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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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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6 (토) 눅16:19-31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세상에서 부유해지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는 증거로 생각했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었다(14).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진정 무엇을 원하시는지 가르치셨다. 1 두 극단에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날마다 호화롭게 증기는 부자와, 그데 비해 헌데투성이인 거지가 그 대문 앞에 있다. 피부병은 그 자체로 부정했고, 상에서 떨어지는 것 또한 부정한 음식이며, 부정한 동물인 개들이 그 헌데를 핥았으니 경제적, 종교적으로 최악의 상태다. 그런데 부자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았는데, 거지의 이름이 나사로로 언급된다. 세상에서 사치하고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완전히 다르다. 2 두 사람이 죽은 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생전에 부자가 한 것은 그저 사치하며 자기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하셨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판단 기준이 된다. 하나님이 없이 아무리 성공하고 잘살아도 그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3 부자는 나사로를 다시 땅으로 보내 자기 형제들에게 증언해서 그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겐 성경이 있으며, 성경을 믿지 않으면 그 어떤 기적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세속적 번영과 같이 여겨선 안된다. 말씀의 가르침을 비웃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께서 허락하신 환경과 재물을 청지기인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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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5 (금) 눅16:1-18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아는 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악인이라도 이렇게 행동하거늘 의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행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가르침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신다. 1 제자들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비유에 불의한 청지기가 등장한다.  자신의 불의가 드러나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자 생계를 위해 머리를 쓴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줄여 줌으로써 이들에게 ‘은인’이 되는 방법을 쓴다 (5-7). 그의 이런 행동이 그의 생존을 위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데 비유의 초점이 있다. 돈 문에 있어 세속적인 사람들이 더 밝다. 불신자들도 자신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이 좋은지 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은 그 자체로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상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2 예수님은 재물을 바로 사용하는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이며, 이런 일에 충성해야 하나님 나라의 큰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재물을 ‘남의 것’이라고 부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재물을 맡은 청지기란 사실을 깨우쳐 주신다. 하나님을 섬길 때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기억해야 한다.  땅의 재물로 천국을 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롭고 신실한 청지기로서 재물의 유혹을 이기고 정직하고 바르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이 땅에 사는 기간이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임을 알아, 땅의 재물이 천국에 쌓일 보물이 되도록 재물의 유혹을 이기고 주의 뜻 안에서 합당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있게 하소서!

2022.02.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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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큐티는 없습니다.  2022.2.24 (목) 눅15:11-32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1 아버지에게 자시 몫의 유산을 받아 허랑방탕한 생활로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는 타락한 죄인을 비유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다. 그를 다시 아들로 대우하고 잔치를 벌인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길 원하신다(벧후3:9). 2 돌아온 둘째 아들을 기쁨으로 맞이한 아버지와는 달리 첫째 아들은 불만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는데 자신은 아버지 곁에서 충성스럽게 일만하고 한번도 잔치를 열어 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잔치를 열어 준 것에 대해 분노했다.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만약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집 나간 동생을 찾아 나서야 했다. 전도와 영혼 구원에 큰 관심 없이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과 같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3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통해 잘 나타난다.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마28:19-20). 우리의 모든 봉사와 헌신 역시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바쁘게 수고한다해도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져 영혼 구원에 무관심하다면 하나님께 진정한 충성과 헌신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주님, 내 나름대로의 충성과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2022.02.23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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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큐티은 없습니다.  2022.2.23 (수) 눅15:1-10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한다. 1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가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주님은 하셨다. 남은 99마리도 중요하지만 애정의 대상인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주님이 이 비유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 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회개한 세리와 죄인들이 스스로 의인이라고 주장하며 회개치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귀함을 교훈하신다. 2 여인이 열 드라크마 주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려 열심히 찾은 후 사람들을 불러 축하하며 즐긴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당시 드라크마 열 개는 줄에 꿰어 여인에게 결혼 지참금 형식으로 남자가 주는 것이기에 여인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쁨이 됨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주님, 저희도 그랬듯이 이제 잃어버림을 당한 또 다른 사람들을 찾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녀들로 매일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22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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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큐티는 없습니다.  2022.2.22 (화) 눅14:25-35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우선순위를 바로 세울 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미워하고 사랑할 것인지 깊이 헤아려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명하신다. 1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제일 소중히 여기는데, 이런 소중한 대상을 미워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감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를 언급하신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의미가 그렇듯이 야곱을 선택하셨음을 뜻하는 것과 동일하다 (말1:2-3). 주님과 가족, 주님과 자신의 목숨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을 때 주님을 선택하는 자만이 제자로서 합당하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 없음을 삶으로 증명하면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 2 건축을 하려면 먼저 전체 비용을 계산하고 계획을 세운 후 공사를 시작한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후회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테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잠깐 머무는 이 땅의 것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혜로운 선택이다. 세상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제자의 삶을 매일 살아가자. 주님, 세상이 비록 우리를 비합리적으로 볼지라도 말씀의 진리에 바탕을 둔 우선순위로 영원한 것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022.02.2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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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21 (월) 눅14:15-24 살면서 누구나 특별한 기회가 몇 번 찾아온다고들 말한다. 그 기회를 놓치느냐 잡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영원한 나라의 초대장이다. 초대에 응하면 영생을 얻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1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한 상황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현실 문제들 때문에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이 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눅9:59-60). 구원의 초대를 거부하면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 성도라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일이 최우선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초대받은 자들이 참여를 거부하자 주인은 종들에게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 아픈 자, 장애우들을 데려오라 명하신다. 그래도 빈자리가 있자, 산과 길과 울타리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고 명하셨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므로 이방 민족을 구원으로 초대하신 구속의 역사를 묘사한 것이다. 이 일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선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성취된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 없이 구원의 은혜에 동참하게 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며, 아직도 구원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해 그들도 천국 잔치에 참여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 우리가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이에 만족하지 말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자리를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2.02.1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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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큐티  2022.2.19 (토) 눅13:22-35 누구든지 평탄하고 넓은 인생길로 가길 원한다.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은 어떤 것인지를 전한다. 입으로 분명 ‘믿습니다’를 되뇌는 것과 상관이 없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1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적으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다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다고 가르치신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단지 함께 먹고 마시며 길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자들의 무리 속에 끼여 있었다는 이유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들을 오히려 ‘불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아’라고 부르시며 이들을 아예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걸어갈 때에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2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유대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은 정치적 권세를 가진 자들과 연줄이 닿아 있었으니, 당연히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고고한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기득권자들과 내통하며 이익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헤롯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역을 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아신 주님이시지만, 오히려 예루살렘이 버림받을 것을 말씀하시며 탄식하신다. 오래전부터 예루살렘, 곧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부르셨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구원받은 유대+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통해 나타난다. 주님,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하나님 나라를 믿고, 이 세상 것에 붙잡혀 살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