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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31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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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31 (수) 마27:11-26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죄성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깨닫고 늘 깨어서 회개하는 심성으로 살아야 한다.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을 극악한 죄수로 몰아 죽이는 악행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의 결과다. 1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법적 책임은 재판관이었던 빌라도 총독에게 있다. 그는 예수님께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풀어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무책임한 결정을 한다. 바라바를 대신 풀어주면서, 자신은 손을 씻으면 무죄한 핏값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의를 이루기 위해선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는 때로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선택하고 그 길로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2 유대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예수가 기적을 행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해 많은 사람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것에 위협을 느낀 것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유다. 예수님 체포와 거짓 증인을 세우고, 군중을 선동하고 십자가형을 끌어내는 일을 주도한다. 빌라도를 협박하기까지 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에도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가장 거룩한 척하면서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이런 악행의 이유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욕망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욕망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3 군중은 한때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었다. 예수님의 이적에 칭송과 지지를 보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분이 연약한 모습으로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자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에 넘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댄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자신들의 욕망이 채워지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대적이 되었다(요6:26). 오늘날 예수님을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여기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자신을 주님의 뜻을 이루는 ...

2021.3.30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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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30 (화) 마27:1-10 이제 예수님은 대제사장에 의해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지셨다.  1 대제사장을 비롯한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지만(1), 사형선고는 로마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새벽에 공회가 모이는 것이 유대법으로 불법이기도 하고, 무고한 주님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유월절은 지키려고 하는 왜곡된 신앙을 발견한다. 신앙이 종교행위가 된 분명한 증거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교회도 다니고, 예배는 참석하지만 일상에서 거짓과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면 하나님은 가증한 자로 여기실 것이다. 일상에서 의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2 마태는 가룟 유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선언한 것을 기록했다.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27:25)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도 본다(4). 유다가 은 삼십을 성전에 던져 넣지만 그것이 성전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데 사용된 것 또한 스가랴11:13의 성취이기도하다. 이처럼,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있음을 본다. 3 스가랴 선지자의 경험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험이 합쳐져서 말씀이 성취되었다. 스가랴는 자기가 치던 양떼를 버리는데, 그때 어떤 이들이 그 양떼를 끌어가면서 스가랴에게 은30을 대가로 지불한다. 하지만 스가랴는 그 돈을 토기장이에게 준다(슥11). 예레미야는 토기장이를 하나님으로 비유했고(렘18:1-12; 19:1-15), 또 땅을 사기도 했다(렘32:6-9). 유다는 예수님을 버린 값 은30을 자기가 갖지 못하고 성전에 던졌고, 마치 예레미야가 땅을 산 것처럼 그 돈은 성전에서 쓰이지 모하고 땅을 사는데 사용된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라도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 주여,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심판의 자리에 들지 않게 하시고, 항상 믿음의 길을 가게 하소...

2021.3.29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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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월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29 (월) 마26:69-75 기도로 준비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앞에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과 적들 앞에서 전혀 두려움 없이 당신의 정체성을 밝히심으로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 깨어 있지 못했던 베드로는 자기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1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것도 점층적으로. 한 여종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했고(69),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며 여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둘려댄다(70). 아무리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해도(16:16), 예수님과 함께 죽기를 각오했다고 공언해도, 결정적으로 겟세마네에서 실패한 것이 이토록 자신을 연약하게 만든다. 성도에게 기도는 이처럼 중요하다. 2 첫째 여종은 ‘갈릴리 사람 예수’(69)라고 불렀는데, 둘째 여종은 ‘나사렛 예수’라고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뜰 밖으로 도망가려는 베드로의 정체를 더 잘 아는 여종이 묻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다(72). 도무지 맹세하지 말고 모든 말이 진실이 되게 하라고 가르치셨건만(5:33-37), 베드로는 맹세하면서 거짓말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 어떤 상태로까지 전락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3 이제는 여종이 아닌 주위의 사람들이 더 구체적으로 증거까지 제시하며 베드로의 정체성을 추궁한다. 베드로의 갈릴리 방언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고까지 말한다(73). 하지만 정작 베드로는 점점 더 강하게,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자신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베드로처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세상에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온 지난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임을 밝히 드러내야 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

2021.3.27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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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토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27 (토) 마26:47-56 보통 사람의 눈에는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교권자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 반란 주동자 정도로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1 ‘열두 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예수님께 가장 가까운 자에게 배신당하셨음을 부각시킨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많은 무리가 무장하고 나타났다. 그는 예수님께 입 맞추는 것을 신호로 배신하는 장면에서 유다의 야비함을 느낀다. 예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 중 그 누구라도 배신자가 될 수 있으며,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겠다고 고백하는 우리 역시 유다의 자리에 서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늘 주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2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저항한 제자 베드로를 저지하시면서(요18:10),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가르치신다. 주님이 세우시는 나라는 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님을 가르치신 것이다(51-52).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군대를 동원하실 수 있으시지만, 주님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 즉 하나님이 작정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죽임을 당하시는 길을 선택하신 것이다(53-54).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선택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따라야 한다. 3 사실 예수님을 체포하는 것은 성전에서 더 쉬웠을 것이다. 이것 역시 예수님의 체포가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수님의 주도적 선택으로 이뤄졌다는 증거다. 오직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진 성경을 이루기 위해 잡히셨던 것이다. 함께 깨어 기도하라는 요청도 들어줄 수 없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가 버렸다.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에 절대 동참할 수 없었다. 결국 예수님은 이렇게 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의인으로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다. 주님, 하나님의 뜻에 순...

