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8 (토) 왕상18:16-29

2024.5.18 (토) 왕상18:16-29 세상은 상대주의, 다원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이에 진리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아합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이들 앞에서 엘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나? 1 엘리야를 만난 아합은 먼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불렀다. 천둥과 번개, 폭풍우를 관장한다는 바알이 엘리야의 저주 한마디에 3년 동안이나 아무 힘도 쓰지 못한 것이야말로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과 그의 아버지 오므리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장본인이며, 그 재앙은 바알숭배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선포했다(18).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 보자는 엘리야의 제안에 아합은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사람이 만든 우상이 어찌 사람보다 뛰어나랴? 2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은 질타한다. 이에 백성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끄러움은 죄의 결과다(21; 창3:7). 영적 양다리를 걸친 백성의 눈에는 분명 바알 선지자들이 유리하다. 압도적으로 수와 번개의 신이 불을 내리는 것이 훨씬 유리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그 결과는 부끄러움 뿐이다. 3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송아지를 잡고, 바알의 이름을 하루 종일 부르고 ‘뛰놀기’를 시작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열심을 내어도,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종교적 열심과 모든 제사 행위는 무의미했고, 허무했다. 가짜임이 드러나도 그것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우상숭배다. 주님, 세상의 탐욕과 세속에 물들어 살아가는 삶을 철저히 경계하여, 참된 진리의 좁은 길로 주의 말씀 따라 걸어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게 하소서.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2025.4.10 (목) 민12:1-8

2025.3.6 (목) 요18:28-40

2025.2.28 (금) 요16:25-33