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낮아짐 성도님들.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교회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핸드폰에 쏙 들어오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져서
컴퓨터로 오시든 핸드폰으로 접속하시든 반가운 낮아짐 교회소식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디자인으로 수고해 주신 이규섭 집사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2025.4.26 (토) 민15:22-31 범죄자를 재판할 때 죄질이 나쁘거나, 또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등으로 구분한다. 하나님의 법에서도 마찬가지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는가 하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본문은 죄 용서의 기준을 제시한다. 1 부지중에 지은 죄에 대해 속죄제를 드리는 규정(22-24)은 레위기4장에도 이미 주어져 있다. 부지중에 지은 죄는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다. 죄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행한 것 뿐 아니라, 순간적 욕심이나 우발적인 분노 등으로 행한 죄와 범죄 이후에 곧 후회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반역을 했어도 회개하고 열 명의 정탐꾼인 족장들을 위해 숫염소로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이 그 죄를 속죄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을 수도 있었다(24-28; 레4:14, 22-23, 27-28). 이처럼 하나님은 이미 백성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기에 언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즉시 용서하시고 그 죄를 다 잊으시는 분이시다(사43:25). 2 그러나 ‘고의로’(히: ‘높이 든 손으로) 죄를 범한 자에게는 용서가 없다(30). 고의로 죄를 범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계명을 깨뜨린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비방한 것이 된다. 하나님을 원망할 때는 참고 계셨다가 그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지려 하자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14:10).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오히려 돌을 든 손으로, 즉 ‘높이 든 손으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죽이려 했기에 용서하지 않으신 것이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낸 38년의 기간은 가나안 땅을 향한 소망을 확고하게 하는 시간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 머물 자격이 없는 자들이 솎아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더 확고하게 품고 살아가는 알곡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 주님, 회개하고 용서...
음성큐티 2023.5.18 (목) 삼하19:9-15 내전을 치르고 나면, 그 승퍠와 상관없이 그들 사이에는 심각한 감정의 골이 생기게 마련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과 그로 인한 전쟁이 모두 자기 죄로 인한 것임을 인정했기에 자기를 대적하여 압살롬을 따랐던 사람들을 포용하려 했다. 1 이스라엘 백성 중에 다윗을 다시 왕으로 인정하자는 여론이 일어났다. 대다수 백성은 여전히 다윗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했던 일을 선명히 기억했기에 다윗에게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내전을 겪었음에도 다윗에게 돌아가자는 의견에 하나가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개입된 것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그 징계를 달게 받는 자에게 회복을 허락하신다. 2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유다 지파에 보내 다윗이 왕위에 복귀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한다. 또한 자신의 조카이자 압살롬에의 반란에 참여했지만 사면복권의 차원에서 아마사를 장차 요압의 뒤를 이을 군지휘관 자리를 보장해 줌으로 확실히 자기 사람으로 세워주었다.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 백성들의 마음을 되돌려 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힘쓰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 모든 일의 목적과 과정에서 바르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게 하소서!
2024.7.17 (수) 왕하12:1-8 오늘 본문, 요아스 때 성전을 수리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 교회와 신앙을 바로잡으려 할 때 그 개혁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1 요아스는 7세에 즉위해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에는 정직했지만, 여호야다의 사후에 심각하게 부패했다(2; 대하24:15-21). 산당 종교를 없애지는 못했던 것이다. 예후가 북 이스라엘의 아합 집안을 멸절시켰지만, 여로보암부터 내려온 금송아지 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듯(10:29), 아합의 딸 아달랴를 처단한 유다 역시 산당 종교를 제거하지 못했다. 죄악의 뿌리는 이처럼 견고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어 세상과 타협할 때는 절대로 죄악을 이길 수 없다. 2 어린 요아스에게는 아달랴에 의해 약탈당한 성전 보수는 당연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보수의 명령은 23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야 어떠하든 제사장들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뭔가를 바꾸고 발전시키기보다는 기존의 질서 안에 머물려고 한다. 결국 개혁을 위해선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워져야 한다. 3 여호야다를 비롯한 제사장들은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해 다윗 왕조를 재건한 종교개혁자들이었다. 하지만 23년이 흘러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고, 그 개혁의 주체는 바로 자신들이 세운 왕 요야스였다(7). 다행히 제사장들은 왕 요아스의 책망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해 자신들의 소관이었던 성전에 헌물 관리와 성전 보수하는 역할을 내려놓는 데 동의했다. 이를 보면서, 제사장은 자기가 세운 어린 왕에 의해 책망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잡아 가는 깨어 있는 공동체로 저희를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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