2021.3.26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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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금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26 (금) 마26:36-46 십자가의 때가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하신 두 가지 부탁을 모두 들어드리지 못했다. 1 예수님은 제자들과 겟세마네 (“기름 짜는 곳”) 동산에 가셨다. 당신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이 그곳에 함께 있기를 원하신 것이다. 또 변화산에 동행했던 세 제자(17:1)들을 조금 더 가까이 데리고 가셔서, 당신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거기 머물러 함께 깨어 기도할 것을 부탁하신다(37-38). 여태껏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을 언급조차 안하시던 분이 이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피하고 싶다고 하실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계셨다(39). 이런 상황에선 그 누구라도, 그분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다짐하고 장담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연약한 육신은 시험을 이겨 낼 수가 없다(40-41). 깨어 기도함 없이 세상의 공격을 이길 수 없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부탁을 우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2 주님의 둘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잔을 마시겠다는 결단이 중심에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잠에 빠져 주님을 기도로 도와드릴 수가 없었다. 이들을 주님은 책망보다는 안식을 주신다(45). 또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라고 하신 말씀은 마치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사용한 사랑 표현 같다(아2:10, 13). 제자들은 잠만 잤는데도,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이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 손을 결코 놓지 않으신다. 우리가 주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주님과 함께함이 우리에겐 큰 복이기 때문이다. 주님, 제자들의 실패를 교훈 삼아 주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늘 깨어서 함께 기도하고, 주와 함께 걸어가는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1.3.25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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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목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25 (목) 마26:17-35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하나님 아들의 권세로 12제자와 새 언약을 맺으셨다. 1 유월절 만찬 중에 예수님이 12명 중 한 사람이 당신을 팔 것이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20-21).  예수님은 바로 곁에 있던 가룟유다의 배신을 아셨다. 이는 유다에게 내미시는 주님의 마지막 손길이었는데, 가룟 유다는 끝까지 주님의 ‘새 언약’을 받지 않고 배반의 길을 선택했다 (23; 요13:25-30).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고 당신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주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 2 주님은 유월적 식사의 떡과 포도주로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신다. 유월절 식사 때 사용하는 떡을 당신의 몸, 포도주를 당신의 피라고 하시면서 이를 먹고 마심 (믿고 받아들임)으로 당신과 하나가 되는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26-28). 예수님은 임박한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당신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셨으며, 성부의 나라에서 제자들과 함께 새것으로 함께 마시는 그날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나실인 서원’을 상기시킨다(민6:3-4). 우리는 이처럼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 바치신 주님을 온전히 믿고 섬기고 따르는 신실한 새 언약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3 제자들이 모두 도망갈 것까지 알고 계셨지만(31; 슥13:7), 주님은 부활 후에 그들을 다시 만나시기 위해 갈릴리로 가실 것이다. 배반하고 도망갔지만, 주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찾으시고 사랑하셨다. 모두들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지만(33, 35), 주님은 제자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를 능력이 없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더더욱 주님께서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릴 구원하셨음이 그저 ...

2021.3.24 NAZAZiM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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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수요일 큐티말씀 입니다.  2021.3.24 (수) 마26:1-16 예수님이 기름부음을 받으실 때 그 배경에 주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자들과 기름 부음에 반대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1이제 예수님은 유월절에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3-4). 유월절 명절 기간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5), 실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는 주께서 음모에 ‘당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수님이 주도하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비참한 십자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광의 자리로 바꾸는 섭리를 이어 가셨다. 2 예수님은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제자들은 이를 낭비로 여기고 분개하면서 기름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이는 이 기름 부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기름 부음은 주님의 ‘장례를 위함’이며, 왕이신 분이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제자들도 미처 깨닫지 못할 정도로 초라한 곳에서 간소하게 치뤄진 주님의 기름 부음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디서나 계속 전해질 중대한 사건이다. 대적하는 종교지도자들 무리와 제자들의 분개와, 유다의 배반 가운데 주님은 장차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왕이 되실 것을 여인의 기름 부음을 통해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뤄진다. 3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하고, 의도적으로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얼마를 주겠느냐?’고 제안함으로 노에 한 명 정도의 가격인 은 30세겔을 받고 자신의 스승을 팔아 넘겼다(15). 예수님을 열심히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떠나는 배교자가 될 수 있음을 마태는 경고한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그 모든 악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주님, 탐욕을 좇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