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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9 (토) 민6: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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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9 (토) 민6:13-27 이스라엘의 힘은 거룩함에서 나온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대제사장이 가장 거룩한 자로 여겨졌고, 나실인 역시 그와 비슷하게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거룩한 이들이 어떤 인정과 권세를 가지게 되는가? 1 나실인이 서원 기간을 마치면 회막 문 앞, 즉 성소 뜰에서 마치 제사장 위임식 같은 제사를 드린다(13; 출29; 레8). 제사장을 세울 때처럼 나실인이 서원 기간을 마칠 때도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14, 16-17; 레8:14, 18, 22). 무교병과 기름 섞은 과자와 기름을 바른 전병이 추가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15; 출29:2). 제사장을 세울 때 드리는 송아지 대신에, 나실인 제사에서는 어린 암양을 속죄제로 드린다. 제사장의 자손이나 레위인이 아니어도, 여자라도 제사장과 거의 차이가 없는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영광이 있다. 거룩을 지키는 것은 이처럼 영광스런 일이다. 2 제사장 위임식에는 숫양의 피를 제사장의 오른쪽 귓불과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바르는 절차가 있는데, 나실인의 경우는 서원 기간에 보존했던 머리카락을 화목제물과 함께 제단에 태워 드리는 절차가 있다(18; 레8;24). 제사장으로 세워진 자들이 하나님 앞에 요제를 드리는 것처럼, 나실인 서원 기간을 마친 자도 제사장과 함께 요제를 드린다(19-20; 레8:26-27).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거룩하게 구별했던 헌신의 기간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중요한 영적 영향력을 끼치게 하셨다. 제사장이 아니어도, 레위인이 아니어도,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훈련을 통과한 자를 이처럼 하나님은 인정하신다. 3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은 거룩한 곳, 즉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이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할 권세가 주어졌다(22-23). 이 축복문은(24-26) 매우 정교한 시적 언어로 3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첫 문장에서 셋째 문장으로 가면서 각각 2단어, 2음절, 5글자씩...

2025.3.28 (금) 민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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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8 (금) 민6:1-12 이스라엘에 요구되는 것은 강한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나실인의 목적은 거룩한 사람의 모범을 보여 주어 공동체 전체의 거룩한 삶을 고양시키기 위함이다. 1 ‘나실’인 (히. 나지르)’은 ‘서원하다’, ‘구별하다’, ‘바치다’등의 의미를 가진 어원을 가진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도 한시적으로 높은 수준의 거룩함을 지키기로 결단하는 것이 나실인 서원이었고, 여성에게도 열려 있었다(2). 나실인으로 서원한 사람은 서원한 기간 동안 술과 식초를 금해야 했고, 포도는 가공한 것도 먹어선 안 된다(3-4). 이처럼 철저히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2 나실인은 몸을 제물로 바칠 수 없기에, 머리털을 자르지 않는 것으로 표식을 삼았다. 서원한 기간이 끝났을 때 그동안 기른 머리털을 밀어 화목제물과 함께 제단에서 태워 바친다(5, 18). 서원기간 동안 대제사장에게 해당될 만한 거룩함을 실천해야 했다(6-7; 레21:10-12). 나실인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기여하는 바가 없어 보여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에 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권능이 의로움과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다. 3 서원한 기간에 의도치 않게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그 머리카락은 더러워져서 하나님께 바칠 수 없기에, 7일 동안의 정결 기간을 보내고, 마지막 날에 머리카락을 밀고(9), 8일째 날에 새 두 마리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 죄를 속하여 머리를 성결하게 하고(10-11),1년 된 숫양으로 속건제를 드림으로 나실인 서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12). 그렇기에 나실인은 혹시라도 부정한 것에 접촉되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했다.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자신을 성결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주님, 우리도 나실인처럼 성결하게 살아갈 때 주께서 우리에게도 능력 주셔서 세상을 이기...

