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10 (목) 민12:1-8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연스럽게 격분한다. 모세는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이유로 미리암과 아론에게 비난을 받았고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때 하나님이 직접 개인하셔서 모세의 권위를 인정해 주시며 당신의 선택과 주권을 확증하셨다. 1 미리암과 아론은 비방을 넘어 모세의 권위 자체를 흔들고 싶어 했다. 지도자의 권위가 자신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반역에 모세가 분노를 터뜨려도 마땅했겠지만, 모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중 가장 온유한 자라고 성경은 평가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시켜 겸손해진 상태를 뜻한다.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의 악행을 묵묵히 받아들였고 대항하지 않았다. 우리가 부딪히는 여러 억울한 상황은 우리에게 온유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람들 모두 온유한 자로 살 것을 교훈하신다(마5:5). 2 모세가 미리암과 아론에게 감정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모든 상황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결과를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불러 친히 모세의 권위를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셨다. 모세를 반역한 죄가 곧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억울함 가운데 죄를 짓지 않으려면, 내 인내심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을 결코 우리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주님, 억울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내 자아를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굴복시키며 나의 자아를 철저히 부인하는 믿음의 성숙이 날마다 일어나게 하소서!
2025.4.9 (수) 민11:24-35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충분한 고기가 공급된다. 그러나 탐욕을 품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이 오히려 징계의 재앙이 되었다. 1 하나님의 명령대로 70명의 장로들이 선택되어 장막에 둘러 섰다. 그때 하나님께서 장로들에게 영을 나눠 주시자 그들이 예언하는 일이 일어났다. 예언은 성령이 임하실 때 종종 동반하는 현상이다(삼상10:6; 19:23-24; 왕하3:15; 욜2:28; 행2:4; 19:6). 그런데 모세 없이 예언이 선포되는 상황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 여호수아와 달리, 모세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누구에게나 그의 영을 부어 주실 수 있음을 강조한다 (29). 하나님은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시고 행하시는 분이시다. 모세가 사람들 간의 시기나 질투를 넘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지지한 것처럼,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며 은혜 입기를 구해야 한다. 2. 바다에서 강한 바람을 타고 메추라기가 진영 사방에 떨어진다. 고기를 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하나님은 ‘질릴 정도로 한 달 동안 먹게 하겠다’는 말씀을 이루셨다(20). 백성은 욕심을 좇아 엄청난 양의 고기를 모았다. 그런데 그들이 고기를 씹기도 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 특히 탐심이 많았던 사람이 죽었다(33). ‘탐욕의 무덤(리브롯 핫다아와)’이라고 그 곳 이름을 붙였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으로 선택하는 것은 반드시 징계로 끝난다. 하나님은 아모스8:11 말씀을 통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영적 기근에 빠져 죽지 않도록, 매일 공급해 주시는 은혜에 충분히 만족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주님,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는지, 혹은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것은 없는지 늘 깨어 돌아보며, 말씀에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
2025.3.6 (목) 요18:28-40 이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 당하는 장면이 19장 중반까지 이어진다. 재판 과정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의 고발이 부당하고 위선적이며, 예수님이 진리의 왕이심을 볼 수 있다. 1 가야바 재판에 관해 요한은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다만 ‘가야바 집에서 로마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다고만 말한다(28). 유대인들이 관저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유월절 음식’을 먹고자 함이었다. 정결예식을 위해서는 이방인의 관저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고발하는 무고죄를 저지르는 그들의 모습을 요한은 고발한다(29). 그들은 이미 마음 속으로 예수님을 죽일 마음으로 사형언도가 가능한 재판정으로 온 것이다(31). 법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악한 시도는 예나 지금이나 넘쳐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 아래 공의는 반드시 실행될 것이다. 2 예수님이 정치적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인지 알고 싶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다(33). 이에 예수님은 자신의 통치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에 관한, 더욱 크고 진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 나라에 속한 자들만 진리에 속한 자들이 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다(36-37). 빌라도는 이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이냐’고만 묻지만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저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38). 불법적인 고발과 재판 속에서도 참된 왕권은 홀연히 빛났다. 3 예수님의 무죄를 알았던 빌라도는 더이상 유대인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유월절에 한 사람을 석방하는 관습을 좋은 핑계거리로 삼았다. 그러나 무지한 군중은 바라바라는 이름의 강도 살인자를 대신 석방할 것으로 요구한다(40). 성난 군중의 압력에 굴복해 공정을 버리고 정치적 안정을 택하는 모습은 선을 버리고 악을 취하며, 다른 이들을 협박해 죄에 동참시키는 것은 인간의 못된 본성이다(롬1:32). 이 부조리 속에서도 주...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