ‘바른 지식’이듯, ‘복음 사역자는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생활한다’는 것이 ‘바른 지식’이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 전파에 혹시 방해가 될까봐 이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하면서 복음에 방해가 되는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던 바울에게 유일한 자랑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예수님의 길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주님처럼 바울처럼 우리도 이 땅에 살면서 복음 전파의 삶을 위해 희생하며, 남을 배려하며, 고생했노라고 고백하고 간증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자랑임을 기억해야 한다.  2 바울은 자신이 복음 사역자로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이나 사역을 통해 많은 열매를 얻었음을 자랑하지 않았다. 복음 사역은 그에게 하지 않으면 화를 입을 수 있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16). 복음 사역이 자의가 아닌 사명이었기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바울이 자랑스러워했던 상은 바로 ‘복음을 값없이 전하고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부분의 사례를 포기하고 교회를 섬기느라 힘겨워하는 많은 사역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상일 것이다. 바울이 자신의 자랑은 십자가 외에는 없다고 고백했듯이(갈6:4), 형제 자매를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주님,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형제 자매를 섬기기 위해 권리와 자유도 얼...

2022.5.18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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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8 (수) 고전9:1-12 교회는 복음 사역자를 후히 대우하고 사역자는 절제의 미를 갖춰야 한다. 1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 됨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같이 복음 증거하는 사역을 통해 자신도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나라의 지원을 받는 군인, 자신의 소출의 열매를 얻는 농부나 목자의 생활이 당연하듯, 바울도 다른 사도들처럼 복음 사역으로 후원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며 주의 일을 위해 일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바울은 권면한다(갈6:6). 교회는 사역자들이 복음 사역에 전념하도록 돕는 것이 마땅하다. 2 복음을 위해 사도의 권리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의 이 권리 사용을 자제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권리 행사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행18:3). 복음에 대한 열정과 희생정신은 모든 복음 사역자가 본받아야 할 자세다. 사역자가 자신의 권리를 과하게 주장하는 것도 문제고, 사역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역자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사역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신앙 공동체 전체에 유익을 준다. 주님,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다른 지체들의 믿음을 살피고,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는가를 돌아보게 하소서!  

2022.5.1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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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 17 (화) 고전8:1-13 스스로 지혜롭고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 가운데 거침없는 행보를 하기 쉽다. 그래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상처를 주기가 쉽다. 말씀 속에서 교훈을 얻어 언제나 다른 지체들을 배려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1 고린도에서는 우상 제물로 드려졌던 고기가 시장에서 팔렸는데, 성도가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므로 그 고기를 먹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삭이 없는 자들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지식는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지식은 교만이며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잘못된 행실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여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 2 불완전한 지식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타인을 향한 사랑과 배려다. 아무리 자신에게 당연한 권리와 자유가 있다해도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할 때에야 비로소 불완전한 지식이 아니라 참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사랑의 법을 따라 행함으로 교만하게 하는 불완전한 지식을 온전한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3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사랑의 법에 근거함을 바울은 강조한다 (빌2:6-8). 이런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사랑은 우리 모든 성도가 따라해야 할 모범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 모든 성도가 순종해야 할 새 계병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된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의 행동을 보임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주님, 주님을 닮기를 소망하는 성도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참된 지식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웃...

2022.5.1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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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5.16 (월) 고전7:25-40 고린도교회 안에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있었다. 결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합당한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을 통해 성경적 원칙을 얻어보자. 1 사도바울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미혼으로 남는 것을 추천하면서도 최종 결정은 당사자가 내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용해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주변의 압박과 분위기에 밀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결정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결혼만이 아니라 봉사, 사역 등등에 있어 선택하는 일도 많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사용해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다른 지체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결정을 사용하셔서 가장 최선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2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 이를 둔 부모에게 바울은 권면하기를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좋지만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주님을 더 충성되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위해 마음을 쓰는 대신 하나님께 비교적 더 마음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의 이기적 욕심과 편안한 삶을 먼저 생각하고 결정할 때가 많다. 개인의 취미시간 때문에 봉사를 거절할 수도 있고, 영성 훈련보다 휴가나 쉼을 먼저 생각하고 거절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학기가 어렵다. 만일 우리가 모두 먹고 마시는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매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영혼에 유익이 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주님, 다양한 선택 앞에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에 따라,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