2025.3.27 (목) 민5: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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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7 (목) 민5:11-31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함과 정결함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과 당시에는 남녀의 지위가 동등하지 않아 남자가 아내의 정절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 아내는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 아내의 외도에 증거가 없는 상황이거나 결백한데 남편이 의심하는 상황이라면(12-14),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성막 앞에서 보릿가루로 의심의 소제를 드림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는 기본단위가 부부다. 서로 의심의 싹을 품고 있어선 안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받아 의심을 해결하거나,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2 의심의 소제를 드릴 때 여인은 여호와 앞, 아마도 성막 문 앞에서 소제물을 들고 머리를 풀고 선다(16,18). 제사장은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아 성막 바닥의 흙을 넣고, 이것이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이 말한다. 여인에게 만약 간음을 행한 적이 없다면 그 물의 독을 면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물이 여성의 ‘넓적다리와 배’(성기와 자궁의 히브리어 완곡어법)를 마르고 붓게 하리라는 저주의 맹세에 ‘아멘 아멘’으로 답하게 한다(18-22, 27-28). 또 저주의 글을 쓴 두루마리를 그 물에 빨고 그 물을 여인에게 마시게 하고 소제물 한 움쿰을 제단에 태워 드린다(24-26). 여인이 간음을 저질렀다면 이 모든 과정 가운데 큰 공포와 대가를 치르겠지만, 결백하다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게 된다. 당시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 아내가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법으로 해석한다(29-30).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주님, 말씀의 경고와 억울하게 의심받는 약자를 보호하시는 규례를 보며, 우리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갖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더욱 말씀으로 잘 훈련 받게 하소서!

2025.3.26 (수). 민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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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6 (수). 민5:1-10 1-4장은 이스라엘 각 지파의 계수 및 진영 배치에 대한 말씀이었다. 오합지졸의 이스라엘을 질서 정연한 하나님의 군대로 세우셨다. 이제 5-6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로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규정을 말씀하신다. 1 본문은 레위기의 정결규례(레11-15장)를 연상시킨다. 악성피부병(나병, 레13-14장)과 유출병(레15장),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레11)는 진영 밖에서 따로 장막을 치고 살아야 했다(2). 위생문제도 관련 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앙적 가치가 반영된 가르침이다. 이스라엘의 중심에 하나님이 거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은 언제나 정결함을 유지해야 했다(3). 교회 공동체 역시 부정이나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전3:16-17). 2하나님은 ‘부정함’과 ‘죄’를 명확히 구별하신다. 잠깐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는 것보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는 죄를 자복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죗값을 치러야 하며, 재물에 피해 입힌 것에 1/5을 더해 배상해야 했다(7). 죗값을 받을 사람이 사망했다면 그 친척에게, 친척도 없는 상황이라면 제사장에게 돌려 하나님께 바쳐야 했다(8). 하나님의 백성은 부정과 죄를 멀리하고, 반드시 바로잡고 회개해야 한다. 3 부정해진 사람이 부정을 씻고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올 때나 죗값을 치를 때 제사를 드리게 마련인데, 그 제물 가운데 제사장에게 돌리는 몫이 있었다(9; 레14:13). 또 어떤 물건이든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고자 구별하면 그것은 제사장의 소유가 된다(10).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은 왕과 같이 중앙집권적 권세자가 백성의 세금을 통해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 힘은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전제로 발휘되는 것이었다. 주님, 오늘날 성도들 역시 혈과 육에 속한 것이나 부와 권세로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2025.3.25 (민4: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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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5 (민4:34-49)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귀하게 여기신다. 1 하나님은 30세부터 50세까지 회막에서 봉사하는 고핫, 게르손, 므라리 자손을 계수하게 하신다. 고핫 자손은 2,750명(36), 게르손 자손은 2,630명(40), 므라리 자손은 3,200(44)이었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책무를 맡은 자손들의 수를 각각 기록하게 하심으로 숫자가 아니라 그 사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일깨우신다. 오늘날 성도들은 유력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저 숫자 속에 묻힌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 모두 기억하신다(사49:16).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각 사명을 주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다. 우리의 이름이 불릴 때 곧바로 아멘으로 응답해야 한다. 2 하나님은 레위 자손을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1개월 이상 된 남자들을 계수하게 하신다(3:15). 그러나 그들이 회막에서 봉사하게 되는 때는 30세부터 50세까지이다 (35, 39, 43). 30세부터 50세까지 20년을 봉사하게 하기 위해 생후 1개월부터 30세가 되기까지 준비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시기 위해 80년을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셨다. 예수님도 공생애 3년을 위해 30년을 기다리며 준비하셨다. 사명의 시간은 하나님께 부름 받아 쓰임 받은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준비되어야 쓰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성도의 전 삶을 부르신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전 삶으로 응답해야 한다. 주님, 주와 함께 동역할 존귀한 존재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시니, 사명의 자라로 부르시는 음성에 나의 전 삶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2025.3.24 (민4: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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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4 (민4:21-33)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맡기신 일을 우리는 사명이라 부른다. 우리가 주를 따른다 하지만 주께 영광 돌리기보다 내게 유익한 일인지를 따질 때가 있다. 본문은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크고 작음이 없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1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존재한다. 다양한 직분을 주신 이유는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이다(엡4:12). 주님은 각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 때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의 차별을 두시지 않으신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성막 자체를 옮기는 일(25-26), 므라리 자손에게는 성막을 두른 울타리를 운반하는 일(31-32)을 각각 담당하게 하신다. 그런데 고핫 자손에게 성소 안의 모든 지성물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명하신(7:9) 반면, 게르손 자손에게는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7:7), 므라리 자손에게는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7:8) 사용해 운반토록 하셨다. 우리가 보기에는 당연히 불공평하게 보인다. 그러나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그것이 무엇이든 쓰임 받음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일해야 한다. 2 성막은 길이가 약 45미터(100규빗), 폭이 약 23미터 (50규빗) 정도였음을 감안한다면 8,580명(4:48)이나 되는 사람이 성막 이동에 동원될 필요가 있는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는 예외가 없음을 알려 주시기 위한 것이다(23, 30). 지체와 서로 연결되고, 각각 분량대로 사명을 감당함으로 공동체는 세워지기 때문이다(엡4:16).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이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도 주신다.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에게 능력을 요구하고 책임완수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오직 사명을 맡은 자들이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 충성하기만을 바라신다(고전4:2). 사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심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하시는 복이 된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는 마음으로 사명에 충성하자. 주님, 남들과 비교해 보잘것없이 보인...

2025.3.22 (토) 민3: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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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2 (토) 민3:40-51 본문은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 우리의 좋은 아버지가 되심을 가르치며 주님과 깊이 교제할 것을 권한다. 1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의 생명에 대해 속전을 내게 하셨다. 이후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장자는 속전을 바쳤다(출30:12). 따라서 하나님이 1개월 이상 초태생 남자들을 계수하게 하신 것(40)은 1차 인구조사 당시 20세가 되지 않았던 장자들을 레위인으로 대속하시기 위함이었다(41). 이 같은 사실은 애굽에서 일어난 구속이 과거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모든 시간 속에서 구원 역사를 온전히 진행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던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아신다.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우리를 고통 속에 방관하시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임하는 생과 사, 화와 복의 시간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어야 한다. 또한 그분이 선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2 이스라엘 자손의 초태생들은 사람이든, 가축이든 레위인의 초태생들로 동일하게 대속되었다(41).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1개월 이상 된 초태생은 22,272명(43)이었고, 이를 대속할 레위인의 수는 22,000명(39)으로, 이스라엘 초태생이 273명 더 많았다(46).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당 성소의 세겔로 다섯 세겔씩 속전을 내게 하셨다(47). 생명의 속전으로 드린 다섯 세겔은 당시 성인 노동자의 20일 치의 임금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장자들 생명의 대가를 고작 20일만 일하면 받을 임금으로 대속해 주신 것이다. 즉, 속전이 생명을 대속한 것이 아니라,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대속받은 것이다. 우리 역시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인생이 아니라 그 은혜로 말미암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영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생명을 값을 정할 수 없는 은혜로 대속해 주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